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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거래가 정녕 청소년 게임과몰입 부추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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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는 2011년 11월 14일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였습니다. 현행 게임법과 동법 시행령에 따르면, 고스톱이나 포커 등 사행성 게임을 통해 획득한 아이템, 오토 프로그램 사용과 같이 비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획득한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게임아이템을 환전하거나,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행위가 허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 예고된 시행령에 따르면 앞으로는 청소년이용불가 등급 이외의 게임(전체이용가·12세이상·15세이상, 이하 청소년이용가능 게임)물의 게임머니나 아이템을 환전하거나,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행위가 금지됩니다.

쉽게 말해 개정안이 시행되면 앞으로 아이템 거래 중개 사이트에서 청소년이용가능 게임의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행위가 금지되며, 이로 인해 게이머들이 청소년 이용가능 게임의 아이템을 중개 사이트를 통하여 거래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사행성, 게임과몰입과 아이템 거래

문광부에서는 아이템 거래가 게임의 사행성과 및 청소년들의 게임과몰입을 부추기기 때문에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광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우선 아이템 거래가 사행성을 강화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게임은 게임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의 등급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게임위가 등급을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바로 사행성이죠. 게임위는 전국을 도박장으로 만들었던 ‘바다이야기’ 사태 때문에 신설된 기관인 만큼 특히 사행성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법과 게임법 시행령에서는 지금까지 고스톱이나 포커와 같은 사행성 게임과 오토프로그램 등을 통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획득한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아이템 거래 중개를 허용하여 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게임위는 지금까지 아이템 거래가 허용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사행성 유무를 판단하여 등급을 부여해왔습니다. 문화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아이템 거래 허용여부가 사행성 유무를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소라면, 아이템 거래가 허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이용가능 게임으로 분류된 모든 게임은 등급분류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결국,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던 게임위의 등급 심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아이템 거래가 청소년들의 게임과몰입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광부는 청소년들이 게임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게임에 더욱 몰입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게임과몰입과 아이템거래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한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부가적으로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이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라면 시간 대비 효용이 가장 높은 게임에 청소년들이 집중되어야 할텐데, 오로지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 게임에 청소년들이 쏠리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 06년 10월 30일 출범한 게임물등급위원회


성인들의 권리는 어디로

많은 성인들도 청소년이용가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폭력성과 선전성, 사행성이 게임의 재미를 본질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기 때문에 당연히 재미있는 청소년이용가 게임에는 성인 유저들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청소년이용가능 게임을 즐기는 성인들도 중개사이트를 통해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문광부의 주장처럼 아이템거래가 청소년들의 사행심을 조장하고, 게임과몰입을 부추긴다고 하더라도, 이 때문에 성인들의 아이템 거래까지 금지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아이템 거래가 청소년들의 사행심을 조장하고, 게임과몰입을 가져온다면 청소년들의 아이템 거래는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성인들의 아이템 거래는 허용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아이템 중개 사이트를 통하지 않고 직거래를 하는 것은 허용되는 반면, 성인들도 청소년이용가능 게임의 아이템을 중개사이트를 통하여 거래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청소년들의 음주는 금지하고, 성인들의 음주는 허용하고자 한다면, 청소년들의 술 매매는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성인들의 술 매매는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행령은 청소년들이 가게에서 술을 사는 행위는 금지하되, 친구에게서 술을 사는 행위는 허용하는 반면, 성인들은 학교 앞 가게에 술을 사지 못하도록 금지시켜 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도 없고, 규제의 범위도 합리적이지 않다보니, 앞으로도 아이템 거래 금지에 대한 논란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 아이템 중개 사이트 '아이템매니아'


법으로 규제하기 전에

지난 11월 30일 게임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된 공청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모 교수님이 “정책 관계자들이 규제과몰입에 빠진 것 같다”는 뼈있는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강제적 셧다운제, 선택적 셧다운제, 아이템 거래 중개 금지 등 게임에 대한 온갖 규제가 실효성이나 부작용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문제만 생기면 서둘러 법을 만들기 전에, 규제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국가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지 충분한 고민이 먼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병찬 변호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7기, 현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
2008.2 ~ 2011. 1. SK텔레콤 법무실 근무
정신신체전문가과정 의료소송 강의
트위터 ID: @gerrard76
E-Mail: gerrardgogo@gmail.com
블로그:
collectiveintelligence.tistory.com
셧다운제 관련 카페:
cafe.naver.com/noshut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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