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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 한 발 걸친 `나름 관계자` 들의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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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 게임 개발, 마케팅, 관리직 등 게임산업 종사자로 통칭되는 인원은 5만여 명으로 집계된다. 여기에 게임 제작, 배급, 소매, PC방 등 전국 3만여 곳의 게임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인원까지 합하면 수십만 명, 어쩌면 백만 명 이상이 ‘게임산업 관계자’ 라는 호칭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볼 경우 게임산업 관계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게임계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메이저 게임업계’ 에 직접적으로 발을 담그고 있지는 않지만, 그 옆에서 누구보다도 잘 게임업계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 바로 ‘나름 관계자’ 들이다. 2011년 연말을 맞이해 그들을 만나, 100% 진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 '나름 관계자', 경기도 광명의 모 PC방 점원 김XX씨(24세)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기자가 단골로 드나드는 경기도 광명시 소재의 모 PC방이다. 대략 2년쯤 전 문을 연 이 PC방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로변이 아닌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그렇다고 장사가 안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적당히(이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시끌벅적하고, 늘 깨끗하면서도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마음에 드는 곳이다.

기자는 이 곳을 오픈 당시부터 1달에 3~4번 이상 꼬박꼬박 들락거렸기에, 이곳 사장님이나 점원과는 안면을 트고 지낸다. 이 곳 아르바이트생의 경우 자리에 앉아있을 때보다 뭔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특히 내가 게임메카 기자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간간히 게임업계 소식을 물어오기도 한다. 그렇다. 그가 바로 이번 기사의 첫 번째 ‘나름 관계자’ 다. 낮 3시, 평소와 달리 PC방이 한가할만한 시간대에 PC방에 방문하자 점원이 살짝 놀란다.

“아, 어서오세요. 오늘은 어째 이런 시간대에 다 오셨네요?”

“그러게 말이죠. 사실 일 때문에 왔어요.”

“일이요?”

“연말이고 하니, PC방 점원으로써 인터뷰 좀 합시다.”

그는 자신이 취재 대상이 되었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 놀랐다고는 해도 뒤에 나올 다른 인물들, 예를 들면 용산 전자상가 주인 아주머니처럼 말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은 아니다. 후에 밝힌 바로는, 생애 첫 인터뷰였다고 한다.

“1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지난 1월 수도관 동파 사건 기억나시죠? 수도관의 물을 조금씩이라도 틀어 놔야 추운 날에도 동파가 안 되는데 손님 중 누군가가 물을 잠그고 나가신 거에요. 불과 몇 시간 만에 여자화장실 칸을 제외한 화장실 전체에서 물이 안 나왔고, 그 이후로도 날씨가 너무 추워서 1주일 넘게 화장실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잖아요.”

“그 이후로 화장실에 전기 온열기가 설치됐죠.”

“덕분에 화장실도 따뜻하고 좋잖아요.”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게임 많이 하나요?”

“어휴, 아니에요. 근무시간에 게임하면 안 되죠. (그러나 그는 곧 몰래 조금씩 게임을 즐긴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손님이 적은 시간에는 틈틈히 고전게임 같은 걸 해요. 사실 아르바이트라 한 자리에 오래 못 앉아 있기 때문에 PC방 인기 게임인 ‘리니지’ 나 ‘아이온’ 같은 MMORPG, ‘프리스타일 풋볼’ 이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이 한 경기 내내 집중해야 하는 게임은 못 해요. 웹게임은 성격에 안 맞고요.”

“최근 ‘PC방 어렵다’ 라는 말이 많은데, 변화가 크게 체감되나요?”

“제가 전체 매상은 잘 모르고, 주간 파트에서 시재 체크는 매일 하거든요. 그것만 봐서는 크게 줄어들거나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먹거리 판매 수익이 조금 늘긴 했는데, 그건 올 4~5월쯤 음료 등 전반적인 상품 가격을 1~300원씩 늘려서 그런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초부터 시급이 조금 올라서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긴 했습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겠네요.”

“특별히 그렇진 않아요. 기존 시급이 너무 짰던 거죠. 사실 PC방이나 편의점, 주유소 등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찾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최소시급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경우가 많아요. 지방에 사는 제 친구는 아직까지도 시급 3천원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쪽은 그나마 조금 낫지만, 야간시급이나 초과근무 수당은 꿈도 못 꾸죠. 저도 수습 3개월에 3개월 알바를 더 하고서야 겨우 최저시급(2011년 4,320원) 을 조금 넘게 받게 됐어요. 아, 이런 말 공개적으로 하는 거 사장님께 들키면 안 되는데.”

대한민국의 20대 경제력에 대한 깊고 깊은 토론을 이어가던 도중, 멀리 흡연석에 앉아 있던 손님이 재떨이를 갈아달라고 점원을 불렀다. 가져온 재떨이를 보니 거의 1갑 하고도 1/2갑은 피운 듯 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올해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PC방 전면금연법 생각이 났다. 2013년 5월까지 유예기간이 주어지긴 했지만, 올해가 벼락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듯 2013년도 금새 올 것이 분명하다.

“내후년부터 PC방 금연 실시되는 거 알죠? 어떻게 생각해요?”

“아, 그거에 대해서는 사장님께서 더 잘 아시죠.”

“사장님 입장이야 솔직히 뻔하고, 아르바이트의 입장에선 어떤가요?”

“음… 솔직히 전 대환영이에요. 제가 2008년 군대에 있을 때부터 담배를 끊은 것도 있고, 아르바이트 입장에서 보면 일이 한 가지 주는 거니까요. 흡연석 청소가 금연석 청소보다 배는 힘들기도 하고, 재떨이 비우는 것도 힘들고, 재 떨군 것 치우는 것도 일이고…….”

“한 가지가 아닌데요?”

“그러네요?(웃음) 흡연석 찾으시는 단골 손님들에게는 미안해서 말 못하는 건데, 비흡연자시니까 말씀드리는 거에요. 아 이거 사장님 귀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취재에 응해준 보답으로 캔 음료수라도 하나 대접하려고 했지만, 그는 ‘매장 내 식품은 어느 정도까진 공짜로 먹을 수 있다’ 며 사양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기자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 같다. 게임메카는 공짜 음료수를 거의 주지 않는다. 모 의원님이 이 기사를 보면 ‘음료수를 음미하며 고전게임을 하니, 황제가 부럽지 않다’ 라고 하시려나?

▲ "PC방 금연은 아르바이트에게 축복이죠"
(사진은 해당 PC방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두 번째 '나름 관계자', 서울 모처의 모 오락실 주인 아저씨(40대 후반)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단골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생각날 때마다 종종 들르는 오락실이다. 집에서는 버스로 4~5정거장 거리. 동네라고 하기엔 애매하기 때문에 퇴근길에 생각나면 가끔 찾곤 한다. 다행히 최근 6~7년간 동네 곳곳에 자리잡고 있던 오락실의 95%가 사라지는 대규모 업화 속에서, 이 오락실은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격투게임, 특히 ‘철권’ 매니아인 기자로서는 너무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미리 짚고 넘어가자면, 앞서 말한 PC방 업계를 ‘영업이 어려운 정도’ 로 표현할 경우 오락실은 ‘영업? 그게 뭔가요?’ 라 불러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굳이 바다이야기 사태를 짚지 않더라도, ‘스타크래프트’ 와 온라인 게임 열풍 이후 PC방에 그 자리를 뺏긴 곳이 바로 오락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당시 전국 15,000~20,000여 곳에 이르던 청소년오락실은 현재 대략 5~600여 곳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나마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의 옆에 붙어 있는 게임센터를 제외하면 절반 이하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자가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간 시간은 저녁 9시. 평일임을 감안해도 한창 손님이 북적일 시간이다. 오락실의 쇠퇴를 묘사하려면 이 부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거의 없었다…’ 라는 문장이 나와야겠지만, 다행히도 손님이 꽤 많았다. 대부분이 근처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로, 남학생들은 ‘철권’ 등 격투게임과 일부 리듬게임을, 여학생들은 1곡 500원의 비교적 넓은 코인노래방에서 자신들만의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철권 6: BR’ 기계에는 동전이 5~6개 정도는 줄을 서 있었고, 입구 쪽에 설치된 자동 동전교환기는 1~2분 간격으로 짜릉짜릉 소리를 내며 동전을 쏟아냈다. 오락실 산업이 절정에 이르렀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손님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지 않은 오락실 내부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대략 2~30명의 학생들이 존재했다.

밤 10시가 다가오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9시 55분, 이미 게임장 안에 남아있는 성인이라고는 기자를 포함해서 2~3명 정도밖에 없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10시가 되며 주인 아저씨의 인도에 따라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위에 언급한 게임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는 성인 게이머 몇 명이 남아 있기는 으나, 사실상 하루 영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10시부터 또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PC방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10분쯤 지나자 기자와 그나마 안면이라도 트고 지내던 주인 아저씨가 나와 간단한 청소를 시작했다. 코인노래방 바닥을 청소 중이던 주인 아저씨에게 마치 나이트 웨이터처럼 드링크제 두 병을 들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솔직히 가게를 접으려는 생각도 몇 번씩 했어.” 올 한 해 동안의 오락실 운영 현황을 묻자 바로 나온 대답이다. “신작 게임기 가격은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오르지, 오락실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지… 그나마 근처에 학원이 많아서 근근히 버티는 거야. (10시가 되어) 학생들이 빠져나가면 바로 문을 닫아도 될 정도로 손님이 적어져. 그래도 이 근처엔 오락실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지.”

“매상은 많이 줄었나요?”

“이제 사실 더 줄 것도 없어. 아르바이트생도 안 쓰고 있는데 뭘. 그나마 방학에는 아침부터 손님이라도 있지, 방학만 끝나면 아침에 문 열어도 오후까지 손님 몇 명 오지도 않거든.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부분 PC방으로 가고 오락실 오는 애들은 몇 되지 않아. 작년 제작년에만 해도 철권 대회도 열고 했는데 이제 그런 것도 거의 못 하겠고… 철권 태그2가 나왔는데 그거 들여놓기에도 힘에 부치고…….”

“서울이나 지방에 보면 일명 ‘성지’ 로 불리는 대형 오락실들이 있는데…”

“사실 그런 큰 곳들도 돈을 무척 잘 버는 것은 아니야. 기계도 한번에 몇 대씩 들여놔야 하고, 여기저기 신경 쓸 부분도 많아. 규모가 크건 작건 오락실은 영화관 옆에라도 붙어있지 않으면 전반적으로 어려워.”

주인 아저씨는 청소하는 손은 멈추지 않으면서 오락실 업계의 현 상황에 대해 쉴 새 없이 설명했다. 마치 둑을 막고 있던 물꼬라도 터진 듯, 소주 한 잔만 곁들여진다면 이 주제 하나만 가지고도 밤새도록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제를 약간 돌려 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1년 전에 비해 바뀐 게 거의 없네요.”

“어딜 어떻게 바꾸고 싶어도 바꿀 게 없지 않나? 매상만 좋으면 최신 기기를 계속 가져다 놓고는 싶지만, 아마 힘들 것 같아. 하는 데 까지는 해보겠지만.”

“혹시 올 한 해 기억나는 손님이나 에피소드는 없나요?”

“오락실에서 내가 하는 역할이 크게 없잖아. 특별한 건 없어. 기껏해야 노래방 바닥에 침 뱉지 말라고 아무리 써 붙여놔도 잘 듣지 않는 것 정도? 아, 그리고 학생들이 간혹 코인노래방에서 가끔 담배를 피는데 그런 걸 발견하면 곧바로 (바로 옆에 있는)지구대에 신고해서 학교에 연락하곤 하지. 오락실에서 담배 피우면 오락실에까지 벌금이 나오거든. 그러고 보니 작년엔 노래방 마이크 떼 가는 놈들도 있었어. 그거 가져가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하는 건지, 나 원 참. 그리고 10시 넘어도 죽어라 버티는 학생들도 가끔 있어.”

“10시 얘기 나오니까 말인데,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대해서는 혹시 아세요?”

“알지. 오락실 주인이면서 이런 말 하는 게 웃길 수도 있지만, 학생은 밤에 자야지 키도 크고 다음날 공부도 할 수 있는 거야. 오락실도 밤 10시 이후 미성년자 출입을 금지시키는데, 컴퓨터 게임도 10시로 통일시키면 안 되겠나?”

“하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손님들도 모두 나가고, 본격적인 마무리 청소가 시작되었다. 그 후로 몇 마디를 더 나누긴 했지만, 마감 정리에 방해될까 봐 더 이상 머물기가 애매해서 자리를 떴다. 시계를 보니 대략 10시 반. 늦다면 늦고 이르다면 상당히 이른 마감 시간이었다.

▲ 대형 오락실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죠
(사진은 노량진의 유명 오락실)

 

세 번째 '나름 관계자', 용산 D모 상가 게임소매점 사장님 부인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간 날, 점심시간이기 때문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게임으로 유명한 용산 D모 상가에서는 손님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기자는 안면이 있던 가게로 향하던 도중 손님에게 자연스레 PSP의 커펌을 권하는 장면이나 개조된 Wii를 팔기 위해 호객 행위를 하는 등의 ‘용산다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기자가 2년 전만 해도 거의 매주 들르던 매장에는 사장님 혼자 앉아계셨다. 사모님은 잠시 밥을 먹으러 가신 듯 했다. 사장님이 단골손님과 PSP 관련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옆 매장에서는 다른 매장 주인들이 모여 함께 게임 관련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젤다 신작이 안돌아가던데, 무슨 문제지?”

“무슨 소리야 잘 되던데.”

“아니 내가 구버전을 사용해서 그런가 잘 안 돼.”

“그럴리가… 칩 버전이 뭔데?”

“xxx 버전인데?”

“뭐야, 그럼 잘 될텐데…?”

매장 주인들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사장님과 손님은 PSP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PSP에서 음악이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대화는 게임으로 발전되었다.

“그럼 영어공부용 UMD좀 줘 봐.”

“여기 두 종류가 있는데요”

“이거밖에 없나? 뭐 고스톱 같은 건 없어?”

“고스톱이라… 차라리 커펌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커펌이 뭔데? 그냥 그 메모리에 넣고 빼고 하는 건 없나?”

“그게 그걸 말하는 겁니다 손님.”

“꼭 커펌인지를 해야 하나? 고장나거나 복잡한건 귀찮아서 싫단 말이지”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그냥 mp3 넣듯이 하면 돼요.”

이런 이야기를 죽 듣고 있자니, 옛날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개조 칩이나 PSP 커펌 등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아직 용산 등지나 전문업체에서는 이것을 찾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불법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는 듯 했다. 아니,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았다. 상점에서는 ‘손님들이 원하니까’ 라는 이유로, 손님들은 ‘상점에서 파니까’ 라는 이유로 서로 어쩔 수 없는 듯인 양 개조기기가 거래되는 모습에 게임업계 관계자로서 약간 씁쓸한 여운이 감돌았다. 그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 사는 모습’ 으로 비춰졌기에 더욱 그랬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가게 사모님이 가게로 돌아와 사장님과 교대했다. 업무 겸 놀러 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최근 안부를 물었다.

“요즘 장사는 어떻게, 잘 되시나요? 아르바이트는 이제 안 쓰시나 봐요.”

“어, 하나도 안 돼. 별 수 없지 뭐. 안 그래도 다음 달 17일이 재계약 기간인데, 그걸 버티지 못하고 빠지려는 가게도 많아.”

“그래도 ‘그거’ 해 달라는 얘기는 많나 보네요.”

“이 앞에 있는 Xbox360 중고도 그렇고, ‘그거(개조라는 말을 언급하진 않고 ‘그거’ 라고 통칭한다)’ 한 걸 손님들이 많이 찾는 편이지. 별 수 없어. 찾는 사람이 있으니까 파는 거야. 간혹 단속이 있긴 한데…”

그밖에 조그마한 안부 인사를 나누었지만, 정작 민감한 부분에서는 얼버무리는 성향이 강했다. 인터뷰는 꿈도 못 꿀 상황. 더 있다가는 장사에 방해도 될 것 같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올 것 같지 않아 짧은 얘기를 끝마치고 자리를 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도중에도 손님은 많지 않았다. 돌아가는 도중에도 수많은 가게에서 호객꾼들이 기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용산에 많이 다녀 본 사람답게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며 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어찌 막을 수 없었다. “위 중고 10만원, 열쇠 단 거 10만원!”

▲ 확실히 사람 발길이 뜸해진 용산의 모 전자상가
(사진 속 상가는 기사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네 번째 '나름 관계자', 셧다운제 적용받은 중학생 김 모 군의 어머님(38)

마지막으로 눈길이 간 곳은 경기도 광명시 소재의 한 가정이었다. 참고로 12시가 되면 작은방의 조명이 꺼지는 집이기도 하다. 눈치 빠른 분들은 기억하실 텐데, 맞다. 얼마 전 게임메카에 게재된 기사 ‘셧다운제 시행 1주일, 중학교 1학년 김군의 생활은?’ 의 취재 대상이 되었던 바로 그 가정이다.

저녁 9시, 통화를 하기엔 약간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평일 밤중에 직접 찾아가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기에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대여섯 번의 다이얼이 울린 후 김XX군의 어머니이자 기자의 고모가 전화를 받았다. 빙고!

“XX이는요?”

“아직 학원에서 안 들어왔지. 어쩐 일이야?”

“아, XX이 아직도 밤에 게임하고 있나 궁금해서요.”

“똑같아. 어차피 평일엔 밤 늦게까지 시켜주질 않고, 요즘에는 주말 밤에 컴퓨터로 게임 대신 인터넷을 하더라고. 예전에 내 주민등록번호를 쓰려고 해서 혼낸 적이 있긴 한데, 얘길 들어보니 같은 반 애들은 부모님 주민번호로 게임 많이 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왕따니 일진이니 하는 화제를 찾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문득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게임 실태 현황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10여년 전 기자의 학창시절만 해도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게임이라는 것을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했다. 어릴 적에 게임을 즐겨본 세대가 아닌데다, 인터넷의 존재도 모르는 분이 태반이었다. 여기에 ‘게임은 애들 놀이’ 라는 인상이 강해서 ‘크면 알아서 게임 안 하겠지’ 라고 내버려 두시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2011년 현재, 셧다운제 적용 대상인 8~16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대략 30대에서 40대 초중반인 경우가 많다. 게임이나 인터넷 등에 대해 잘 알기도 하지만, 이런 방면에 아예 까막눈인 사람도 존재하는 복합적인 세대인 것이다. 기자 또한 어릴 적에 고모와 함께 오락실에서 ‘테트리스’ 등의 게임을 몇 번 즐긴 기억이 있지만, 그게 전부다. 과연 요즘 부모님들은 게임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을까?

“요즘 XX이가 무슨 게임 하고 있는지는 알고 계시죠?”

“예전에 알려줬었잖아 XX이가 ‘메이플스토리’ 에서 내 주민번호 쓰려고 한다고. 사실 그 전에는 잘 몰랐지. 그래도 대략 어떠한 게임인지는 지나가면서 계속 보니까,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게임은 최대한 막았던 것 같아.”

“혹시 친한 아줌마들하고 애들 게임관련 얘기를 나눈 적은 없나요?”

“예전에 뉴스에서 게임 어쩌고 얘기 나왔을 때 몇 번 얘기한 적은 있는데, 사실 부모 입장에서는 게임 제한하는 법을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 얘기 들어보니 몇몇 애들은 새벽에 몰래 일어나 게임하다가 걸려서 혼도 많이 났다던데, (셧다운제가 시행되었으니)이제 좀 줄어들지 않겠어?”

“사실 부모님이나 형제, 친척 주민등록번호만 살짝 가져다 쓰면 무용지물인데…”

“그런 건 부모가 어느 정도 단속해야 하는데, 몰래몰래 하니까 100% 막긴 어렵지. 애들이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로 게임하는 걸 알려주는 건 없니?”

없을 리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주민등록번호 도용 방지 시스템에다가 부모가 직접 아이의 게임 사용 시간이나 컴퓨터 사용, 유해사이트 방문 등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있음을 장장 5분간 소개해줬다. 여기에 조금 귀찮더라도 핸드폰 문자메세지 수신함에 비밀번호를 거는 방법도 추천해줬다. 사실 이 부분에서 김 군에게는 왠지 미안한 감정이 들긴 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준다며 다가온 몰래게임인생 선배(?)가 뒤통수를 친 셈이니… 그나마 한 떨기 양심은 있어 incoming 폴더의 존재나 검색-모든동영상 등의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을 하지. 솔직히 새벽에 애들 게임을 금지시키니 어쩌니 해도 결국엔 집에서 잡지 않으면 안되거든.

“그런데 사실 부모가 아무리 제한을 해도 애들은 못 당해요. 저도 어릴 때 어머니가 컴퓨터 부팅에 비밀번호를 걸어 놓고 주말에만 켜 주곤 하셨는데, 키보드에 아주 엷게 밀가루를 발라서 어떤 자판을 누르는 지 확인한 다음 번호들을 조합해서 비밀번호를 알아낸 적이 있거든요.”

“진짜? 너 완전 대박이다. 무슨 스파이 영화찍니?”

기자의 음흉한 과거 자수(?)는 둘째 치고, 사실상 자녀의 게임 제한에 있어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식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권위나 가족관계 얘기가 아니라, 그 정보량과 절실함, 정보 교류의 문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모도 ‘알아야’ 한다. 자녀가 왜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지를 깨닫고, 그 정도와 콘텐츠를 알맞게 제한해 줘야 할 것이다. 괜히 게임이 모든 폭력사태의 원인이라고 하지 말고 말이다.

▲ 12시가 지나고, 아파트 창문 불빛이 하나둘씩 꺼진다

연말연시를 맞아 게임업계의 ‘나름 관계자’ 들을 만나보았다. 사실 위에 다룬 인물 외에도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많았다. 모 게임회사 정문을 지키는 보안요원이라던가, 열혈 게이머이자 게임기자이자 게임광인 게임메카 류모 기자의 여동생 등… 아, 여성부 관계자 분들도 게임업계 올해부터는 게임업계 ‘나름 관계자’ 의 자격이 충분할 것 같다. 더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데, 아쉬울 따름이다.

흔히들 연말에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파란만장한 한 해였다’ 라는 표현을 쓴다. 2011년의 게임업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소개한 ‘나름 관계자’ 들도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2년은 ‘나름 관계자’ 들에게 좋은 방향에서 파란만장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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