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임의 제공자가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셧다운제의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셧다운제의 시행을 코앞에 둔 2011. 11. 8. 셧다운제의 적용 유예 범위에 관한 시행령을 확정 지었습니다.
게임사업자들이 시행을 2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와서야 자신들이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이 셧다운제의 적용대상인지 알게 되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번 시행령은 문제의 소지가 많은데, 이번 시간에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우선 휴대폰, 태블릿 PC,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게임물을 유료로 제공받는 경우를 제외한 콘솔게임은 셧다운제 적용이 유예됩니다. 또한, 비영리를 목적으로 제공되고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일부 플래시 게임, 일부 PC 패키지 게임도 셧다운제 적용이 유예됩니다.
과연 이런 기준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왜 셧다운제가 도입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셧다운제의 적용을 유예할 게임물의 범위를 정할 때에도 게임물의 중독성 유무가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행령에서는 과연 이런 기준들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여성가족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경우에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보급률이 낮아 셧다운제 적용을 유예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서 구동되는 게임의 중독성이 높다면, 단지 보급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적용 유예 대상으로 하는 것은 합리성이 없습니다. 오히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주된 사용장소(대중교통), 화면크기로 인한 피로감, 배터리 충전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중독의 우려가 낮다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 지난
2일 게임 카테고리가 열린 앱스토어, 셧다운제 유예 대상이다
다음은 콘솔게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PC 온라인 게임과 콘솔게임이 중독성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PC용 게임이 콘솔용으로 변환되어 출시되거나 콘솔용 게임이 PC용 게임으로 변환되어 출시되는 관행은 이미 오래 전에 확립된 것입니다. 동일한 게임이라면 플랫폼만을 달리한다고 하여 중독성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콘솔게임만을 적용에서 유예하는 것은 아무런 합리성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게임 이용에 추가비용이 요구되는 콘솔게임의 경우에는 셧다운제 적용대상에 포함시켰는데, 게임의 내용이 아니라 과금 유무에 따라 셧다운제 적용의 유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기준에 의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유료
서비스라는 이유로, 셧다운제 적용 대상이 된 MS의 Xbox Live
(위 사진은 국내
Xbox 공식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시행령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플래시게임, PC패키지 게임은 셧다운제 적용을 유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지 여부는 게임의 중독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만약 중독성이 있는 게임이라면 셧다운제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고,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중독성이 있다면 개인정보를 수집하도록 하여 셧다운제를 적용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맞습니다.
더욱이, 비즈니스 모델이 다양해진 현재 상황에서는 영리와 비영리의 구분도 쉽지 않습니다. 우선 플래쉬 게임을 살펴볼까요. 국내 포털들은 대부분 유아들을 겨냥한 별도의 페이지에서 플래시 게임을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아용 페이지 곳곳에는 어린이나 학부모를 겨냥한 배너광고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이트들은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별도로 과금을 하지 않지만, 배너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하여 영리 목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게임 이용 자체에 대해서 과금을 하는지 여부에 따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PC 패키지 게임 중 비영리를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게임은 “스타크래프트1”입니다. 패키지 게임으로 네트워크 기능을 이용하는데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등록하면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네트워크 이용에 별도의 비용이 부과되지 않고,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게임이라고 해서 적용을 유예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일까요? 예전 게임들이 최근 게임들과는 달리 CD로 판매된 이유는 단지 네트워크의 속도 때문에 대용량 파일을 빠른 시간에 안정적으로 전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임업체들은 일단 향후 발생할 네트워크 비용까지 고려하여 게임 CD의 가격을 정하고 이를 판매한 뒤 별도의 과금없이 네트워크 이용기능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게임의 설치방식(온라인 다운, CD 구매)이나, 네트워크 비용 과금방식(CD가격에 포함시켜서 받느냐, 별도로 과금을 하느냐)은 게임의 중독성과는 무관한 네트워크의 발달이나, 이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일 뿐입니다.
만약, 앞으로 특정 게임사에서 인터넷 게임을 온라인 다운로드 방식대신 CD로 배포하되, 네트워크 유지비용을 포함하여 CD 가격을 책정한다면, 셧다운제를 쉽게 피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여성가족부는 블리자드가 나이와 무관하게 새벽 0시부터 6시까지 스타크래프트1, 디아블로 2 접속을 차단할 경우 발생할 비난여론을 우려하여 원칙을 버리고, 몇 가지 인기게임을 제외시키기 위해 시행령을 수정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셧다운제는 그 자체로 사업자와 청소년, 학부모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적용이 유예되는 게임물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결론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진심으로 셧다운제를 게임중독의 해결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더 이상 원칙 없는 기준으로 게임사업자와 청소년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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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찬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