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코로나19는 참 많은 것을 앗아갔는데요, 대학생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애도 하… 아무튼 풋풋한 새내기 시절 추억들을 쌓아야 할 시기에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만 했죠. 특히 20학번 신입생들은 새내기 추억 하나 없이 ‘중고 신입생’이 되어버려 피해가 막심합니다. 오죽하면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얼굴이라도 보자며 화상회의 방을 만들어서 수다를 떨까 싶네요.
하긴, 최근엔 대학생활도 예전처럼 재미있기만 하진 않다더군요. 조금 많게는 IMF가 끝난 2000년대 초반, 적게는 약 십여 년 전부터 대학생활이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이 됐다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렸으니까요. 흔히 말하는 ‘대학생활의 로망’이라는 것도 90년대 중후반쯤을 정점으로 사라지고 있는 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 절정의 시기를 그대로 담아낸 게임 ‘캠퍼스 러브 스토리’를 꺼내 봐야 합니다.
제우미디어 PC챔프 1996년 1월호. 낯선 게임 하나가 전면광고로 소개됐습니다. 발랄해 보이는 여성과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그려져 있는 ‘캠퍼스 러브 스토리’입니다. 당시는 국내에 동급생 2나 두근두근 메모리얼 등이 알음알음 소개되면서 연애 시뮬레이션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였는데요, 이 같은 흐름을 타고 새로운 게임이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위의 첫 광고에서는 게임에 대한 단서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가운데 있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여주인공인 듯 배치돼 있고, 아래쪽에는 스크린샷 세 장이 있군요. 잘 보면 배경+캐릭터로 구성된 대화 씬 한 장,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있는 이벤트 씬 한 장, 그리고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그림 한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외에는 게임 제목처럼 ‘캠퍼스’를 배경으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 뿐이었죠.
게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음호인 1996년 2월호 PC챔프에 소개됐습니다. 이번엔 무려 네 명의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와 있는데요, 모두의 예상대로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물론 캠퍼스라고는 해도 등장인물 모두가 대학생은 아니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캐릭터부터 모델, PC통신 채팅에서 만난 여인이나 재벌가 후계자까지 꽤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광고를 보면 ‘새로운 스타일의 캠퍼스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소개와 함께 ‘그녀의 삐삐도 받고 싶어’ 같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문구들이 눈에 띕니다. 캐릭터들이 입고 있는 옷은 일단 9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복장들인데, 25년이 지난 지금 보니 유행이 돌고 돌아 꽤나 세련되고 심플한 복장들이네요.
이후 한동안 개발에 몰두했던 캠퍼스 러브 스토리가 새로운 광고를 낸 것은 그해 말, 1996년 12월호입니다. 이번 광고에는 캐릭터 수가 확 늘었네요. 첫 광고에 등장한 단발머리 캐릭터(이소현)와 긴 생머리 캐릭터(오희숙)가 우측 상단과 하단에 크게 있고, 두 번째 광고에 등장한 숏컷 캐릭터와 두 갈래 앞머리 캐릭터도 중앙에 나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무려 10명이나 나오는데, 정작 최종 완성판에는 몇몇 캐릭터가 빠진 채 발매됐습니다. 개발 기간 문제로 더미화 된 것으로 보이는데, 좌측 상단의 큰 귀걸이를 한 여성이나, 그 아래의 보라색 숏컷 머리, 그리고 우측 중단의 연상의 여인처럼 보이는 캐릭터는 게임 내에서 엑스트라처럼 짧게 모습만 보이고 사라집니다. 초반에는 구현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잘려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쪽에는 ‘캠퍼스에 그리는 Z세대의 뜨거운 사랑이야기’라는 멘트가 적혀 있습니다. Z세대라… 사실 저 때 대학생들이라면 X세대라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릴 듯 한데요. 실제로 게임 내에 힘을 많이 잃은 운동권 캐릭터가 나오기도 하고, ‘오렌지족’이라 불리는 주인공 설정과 라이벌 남성 캐릭터도 등장하거든요. 당시엔 X세대라는 단어가 나온 지 몇 년 지나며 자연스레 Y, Z 같은 파생형 단어를 여기저기 갖다 붙이던 때라 저 단어가 나온 듯 합니다. 실제로 현재 Z세대라 하면 성장기에 스마트폰을 만지기 시작한 세대를 의미하며, 이들은 2021년 현재 1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 정도입니다.
1997년 1월에는 조금 재미있는 광고가 나왔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재벌가 여인인 최지혜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긴 머리 여성이 나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실제 게임에 등장하지 못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네요. 둘째 페이지에는 이상형 찾기 게임이 나와 있는데, 선택지에 따라 문지현(모델걸), 채소라(영계걸), 최지혜(미스퍼펙트), 이소현(게릴라전???), 박주민(동급생) 중 한 명에게 향하는 모습입니다. 다른건 다 몰라도 왜 이소현은 게릴라전일까요? 실제로 게임 내에서 비슷한 이벤트가 존재하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공주병 캐릭터가 맞지 않을까 싶은데… 아, 참고로 저는 화살표 따라가니 박주민이 나오네요. 공교롭게도 25년 전, 제가 처음으로 엔딩을 본 캐릭터가 박주민입니다.
그 해 6월에는 드디어 출시 광고가 나왔습니다. 일러스트 자체는 96년 12월에 낸 것과 동일하지만, 아래쪽 스크린샷이나 색감 같은 게 살짝 바뀌었군요.
마침내, 1997년 7월호에는 발매 축하 광고가 실렸습니다. 이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무려 캠퍼스 러브 스토리 여주인공 모델들과의 일일 데이트권이 걸려 있었습니다. 게임 타이틀 내에 포함된 지정 엽서와 엔딩 세이브파일 디스켓을 동봉해 응모를 하면, 데이트권과 SKC 게임들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였습니다. 모델과 일일 데이트라니… 대체 어떤 거길래!?
그 정체는 9월호 잡지에서 공개됐습니다. 캐릭터 콘셉트에 맞춰 여성 모델 한 명씩이 배정되고, 선정된 당첨자들과 이들이 짝을 맺고 이벤트를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광고에는 무려 당일 행적까지 나와 있는데요, 베니건스에서 근사한 점심을 먹은 후 노래방을 거쳐 커피를 마신 후, 영화를 보고 호프집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꽤나 꽉 찬 일정이었나 봅니다. 당첨자들의 얼굴 사진과 실명, 엽서 멘트, 나이와 사는 지역까지 명시돼서 이게 뭔 박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즐거웠을 것 같네요.
11월호에는 캠퍼스 러브 스토리의 마지막 광고가 실렸습니다. 게임 내 시간으로 3년차, 남일대 컴공과 학생들의 단체사진이 보이네요. 맨 앞줄 오른쪽 끝에 얼굴이 가려진 캐릭터가 주인공인데, 얼굴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미연시 주인공의 법칙 때문입니다. 뒷줄에는 양갈래 머리를 한 후 배 채소라와 동기 여자애인 박주민이 나와 있네요. 참고로 채소라는 버그로 인해 엔딩 진행이 불가능한 황당한 캐릭터였습니다.
아래쪽에는 제작진의 인사말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동급생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임이라, 이에 대한 이야기도 쓰여 있네요. 인사말 자체는 ‘일본의 선정적인 여성’ 처럼 꽤나 자극적인 표현들이 많지만, 실제로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문화적 차이가 약간이나마 존재하는 일본 게임에 비해 90년대 중후반 당시 사회상을 담아낸 국산 게임이라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높은 게임이었습니다.
실제로 게임 내에는 국내 유명 대학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당시 유행했던 영화나 게임, 음악, 대학가, 대학생 문화, 물가, 핫플레이스, 집전화로 약속 잡고 만나기, 모뎀으로 연결해 즐기는 PC통신 등 사회상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상을 반영한 게임이 극히 드물다는 관점에서, 캠퍼스 러브 스토리는 타임머신으로서 역할도 충분히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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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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