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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변화 못 따라가는 ‘게임법’ 고쳐야 게임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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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게임법을 바꿀 때가 됐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최근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주전자닷컴, 플래시365 등 자작 플래시게임을 서비스하는 사이트에 서비스 제한 통보를 내린 바 있다. 이 곳에 올라온 게임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비영리게임이고, 개인 개발자들이 취미 삼아 만든 게임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게임위의 입장이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비영리 게임은 심의를 면제해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방향을 선회했다.

여기에서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심의다. 상업용도 아니고, 개인 개발자나 학생들이 대부분인 비영리게임도 수수료를 내가며 꼭 심의를 받아야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깊이 다가가서 보면 게임위나 그들의 심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게임위는 공공기관으로 법에 따라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위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받는 법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다. 그리고 게임법에는 ‘게임을 이용하게 할 목적으로 배포하는 자도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게임위 혹은 심의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게임법을 그대로 놔두고는 이 부분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화하며 게임을 즐기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국내 게임법은 10년 전에 만들어졌고, 시장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게임 시장에 현저하게 뒤쳐진 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

모든 게임은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임법

게임법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내용이다. 게임법 제 21조에 이 내용이 있다. 이에 따르면 돈을 내고 파는 게임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에게 해보라고 제공하는 게임은 심의를 받아야 된다. 심의 없이 공개할 수 있는 게임은 아주 적다. 게임쇼나 테스트처럼 잠깐 공개하거나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게임만 심의가 면제된다.

▲ 극히 일부만 제외한 모든 게임은 심의를 받아야 국내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자료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 부분이 왜 문제가 될까? 전세계적으로 게임 개발 문턱은 낮아지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초등학생도 간단한 게임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는 개인방송이 뜨기 전에 ‘1인 개발’ 열풍이 불었던 곳이 바로 게임이다. 회사를 차리지 않아도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게임 개발은 쉬워졌지만 심의 문턱은 낮아지지 않았다. 심의 수수료도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심의를 받는 과정과 필요한 서류를 만드는 것이 복잡하다. 게임 개발을 취미로 하거나, 게임 개발자를 꿈꾸며 작은 작품을 만들어보는 학생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플래시게임 서비스를 접는다고 밝힌 주전자닷컴도 공지를 통해 “학생들이 중심이 된 손 때 묻은 UCC 작품에 대해 서비스를 금지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코딩 교육도 그렇다. 교육 과정 중에는 직접 게임을 만들고 출시하는 것도 있다. 시장에 게임을 내보고 이에 대한 유저 의견을 받아서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것도 교육 과정에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게임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수업 과정 중 게임을 완성해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모바일게임이라면 게임위에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PC 게임이라면 앞서 이야기한 플래시게임처럼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공개가 차단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 코딩 교육 중에는 게임을 만들고, 출시해보는 과정을 다루는 부분도 있다 (사진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초등학교 코딩 교과서)

스팀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스팀에 판매되는 게임 중에는 국내 심의를 받지 않은 것도 있다. 스팀 외에도 온라인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게임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시장에 뿌리를 깊게 내렸다. ‘국내에 제공되는 모든 게임은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으로 묶기에는 범위가 너무 큰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재 게임법에서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게임을 정하는 부분은 시장에 맞지 않다. 개인 개발자가 많아지는 개발 환경, 국경을 넘어 다양한 게임을 맛볼 수 있는 온라인 마켓이 대표적이다. 개발과 유통에서 모두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시장에서 모든 게임을 통으로 묶어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은 적용하는데 많은 문제점이 있다.

▲ 스팀도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이다 (사진출처: 스팀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개인 개발자 자격으로 심의를 받는 과정도 복잡하다. 플래시게임이라도 용량과 장르에 따라 8만원에 달하는 수수료가 나올 수 있다. 청소년 입장에서는 큰 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과정도 복잡하다. 이제는 사업자 등록증이 없이도 가능하지만 서류를 만드는 것이 까다롭다. 심의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게임 내용을 자세히 적은 ‘게임물 내용정보 기술서’라는 것을 내야 한다. 이름도 어렵지만 게임을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등으로 구분해서 각 부분을 자세히 적어내야 한다.

'자율심'의 확대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게임법

현재 게임법에는 심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자율심의’가 있다. 자율심의는 2011년부터 시작됐다. 게임위가 아닌 사업자나 단체도 게임을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자사 마켓에 출시되는 게임을 자체적으로 검토해 출시하는 구글과 애플이 대표적인 곳이다.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에서는 예전보다 심의가 간단해진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모바일에 뿌리를 내린 자율심의가 PC나 콘솔과 같은 다른 기종으로는 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게임위로부터 ‘자율심의 사업자 자격’을 받은 소니가 유일하다. 게임위에 심의를 받지 않아도 게임을 낼 수 있는 좋은 제도인데 왜 업체들이 쓰지 않는 것일까? 게임법에 그 이유가 있다. 법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업체에서 느끼기에 부담스러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단 ‘자율심의 사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게임위로부터 지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게임법과 그 시행규칙에는 어떠한 조건을 갖추면 ‘자율심의 사업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담겨 있다. 그런데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기본적인 조건은 3년 연속 연 매출 1,000만 원이지만 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다. 심의 업무만 전담하는 인력도 뽑아야 하고, 게임위와 심의 결과를 주고 받는 시스템도 운영해야 한다. 여기에 심의 결과에 대한 민원도 받아서 처리해야 한다.

▲ 게임법 시행규칙에는 자율심의 사업자가 갖출 조건이 자세히 적혀 있다 (자료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이를 두고, 2017년 1월에 열린 ‘자율심의 사업자 지정 관련 간담회’ 현장에서 한국MS는 ‘사업자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제 2의 게임위가 되라는 것처럼 들린다’라고 밝혔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도 법에 있는 조건을 맞추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율심의’를 할 수 있는 근거는 법에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에는 그 내용이 까다롭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여기에 게임 심의 역시 점점 글로벌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북미, 유럽, 독일에서 게임 심의를 담당하는 기관이 함께 만든 ‘국제등급분류연합’의 가장 큰 강점은 게임 개발자가 직접 작성한 설문지를 바탕으로 등급이 결정되고, 결과가 나오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게임위도 2017년에 여기에 가입했지만 이 기준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자율심의 사업자밖에 없다. 구글, 애플, 소니 등이 대표적이다.

▲ 심의 장벽을 크게 낮출 수 잇는 국제등급분류연합의 방식도 현재는 자율심의 사업자만 이용할 수 있다 (사진출처: 국제등급분류연합 공식 홈페이지)

종합하자면 자율심의는 현재 법에서 심의에 얽힌 복잡한 문제를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법에 있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업체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자율심의가 2017년에 PC와 콘솔에 확대된 후에 새로 합류한 곳은 소니 하나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기종 구분 의미 없어졌는데... 시대 변화 못 따라가는 게임법

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은 세밀한 부분이다. 먼저 기종에 대한 내용이다. 현재 게임위는 기종에 따라 나눠서 심의를 하고 있다. 같은 게임이라도 PC, PS4, Xbox One으로 나온다면 심의도 3번 받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기종 외에도 무슨 장르인지, 온라인 플레이를 지원하는지 등에 따라 심의수수료도 크게 달라진다.

▲ 게임위에서는 같은 게임이라도 기종마다 따로 심의를 받아야 된다 (자료출처: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분류규정)

이러한 기준은 게임 시장과 전혀 맞지 않다. 현재 시장에서는 기종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PC와 콘솔을 동시에 지원하는 멀티 플랫폼이 주류로 자리를 잡으며 심의에서 기종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앞으로는 더 경계가 사라질 전망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클라우드 게이밍이다. 게임을 콘솔, PC,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기기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서비스하는 기종을 늘릴 때마다 일일이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용 수정 신고도 그렇다. 내용 수정 신고란 게임을 업데이트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하면 이를 24시간 안에 게임위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받아본 내용이 연령 등급을 바꿔야 할 정도라는 판단이 들면 게임위가 게임사에 심의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알린다. 온라인, 모바일을 넘어 콘솔에서도 주기적으로 새 콘텐츠를 추가해 생명을 늘리는 것이 대세로 자리잡은 지금 업데이트 내용을 일일이 알려야 하는 현재의 ‘내용 수정 신고’는 시류에 맞지 않다.

▲ 현재 내용 수정 신고는 현재 시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형태다 (자료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실시간 대응이 기본인 게임 시장에 맞지 않는 법을 적용하다보니 일을 처리하는 과정도 어정쩡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료 캐시로 아이템을 거래하는 경매장이 청소년이용불가 요소로 판단되어 등급 재분류 처분을 받았던 '리니지2 레볼루션'이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게임위가 판단을 내린 순간 청소년에게 게임을 제공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유저에게 미치는 피해가 막심하기에 일단 거래소만 닫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처리됐다.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 법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게임법에 심의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 것은 2006년이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부분을 뜯어 고쳤지만 시장에서 느끼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현재 게임법은 완성된 형태로 시장에 출시되는 패키지 게임에 최적화되어 있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게임산업을 포용하기에는 기준 차체가 너무나 오래됐다는 것이다. 플래시게임 차단 사태로 인해 불이 붙은 ‘게임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지를 이제는 정말로 실천에 옮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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