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일본 처음 가는 크앙 기자의 ‘TGS 2012’ 탐방기

/ 1

도쿄 한복판에 떨궈놓으면 국제미아 되기 딱 좋은 일본어 실력의 소유자 크앙 기자, 그가 일본 최대의 게임쇼에 찾아갔다. 다음은 ‘도쿄게임쇼(이하 TGS) 2012’ 에 출발하기 전 실제로 나눈 대화 내용이다.

“크앙 기자, 일본어 할 줄 알아요?”
“이랏샤이마세, 벤또, 덴뿌라, 맛세이, 고이즈미, 와루바시, 야메떼, 와따따뚜루겐, 야라나이까 정도?”
“… 이건 답이 없군요.”

실제로 크앙은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기에 가장 기초적인 히라가나조차 읽지 못하며, 일본 게임 사이트는 자동 번역기와 인간 번역기로 겨우 알아듣는다. 일본어 게임은 아예 하지도 못한다. 그나마 ‘맛의 달인’ 과 ‘미스터 초밥왕’ 등을 정독한 덕에 음식 이름은 꽤나 많이 아는 것이 위안이지만, 실생활에서 이쿠라(연어알), 고노와다(해삼창자젓), 고마도후(참깨두부) 같은 단어를 쓸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지만 게임쇼는 크앙의 일본어실력 상승을 기다려주지 않는 법, 많은 걱정과 기대를 안고 오른 일본 초행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일본어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TGS 2012 탐방기를 시작합니다


방진복이라도 가져가야 하나?

‘TGS 2012’ 취재를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인 18일(화) 밤, 크앙은 주섬주섬 짐을 꾸리고 있었다. 뭐 그리 챙길 게 많은지, 사람 한 명도 들어갈 만한 캐리어백은 이미 압축될대로 압축되어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듯 한 기세.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크앙의 여동생 크잉(22)이 물었다.

“오빠, 대체 뭘 그렇게 많이 가져가?”
“음? 그야 2박 3일 동안 입을 옷가지하고 기타 필요한 물품들이지.”
“근데 뭐가 이리 많아? 뭐야, 바지는 왜 네 개나 가져가? 옷은 또 왜 이리 많고. 히말라야 원정 가? 그리고 샴푸랑 수건은 또 왜 가져가는데? 바지는 입고 가는 것에다 비상용 한 개만 더 가져가면 되고, 매일 갈아입을 윗도리랑 속옷 양말 정도만 가져가면 되잖아. 샴푸랑 수건은 호텔에 다 있는데 왜 가져가? 바보 아냐?”
“고… 고O?”
“헐, 이 곰돌이는 또 뭐야? 세상에 이건… 방독면?”
“곰돌이는 외로울까봐, 방독면은 방사능 대비책이다! 방진복도 가져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갖고 있질 않아서 뺐다!”
“미쳤어 미쳤어…”

그렇게 크잉님의 검열로 인해 산더미 같던 짐은 어느새 1/4 정도로 줄어들었다. 풍선을 연상시키던 캐리어백은 흔들면 소리가 날 정도로 텅텅 비었고, 가방 깊숙한 곳에서 꾹꾹 압축당하고 있던 곰돌이는 원래 자리인 책장 위로 돌아갔다. 올 때 각종 선물을 넣어 오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나?

다음 날, 크앙은 가벼워진 짐을 들고 공항으로 향해 출국 수속을 밟았다. 크앙은 캐리어백이 워낙 가벼웠기에 수하물 등록따위 필요없다는 패기를 발휘, 무려 기내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타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부피가 기내 휴대 허용 기준보다 좀 많이 컸지만, 의외로 쉽게 기내 반입이 허용되었다. 아마도 최홍만이 마이크를 들고 있으면 츄파스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들뜬 마음으로 캐리어백을 짊어지고 탑승한 비행기

그렇게 1시간 50여분의 비행을 거쳐,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 밟는 일본 땅. 첫 관문인 입국심사를 ‘쓰리 데이즈!’, ‘도쿄 게임쇼!” 라는 두 단어만으로 통과한 크앙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환전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환전소를 보니 문득 한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크앙 기자, 엔화 얼마나 환전해갈 거에요?”
“음 한 백오십만 원 정도요.”
“엥? 가전제품이라도 사오려고?”
“아뇨, 군것질 하게요.”
“당신 미쳤소?”

어쩐지 미쳤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것 같다. 결국 크앙이 군것질을 위해 가지고 온 돈은 총 2만 1,000엔(한화 약 30만 원). 삼시세끼와 숙박, 이동 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 용돈이지만, 비싼 일본 물가를 감안하면 이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군것질에 쓴 돈은 전체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지만…


▲ 1만엔 지폐를 보고 좋아하는 크앙 기자의 모습


편의점 찾아 삼만리

크앙이 일본에서 2박 3일간 묵은 곳은 신주쿠에 위치한 H호텔, 다행히 호텔까지는 동행한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이동했다. 만약 혼자 이동했다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도쿄 전철 노선에 휘둘려 다니다가 후쿠시마라도 갔을 지 모른다.

정작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일본 지리도 모르고, 지도도 없고, 방향 감각도 대한민국 평균 이하인 크앙에게 호텔 반경 500m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곧 국제미아 코스로 직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호텔방에서 뒹굴대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무엇보다 이 곳은 도쿄 제일의 번화가라는 신주쿠가 아니겠는가! 일본까지 와서 추억이라곤 고작 ‘침대가 푹신했어요’ 밖에 없다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크앙은 무작정 호텔 바깥으로 나갔다.

“음… 아무것도 없네? 일단 어디론가 쭉 가다 보면 번화가가 나오겠지?”

사실 H호텔 주변은 고층 빌딩과 사무실들만 가득한, 번화가면서도 번화가가 아닌 곳이었다.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들은 상가 하나 없는 그야말로 ‘오피스’ 였고, 그나마도 시간이 늦어 대부분의 건물에 불이 꺼져 있었다. 여기에다 도쿄 지역에 발령된 전력 부족 사태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어, 전반적으로 거리가 어두컴컴했다. 크앙이 원했던 닭꼬치 가게라던지 덮밥, 초밥, 베이커리, 디저트 가게 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15분째 이런 거리 풍경만 이어졌다. 이건 번화가가 맞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여!

15분 정도 걸었을까, 뭔가 여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여기서 더 가 봐야 계속 이런 풍경만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호텔로 돌아와 반대 방향으로 또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쯤 걸어가자 뭔가 사람 사는 곳이 나오기 시작했다. 15분씩 왕복해서 30분 + 반대로 걸어서 10분. 호텔을 나와 40분만에 뭔가를 파는 가게와 자판기들을 보자 감격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 어흑.. 어흑..”
“($na0nlPnlkijnedf/$(U (뭐야, 저 사람 미쳤나봐)”
“D0n-4)^)I)@$$ULdnXCG_#* (다가가지 마, 어떤 일을 당할 지 몰라)”

주변에서 일본인들이 뭔가를 수근대는 것 같이 느껴졌지만, 어쨌든 좋았다. 겨우 찾아낸 편의점과 마트에는 처음 보는 먹거리들이 가득했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각종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여전히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 했지만, 카운터의 점원도 바디랭귀지를 잘 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최대의 난관인 일본 PSN카드 구입 역시 편의점 직원을 지긋이 바라보며 ‘플레이스테이션 카드! 플리즈!’ 라고 외치자 바로 안내해 주었으니… 이 정도면 일본 어딜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까지 붙었다.


▲ 어둠 속에서 겨우 찾아낸 하나의 편의점

“오, 이 과자는 맛있게 생겼네. 음? 이 음료는 무슨 맛이지? 일단 집자. 오, 닭꼬치다. 콜! 우~와! 탄산음료다! 컵라면도 되게 많네! 이 캔은 뭐야? 조그마한게 엄청 귀엽네? 일단 겟! 우와 저건 브로컬리, 치워! 이야, 푸딩! 푸딩! 젤리도 사고, 차도 하나 큰 걸로 사야지. 그리고, 그리고…”

결국 크앙은 두 손 가득 각종 먹거리를 사들고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이 날 산 먹거리만 대략 5천 엔 이상(PSN카드 제외), 한화로 하면 7~8만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사실 이 외에도 골목길에 숨어 있는 조그마한 꼬치구이집이나 덮밥집 등에도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워낙 바리바리 들고 있는 게 많아서 아쉽게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길래 누가 이렇게 많이 사랬나!

전리품(?)을 감상하던 크앙은 문득 세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저녁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사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는 것, 두 번째는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는 일본 지역을 표시해 준다는 사실이었다. 뒤늦게 지도를 확인해 보니, 정작 번화가는 크앙이 간 방향과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스마트하더라도, 정작 사용자가 스마트하지 못하면 몸만 고생한다는 것을 체감한 하루였다.

마지막 한 가지는, 글을 모르면 인생이 피곤해진다는 것이었다. 무심결에 두 통이나 집어온 칼피스 음료는 5배로 희석시켜 먹어야 하는 액기스였으며(심지어 그림도 그려져 있었는데), 맛있겠다고 사 온 캔음료는 알고 보니 술(밤에 목이 말라 깨서 무심결에 마셨다가 낭패를 봤다)이었다. 푸딩이라고 사 온 것 중 하나는 푸딩이 아닌 씁쓸하고 신 과일이었으며, 포켓몬스터 과자랍시고 두 개나 사 온 것은 알고보니 후리카케(밥에 뿌려먹는 조미료, 국내에서는 뿌비또 등으로 유명)였다. 으하하…


▲ 그저 먹을 욕심에 마구 집어온 음료들
왼쪽 위와 중앙 아래의 흰 병은 음료가 아니라 액기스...였다


▲ 음료 외에 집어온 먹거리들, 저 포켓몬은 과자나 초콜릿일 줄 알았는데...


올로레 기자에겐 수전증이 있습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본격적인 ‘TGS 2012’ 취재의 날이 밝았다. ‘TGS’ 가 열리는 마쿠하리멧세는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대충 한 바퀴만 둘러보더라도 금새 2시간이 지나간다. 때문에 이번 취재에는 와무메카와 블소메카에서 최고 미남 기자로 인정받는 올로레 기자가 따로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올로레 기자님. 저는 부스를 돌며 각종 게임들을 취재할 테니, 저 대신 부스걸들을 찍어주세요.”
“넵지웅.”
“당신의 능력을 믿어요. 찍은 사진은 한국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에게 직접 보내주시면 되어요.”
“넵지웅.”

이상한 수식어를 붙이며 총총 사라져간 올로레 기자. 그는 한 마리의 발업 질럿처럼 회장을 샅샅이 헤집고 다니며 TGS를 빛내는 일등공신인 부스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눈은 감은 것 처럼 보였으나 회장의 모든 부스걸들을 보고 있었으며, 그의 DSLR은 쉴 새 없이 조리개를 여닫으며 기계로서의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크앙은 올로레를 믿은 만큼 올로레의 사진도 믿었기에, 아무런 부담없이… 그러던 중!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이, 일본에 있는 크앙 기자 나와라.”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닥쳐라. 도대체 사진에 무슨 짓을 한 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상황을 설명해 달라.”
“부스걸 사진 말이다. 말춤이라도 추면서 찍은 건가?”

그렇다. 올로레 기자가 찍은 사진은 그야말로 형이상학에 입각한 인상파 화가가 금지약물 5인분 정도를 투여한 후 환각 상태에서 그린 추상화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절전으로 인해 천장 조명을 모조리 꺼 둬서 어두웠던 TGS 회장, 그 곳에서 플래쉬도 터뜨리지 않고 셔터스피드 1초 정도의 설정으로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으니… 그 결과물은 아래에서 직접 확인 바란다.


▲ 하나의 광자도 놓치지 않겠다! 셔터 노출시간 1초의 위엄


▲ 억지로 찍으려 해도 힘든 예술적인 사진도 많다
그나저나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찍는거야?

결국 TGS 1일차 부스걸 모음 기사에는 수많은 기자들의 포토샵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했고, 올로레 기자는 본의 아니게 그들에게 꿀 같은 야근(줄여서 야)을 선사해 주었다. 그럼 그의 변명을 들어보자.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조명도 어두웠구요. 그리고 찍은 사진을 확인할 틈도 없이 다음 모델을 찍으러 달리다 보니…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TGS 부스걸들이 지스타 부스걸들에 비해 안 예쁘더라고요. 의욕이 안 생겨서… 데헷?”


▲ 그렇게 올로레 기자는 TGS 회장에서 탈출했다

이 말을 남긴 채 올로레 기자는 레라스 기자와 함께 디즈니랜드 관광을 가고, 같은 호텔 방에서 3박 4일간 쌍화점을 찍었다고 한다. 핥핥핥핥핥…… 브라우니! 물어!


더… 더워! 히… 힘들어!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TGS 2012’ 회장은 절전 중이었다. 천장의 조명이 꺼져 있어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냉방과 에스컬레이터, 화장실 핸드드라이어 등에까지 절전이 적용되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지옥으로 다가왔다. 9월 말이라고는 해도 아직까지 도쿄 지역의 낮 기온은 33도에 달했으며, 개최 이틀 전에 비까지 내려 거의 동남아시아를 방불케 하는 습도를 자랑했다. 그 와중에 냉방까지 적게 틀어 놨으니… 일반인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더위를 유달리 많이 타는 크앙은 얼굴과 몸 전체에서 라멘 육수를 한가득 뿜으며 취재를 감행했다.


▲ 엄청나게 더운 날씨, 냉방조차 원활하지 않아 육수가 주륵주륵

“더… 더워... 무… 물!!”
“눈을 뜨세요, 용사여.”

육수 과다분출로 인해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 어디선가 여신님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무엇인가가 들려왔다. 땀이 들어가 쓰라린 눈을 억지로 비벼 떠 보니, 그 곳에는 아리따운 부스걸이 커다란 부채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미쿠미쿠한 하츠네 미쿠 부채였다. 부채를 휘두르니 파초선 부럽지 않은 바람이 땀을 식혀주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줬다.

그러나 여신님의 미쿠미쿠 부채는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아주는 임시방편이었을 뿐,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는 기능은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뭐?

치익~ 부스럭~

“캬! 이 맛이지~”

크앙을 진정으로 구원해 준 것은 회장 입구쪽에 자리하고 있던 자판기, 그리고 7홀에 마련되어 있던 먹거리 판매 코너였다. 자판기의 천국 일본답게 회장 내에도 다양한 자판기가 존재했는데,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더불어 어제 호텔에서도 보지 못한) 다양한 음료수가 생명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더불어 먹거리 판매 코너에서는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는 일본틱한 먹거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 흘리고 다닌 육수 보충을 도와주는 음료 자판기
워낙 자판기 문화가 발달한 일본인지라, 잘 찾아보면 아이스크림도 판다


▲ 7~8홀에 위치하고 있는 먹거리 판매 코너의 야끼소바 부스
사진은 정말 맛있어 보이지만, 가격을 보면 왠지 식욕이 15% 감소한다

마치 멈춰가는 엔진에 연료를 보급해주듯, 크앙은 음식 흡입을 시작했다. 터프한 아저씨가 즉석에서 볶아주는 야끼소바, 물렁물렁 말랑말랑한 곤약 꼬치, 동글동글 먹음직스러운 타코야끼, 소시지, 케밥, 핫도그, 피자… 이 모든 것을 몽땅 입 속으로 넣고 싶…… 었지만! 엄청난 가격의 압박 앞에 이성을 되찾았다.

조그마한 핫도그(막대기형) 하나에 200엔(한화 약 3,000원), 즉석 야끼소바(볶음면)는 900엔(한화 약 13,500원), 소시지 케밥 하나에 500엔(한화 약 7,500원), 피자 한 조각에 600엔(한화 약 9,000원)… 자칫 잘못하면 이 곳에서 가져온 돈을 전부 탕진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곳에서 먹은 것은 가장 싼 야끼소바(즉석 아님, 350엔)와 떡갈비말이(小, 300엔) 1개씩이었다. 이것만으로도 1만원에 가까운 돈이 나간데다, 양도 적고… 무엇보다 맛이 별로 없다.

“야끼소바는 불어 있고, 돈까스 소스 맛이야. 떡갈비말이는… 한국 것이 10배는 낫네… 에휴…”

후회는 아무리 빨라봐야 늦는 법. 크앙은 덕분에 멍해져가는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니 돈을 날린 건 아닐 거라고 위안삼으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들... 현재 환율을 적용하면 더욱 그렇다


▲ 너... 너무 맛있어 보여!!


▲ 결국 값싼 야끼소바로 타협을 봤지만, 맛은... 후회막심


지름신 강림 (1), 질러라!

먹거리 코너에서 걸어 나오던 크앙의 눈에 TGS 방문객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가는 귀신 기지가 보였다. 머천다이즈 코너라 불리우는 이 곳은 각종 게임 관련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척 위장하여, 어느새 지갑 속 돈을 탈탈 털어가는 무서운 지역이다.

“우와, 몬헌의 마스코트 아이루다! 오옷, 큐베다! 와, 저런 티셔츠는 입고 다닐 사람이 있으려나? 헉, 6천엔? 저리가! 음, 여긴 미쿠미쿠한 캡슐 뽑기 코너군. 저기는…”

현대 문명을 접한 원시인의 반응이 이럴까? 크앙은 방금 먹은 350엔짜리 야끼소바가 모두 소화될 정도로 머천다이즈 코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놀랄 만한 퀄리티의 피규어에서부터 생활 곳곳에 스며들 법 한 캐릭터 물품들, 의복, 인형들이 크앙을 줄기차게 유혹했으나, 놀랄 만한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 엄청난 자제력이란! 지름신이 직접 귀에 대고 ‘질러라~’ 라며 속삭여도 꼼짝하지 않을 사나이의 기상이 넘쳐났다.

“후훗, 엄청난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 굳건히 버텨냈다. 그런데, 왠지 손이 무겁군?”

부스럭

“으악! 깜짝이야. 뭐야 이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손에는 비닐 꾸러미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깜찍한 모양의 아이루 인형을 필두로 아이루 모양 목베개, 아이루 무기형 안마봉, 아이루 모양 초콜릿 과자, 큐베 모양 오뚝이,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 새겨진 초콜릿, 하츠네 미쿠 캡슐… 그렇게 지름신은 조용히 왔다가셨나 보다.


▲ 내가 너무 좋아하는 아이루 관련 상품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니...

“그래도 괜찮아. 지갑에서 순식간에 1만엔이 사라졌지만 난 괜찮아. 난 내 결정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남자잖아? 괜찮아. 난 괜찮아. 괜찮아…”

그렇다. 머천다이즈 코너의 진정한 무서움은 피해자들이 이 곳에서의 추억을 스스로 미화시키게끔 만드는 것에 있다. 혹자는 말한다. 왜 그런 걸 사느냐고 그 큰 돈을 쓰고 왔냐고.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것은 나라, 민족, 생명체를 초월한 우주의 의지. 이러한 순리에 따랐기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니까.(사실 저도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결국 아이루 인형은 제 방까지 따라왔습니다


지름신 강림 (2), 더 질러라!

군것질과 머천다이즈 코너 탐방으로 예산의 75%를 소비해버린 크앙. 그러나 그에게 닥친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이동하던 중, 크앙의 눈에 ‘돈키호테’ 라는 익숙한 상호가 눈에 띄었다. 그것도 한글로! 그렇다. 이 곳은 사람 빼고 다 판다는 만물상 ‘돈키호테’ 였다. 화장품, 식품, 전자기기, 의류, 인형, 학용품,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 그 명성은 일본 초행길인 크앙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었으니…

그러나, ‘돈키호테’ 의 진가는 다양한 물품 라인업에만 있지 않다. 바로, 상상하지도 못 한 물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것!

“세상에, 이… 이건 대체 뭐야?”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붙이는 수염은 약과였다. 여성의 젖가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고무공(?)에서부터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부르마형 여성용 체육복, 그리고 그 용도가 의심스러운(남성 사이즈에 맞춘 여경이나 바니걸, 간호사 의상이라니…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의미불명의 코스튬까지… 맙소사!


▲ 패션용으로 제작된 붙이는 수염은 물론이고...


▲ 용도를 알 수 없는 고무공(?)에서부터


▲ 남성용 여자 제복 코스튬 세트까지...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상품들이 많다

“사… 사고 싶다. 하지만… 저걸 어디에 쓰지?”

위의 대사는 돈키호테에 있는 대부분의 상품에 적용되는 감상평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독특한 물건들이 많기 때문에 뭔가 사고는 싶지만, 막상 사고 나면 별로 쓸 일이 없는 제품들. 그렇지만 어떻게든 사게 되는 그런 물건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다행히 돈키호테의 물건들은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닌데다, 여권을 가져가면 면세까지 되기 때문에 ‘TGS 2012’ 회장의 머천다이즈 코너만큼 큰 타격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결국 크앙은 이 곳에서 남은 돈을 탈탈 털렸고, 그 전리품 중 일부는 지금도 게임메카 모 기자(32)의 따스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훈훈한 결말이 전해진다.


▲ 사실 이걸 사다주고 싶었는데, 너무 비쌌다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귀국

어느덧 3일간의 TGS 취재가 끝나고, 크앙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위에서 구입한 물품들로 인해 텅텅 비었던 캐리어백은 다시금 5기압으로 부풀어 올랐고, 막상 공항에서는 음료수 하나 뽑아 먹을 돈이 없어서 공용 식수대에 입을 대고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요즘엔 일본인들도 일반 수돗물은 잘 안 마신다던데… 문득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보니 어느새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고, 비행기에서 엄청나게 느린 ‘스트리트 파이터 2’ 를 즐고 있자니 어느새 한국에 도착했다.


▲ 비행기에서 플레이 할 수 있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2'
그런데 속도가 일반 모드의 1/3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박 3일간의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사실 이번 취재에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TGS 회장에서 시연된 수많은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한 점, 조금 더 지름신의 이끌림을 받고 싶었는데 미처 환전을 충분히 하지 못 한 점. 그리고 행사 마지막 날의 코스프레 대회라던가, 코스프레 모델 따위를 못 본 점 등이 대표적인 이유다. 코스프레!

그렇지만 좋은 기억도 많았다. 일본어 한 마디 하지 않고도 돌아다닐 수 있는 편의적 부분도 맘에 들었고, 희한한 군것질거리도 많았다. 부스걸들도 좋았고, 부스에서 전단지를 나눠주시던 누님들이나 게임을 옆에서 설명해주던 누님들도… 비록 캐리어 가득 선물을 안고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죄다 어디론가 외출해 있어서 홀로 외롭게 짐을 풀어야만 했지만, 심지어 가족들이 왜 벌써 왔냐며 구박까지 해 대서 조금 우울했지만, 좋은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왔으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눈에서 땀이 나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만평동산
2018~2020
2015~2017
2011~2014
2006~2010
게임일정
2024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