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0일 대구에서 친구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 A군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로 끝을 맺는 유서를 작성하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순간 A군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하면, 슬픔과 분노, 그리고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그가 접하는 일상이 얼마나 가혹했으면 A군은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을까요.
경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보내서 게임 캐릭터를 대신 육성하도록 강요했다고 합니다. 가해학생들이 피해 학생에게 게임을 하도록 강요한 정황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게임을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이번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범하고 얌전했던 학생들이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면서, 아이템을 사기 위해 힘없는 친구의 돈을 빼앗고, 캐릭터를 육성하도록 강요하기 시작했고, 이런 친구들 때문에 고통 받던 A군이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언론에서 이번 사건을 다루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만약 가해학생들이 빵을 사먹거나, 운동화를 사기 위해 돈을 뺏고, 친구를 괴롭혔다면 이번 사건의 원인이 빵이나 운동화에 있는 것일까요.
결국 문제의 본질은 가해학생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피해자를 괴롭혔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 이런 가해행위를 가능하게 했느냐에 있습니다.
A군 자살 사건의 충격이 가라앉지 않은 12월말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노인요양원 방문 도중 암환자 이송체계를 문의하기 위해 남양주소방서 119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름과 직위를 밝혔는데, 이를 장난전화로 오인하여 전화를 끊은 소방관 2명이 각각 포천과 가평소방서로 인사발령된 것입니다.
언뜻 보면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김문수 도지사 사건은 A군 자살 사건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줍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권력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는 권력과 자본의 피라미드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아랫사람들에게 불이익을 가할 수 있는 사회이며, 이를 견제하는 장치가 거의 작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강자는 사회적 약자를 함부로 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계급간 위계질서가 가장 확고한 “군대” 같은 조직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군대에서 자살이나 폭력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 패러디는
재미를
너머 현 사회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관심을 받는다
학교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싸움을 잘하는 학생들이 힘없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 왜 가능했는지 생각해보면,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는 약자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슬픈 현실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학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업 성적이 좋지 않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거나, 키가 작거나, 싸움을 못하는 친구들도 모두 동등한 구성원이고, 이들을 배려하고 돕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라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진실로 부끄럽고 비열한 행동이라고 교육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너무나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환경과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게임에 터무니없이 책임을 돌릴 시간에 하루라도 빨리 본질적인 노력을 시작해야만 하루라도 빨리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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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찬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