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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3, 부두술사의 탄생 이야기 '의혹의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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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3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매주 공개되는 각 직업의 비하인드 스토리. 4월 25일, 4번째로 공개된 직업은 자기 희생과 예지력 갖춘 심령 전사, 부두술사입니다. 부두 마법으로 좀비와 해충들을 소환해 주변을 둘러싸고 자신을 보호하면서, 불타는 기름 찌꺼기와 매캐한 유독성 구름, 그리고 체력을 갉아먹는 저주가 담긴 병을 던져 적을 공격하는 부두술사의 탄생 스토리를 살펴 보시죠.

 

형상 없는 땅의 화신

어둡고 먼 동쪽 대륙은 낯설고 공포스러운 수많은 신비와 이국적인 문화의 보금자리이다. 아라노크 사막을 지나 쌍둥이 바다를 건너, 토라자의 깊숙한 밀림 안에는 테간제의 광활한 영토가 있으며, 그곳에 움바루 부족이 살고 있다. 그들은 수 세기 동안 계속해서 유목민과도 같은 사냥 방식과 영적 사색을 유지하고, 야만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

움바루 부족 간의 전투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이며, 그들이 믿는 신앙에서 각 부족이 존경과 명예, 그리고 찬사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의례적인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이다. 전투에서 생포한 포로는 제물이 되어 마땅한 것으로 간주되며, 그 목숨은 형상이 없는 땅을 다스리는 강대한 움바루 신들에게 바쳐진다.

 테간제 부족들에게 음뷔루 에이쿠라로 알려진 형상이 없는 땅은 진실하면서도 신성한 현실이며, 가장 순수한 형태의 존재다. 움바루 부족들에게 인간으로 있는 시간은 단지 형상이 없는 땅의 흐릿한 그림자이며, 또한 더 높은 곳으로 승천하기 위한 시험장일 뿐이다. 또한 오직 부두술사만이 강력한 약초 사용법과 피의 의식, 그리고 무아지경으로 알려진 강한 집중력을 익혀 음뷔루 에이쿠라를 들여다볼 수 있다. 부두술사는 영적인 면과 군사적인 면 모두에서의 탁월한 감각 덕분에, 여러 부족 사이에서 독보적인 지위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부두술사가 되려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용맹함과 자기 희생, 지혜, 그리고 예지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예지력이 움바루 부족을 멀리 떨어진 신 트리스트럼에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그들은 무아지경 능력을 사용해 성역과 형상이 없는 땅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징후와 전조를 밝혀냈다. 가장 대담한 부두술사만이 서쪽으로 향하는 머나먼 지평선을 건널 것이며,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나머지 부족민들에게 그 답을 갖고 돌아갈 것이다.

 

부두술사 이야기 `의혹의 방랑자` - 맷 번즈

전쟁은 해 뜰 녘에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베누와 일곱 돌 혈족의 부두술사 열 명은 표범처럼 잽싸게 테간제의 심장부로 접근했다. 전통 가면에 달린 뼈와 쇠장식이 가볍게 흔들리는 소리만으로 이들의 존재가 확인될 뿐이었다. 흰색, 노란색, 붉은색 줄무늬와 밝은 보카이 깃털로 장식한 몸은 주위 밀림의 선명한 색과 섞였다.

곧이어 선녹빛 가지가 점점 빽빽하게 우거지면서 덤불 위로 그늘이 계속 이어졌다. 베누는 어떤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어떤 인간 사냥감도 놓치지 않으려고.

이가니 바웨, 영혼의 수확이 시작됐다.

첫 번째로 치르는 의식 전쟁인 까닭에,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생각으로 베누의 가슴은 두방망이질했다. 베누나 그 혈족원과 마찬가지로, 자기 부족의 대사제에게 부름을 받은 다섯 언덕과 구름 계곡 부족 출신의 경쟁자 부두술사들도 멀지 않은 들판 어딘가에서 사냥에 나서 있을 터였다.

일곱 달 혈족의 전쟁 무리는 다섯 언덕 지역의 경계 안에서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적이 있는지 살피려 부두술사 둘이 앞쪽 나무를 헤쳐봤다.

 “다가올 전투를 생각하니 떨리니?” 베누의 형인 운가테가 곁에서 슬그머니 속삭여 물었다. 운가테가 쓴 무시무시한 가면 윗부분에는 보라색 깃털로 둘러싸인 상아뿔 하나가 뻗어 나와 있었다.

“아니” 베누가 답했다.

“손 이리 내놔 봐.”

베누는 손을 내놓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했다. 손이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기뻤다.

“다가올 전투가 `두렵니?`” 운가테가 목소리를 낮추며 가까이 다가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잖아. 그게 이 그림자 세상의 법칙인걸. 내 손이 떨리지 않는 까닭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이야. 사실을 외면하고 숨어 버리면, 감정에 휘둘리거든.” 젊은 부두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운가테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베누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베누는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겁이 나지는 않았지만 걱정은 되었다. 훈련을 받는 수년 동안 오늘만을 기다려왔다. 이가니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 큰 명예는 없었다. 혈족 사람들과 그들이 믿어온 신앙이 수 세대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고대 의식이었다. 해 질 녘 즈음, 사냥이 끝나갈 때 베누는 승리감에 싸인 채 집으로 돌아가든가 상대 부족 손에 죽고 말 터였다.

어느 쪽이든 그 나름대로 명예롭기는 했다. 제물을 노획했다면 혈족원으로부터 찬양과 존경을 얻고, 상대 부족에 잡힌다면 혼령이 이 그림자 세상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음뷔루 에이쿠라, 형상이 없는 땅의 진정한 현실로 들어갈 테니 말이다.

움바루 유산을 수호하고 살아 있는 다리로서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잇는 역할이 부두술사인 그에게 지워진 운명이었다. 그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운명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터였다.

“삶은 희생이다.” 자부심으로 가슴을 펴며 베누는 고개를 들었다.

운가테가 옛 움바루 격언을 마저 이었다. “희생이 삶이다.”

정찰병 하나가 주변 밀림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나오며 자신이 본 내용을 수신호로 전달했다. 다섯 언덕 부족 부두술사. 혼자.

전사들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촘촘한 반원 진형으로 덤불을 뚫고 나아갔다. 안개 언덕으로 알려진 곳으로 나아가자 나무가 드문드문해졌다. 머지않아 낮게 깔린 구름에 가려진 남자를 발견했다. 자신 만큼이나 흉터가 많고 풍파에 낡은 가면을 쓴, 나이 든 부두술사였다.

운가테는 무릎을 꿇고 허리띠에서 팔뚝 길이만큼 침 발사구를 꺼내어 가면 구멍에 끼웠다. 우아파 두꺼비 독을 바른 침이 휙 날아갔다. 적은 자신이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등에 침을 맞았다. 마비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나이 든 부두술사는 바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독 효과는 그게 다였다. 다치게 해서 잡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가니의 이 단계에서 상대를 죽이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기시하는 사항이었다.

수적으로도 상대가 안 되고 패배가 확실했기에, 적 부두술사는 관습대로 항복했다.

“일곱 돌 부족...”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들 우리 땅 깊숙이까지 왔군.”

“값진 제물을 찾고자 왔습니다.” 운가테가 대답했다. “당신은 위대한 주왓자가 아니십니까?”

“그렇다네.” 노인은 목례를 했다.

경험이 더 많은 혈족원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며 베누는 멀리서 그 대화를 바라보았다. 전투 규칙을 잘 익혀왔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니 완성된 느낌, 그러니까 그간 배우고 옳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완결되는 느낌이 차올랐다.

“저보다 위대한 전사시잖습니까.” 운가테는 앞으로 나서며 주왓자를 포옹했다. “여기서 우리는 적이지만, 음뷔루 에이쿠라에서는 영원한 형제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을 만날 기회를 고대합니다.”

독 효과가 사그라진 주왓자는 자기 힘으로 일어섰다. 베누는 주왓자가 가까이 다가올 때 고개를 까딱하며 존경심을 표시했다. 부럽기 짝이 없었다. 오늘 밤 대사제가 주왓자의 고통을 끝낼 테니 말이다. 이 노인의 피와 장기는 나중에 형상이 없는 땅의 혼령들에게 바쳐져 나중에 그리로 갈 사람들의 세계를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도 강하게 할 것이다. 튼튼한 작물, 계절의 변화, 움바루 부족의 생존이 바로그의 희생에 달렸다. 베누의 눈에는 주왓자가 영웅처럼 보였다.

전쟁 무리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왓자는 테 웍 누차, 마지막 행진을 지켜보았다.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에 겸허히 순응하며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그를 풀어줘라!” 베누와 그 혈족원들이 밀림의 끝에 도달했을 때 목소리가 안개를 헤치고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주왓자를 포함하여, 혼란스러워진 무리 전체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분을 두고 갈 길을 가라. 그분의 삶을 끝낼 이유가 없다. 아직 가르침이 많이 남았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에서 부두술사 하나가 나타났다. 다른 이가니 참가자들처럼 물감, 깃털, 가면으로 장식한 모습이었다. 몸을 감싼 표시로 보아 베누는 그자가 다섯 언덕 사람임을 파악했다.

“법도에 따라 나는 저자들의 것일세” 주왓자가 말했다. 이 상황이 전혀 놀랍지 않은 목소리였다. “저들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동할 뿐이야.”

“혼령들은 스승님의 목숨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섯 언덕 부족 부두술사가 대답했다.

운가테는 상대에게 의식용 단검을 겨눴다. “테 웍 누차를 방해하다니 옳지 않다.”

“대사제가 그렇게 말했을 테지. 이 전쟁을 명령한 건 그들이다. 혼령들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의 삶을 그렇게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희생... 이런 이가니는 필요 없다. 그저 공포와 통제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베누의 혈족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씩씩거렸다. 분개심마저 일어났다. 이가니의 성스러운 법도를 부정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남자는 정신이 돌아버린 게 분명했다.

“꺼져라!” 운가테가 소리를 내질렀다.

젊은 다섯 언덕 부족 부두술사는 그 말을 무시하고 손바닥을 보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희 모두를 살려 주겠다. 마을로 돌아가라. 대사제들에게 형상이 없는 땅에서 진짜로 무엇을 봤는지, 혼령들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물어봐라. 난 우리 스승님을 살리고 싶을 뿐이다.”

분노를 억누르며 베누는 단검을 뽑아 그 이단자에게 달려들었다. 적은 재빠르게 손을 내밀어 손바닥에서 푸르스름한 녹색 기운 한 줄기를 터뜨려냈다. 혼령 화살이 조심스럽게 발사되었다. 어깨에 살짝 맞았는데도 베누가 땅에 나가떨어져 순간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강력했다.

“스승님을 풀어드려라. 원하는 건 그게 전부다!”

운가테와 동료는 다같이 앞으로 돌진했다. 유감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눈빛으로, 다섯 언덕 부족의 침입자는 손을 아래로 그으며 이가니에서 금지된 치명적 주문을 외쳤다. 일곱 돌 전사들은 휘청이다 목을 움켜잡으며 무릎을 꿇었고, 입에서는 투명한 보라색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불과 몇 초 만에 베누의 혈족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땅에 누웠다.

“너는 젊구나.” 이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믿음이 네게는 더 쉽게 오리라.”

단검이 떨어진 곳에 베누의 손이 닿았으나, 상대 부두술사가 옆으로 차 버렸다. 아득히 멀리, 안갯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의심할 여지 없는 전투의 함성과 구호였다.

“우리 혈족...” 적 부두술사가 말했다. “그들에게 발각되면 네가 희생물이 된다.”

“자랑스러운 죽음이다!” 베누가 소리쳤다. 참혹한 대학살에, 혈족의 불명예스러운 죽음 앞에 눈물이 차올랐다. “너야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다. 넌 삶을 아직 모른다. 그 축복을 보지 못한다. `너는 눈이 멀었다.`”

마지막 말이 베누의 귓가에 울렸다. 주문이었다.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마구 버둥거려졌다.

“넌 대사제의 명령에만 집착하는구나. `두려움에 복종한다.`”

또 다른 저주가 베누를 휘감았다. 가장 깊숙이 있던 공포가 영혼에서 솟아 오르자 베누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휘말렸다. 앞을 못 보는 상태였지만, 몸이 움직이는 것은 느껴졌다. 밀림을 헤치고 달려나가면서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는 어느 정도 알았다. 그러는 내내 이누의 첫 이가니를 더럽힌 그 이단자의 음성이 바로 옆에 있는 환영처럼 들려왔다.

"가라. 집으로 달려가라.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라.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라. 진실을 찾아라."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구와테카가 명령했다. 일곱 돌 부족의 가장 연로한 대사제가 베누를 옆에서 지켜봤다. 석 자 길이의 깃털 달린 머리 장식이 주름진 눈썹 위로 솟아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물감으로 칠하고서 곧 도착할 의식의 희생물을 맞을 준비가 된 상태였다.

“베누, 혼령들은 자네가 명예롭게 행동했음을 안다네. 자네 잘못이 아닐세.” 다른 대사제가 말했다. 일곱 돌 부족의 가장 연로한 지도자 다섯 명 전부가 오두막 안에 모였다. 베누는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이들을 찾아 자신이 목격한 끔찍한 사건을 소상히 말했다.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분이 가시지 않았다.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느꼈고 그 이단자를 막으려고 온 힘을 다했음을 혼령들이 정말 이해하는지 궁금했다.

“가세.” 구와테카가 오두막의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을 한 가운데에서 모닥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부두술사들은 불길의 끝을 따라 넘늘거리며, 계속 들려오는 북소리와 군중 속 주민 하나가 읊조리는 영창에 맞춰 발을 구르고 있었다. 오늘 밤의 제물이 담길 피투성이 빈 단지를 준비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기저기 흩어진 오두막 사이로 횃불이 커다란 반딧불처럼 너울거렸다.

베누는 돌아온 부두술사와 그렇지 못한 부두술사를 가려냈다. 불운했던 그의 전쟁 무리에 더해 부족 전사 열 명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과 마찬가지로, 다섯 언덕과 구름 계곡의 마을에서 의식용 기름이 발라진 채로 음뷔루 에이쿠라로 가는 여정을 준비하는 그들을 상상해보았다.

의식 참가자가 첫 번째 포로를 모닥불로 데려올 때, 마을 전체가 존경과 찬양의 노래를 시작했다. 제물을 향해 다가가는 대사제 구와테카의 손에는 장식이 달린 쇠 단검이 들려 있었다.

“네게 축하를 보내노라!” 대사제가 소리쳤다. “너를, 모든 움바루가 하나되는 더 큰 부족에 바치노라. 우리는 앞으로 네 희생을 기념하며 노래하리라. 그 위대한 희생을 위해.”

“네가 형상이 없는 땅으로 오면, 내가 마중나가겠다.” 제물이 담담히 말했다.

구와테카의 팔이 옆으로 내려치며 능숙한 솜씨로 부두술사의 목을 그었다. 제물은 소리지르거나 고통으로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제물답게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저 너머 세계에서 그를 기다리는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이 세상의 고통쯤이야 무엇이 대수겠는가?

대사제가 머리를 하늘로 향한 채 팔을 뻗고 몸을 격렬하게 떨었다. 이윽고 엄청난 하늘빛 오라가 대사제 주위에서 일어나며 깃털을 비췄다.

베누는 유령 경지에 들어서는 장로를 지켜보았다. 일부 움바루인이 음뷔루 에이쿠라를 볼 수 있는 마음의 상태였다. 젊은 부두술사는 의식을 잘 알았다. 같은 부름을 받은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도 형상이 없는 땅에 매인 채로 태어났다. 다른 이들보다 그 연결이 강력했지만 대사제에 비하면 미약했다. 다른 세상에서, 베누는 그저 흔적만을 보았다. 부족의 지도자들은 혼령들과 직접 소통하며 깨달음과 지시를 받는다고 했다.

의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토기 안에 담긴 제물의 피를 모으려 달려나갔다. 장기는 조심스럽게, 어떻게 보면 사랑스럽게 꺼내어진 다음 단지에 담겼다.

 구와테카는 그 후 바로 경지에서 깨어났다. 자신을 물질 세계에 다시 적응시키기라도 하는 양 초점 없는 눈으로 숨죽인 주민을 바라보았다. 형상이 없는 땅에서 있던 시간은 이 세상과 다르다고 베누는 배웠다. 경지에 들어 저 너머 세계에서 몇 분씩 머물렀어도 이 세상에서는 몇 초만이 지나갔을 뿐이라고 했다.

“이 제물은 이제 음뷔루 에이쿠라에 들었네, 그리고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네!” 구와테카가 알렸다.

주민들은 환희에 가득 차서 박수를 쳤다.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제물이 해방을 얻은 시간은 자정이 되어서였다. 사람들은 긴 나무 오두막으로 흩어져 목숨을 바친 부두술사들 얘기와 잔치를 즐겼다. 축하행사는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베누는 혈족들이 사라진 뒤에도 불가에 남아 있었다.

막연한 불편함이랄까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주왓자의 제자와 만난 지 몇 시간이 흘렀건만, 원하지 않아도 그 어리석은 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댔다.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라.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라."

베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에 걸린 것은 상대 부두술사의 말이 아니었다. 대사제가 확인해 주었지만, 그 이단자의 저주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부두술사는 오고 가는 말과 연회 오두막에서 울려 나오는 노랫소리에서 벗어나 계곡 끝까지 나아갔다. 베누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이가니에 이어 유령 경지에 들어가는 일은 금지된 사항이었다. 대사제는 그런 행위로 인해 최근 희생된 제물의 영혼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베누는 혼령과의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가 어떤지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 했다.

자신의 혼령을 육체에서 떼어내려고 애를 썼다. 따뜻하고 뿌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방울 한 방울마다, 주변의 세상이 희미해지며 음뷔루 에이쿠라의 형상 없는 지형이 드러났다. 기운이 하늘을 가로질러가며 타올랐지만 그 아래 요동하는 땅은 비추지 않았다.

“저는 아직 그대들의 은총을 받는 겁니까?” 베누가 외쳤다.

그 답으로, 희뿌연 눈과 순수한 어둠의 육체를 지닌 십여 명의 모습이 그 앞에 나타났다.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형상이 없는 땅과 베누의 유대가 특별한 까닭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희생된 제물의 혼령들이었다. 구와테카에 따르면 음뷔루 에이쿠라에 평화롭게 들어간 자들이었다.

그러나 전혀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영들은 베누를 향해 실체 없는 팔을 뻗었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들이 느끼는 혼란함이 베누의 영혼을 꿰뚫고 지나갔다. 형상이 없는 땅은 유령들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불확실함으로 몸부림쳤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 통째로 조각난 듯한 모습이었다.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만 같았다.

“삶은 희생이다. 희생은 삶이다.” 베누는 칠한 몸뚱이가 주위를 오가는 사이 축축한 공기 사이로 이 말을 속삭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일찍 이가니 바웨가 시작됐고, 일곱 돌 부족 주민은 해 뜰 녘에 시작될 전쟁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전투는 보통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따라 치러지기 마련인데, 이번은 지난 이가니를 치르고 난지 불과 일주일 만이었다.

베누는 마을 가운데에 있는 모닥불을 등지고 앉아 연약한 자신의 그림자가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불길을 따라 요동치는 것을 보며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구와테카와 다른 대사제는 혼령들이 다섯 언덕 부족의 이단자 부두술사의 행동에 응하는 전쟁을 원한다고 주장했다. 베누는 그 일에 대해 침묵했지만, 주왓자와 그 막무가내인 제자 이야기는 다섯 언덕 부족에서부터 평상시 움바루 부족 사이에 존재하던 교역 경로를 따라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밀림에서 발견됐을 때 그 이단자가 자기 혈족을 도륙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그 이단자와 스승은 숲 속으로 사라지고 그 이후로 아무 소식도 없었다고 한다.

소문은 이야기를 따라 퍼졌다. 누군가가 그 그릇된 부두술사를 묘사하기를, 피에 대해 순전한 욕망이 넘쳐 일곱 돌 부족 전사를 학살한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이 처치한 부두술사의 살을 먹은 이단자가 카리브, 즉 식인종이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는 음뷔루 에이쿠라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베누는 이런 이야기를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는 소문이라며 머리에서 떨쳐버렸다.

“이번 이가니에서, 더럽혀진 것을 깨끗이 하리라!” 구와테카가 모닥불 근처의 자기 자리에서 소리쳤고 부족의 다른 대사제들이 이어서 외쳤다. “혼령들께 우리의 신실함을 알리리라!”

주위 주민은 함성을 내지르며 동의했지만, 베누는 잠자코 있었다. 이가니에서 느끼던 베누의 자존심은 사라졌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한때 의식으로 얻던 목적의식도 사라졌다. 이제는 의심만이 남았다. 가슴속 깊이 도사린 채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히는, 묵직한 불편함뿐이었다. 심지어 자기 혈족에 싸인 채 동족의 노래로 영예로운 이 자리에서조차, 유령 경지의 혼란스러운 혼령들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깊은 곳에서 울려나온 경고가 자나 깨나 베누를 따라다녔다.

그 모든 일이 상상에서 나온 허구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대사제가 하는 말에 대한 믿음과 점점 커지는 의문 사이에서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베누는 눈을 감고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내 속에 느껴지는 이 혐오감은 무엇일까? 음뷔루 에이쿠라의 혼령들은 심란해하지 않는다. 평생 명확하게 받아 들였다가, 왜 나는 이제서야 부족의 방식에 의문을 품을까?

젊은 부두술사는 곧 모닥불로 몸을 돌리고 유령 경지로 들어가는 구와테카의 몸을 하늘색 빛이 가로지르며 반짝이는 광경을 지켜봤다. 베누는 자신이 본 것은 단순히 저주의 잔재라고 혼자 되뇌이며 일어나 불가에서 춤추는 무리와 합류했다. 대사제들이 틀릴 리 없었다. 음뷔루 에이쿠라와 대사제의 연결은 베누가 이해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선 것이니까.

땀으로 번들거린 채 베누는 노래와 춤을 즐겼다. 근심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으로 자존심이 되살아난 베누는 내일 치러질 명예로운 전투를 고대했다.

모닥불 가에서 어른거리던 움직임이 시야 한쪽에 번뜩 지나갔다. 거무스름한 유령 손 모양이 수십 개쯤 무언가 잡으려는 듯 사방을 휘저으면서 다가왔다.

`혼령들이... 그간의 거짓말에 대해 복수하러 왔어.` 베누는 뒤로 비틀거리면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생각했지만, 불을 다시 쳐다봤을 때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야.` 베누는 자신을 달래려 애써봤지만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세상이 압박해왔다. 몸, 색칠, 깃털이 한데 어우러져 색과 소리의 숨 막히는 바다로 섞여 들었다.

베누는 비틀거리며 모닥불 가에서 나온 뒤 빈 오두막 사이로 걸어가며 심호흡을 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손이 불쑥 나와 어깨를 잡았다.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시체 거미가 공격하듯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늘에 가려져 얼굴이 안 보이는 여인 하나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베누.” 여인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밤에 의식을 피하다니 이상하군요.”

“누구십니까?” 놀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베누가 물었다.

“난 아디야예요. 구와테카의 부인이죠.”

베누는 존경의 뜻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대사제의 부인을 쳐다볼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존경받는 신분의 사람은 의식이 있더라도 자기 오두막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는 법이었다.

아디야는 손으로 베누의 얼굴을 감싸고 천천히 들어 눈을 마주쳤다. “허락할 테니 날 봐도 좋아요. 혼령들이 그대에 대해 말하는 게 사실인지 확인하러 왔어요...”

“무슨-“ 베누가 입을 열었지만, 아디야는 베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누르며 말을 막았다.

“혼령들 말로는 무언가 그대를 괴롭힌다더군요. 불쾌한 질병이랄까. 내 눈에도 보이는군요.”

마음속 혼란을 혈족이 알아차렸다는 사실이 괴로워 베누는 눈길을 돌렸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여기에선 걱정할 필요 없어요. 대사제들은 내가 치유할 수 있다고 믿더군요. 그대 마음속에 남은 독은 씻어낼 수 있어요.”

“그럼 를 치유해주실 겁니까?”

“그러지요.” 설명할 수 없지만 자애로운 기운을 담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디야는 베누의 팔을 손으로 어루만지더니 그의 젖은 손을 잡았다.

"오세요."

베누는 그 확신에 이끌리어 순종했다. 불길에 비치는 마을이 멀리 떨어진 별빛처럼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야 아디야는 멈춘 다음 젊은 부두술사를 손짓하여 직물 깔개 위에 무릎 꿇렸다. 베누가 쓰던 도구가 앞에 놓였다. 몸에 칠하는 물감, 보석이 달린 단검, 깃털로 장식하고 험악한 인상으로 만들어진 뿔 가면, 물약과 부적 한 무더기였다.

아디야는 베누보다 나이가 아주 약간 많아 보였다. 또렷한 엉덩이를 따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함이 매혹적으로 흘렀다. 햇살에 그을린 얼굴은 생생한 바리 나무껍질처럼 다채로웠다. 손목과 발목의 금속 장신구에 달린 야생 깃털 위로 바람이 살랑거렸다.

“물감.” 입자가 거친 반죽을 한 움큼 떠내며 말했다. “밀림에서 가장 무서운 야수의 골수로 만든 것. 적과 마주할 때 그대 안에 용기를 불어넣기를.” 아디야는 차가운 혼합물을 베누의 얼굴에 문질렀다.

“발톱 단검, 달려있던 거수만큼 죽음을 부르는 것.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그 굶주린 칼날을 인도하기를.” 여인은 무기를 베누의 옆으로 던졌다.

아디야가 갑자기 앞으로 몸을 숙여오자 베누는 얼어붙었다. 미처 거부할 틈도 없이 아디야의 입술이 베누를 덮쳐왔다. “입맞춤. 이 안에서 우리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것.” 입맞춤 후에 말이 이어졌다.

“가면, 우리 선조들의 악몽에서 꺼내온 것.” 아디야는 나무 얼굴을 들어올려 베누에게 씌웠다. “우리의 선한 사냥에 반하는 혼령들을 막아주는 것.”

아디야는 의식적으로 베누를 응시했다. “전투에서의 헛된 죽음보다 명예가 더 중요해요.”

그 말뜻을 깨닫고 베누의 눈이 씰룩거렸다. “이가니에서 헛된 죽음이란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건가요? 아니면 그렇게 가르침을 받은 건가요?” 아디야의 질문이 이어졌다. “혼령들이 말하기를 그대는 두 길을 걸으며 운명 사이에서 망설인다고 해요. 한쪽에서는 영원히 일곱 돌 부족의 아이로서, 대사제가 결코 줄 수 없는 은총을 찾아 헤매지요. 다른 한 쪽에서는 앙심을 품고 지혜를 얻어 이 정체된 밀림에 새로움과 생명을 가져다 주는 들불이지요. 내일이 오면, 선택해야 해요.”

아디야의 말은 이단의 논리에 가까웠지만, 어떤 점에서 그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말에는 최근 베누가 겪은 내면의 갈등이 담겨 있었다. “무엇이 옳습니까?” 베누는 질문을 던졌다. “한쪽을 선택하면 어떤 결과가 생깁니까?”

“그러한 질문에 답하는 건 내 일이 아니에요. 난 조언만을 하지요. 그러나 이건 알아두세요. 혼령들은 불안해요. 그들 말로는 우리 움바루가 더는 유일하지도 않고 축하할 가치도 없다고 해요. 백성 전체를 위해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스스로 하는 거짓말이라고 해요. 그들 말로는 ?“ 아디야는 머뭇거렸다. “아니에요.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에요. 난 대사제가 아니니까요.”

“말씀해 주십시오. 전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베누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발끝으로 서성거렸다.

아디야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속삭였다. “저들은 우리 눈이 멀었다고 해요.”

이단 부두술사가 생각이 번뜩 떠오르면서 베누의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대사제들은 혼령들과 날마다 대화하는 것처럼 굴지만, 그렇지 않아요.” 아디야는 말을 이어갔다. “구와테카와 같은 신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상이 없는 땅을 슬쩍 엿봤을 뿐이에요.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는 법도나 이가니나 대사제가 우리를 통제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방법일 뿐이죠.”

“전 우리 방식을 받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답하는 베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대도 지도자들 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를 음뷔루 에이쿠라에서 봤지요?”

자신이 목격한 것을 털어놓아도 안전할지 확신하지 못한 베누가 우물거렸다. “저는 형상이 없는 땅에서 여러 가지를 봤습니다. 어떤 건 사실이었고, 어떤 건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땅의 본질이죠.”

아디야는 눈살을 찌푸리며 베누의 눈을 보았다. 미소로 입가가 벌어지더니 손뼉을 쳤다. “그래요, 그래요. 무언가 봤군요. 혼령들이 진실을 말한 거네요.”

갑자기 오두막 벽을 울리는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두 사람이 마을 변두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디야가 낮게 몸을 웅크리자 베누도 그대로 따라 했다. 대사제의 부인과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지도자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잡힐 생각을 하니 공포로 온몸이 굳어졌다. 잠시 후, 말하던 사람들은 둘이 있는 곳을 지나쳐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요.” 아디야가 말을 꺼냈다. “부두술사로서 당신이 짊어진 부담도 알지요.” 분노로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건 암묵적 노예제도예요. 난 해방에 대한 희망을 품고 그대에게 왔어요. 그대가 우리 방식을 바꾸리라는 희망 말이에요.”

베누는 옆에 찬 단검과 자신 얼굴에 놓인 조각 가면을 생각했다. “이해가 안 갑니다. 고대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믿는다면 왜 제 이가니 준비를 도우셨습니까?”

“올바른 길을 보려면 먼저 잘못된 것을 보아야지요. 해 뜰 녘에는 가르침을 받은 대로 수확을 할 테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야 해요. 혼령들이 예언한 말이에요.”

아디야는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작품을 보았다. “내 앞에 있는 건 한 남자가 아니라 부두술사예요. 음뷔루 에이쿠라의 전사이지요. 용사이지 종이 아니에요.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세요.”

베누는 일어섰다. 엄청난 변화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곧 배울 것들을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최근에 느꼈던 것 중에서 가장 충실한 느낌이었다.

“즐겁게 사냥하기를.” 아디야가 덧붙였다.

몇 시간 후, 일곱 돌 부족의 전쟁 무리는 잡목림과 고향 밀림의 덩굴 사이로 흩어졌다. 베누는 혼자 있으면 생각이 정리되리라 기대하며 단독으로 가려 했다. 여위고 아무것도 씌우지 않은 사냥개 두 마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섬뜩한 생명체인 사냥개들은 썩은 시체에서 움바루 마법으로 태어난 존재로, 잔인하고 빈틈없었다.

철마다 이가니가 끝난 후 제물의 빈 껍질은 조심스럽게 개의 모양으로 꿰매어진 다음 약초 퇴비와 마른 잎으로 채워진다. 삶은 야수 해골을 깃털로 만든 갈기 위에 붙여 머리로 삼는다. 혼령들의 축복을 받아 이 좀비 생명체는 부두술사의 소환과 조종에 충실히 따르는 하수인이 된다.

대사제들은 베누가 첫 이가니를 떠나기 전에 두 가지를 선물로 주었지만, 쓸 일이 없었다. 자부심 덕에 베누는 자신의 현명함과 힘만 가지고 의식 전쟁에 참여했다. 이제는,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한다. 베누는 열기라는 뜻의 체나와 비행이라는 뜻의 오와제라는 이름을 자기 개에게 붙였다. 그놈들은 조그마한 틈도 보이지 않은 채 빽빽하게 마구잡이로 자라난 덤불을 헤치고 환영 심장의 고동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나란히 나아갔다.

귀신 들린 것 같은 높은 음의 웃음소리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뭇잎 사이로 터져 나왔다. 체나와 오와제는 걱정스럽게 사방을 살피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미끄러지듯 멈춰선 베누는 그 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러 주위를 둘러봤다. 허리띠에 매달린 단검을 삭 빼어 들고는 꼭 쥐었다.

낄낄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밀림의 그늘에서, 사물은 그림자에 감춰지는 법이었다. 갑자기, 어린아이의 손바닥만 한 주머니가 윗가지에서 떨어졌다. 그 안에 담겼을지도 모르는 수천 가지 저주가 얼마나 두려운지 알기에 본능적으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베누의 개들은 반대로 움직였다. 놈들이 신선한 뼈다귀인 양 그 물건에 덤벼들어 송곳니로 주머니를 찢어발기자 메스꺼운 녹색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사냥개들은 현기증 때문에 감각을 잃은 듯이 휘청거렸다. 개들이 감각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베누는 그저 바라보며 닥친 운명에 놀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빠르게 주문을 외쳤다. “고와자 펜! 보타!” 결이 고운 딸랑이가 내는 소리 때문에 그 외침이 더 두드러졌다.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그 주문과 주머니 둘 다 정신을 지배하려고 마구잡이로 시도한 것이었다. 베누나 다른 부두술사에게는 성공하지 못할 터였지만, 개는 의지가 약하고 단순한 생명체여서 먹혀 들었다.

“겁쟁이!” 베누가 밀림에 대고 소리쳤다.

체나와 오와제는 살이 없는 입으로 으르렁거렸다. 갑자기 달려들더니 이빨과 뒤틀린 발톱으로 베누의 의식 조끼 사이로 보이는 살을 스치고 지나갔다.

 개의 흉악한 공격을 피한 부두술사 베누는 허리띠에 달린 해골을 붙잡고 발화 기름과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부리던 개에게 던지자 닿는 순간 불길이 올랐다. 고통받는 사람 형상이 확 하고 일어나더니 목표를 삼켜버렸다. 굶주린 불꽃이 덮쳤지만, 시체로 만들어진 놈들의 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단념하지 않고 계속 덤벼들었다.

베누는 놈들이 더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음률이 있는 반격 저주를 외고 입에서 만들어진 푸른 기운의 티끌을 투명한 헝겊인 양 개들에게 던졌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시전한 주문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개는 피할지 몰라도, 적이 다른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게 뻔했다.

움바루 부족이 수천 년간 해온 대로, 항복하면 모든 상황이 바르게 될 터였다. 그러나 베누는 자진해서 항복하는 일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이 세계에서의 삶을 그렇게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희생... 이런 이가니는 필요 없다.” 그 이단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예전처럼 치욕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베누는 단검을 더 단단히 쥐고 필사적으로 틈을 엿봤다. 체나와 오와제가 한 발자국씩 내디디며 울부짖을 때, 상황 자체를 즐기며 웃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베누는 목이 바짝 탔다. 거칠게 호흡하느라 가슴이 들썩거렸다. 오와제가 뛰어들 때, 단검을 휘둘러 체나의 가죽을 갈랐다. 부두술사는 간신히 공격을 피하며 땅으로 몸을 날렸다. 개들이 주위를 빙빙 돌며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아무런 예고 없이, 오와제 뒤의 선녹빛 덤불을 헤치며 일곱 돌 부족의 딸이 나타났다. 깃털로 감싸인 옷을 입은 모습이 무시무시했다. 뒤틀린 뿔 네 개가 선홍빛 깃털로 장식된 가면 위로 뻗어 있었다. 여인은 나무 가면 아래쪽에 난 쐐기 모양 구멍 사이로 보이는 입술 앞으로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그다음, 길고 목에서 올라오는 기침과 함께 토해낸 메뚜기 떼가 위쪽 나무를 휘저었다.

숨어 있던 부두술사가 비명을 질렀고 주술에 걸린 개들은 땅에 쓰러졌는데, 그 몸뚱이에서는 불길이 계속 타올랐다.

몇 초 후 메뚜기 떼는 목표물을 찾아내어 위장을 해제하고 균형을 무너뜨렸다. 추락. 고통스러운 울부짖음. 덩굴로 뒤덮인 땅 위에 생명이 끊긴 사람의 몸뚱이. 이빨이 가득 달린 메뚜기 떼는 승리를 확인하며 사방팔방으로 연기처럼 흩어졌다.

목숨을 구한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시체를 보자 죄책감이 엄습했다. 적의 피부는 굶주린 곤충 떼에 물린 자국으로 여기저기 쓸리고 빨갛게 부어 있었다.

“봐요. 움바루인 또 한 명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었어요.” 가면을 쓴 여인이 말했다. “이 그림자 세상을 위해 태어나진 않았어도 살아남으려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해요.”

베누는 그 목소리를 단박에 알아봤다. “아디야 님?” 소스라치게 놀라 충격을 받은 채로 대답했다. “당신은 부두술사가 아니잖습니까! 왜 여기에 오셨습니까?”

“혼령들이 그대를 따라가라고 강력히 주장했어요. 그 말에 따라서 다행이군요.” 아디야는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이가니 법칙으로는 부두술사를 죽이는 건 금지되-“

“법칙이요?” 아디야가 성을 냈다. “그 모든 것을 보고도 법칙 얘기를 하나요? 음뷔루 에이쿠라는 얻은 것이 아니에요. 모든 움바루인을 기다리는 곳이죠. 그대도 알잖아요. 대사제들이 이런 승부를 만들어 냈어요. 다섯 언덕 부족의 이단자, 그는 진실을 봤죠. 왜 그대는 부정하지요?”

“저는...” 입을 뗐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진짜로 믿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랬다. 아디야가 옳았다. 그 이단자가 옳았다.

넘실거리는 감정의 파도에 휩싸인 채, 베누는 아디야와 그 말 둘 다를 받아들였다. 단순한 욕망, 그 이상의 느낌이었다. 대사제의 가장 엄격한 법칙을 거역하는 데서 오는 짜릿함이었다. 체나와 오와제가 아직 한구석에서 불타고 있을 때, 베누는 아디야의 가면을 벗기고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입술을 더듬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이 안에서 우리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것.”

아디야가 알겠다는 뜻으로 미소를 짓던 순간 갑자기 형상이 없는 땅으로부터 고통스러운 호소가 전해졌다. 아디야는 눈을 감고 앞으로 닥칠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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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비디오
장르
액션 RPG
제작사
블리자드
게임소개
'디아블로 3'는 전작 '디아블로'와 '디아블로 2'의 스토리라인을 계승한 작품이다. 야만용사, 부두술사, 마법사, 수도사, 악마사냥꾼 등 5가지 직업을 지원한다. 무시무시한 악마 및 강력한 보스들과의 전투와 캐...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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