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남] '늙크크 게이머'만 사용하는 단어 TO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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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차이를 부르는 옛날 게임 용어들을 돌아보며 올드 게이머들의 추억을 자극한다. 오락실이나 PC통신 시절 널리 쓰였던 단어들은 현대 게임 환경의 변화와 함께 점차 사라졌다. 이제는 낯선 고대 유물 같은 단어들을 통해 세월의 흐름과 과거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기자도 한때는 유행의 최전선에서 신조어를 거침없이 뱉어냈지만, 요즘에는 필사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젊은 친구들이 쓰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알잘딱깔센’이니 ‘밤티’니 하는 말도 겨우 학습했는데, 이제는 '줴줴이야' 같은 새로운 줄임말들이 또 쏟아져 나온다. 아직은 뒤쳐질 때가 아니라며 열심히 검색창을 뒤지고는 있는데, 새로 공부한 단어보다는 옛날부터 써 온 흘러간 유행어가 입에 착착 붙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 '줴줴이야'나 'ㅈㅈㅇㅇ' 보다는 'GG'가 훨씬 편하잖아!

사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옛날 게임용어들 때문에 온라인에서 나이대를 들키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옛날에는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힙하게 썼던 단어인데, 요즘에는 무심코 툭 던졌다가 “아재다!”, “틀니 압수”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소위 ‘늙크크’라 불리는 올드 게이머들은 여전히 즐겨 사용하지만, 요즘 어린 게이머들은 난생처음 들어본다는 고대 유물 단어들. 오늘은 그런 옛날 게임 용어들을 모아봤다.

TOP 5. 체어샷

프로레슬링에서 악역 레슬러들이 심판 몰래 철제 의자로 상대의 등짝을 후려갈기던 그 유서 깊은 반칙 기술, 바로 ‘체어샷’이다. 게임계에서는 90년대 오락실이나 초창기 로컬 대전 PC방에서, 패배의 분노를 참지 못한 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대방의 등짝을 향해 의자를 내리꽂던 낭만의 시대에 널리 사용됐다. 주로 ‘체어샷 조심해라’, ‘체어샷 마려운 플레이’ 같은 관용구로 쓰였으며, 실제로 철제 의자가 허공을 가르는 광경은 그 시절 아케이드 센터의 흔한 풍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락실이 멸종 위기에 처하고, 철권조차 집에서 PC나 콘솔로 온라인 매칭을 하는 시대가 되면서 체어샷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상대방이 얍삽이 쓴다고 모니터 너머로 의자를 텔레포트로 던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대신 키보드 패드립과 통매음 고소장이 오가는 삭막한 법치주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제 체어샷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백이면 백 과거 오락실 동전 쌓아두고 체벌을 주고받던 늙크크 게이머다.

요즘 애들은 의자 대신 고소장을 던진다 (사진제작: gemini)
▲ 요즘 애들은 의자 대신 고소장을 던진다 (사진제작: gemini)

TOP 4. 척살

한자 뜻 그대로 ‘물리쳐 죽인다(斥殺)’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단어, ‘척살’이다. 이 단어는 과거 혈맹 간 전쟁과 PK가 핵심이었던 리니지를 비롯한 MMORPG들에서 특정 인물이나 혈맹을 죽인다는 뜻으로 널리 쓰였다. 사실 이 단어는 그 전부터 한국형 무협소설에서 흔히 쓰였다. 정파가 마두나 배신자 등을 처단할 때 "척살령을 내린다" 같은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 단어가 자연스레 유저층이 겹쳤던 성인용 MMORPG로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현대 게임판의 대세는 MOBA, 배틀로얄, 수집형 모바일게임, 싱글 플레이, 철저하게 통제된 규격의 레이드 등으로 넘어갔다. 사냥터에서 몇 날 며칠을 잠복하며 쫓아다니거나 필드 PK를 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어졌으니, 척살이라는 단어가 설 자리가 없다. 대화를 하다 열이 받아서 “너 오늘부터 척살이다”라고 외친다면, 상대방은 “젊었을 적 무협 소설 많이 보셨나 봐요 할배”라며 비웃을 것이 분명하다.

전쟁을 선포하던 패기 어린 말은, 이제 늙크크 단어로 전락했다 (사진제작: gemini)
▲ 전쟁을 선포하던 패기 어린 말은, 이제 늙크크 단어로 전락했다 (사진제작: gemini)

TOP 3. 립버전

영단어 ‘Rip(뜯어내다)’에서 기원한 ‘립버전’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를 지배했던 어둠의 유산이다. 당시 CD 한 장 용량인 650MB는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같은 PC통신, 혹은 56k 모뎀으로 감당하기엔 우주만큼 거대한 용량이었다. 이에 어둠의 해커들이 배경음악(BGM)과 인트로 동영상(FMV)을 인정사정없이 가위질해 용량을 수십MB 단위로 쪼개놓은 불법 복제판을 배포했는데, 이것이 바로 립버전이다. 배경음악도 음성도 안 나오지만 게임은 돌아간다는 사실 하나에 감격하며 디스켓이나 공CD에 담아 돌려보던 이들이 많았다. 이후에는 사실상 불법 복제판을 얘기하는 단어로도 쓰였다.

하지만 기가인터넷과 테라바이트급 SSD가 기본 옵션이 되고, 스팀의 연쇄할인마들이 게이머들의 지갑을 털어가는 현대에 용량을 줄여서 뜯어낸다는 발상 자체가 의미 없어졌다. 게다가 게임 대부분이 온라인 서비스형 부분유료화 모델로 안착했으니 립버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상태다. 요즘 세대에게 립버전을 묻는다면 립밤이나 립글로스의 신제품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행여나 해외 불법 복제판인 ‘리팩(Repack)’을 립버전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용산 굴다리 밑에서 복사 CD 사본 경력이 있는 찐 늙크크 게이머가 아닐까.

굴다리 밑에서 복사 CD를 사왔던 추억 (사진제작: gemini)
▲ 굴다리 밑에서 복사 CD를 사왔던 추억 (사진제작: gemini)

TOP 2. 시디키

패키지 박스를 뜯고 플라스틱 주얼 케이스를 열었을 때, 뒷면에 영롱하게 인쇄되어 있던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 바로 ‘시디키(CD-Key)’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나 워크래프트 3, 디아블로 2를 설치할 때마다 자판을 두드리며 외우다시피 타이핑했던 그 시절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존재였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배틀넷 초기 시절, 친구 시디키를 몰래 베껴 적어 접속했다가 “이미 사용 중인 시디키입니다”라는 경고창과 함께 친구와의 우정에 금이 가던 비극은 그 시절 게이머들의 흔한 통과의례였다.

그러나 물리 매체인 CD 드라이브 자체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게임 유통의 표준이 스팀이나 PS스토어 등 디지털 계정 귀속 시스템으로 재편되면서, 물리적인 코드는 ‘스팀 키’, ‘디지털 코드’, 혹은 ‘프로모션 코드’라는 세련된 명칭으로 갈아치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신 콘솔이나 디지털 다운로드 코드를 결제하거나 선물받으면서 “야, 시디키 번호 카톡으로 보내봐”라고 말하는 아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CD가 없는데 시디키라니!

지금은 스팀 키, 코드 등으로 부른다 (사진제작: gemini)
▲ 어르신, CD가 없는데 CD키라뇨! (사진제작: gemini)

TOP 1. 왕

대망의 1위는 올드 게이머의 DNA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마법의 문장, 바로 ‘왕'이다. 80~90년대 오락실과 패미컴, 슈퍼컴보이 시절, 스테이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존재는 무조건 ‘왕’이었고, 첫 스테이지는 '1판왕', 중간 스테이지는 '중간왕', 최종 스테이지의 지배자는 ‘끝판왕’으로 불렀다. 메탈슬러그든 보글보글이든 던전 앤 드래곤이든, 마지막 적을 무찌르고 스테이지를 완료하는 행위는 ‘보스 격파’가 아니라 언제나 ‘왕 깬다’ 혹은 ‘왕 잡는다’로 통용됐다.

2026년 현재, ‘왕’이라는 단어는 게임계에서 완벽하게 퇴출당했다. 이제는 ‘보스’, ‘보스몹’, ‘네임드’, 라는 전문적인 외래어들이 완벽하게 자리 잡았고, 게임 구조 역시 일자형 스테이지를 넘어 오픈월드와 복합 레이드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깬다’라는 동사 자체는 여전히 살아남았지만, 여기에 ‘왕’이 결합하는 순간 폭삭 늙어버린 냄새가 진동한다. 만약 와우 레이드 공대나 로스트아크 카멘 토벌 도중 "드디어 왕 깼다!”라고 외치는 파티원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경로우대석을 양보해 드리도록 하자.

왜요? 왕 깬 거 맞잖아? (사진제작: gemini)
▲ 왜요? 왕 깬 거 맞잖아? (사진제작: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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