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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엇이 게임 삼중규제를 가능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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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의 위나라 임금 영공의 총애를 받던 미자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의 허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 뒤 임금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러갑니다. 당시 위나라의 국법에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이용한 자는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월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후에 미자하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임금은 화를 내기는커녕 위독한 어머니를 위해 월형을 감수한 미자하를 오히려 칭찬합니다. 어느 날은 미자하가 임금을 모시고 과수원을 갔는데, 복숭아가 너무 달다며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바칩니다. 임금은 노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끔찍이 생각한다며 미자하를 칭찬합니다. 시간이 흘러, 임금의 총애가 식고 미지하가 죄를 짓자 임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자하는 일찍이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으며,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내게 먹였다.”

정치권과 주류언론이 게임을 다루는 태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변덕이 심하던 위나라 임금 영공이 떠오릅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대한민국을 견인할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게임은 학교폭력을 유발하는 암적 존재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지난 7일에는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쿨링오프제를 골자로 하는 특별법까지 발의되었습니다. 쿨링오프제란 인터넷 게임물의 제공자가 18세 이하 학생들에게 게임물을 연속해서 2시간 이상, 하루에 총 4시간 이상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입니다.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 문화체육관광부의 선택적 셧다운제에 이어, 교육과학기술부의 쿨링오프제까지 이제 게임에 대한 3단 빗장이 쳐질 예정입니다.

어쩌다가 화려한 백조였던 게임이 이렇게 순식간에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했을까요.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학부모, 그리고 국회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에 쿨링오프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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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폭력 종합대책 발표 현장에 출석한 교과부 이주호 장관


우선 교육과학기술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구중학생 자살 사건은 학교폭력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부상시켰습니다.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효과적으로 타개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게임을 지목함으로써 비난의 화살을 일정정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학교폭력의 원인이 교육정책의 총체적 실패 때문이라고 자인했다면 교과부는 그로 인한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했을 것이니까요. 교과부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여가활동인 게임으로 책임을 돌렸고, 세간의 관심은 게임으로 옮겨갔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학원교습과 자율학습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학원교습과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은 외부에서 여가활동을 즐기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심야에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놀만한 장소도 없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그나마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부모들 입장에서는 밤늦은 시간 게임을 하는 자녀가 달가울 리 없습니다. 공부를 하든, 아니면 잠이라도 자서 다음날 수업에 지장이 없기를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더 게임을 하고 싶은 자녀와 지금 당장 잠자리에 들기를 바라는 부모의 관계에서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게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들은 게임만 없으면 자녀들과 다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와 힘들게 다투기보다는 국가에서 강제로라도 이런 분쟁의 씨앗을 없애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게임이 학교폭력의 원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법으로 게임을 제한하면 갈등이 줄고, 자녀가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게임 규제 정책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회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지금은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점입니다. 학교폭력 문제는 이미 국민적인 관심사이며,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게임을 강력하게 제한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국회가 선거권이 없는 학생들을 고려하여 정책을 입안할지, 선거권이 있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정책을 입안할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예측이 가능합니다.

게임규제가 아니라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이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와 국회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닌 쿨링오프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인성교육 강화나 입시 중심 교육 탈피 같은 정책들은 국민들로부터 즉각적인 지지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 있습니다. 선거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입시중심교육 탈피와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런 정책이 실효를 거둘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줄 수 있는 유권자는 많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규제정책에는 별도의 예산이 소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많은 예산이 소모됩니다. 게임을 대체할 놀이문화와 놀이공간을 만들거나, 게임이용과 관련된 교육을 실시하려면 공간을 확보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데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될 것입니다. 반면에, 게임에 대한 규제 정책을 만드는 데에는 아무런 예산도 소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과부 입장에서 보면 게임회사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이점까지 있습니다.

쿨링오프제가 도입된다면, 교과부는 권한을 얻고, 국회는 표를 얻고, 학부모들은 심리적 위안을 얻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학생들도 몇 년 후에는 유권자가 된다는 사실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입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학교폭력은 동일하게 되풀이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병찬 변호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7기, 현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
2008.2 ~ 2011. 1. SK텔레콤 법무실 근무
정신신체전문가과정 의료소송 강의
트위터 ID: @gerrard76
E-Mail: gerrardgogo@gmail.com
블로그:
collectiveintelligence.tistory.com
셧다운제 관련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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