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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저그` 홍진호, 내 선수생활 100점 만점에 9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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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5일, 용산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서 열린 은퇴식에 참석 중인 홍진호

전 탁구 국가대표 현정화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2등이 필요 없는 분야잖아요.”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1등 혹은 최하위를 기억하는 사람은 있어도 어중간한 2등을 추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2위도 세상에 기억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 인물이 국내 e스포츠 계에 존재한다. 지난 6월 25일, 폭스 전상욱과의 은퇴 경기를 마지막으로 ‘스타1’을 떠난 홍진호가 그 주인공이다.

홍진호의 은퇴식에는 지금은 ‘스타2’로 전향한 임요환과 이윤열, 그리고 아직 ‘스타1’ 현역으로 뛰고 있는 박정석이 한 자리에 모여 화제로 떠올랐다. 그들은 이른바 국내 e스포츠의 중흥을 일궈낸 원조 ‘4대 천왕’이다. 임요환과 이윤열이 ‘스타2’로 자리를 옮기며 더욱 모이기 힘들어진 4대 천왕이 한데 모인 그 순간은 e스포츠 관계자 및 올드 팬이 오랜만에 옛추억에 젖어볼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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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진호의 은퇴식에 참석한 박정석, 임요환, 이윤열

‘박수칠 때 떠나라’는 구절처럼 홍진호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그는 “예전과 같은 열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제는 떠나야 될 때라고 생각했다.”라며 은퇴 후 게임메카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홍진호는 팬들과 자신을 희망고문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추억으로 남기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내려놓음’을 실천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홍진호는 ‘스타1’ 선수로 활동하며 공식 대회 우승을 거머쥔 경력이 없다. 10년 간의 기간 동안 20번이나 4강 이상에 진출했으나, 개인리그와 팀리그, 국제 e스포츠 오 WCG까지 합쳐 총 10회의 준우승을 기록했다. 홍진호의 친정팀, KT롤스터는 그가 공군 ACE에 복무 중이던 2010년 4월이 되어서야 프로리그 최초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만년 2등’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홍진호 이름 하나에 모든 e스포츠 관계자 및 팬이 열광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게임메카는 e스포츠가 낳은 유일무이한 ‘2위’ 홍진호의 일대기를 돌아보고, 10년 간 선수생활을 정리한 그의 심경을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홍진호와 숫자 2, 그 질긴 인연은 탄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홍진호’하면 가장 먼저 숫자 ‘2’가 떠오른다.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강민의 입대 전 마지막 스타리그 예선 도전기를 다룬 온게임넷 프로그램 ‘강민의 올드보이’에 배틀넷 채팅을 통해 참여한 홍진호가 휴가 복귀를 위해 예매한 열차 좌석이 22일 2호차 22번이라고 밝힌 일화는 유명한 사례로 언급된다. 은퇴식에서 사회를 맡은 전용준 캐스터가 ‘2’에 관련한 일화를 이력서처럼 소개할 정도로 홍진호와 숫자 ‘2’는 자타가 공인한 질긴 인연을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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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와의 인연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홍진호의 탄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1982년 10월 홍진호는 2남 집안의 둘째로 태어난다. 1999년 현 화승 오즈인 IS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한 홍진호는 2001년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을 시작으로 ‘콩라인’의 계보를 열었다. 당시 임요환에게 2:3으로 석패한 홍진호는 그것이 기나긴 ‘준우승 징크스’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홍진호의 ‘준우승 본능’은 자연스럽게 ‘숫자 2’로 이어졌다. e스포츠에서 전무후무한 ‘2인자’ 이미지를 고수한 홍진호의 팬들은 ‘2’와 관련된 기록과 에피소드를 집중조명하며 이슈화에 팔을 걷어 붙였다. 홍진호 본인이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하던 ‘2등’이 오히려 그를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로 자리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에 대한 홍진호의 진기록 중 대표적인 것을 골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홍진호는 공식 개인/팀단위 리그에서 10번 ‘2위’에 올랐으며 프로게이머 사상 2번째로 억대 연봉을 받은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역대 2번째로 스타리그 통산 100승에 올랐으며 프로게이머 사상 2번째로 억대 연봉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소개한 것 중 준우승을 제외한 모든 기록의 1위가 숙명의 라이벌 임요환이라는 점이 또 다른 흥미요소다.

홍진호와 2의 인연은 그가 2년 6개월 동안 복무한 공군 에이스에서도 이어진다. 그 시작은 국내 모 ‘스타1' 커뮤니티를 마비시킨 대사건 08-09 신한은행 프로리그 5라운드 공군 VS SKT 3경기이다. 공군이 0:2로 몰리는 위기의 상황에서 3세트에 출전한 홍진호는 당시 대 저그전 극강의 경기력을 과시하던 SKT의 김택용을 상대로 맞아들이게 된다. 당시 홍진호는 공군 입대 후, 단 한 번도 승리를 맛 보지 못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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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에이스에서도 2와의 인연을 이어간 홍진호

여러 정황 및 전적 상 그의 승리 가능성을 낮게 점쳤던 전문가의 예상을 가볍게 웃어 넘기며 홍진호는 더블 넥서스 구축 후 입구 수비에 집중한 김택용을 히드라리스크/저글링 본진 폭탄 드랍으로 시원스럽게 잡으며 첫 승을 일궈냈다. 오후 2시 22분부터 상대를 거세게 몰아부친 홍진호의 승전보는 ‘2시 22분’이라는 상징적인 시간과 함께 e스포츠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후 홍진호는 10-11 신한은행 5라운드에서 총 3연승을 기록하여 공군 에이스 창단 최초로 2자리 수 승수인 10승 기록을 견인했다. 홍진호 3연승의 희생양 중에는 당시 KeSPA 랭킹 2위에 자리하고 있던 ‘폭군’ 이제동도 포함되어 있다.

2와의 인연은 홍진호가 은퇴하는 시점에까지 이어진다. 지난 6월 15일 22시 다시 말해 밤 10시에 자신의 팬까페를 통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며 은퇴 사실을 밝힌 홍진호는 당시 실시간 검색어 순위 2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는 지난 6월 25일 폭스의 전상욱을 상대로 프로리그 2세트에 출전해 오후 2시 22분 ‘스타1’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2남 중 둘째로 시작하여 200번째 테란전을 마지막으로 ‘스타1’ 고별 무대를 가진 홍진호의 프로게이머로서의 인생은 말 그대로 2로 막을 올려 2로 종결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리그는 물론 팀단위 리그에도 이어지는 그의 준우승 본능!

홍진호는 숙적 임요환은 물론 이윤열, 서지훈, 최연성 등 당대 최고의 테란과 결승에서 맞붙으며 안타깝게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2001년부터 그의 오랜 숙원으로 손꼽힌 ‘저그 최초 스타리그 우승’ 타이틀마저 2004년 질레트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전태규를 꺾은 ‘투신’ 박성준에게 돌아갔다. 당시 ‘저그’를 응원하던 팬들은 종족 최초 스타리그 우승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한편, 그 우승자가 홍진호가 아니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3:0으로 최연성에게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만 했던 TG 삼보 MSL(2010년 11월 23일)이 홍진호가 출전한 마지막 개인리그 결승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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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진호의 앞을 가로막은 당대 최고의 테란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서지훈

정규 시즌에서 준우승을 밥 먹듯이 한 홍진호에게 따라 붙는 또 다른 이름표가 있었다. 바로 ‘이벤트전의 황제’이다. 사실 홍진호는 스타리그, MSL 등 정식 ‘스타1’ 개인리그를 제외한 이벤트 경기에서 다수의 우승을 챙겼다. 2001년 12월 게임벅스배 스타최강전 우승을 시작으로 총 9번의 우승 경력을 거머쥔 홍진호는 유독 이벤트 경기에서만 강세를 두드러진 독특한 이력을 기록했다.

개인리그는 물론 팀단위 리그에서도 홍진호의 ‘준우승 본능’은 그대로 발휘되었다. 2004년 SKY 프로리그 3라운드에서 8전 전승으로 결승까지 갔음에도 마지막 세트에서 KOR(전 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차재욱에게 무너지며 준우승에 머문 전례와 에이스 결정전 9연승을 기록한 강민의 활약을 바탕으로 e스포츠를 포함한 프로 스포츠 사상 최고 연승인 23연승을 일궈낸 2005년에도 KT는 숙명의 라이벌 SKT T1에게 결승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KT의 질긴 ‘준우승 징크스’는 홍진호가 공군 ACE에 입대한 2010년에야 비로소 깨졌다. 결승을 맞아 휴가를 나온 홍진호가 지켜보는 가운데 KT롤스터는 e스포츠의 성지 ‘광안리’까지 정복하며 준우승의 설움을 시원스럽게 풀었다. 광안리 대첩 1경기에서 SKT의 중견 테란 고인규를 잡은 우정호는 그 기쁨을 홍진호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콩댄스’ 세리모니로 표해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홍진호는 우정호의 요청으로 약 2초간 ‘콩댄스’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달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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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광안리를 정복한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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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호의 요청에 세리모니를 선보이러 이동 중인 홍진호

홍진호가 전 소속팀 투나 SG의 팬미팅 당시 팬서비스 차원에서 첫 선을 보인 ‘콩댄스’는 인터넷 상에 비공식 ‘교본’이 떠돌 정도로 홍진호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쑥쓰러움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인 채, 온몸을 흥겹게 흔드는 홍진호의 ‘콩댄스’는 팬들 사이에서 이슈화되어 여러 패러디 물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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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진호의 트레이드마크 '콩댄스' 교본

아사다 마오가 콩라인에 가입한 이유는?

홍진호의 대표 별명인 ‘콩’은 그 시초 및 출처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를 대표하는 타이틀로 자리했다. ‘콩’이 가장 널리 사용된 부분은 홍진호처럼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리는 선수를 통칭하는 일명 ‘콩라인’이다. 지금은 개인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콩라인’의 굴레를 벗어난 송병구, 정명훈 등의 선수들은 결승에 임할 때마다 “반드시 콩라인에서 벗어나겠다.”라는 멘트로 우승에 대한 각오를 다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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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확치 않은 출처로 홍진호의 별명으로 자리잡은 '콩'

‘콩라인’ 적통 계승자로 가장 먼저 인정받은 송병구는 2007년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 김택용에게 2:3으로 패배하며 준우승 징크스에 첫 발을 들였다. 이후 송병구는 2007 에버 스타리그와 2008년 박카스 스타리그에서 당시 무서운 신예로 떠오르던 이제동과 이영호에게 연이어 첫 우승의 감격을 안겨준 준우승자로 자리했다.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송병구는 무려 3번의 준우승을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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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라인' 적통 계승자로 인정받은 바 있는 송병구

준우승의 멍에에서 괴로워하던 송병구는 2008년 인쿠르트 스타리그에서 정명훈을 상대로 3:0으로 시원스러운 우승을 차지하며 비로소 ‘콩라인’에서 탈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명훈은 송병구와의 결승 이후 펼쳐진 바투 스타리그에서 이제동에게 2:3 역전패를 당하며 본의 아니게 ‘콩라인’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송병구에게 ‘콩라인’ 계보를 이어받은 모양새가 된 정명훈은 2011년 박카스 스타리그에서 마침내 첫 우승을 차지하며 준우승의 설움을 씻었다. 그 상대가 자신을 꺾고 ‘콩라인’에서 벗어난 송병구라는 점이 흥미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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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콩라인'에 빠뜨린 송병구를 상대로 시원스럽게 우승을 거머쥔 정명훈

‘콩라인’ 계보는 종목을 뛰어넘어 ‘스타2’에까지 전이되었다. ‘스타2’ 대회에서 총 4번의 준우승을 기록한 이정훈이 그 주인공이다. 상성을 무시하는 매서운 ‘해병’ 컨트롤과 귀여운 외모로 ‘해병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일찌감치 실력과 인기를 손에 거머쥔 이정훈은 우승 문턱에서 임재덕, 정종현 등 IM 사단에 번번히 무릎을 꿇으며 명실상부한 ‘스타2’ 콩라인 멤버로 눌러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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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식전까지 합쳐 총 4회 준우승을 기록 중인 '스타2'의 콩라인 이정훈

홍진호의 ‘콩라인’ 영향력은 e스포츠를 넘어서 프로 스포츠에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대표 피겨 선수 중 하나인 아사다 마오이다. 그녀는 2010년 동계 올림픽 쇼트 순번추첨에서 22번에 당첨되어, 그로부터 이틀 뒤 쇼트프로그램 합산 2위에 올랐다. 다시 이틀 뒤에 벌어진 프리스케이팅에서도 22번째로 출전하여 2위에 그치고 말았다. 아사다 마오의 준우승 기록과 2와 연관된 에피소드가 ‘콩라인’으로 연결되는 오묘한 확산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 외에도 월드컵에 8번 출전하여 준우승만 3번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에서만 준우승 3번을 기록한 KBL 대표 외국인 용병 선수 테렌스 레더,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인정받지만 우승과 지독히 연이 없던 미하엘 발락 등이 ‘콩라인’의 멤버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은 공식 기록이 아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유머에 불과하지만 홍진호가 갖는 대중성이 그만큼 범위가 넓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예로 작용한다.

게임이 끝나고서야 닭다리를 뜯은 슬픈 사연을 아시나요?

홍진호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다. 지금은 ‘스타2’로 전향하여 현역으로 뛰고 있는 임요환이 그 주인공이다. 2002년 MBC게임의 ‘스타1’ 전문 중계진 김철민 캐스터는 두 선수의 대결을 당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국산 RTS의 타이틀을 따서 ‘임진록’이라 명명했다. 2001년 5월 18일 iTV 한게임 서바이벌을 통해 최초로 성사된 ‘임진록’은 임요환의 3:2 승리로 마무리된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통해 e스포츠 흥행수표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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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전설이 된 e스포츠 대표 라이벌전 '임진록'

지금까지 ‘임진록’은 총 67번 성사되었으며 상대 전적은 35 대 32로 임요환이 약간 앞선다. 승수 격차가 3승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홍진호와 임요환은 오랜 시간 동안 대등한 경쟁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들의 대결인 ‘임진록’은 임요환이 ‘스타2’로 전향하기 직전인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시즌까지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하는 흥미 요소로 떠올랐다. 가장 마지막 ‘임진록’은 2010년 8월 14일 프로리그 올스타전에서 펼쳐졌으며, 홍진호는 이 경기에서 하늘을 뒤덮는 뮤탈 부대를 과시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지난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에서 성사된 ‘임진록’에서 홍진호가 대 테란전 222승을 찍은 기록은 홍진호를 대표하는 숫자 ‘2’와 더불어 널리 회자되었다.

그러나 코카콜라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시작으로 MBC게임 스타리그의 시초인 KPGA, 같은 해에 진행된 WCG 2002 결승 등 중요한 고비마다 홍진호는 임요환과의 대결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실제 상대 전적은 대등함에도 불구하고 꼭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발목을 잡힌 것이 홍진호의 시점에서 매우 아쉬운 부분으로 다가온다.

역대 ‘임진록’ 중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경기는 2004년 에버 스타리그 4강에서 펼처진 ‘3연속 벙커링’ 일명 ‘3연벙’ 사건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4강에서 ‘임진록’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이 전 e스포츠 팬들은 명경기를 기대하며 치킨, 피자 등 선호하는 간식을 시켜놓고 TV앞에 앉았다. 당시 그 열기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것과 대동소이했다. 특히 유닛 하나가 남을 때까지 처절하게 맞대결하는 경향의 ‘임진록’이기에 팬들은 치킨 한 마리를 먹고도 남는 긴 시간 동안 경기가 이어지리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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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요환의 3연속 벙커링에 '임진록' 4강은 30분만에 종료되고....
(위 사진은 실제 경기와 관련없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에버 스타리그 4강전은 30여분 만에 임요환의 3:0 승리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상대의 진영 앞에 벙커를 짓고 마린를 끊임 없이 전진시키며 승부를 보는 초반 승부수 ‘벙커링’에 홍진호가 3연속으로 패배하고 만 것이다. 이 날, 팬들은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따끈따끈한 닭다리를 뜯었다’라며 씁쓸한 심정을 전했다.

당시 ‘3연벙 사건’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반칙이 아닌 정당한 전략으로 승부를 본 임요환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쪽과 극적으로 성사된 ‘임진록’을 30분 안에 그것도 동일한 전술 ‘벙커링’을 3번 연속 사용하며 싱겁게 끝낸 임요환이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물론 ‘벙커링’은 공식 경기에서 인정되는 정당한 전술이며, 이를 통해 승리를 거둔 임요환이 공식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팬들의 반발은 당시 ‘임진록’에 거는 기대감은 매우 컸음을 시사하는 예로 작용한다.

홍진호 “1등과 마찬가지로 2등도 한 명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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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식 현장에서 골든 마우스를 받은 홍진호

게임메카는 은퇴 후 재충전 시간을 가지며 휴식 중인 홍진호와 지난 10년 간 생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2위도 세상에 기억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 홍진호는 인터뷰를 통해 “1위도 2위도 한 명밖에 없다. 결승전에 올라선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밝혔다. 홍진호와의 인터뷰 전문을 아래를 통해 모두 공개한다.

10년 간 종사한 ‘스타1’에서 은퇴한 소감이 어떠하며, 은퇴를 본격적으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홍진호: 오랫동안 해온 만큼 시원섭섭하다.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좀 더 크게 남는 것 같다. 10년 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슬럼프에도 빠지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전환기도 많이 경험해 봤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공군 에이스에서 활동하고, 사회에 나온 뒤 게이머 생활을 유지하며 예전과 같은 열정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 때, 이제는 물러나야 될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많은 진기록을 남기며 e스포츠의 대표 선수로 자리해왔다.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홍진호: 정규 시즌은 아니지만 온게임넷 왕중왕전에서 우승했던 것과 MBC 위너스챔피언쉽에서 임요환을 이기고 우승을 했던 것이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다. 팬 분들이 더 잘 아실 법한 ‘3연벙 사건’과 WCG 예선에서 서지수 선수에게 패배를 당한 일 정도가 소록소록 떠오른다. 가장 아쉬운 점은 정규시즌 우승을 한 번도 못해보고 떠난다는 것이다. 이 점이 마음에 걸린다.

은퇴식에서 스타리그 3회 우승을 상징하는 ‘골든 마우스’를 수여 받았는데, 당시 심정이 어떠했는가?

홍진호: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우승자만이 받을 수 있는 골든 마우스가 손에 들어왔을 때 내가 이것을 받아도 되나,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웃음) 받을 자격은 안 되지만 은퇴식에서 많은 관계자 분들이 좋은 자리와 멋진 선물을 마련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e스포츠 선수로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져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해달라.

홍진호: 오랜 시간 동안 e스포츠에 몸을 담으며 참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렇기에 그 중에서 몇 명만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선수로 생활하며 만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다.

그 중에서 굳이 꼽자면 KTF 시절 게이머로서의 인성과 프로마인드에 대해서 나를 많이 지도해준 송병석 선수가 떠오른다. 지금도 종종 연락을 취하는 등 친하게 지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자리에서 KT 이지훈 감독과 코치진, 후배 선수들과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하다.

홍진호: 이지훈 감독님은 예전 KTF 시절부터 같은 선수의 입장에서 함께 해온 분이다. 그만큼 프로게이머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아 예전부터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주었다. 은퇴 당시에도 내 상황에 맞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 외 코치 분들과 팀원들도 은퇴를 발표할 당시에는 너무 아쉬워했으나, 지금은 충분히 서로를 이해해주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지금도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관계로 자리하고 있다.

‘스타1’ 프로게이머로서 e스포츠에 어떠한 업적을 세우고 떠나는 것 같은가?

홍진호: 개인적인 욕심과 팬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물론 e스포츠 초기 멤버로서 좀 더 이 분야가 발전되기 바라는 마음과 높은 성적을 이루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으나 재미있고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 프로게이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해왔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후배들에게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너무 만족스러울 것 같다.

자신의 선수 생활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은가?

홍진호: 개인적으로 90점을 주고 싶다. 사실 100점을 줘도 충분하다는 마음도 약간 있지만 첫 목표였던 우승을 이루지 못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 스스로 너무 후하게 점수를 매긴 것 같다. (웃음)

e스포츠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잠시 휴식 기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향후 거취는 어떻게 되는가?

홍진호: 아직 구체적인 언급을 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 일단 은퇴를 하는 것이 시급해 서둘러 진행했을 뿐이다. 지금은 자유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스타2’로의 전향 역시 희박한 가능성만 남아있을 뿐, 실천에 옮길 세부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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