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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 관찰 보고서, 그들의 모든 것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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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인터넷 유머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해외 토픽감인 사진이나 동영상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게임을 실감나게 즐기기 위해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을 들여서 게이밍 풀 세트를 갖춘다거나, 몇 년에 걸쳐 엄청난 디테일의 함선이나 비행기 등을 조립하는 사람들 말이다. 간혹 외국 영화나 게임 속 캐릭터가 그대로 뛰쳐나온 것 같은 분장도 있고, 게임 캐릭터를 좋아해 이름을 개명하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 영화배우인지 실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코스프레
왜 서양인들은 특히 이런 분야에 강한 것일까?


▲ 독일의 한 양덕이 15년동안 제작했다는 1:100 비율의 비스마르크 전함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경악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 특히 유럽이나 미국, 호주쪽 네티즌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글 제목이건 내용이건 덧글에서건 ‘덕중의 덕은 양덕이니라’ 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를 매번 경악케 하는 양덕이란 무엇일까? 양덕 관찰 보고서를 통해 알아보자.


1. 양덕의 정의

양덕이라는 단어의 ‘양’ 은 북미나 유럽 등 서양 지역을 지칭한다. 20세기 초중반, 파란색 눈동자와 높은 콧대의 외국사람들을 상스럽게 지칭하는 단어 ‘양놈’ 에서 파생된 ‘양X’ 시리즈. 양덕은 그것의 최신 버전이다. 단, 양덕에서 쓰이는 ‘양’ 은 지역의 구분이 애매하다. 주로 북미 지역이 많긴 하지만, 지리상 오세아니아, 월드컵에서는 아시아로 분류되는 호주 역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 은 오타쿠의 한국식 변형어구인 오덕후의 준말이다. 일본에서는 ‘오타쿠’ 란 단어를 어떤 한 가지 취미에 엄청나게 몰두하여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콜렉션 등을 가지고 있는 극한의 매니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만화 등의 문화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통틀어 ‘오덕후’ 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최근들어 ‘덕’ 의 분야가 넓어져 가고 있긴 하다. 양덕의 ‘덕’ 또한 한 분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즉 양덕이란 서양인 중에서도 위와 같은 분야에 정통한 이들을 일컫는다. 비록 국내에서 ‘오덕후’라는 단어가 약간의 비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차별의 의미 없이 그대로 ‘덕’ 이라는 단어를 쓰도록 하겠다.


▲ 영국 코믹드라마 '아이티 클라우드' 에 나오는 두 주인공
이들 역시 '양덕' 이 될 소양을 완벽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단순한 서양인 오타쿠라면 이처럼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회자되지는 않을 터. 대체 왜 그들은 계속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2. 양덕의 특징

양덕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의 분야에 있어서는 국내의 ’오덕후’ 들 보다 훨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타 분야에 대한 통찰력과 깊이 또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만화의 발전에 있어 일본의 역할이 엄청났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발상지는 미국이 아닌가. 만화 역시 카툰이라는 형태로 산업혁명과 동시에 유럽 지역에서부터 퍼져나간 만큼 이러한 문화의 발상지는 서양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만화와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왔다. 국내에서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아이들의 놀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시선이 많지만 말이다.


▲ 1937년 백설공주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 2012년 현재까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
이것이 양덕들의 전통과 문화

때문에 양덕의 ‘덕질(오덕후 문화에 대한 수집이나 재창조, 분석 등의 모든 행위를 일컬음)’ 은 몇 세대에 걸쳐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허연 수염의 할아버지가 나루토 분장을 하고 어림잡아 50은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미스터 사탄이 되는 등의 행위는 흔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콜렉션을 보고 자라오다 보니 편견도 많이 없다(일부 장르 제외). 만약 한국이었다면 당장에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등장해서 ‘할아버지,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라는 멘트를 듣기에 딱 좋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양덕들은 주로 서양 문화권에 서식한다. 특히 북미와 호주 지역의 경우 한국이나 일본 지역에 비해 주거 환경이 압도적으로 쾌적한 경우가 많다. 국내의 경우 아파트나 빌라 형태의 주거 형태가 많으며, 일본은 단독주택이 많긴 하지만 그 규모가 작다. 반면에 북미나 호주의 경우 일부 대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집이라고 해도 차고와 마당 정도는 거의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다.

그래서, 양덕들의 활동은 스케일이 크다.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 공간상의 제약으로 인해 주로 조그마한 것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덕들에게는 공간과 소득적인 여유가 있다. 방구석에 비해 훨씬 넓은 공간인 차고나 마당은 양덕들이 거대 작품을 제작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때문에, 양덕들의 작업(?) 환경을 살펴보면 주로 자신의 집 차고나 마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미드나 애니 등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차고(Garage)'


▲ 때로는 벼룩시장으로, 때로는 문화 창출의 공간으로, 때로는 취미활동으로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차고' 는 양덕 문화의 핵심이다


▲ 반면 아파트와 빌라, 마당이 좁은 단독주택으로 대변되는 국내(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기가 어렵다


3. 양덕의 분류

전체를 통틀어서 ‘양덕’ 이라 표현하긴 하지만, 양덕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종/지역적인 의미에서 발생한 만큼 각 분야에 대한 분류는 따로 없다. 일반적으로 양덕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덕’ 질에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한 양덕들도 존재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양덕들이 활동하는 분야는 아래의 10가지가 대표적이며, 이보다 수는 적지만 더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양덕 문화는 짧게는 십 수년, 길게는 백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몇몇 분야의 경우는 더 이상 ‘덕’ 이라는 말을 쓰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주류 문화로 올라섰으며,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덕업일체(덕질과 생업이 같음)’ 로의 길도 넓게 열려 있다. 다음 장에서는 모두를 경악케 하는 양덕들의 사례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4. 양덕들의 대표적 사례

여기서 예로 들 양덕들은 해당 작업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오로지 취미만으로 이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최대한 게임과 관계 있는 분야를 선정하려고 애썼지만, 비교적 폭넓은 양덕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역사나 밀리터리 등의 장르도 포함시켰음을 밝힌다.


4-1. 양덕의 코스프레

웹상에 심심하면 올라오는 양덕 관련 게시물들은 대부분 영화나 게임 속 인물을 따라하는 코스튬 플레이(이하 코스프레)가 차지한다. 코스프레는 그 특성 상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혹은 간혹 역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최근들어 전자기기를 내장한 코스프레 의상들도 간혹 등장하므로 해당 분야의 양덕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서양인들의 특성 상 서구적인 캐릭터는 흉내내기가 쉽다. 조커, 캡틴 잭스패로우, 마커스, 마리오 등 동양인이 쉽게 따라하기 힘든 외모의 캐릭터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인종적 특성과는 상관없이 인간으로써 감탄사가 자아내지는 경우가 많다. 미칠 듯한 퀄리티,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 할 정도로 큰 스케일 때문이다.

먼저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양덕들의 코스프레 중 대표작은 각종 ‘슈트’ 다. 여기서 말하는 ‘슈트’ 란 신체의 대부분을 가리는 것으로, 그들의 놀라운 집착과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슈트들은 오리지널 버전의 겉모습은 물론, 간혹 기능까지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 헬멧까지 전자동으로 작동되는 '아이언맨' 슈트 시연 영상 


▲ '아이언맨' 에 버금가는 라이벌 슈트 '워머신' 소개 영상

위 사진에 소개된 ‘아이언맨’ 슈트는 의외로 흔한(?) 코스프레 중 하나로, 국내나 일본에서는 가면과 슈트, 기껏해야 LED 정도만 흉내내는 데 비해 서양에서는 자동 탈착 장치까지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헬멧 부분은 영화에서와 같이 자동 탈착되며, 가슴과 눈, 손바닥 등에는 LED 램프를 내장해 당장에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단순히 옷과 가발, 소품만을 따라하는 일반인들의 코스프레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 '스타크래프트 2' 에 나오는 해병들이 와글와글하다


▲ 블리즈컨에서 엄청난 이슈를 모은 안드로이드 오피서 코스프레
이런 코스프레는 양덕이 아니면 상상도 못 할 정도의 고난이도다

이 밖에도 ‘스타크래프트 2’ 의 해병, ‘트랜스포머’ 에 나오는 오토봇 등 다양한 슈트 캐릭터들이 CG 없이 양덕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곤 한다. 이쯤 되면 프로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이러한 양덕들의 코스프레 문화는 서로의 교류와 정보 교환, 트렌드 공유 등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실제로 앞에 소개한 동영상의 아이언맨과 워머신은 둘이 서로 만나 길거리에서 아이언맨 놀이를 하는 동영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고, 위 사진과 같이 '스타크래프트 2' 해병 등 같은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정보를 교환해 통일감을 내기도 한다. 실제로 양덕들이 모이는 북미쪽 웹사이트들을 보면 엄청나게 활발한 대화가 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박스 건담의 과거(좌)와 결정판(우)

위의 사진은 ‘박스 건담’ 의 시작과 끝이다. 몇 년 전 한 행사에서 어떤 양덕이 ‘GUNDAM’ 이라 쓰인 종이박스 하나를 뒤집어쓴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종이박스 건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갔는데, 급기야 종이박스만으로 각종 관절까지 묘사한 작품이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양덕 중에서 뛰어난 작품이 유달리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놀이’ 로써의 덕질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뭔 특수부대가 출동했다 싶지만... 사실은 밀리터리 양덕들의 모임이다

한편, 밀리터리의 경우 국내나 일본, 아시아권의 오덕후들은 절대! 네버! 죽었다 깨어나도! 양덕(특히 북미)을 따라갈 수 없다. 우리가 모형 프라모델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이들은 진짜 총기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제 총기를 만드는 장인들도 다수 존재하며, 이들 역시 덕업일체의 좋은 표본이다. 수십 명의 양덕들이 똑 같은 제복과 개인 총기를 들고 사격장에서 표적을 산산조각 내는 모습은 국내 밀덕들에게 영원한 부러움의 대상이다. 오죽하면 미국 밀덕은 군대보다 강하다는 말이 나올까.


▲ 완벽한 코스프레를 위해서라면 배 제작쯤은 기본이지!

양덕들의 코스프레 퀄리티가 ‘슈트’ 로 상징되며 네티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된다면, 스케일의 경우 해외토픽 감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한 양덕이 ‘캐리비안의 해적’ 의 완벽한 코스프레를 위해 ‘블랙 펄’ 호를 직접 제작한 경우는 그 중에서도 꽤나 독특한 경우로, 역사 분야에서는 아예 중세 시대의 공법을 이용해 실제 ‘성’ 을 건축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아래의 동영상에서 소개되는 성 건축의 경우 30년 계획의 장기 공사로, 돌과 나무 등 모든 재료를 주변에서 채취하고, 일체의 현대적 건축기기의 도움 없이 오로지 중세 시대 공법만으로 성을 완성하는 계획이라 더욱 놀랍다. 프랑스에서 진행 중인 성 건축은 지방 자치단체 수준의 지원이 필요한 행사로, ‘덕업일체’를 넘어선 덕정일체(덕질이 즉 정치)의 단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2020년 이후 완공 예정이며, 이미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 프랑스에서 철저히 중세 방식을 고집해 제작 중인 고성(古城)
숭례문 제작도 이런 식으로 오랜 기간 공들여 했으면 좋을텐데


4-2. 양덕의 유쾌함

일반적으로 ‘덕질’ 이란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다. 때문에 그 결과물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용돈과 월급을 모아 수십, 수백만 원 짜리 피규어를 사고 20년 전의 골동품 게임을 사 모아 봐야 주위에서 들려오는 반응은 ‘왜 이런 걸 모아?’, ‘이런 건 대체 왜 만들어?’ 라는 의문을 가장한 비난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아예 자신의 취미를 감추기까지 한다.

그러나 양덕들은 이러한 덕질을 유쾌함으로 잘 포장한다. 분명 제정신으로는 못 할 짓인 것 같은데, 엄청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찬사를 자아내게 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재치 넘치는 애드립으로 무장된 ‘덕질’ 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며 양덕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 그냥 자전거는 성에 안 찬다는 양덕의 작품
네발자전거에 금빛 스포츠카 스킨(?)을 입혀 도로를 내달린다

위에 소개된 사진은 직접 만든 스포츠카 스킨을 자전거에 입혀 도로를 질주하는 한 양덕의 제작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자전거를 네 발 용으로 개조하고, 합판과 철봉, 합성수지와 특수 골재 등을 사용해 스포츠카의 모습을 입힌다. 마지막으로 유리와 헤드라이트 등을 장착하고 황금빛으로 도배하면 겉으로 볼 땐 영락없는 고급 스포츠카다. 심지어 도심의 도로를 유유히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함이 없다. 물론 1인력(人力) 엔진이니만큼 스포츠카만큼의 속도는 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일반인들도 박수를 터뜨릴 만 하다.


▲ 주변 모든 것이 게임 컨트롤러가 된다! MIT 공대생이 제작했다는 신기한 영상

이공계생들의 전공 지식을 활용한 덕질도 눈에 띈다. ‘Anything into a key’ 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주변에 널려 있는 소품들. 예를 들면 바나나, 노트, 고무찰흙, 물통, 계단 등으로도 게임 컨트롤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원리만 알면 일상의 모든 도구를 이용해 ‘팩맨’, ‘슈퍼 마리오’ 등 패드형 게임은 물론, ‘댄스 댄스 레볼루션(DDR)’ 이나 피아노 연주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이론이 아닌 실제 시연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 갑자기 이게 무슨 수학과 물리야? 알고 보니 마리오를 물리학적으로 분석한 것
(Physics Factbook 원본 칼럼 보러가기)

과학 지식을 이용해 게임 속 현상을 실제 세계에 적용시켜 재미를 유발하는 사례도 있다. 과학 에세이 웹사이트인 Physics Factbook에 실린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받는 중력가속도(by Adam Lefky and Artem Gindin)’ 라는 글은 슈퍼 마리오가 점프할 때의 모션과 높이, 낙하 속도 등을 분석해 게임 속 세계의 중력가속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마리오의 신장을 1.5미터로 가정할 때 85년 출시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 의 경우 세계 표준의 9배가 넘는 중력가속도가 적용되는 극한의 세계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 상황에서 자기 신장의 몇 배가 넘는 점프를 할 수 있는 마리오의 신체적 조건은 엄청난 것이며, 시리즈가 전개됨에 따라 게임 속 환경은 점점 현실 세계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사례들을 보다 보니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 지루한 수업 중 선생님이 꺼내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만약 국내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이 널리 퍼진다면, 대한민국 교육계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이공계 기피 현상이 상당수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4-3. 양덕 자체가 역사

‘덕질’ 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바로 수집이다. 세계에는 다양한 수집광들이 있고, 그러한 사람들은 굳이 양덕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피규어나 CD, 포스터, 카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심지어는 수집을 위해 몇 백만 원은 기본이요, 몇 천, 몇 억대로 돈을 쓰는 사람도 많다. 억 단위가 넘어가면 ‘화성인 바이러스’ 나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할 수집광은 개인의 만족을 뛰어넘어 수집 자체가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만한 케이스다. 물론 게임 리뷰 동영상으로 유명한 AVGN의 제임스 롤프(너드)나 NC(엔씨소프트 아님!)의 더글라스 워커(노스텔지어 크리틱) 등도 엄청난 콜렉션을 자랑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이 사람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지난 7월 e-bay 에 올라온 한 건의 판매글이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판매자는 자신의 게임 콜렉션을 경매로 올렸는데, 판매가가 무려 999,999.99 유로(한마디로 백만 유로)다. 한화로 바꾸면 약 14억 1,745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이 정도 가격일까? 전체 사진과 목록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할 경우 저 오른쪽에 있는 스크롤바가 2mm 길이로 쪼그라들 것이다. 일부 상태가 좋지 않은 컴퓨터는 다운될 지도 모른다. 이걸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과거 8~90년대 닌텐도와 세가 등에서 출시한 패미컴, 슈퍼 패미컴, 버추얼 보이, 닌텐도 64, 게임기어, 메가드라이브, 32X, 드림캐스트, PC엔진 등의 콘솔 기기와 모든 출시 타이틀의 A+급 ‘풀’ 세트>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 e베이에 올라온 게임 컬렉션 중 '극히' 일부분을 캡쳐한 것


▲ 이런 사진이 수십장은 더 존재한다. 여기에 다 올리기 힘들 만큼!
(e베이에 올라온 오리지널 판매글 보러가기 - 스크롤 주의!)

솔직히 이걸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게임 타이틀만 대략 7,000여 종, 각종 게임기와 구성품 모두가 풀세트로 갖추어져 있는 것은 확인되었다. 거기다 다수의 타이틀이 밀봉판이며, 보관 상태 또한 엄청나게 훌륭하다. 판매자에 따르면 애완 동물과 담배 연기, 직사광선이 없는 곳에서 보관해왔다고 한다. 물론 수집가가 게임샵을 운영하면서 게임을 수집했다고는 하지만, 이정도 콜렉션이면 하나의 박물관을 열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이 콜렉션이 경매를 통해 팔려나갔다는 것. 이 정도의 콜렉션을 모으는 열정과, 15억 원에 달하는 콜렉션을 구매할 정도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 둘 다 모두 부럽다.


▲ 갑자기 왠 영화촬영인가 싶지만... 사실은 이게 모두 일반인이다

잠시 게임쪽에서 또 벗어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럽이나 북미, 호주 등지에서는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중세 시대의 복장을 하고 당시의 스포츠를 즐기며 생활상을 경험하는 ‘중세 축제(Medieval Fair)’ 가 곳곳에서 열린다. 역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덕심이 지역사회를 벗어나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사’ 를 고등학교 필수교육과목에서 제외한 교육과학기술부 공무원들을 단체로 이 곳에 연수라도 보내 ‘역덕’ 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 어려서부터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접한 어린이들이 국사에 관심이 없을 리 만무하다
국내의 경우 교과부 공무원들부터 일단 역사덕후가 되어야 할 것이다


5. 양덕은 문화다

위에서 소개한 양덕의 사례들을 보고 있자면 감탄과 함께 약간의 시샘까지 느껴진다. 자신들의 취미를 당당한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키고, 예술과 역사적 문물로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이 부럽기 때문이다. ‘역시 양덕이다’ 라는 말에는 ‘어차피 양덕은 이길 수 없어’ 라는 서글픔이 담겨 있기도 하다.

양덕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토록 깊숙히 파고들 수 있는 데에는 오랜 세월 동안 다져온 문화적 인프라, 그리고 그 취미를 뒷받침해 줄 경제적/사회적 여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국내의 경우 아직 갈 길이 멀다. 사회적 인식에서부터 문화적 소통, 금전과 공간적 문제를 비롯한 현실적 여건 등 ‘덕’ 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이 지하로 지하로 파고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전세계 웹상에서 ‘한덕’, 혹은 ‘K덕’ 이라는 말이 유행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랬으면 좋겠다.


▲ 이미 해외에서 '한국인 게이머' 라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수준이다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덕' 이라고 하면 세계인들이 알아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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