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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충우돌 린족 꼬맹이, 크앙과 함께 '블소' 세계로 떠나 봅시다
‘블레이드앤소울’ 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을 넘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만렙 캐릭터들이 판을 치고 돌아다니고, 포화란을 잡는다 어쩐다 하며 각자의 모험을 즐기고 있더군요. 그런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블소’ 의 메인 스트림을 잊어버린 채 단순 노가다에 심취해있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의 한 친구에게 ‘블소’ 의 스토리를 묻자 ‘주인공이 홍문파에서 나와서 모험을 하는데 진서연이 나쁘다’ 라는 두루뭉실한 내용만을 이해하고 있더군요.
사실 ‘블소’ 는 온라인게임 중에서도 스토리텔링이 상당히 잘 구현된 게임입니다. 굳이 홈페이지에서 배경 스토리를 읽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홍문파의 복수’ 라는 사명을 깨닫게 되며, 몇몇 영상들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의 스토리 이해가 가능하죠. 그러나, 주인공을 향해 퍼부어지는 수많은 퀘스트들을 일일히 읽어가며 진행하면 메인 스토리를 놓치기 쉽고, 그렇다고 모든 걸 안 읽다 보면 그게 습관이 되어립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타파하고자, 게임메카에서는 ‘블소’ 의 메인 스토리를 총정리 해 보는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유저 모두의 분신을 아우르는 오리지널 ‘블소’ 의 주인공이 아니라, 때로는 경박하고 유치한 상꼬맹이 ‘크앙’ 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원활한 스토리 진행을 위해 대부분의 서브 스토리를 포함한 일부 씬은 과감히 삭제/변형했으며, 새롭게 재해석한 장면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블소’ 의 중심축이 되는 스토리는 모두 담고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출발해 볼까요?
[크앙의 블소스토리] 다른 편 보러가기 | |

자경단의 일을 도우며 대나무 마을과 그 근처를 돌아다닌 지 어느새 2주 째. 대나무 마을 자경단을 도와 각종 임무를 수행했지만, 정작 진서연 일당에 대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많은 전투 경험을 겪으며 조금이나마 강해진 것 같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점은, 자경단원 중 충각단과 내통하는 첩자가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자경단에서 운반하던 유황을 도둑맞은 데 이어 내부 정보가 충각단과 흑룡채 등에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이 수 차례에 걸쳐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뛰어난 머리를 살려 자경단 내부의 첩자를 찾아내기 위해 추리를 시작했다. 이래뵈도 소년탐정 크앙, 명탐정 크앙 등의 소리를 많이 들었으니까.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는다나?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추리해낸 수상한 사람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명탐정 코... 아니 크앙 나가신다
기호 1번. 대나무 마을 촌장. 아주 나쁜 할아범! 날 대하는 태도도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얼마 전 동굴에서 범박이라는 자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뭔가 느낌이 뿅! 하고 왔다. 눈치가 빠른 건지 내가 다가가자 황급히 얘기를 끝냈지만, 아무래도 중대한 일을 꾸미고 있는 느낌? 의심 별점 다섯개!
기호 2번. 범박. 정말이지 내가 열심히 잡아온 충각단 남해지부장 은광일의 동생 은광삼을 어이없게 놓쳐 버린 것도 그렇고, 항상 뭔가를 얼버무리는 것이 수상쩍다. 이름도 범박이 뭐야 범박이. 짜장범박? 우히히
기호 3번. 도단하. 도천풍 단장의 외동아들인 도단하는 자신의 수하 고붕과 함께 항상 뭔가를 꾸미고 있다. 아버지의 기세를 뒤에 업고 거들먹거리는 태도에서부터 남소유를 대하는 태도 등 수상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나한테도 가끔 싸가지 없게 구는데, 확 불질러 버릴까?
기호 4번. 추화연. 단순한 공주병 환자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하는 행동이 비정상이다. 초정원이라는 예쁜 누나를 모함하기까지 하는 나쁜 사람. 그러나 적들에게도 괴물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니 첩자일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 그냥 나쁜 사람 정도?
기호 5번. 남소유. 설마 예쁜 소유 누나가 첩자 행동을 할 리는 없겠지만, 아무도 몰래 전서구를 날린다는 등의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다. 그래도 도천풍 단장의 말을 들어 보면 근본은 착한 누나인 듯? 나쁜 건 소유 누나가 아니라 세상일지도 몰라.

▲ 설마 소유 누나가... 그럴리 없지
(숨겨진 기호 6번. 도천풍. 솔직히 믿을만한 얘기는 아닌데, 가끔 옆 마을인 녹명촌에 나타나서 충각단원복을 입은 이들에게 두드려 맞고 사망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10분마다 째깍째깍 부활한다나 뭐라나? 나 참 어이없어서. 무슨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그리고 원래 제일 착해 보이는 사람이 반전으로 나쁘게 되는 일이 많으므로 살짝 넣어 보자)
대략 이 정도의 인물이 내 용의선상에 올라 있다. 물론 대나무 마을에서 만난 사람 모두가 제각기 의견이 달라 확실한 심증은 없다. 그러나 첩자는 분명 존재하며, 그로 인해 머지않아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 객잔의 내 방으로 돌아왔다. 침상 위에는 어제 밤까지 고민하며 작성한 <대나무 마을 첩자 추리도>가 펼쳐져 있었다. 이제 오늘 수집한 정보를 업데이트 해야지~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우리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잡아주겠… 응?”
침상으로 다가가니 수없이 글자를 끄적이고 가끔은 낙서까지 하느라 지저분하디 그지 없는 <대나무 마을 첩차 추리도> 옆에 뭔가 새하얀 봉투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이건? 어제 밤에 덥다고 방바닥에 빙백신장 깔아 놨는데… 설마 장판이 상했나? 그렇다면 이건 설마 수리 청구서? 나 얼마전에 금인형 옷 사느라고 돈 없단 말야… 민사 소송 들어가면 100% 지게 되어 있는데… 어떡하지?

▲ 이런 봉투라면 좋았으련만...
(이미지 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게시판)
부들부들 떨며 봉투를 개봉했다. 제발! 제발!!! 다행…히도 수리청구서가 아닌 기나긴 장문의 편지가 나왔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니 꼭 내가 쓴 것 같은 느낌이다. 청구 금액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절로 안심이 된다. 그리고, 첫 줄을 읽는 순간. 순간적으로 손이 굳었다.
‘네가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라고 하는 놈이냐? 자신이 있다면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하하핫! (추신: 내가 있는 곳은 저기 산 넘고 물 건너 전진기지를 지나면 메마른 우물이 있는데,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쭉 오면…… 올 때 그 뭐시냐 산적이나 발발이 애들 많으니까 조심해서 오고, 배고프니까 만두 같은거 몇 개만 사 와. 그럼 빠이빠이~)’
우째 열심히 무게감을 잡는 듯 한데, 쓸데없이 친절한 추신 탓에 뭔가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편지에는 분명 ‘홍문파’ 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거기에 그냥 홍문파도 아니고 마지막 제자라니. 내가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와 도천풍 단장, 그리고 그 날 무일봉에 있었던 인물들밖에 없다. 그 중 사부와 사형 사제들은 전멸했으니, 아마도 이 편지의 주인공은!!
드디어 잡았다! 무일봉의 비극 이후 처음으로 잡은 꼬리다. 물론 함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다. 나는 왠지 계단으로 내려가기에도 시간이 아까워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물론 무릎에 전해지는 충격에 잠시 후회했지만, 이내 전속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물론 12초가 지나자 지쳐서 그냥 뛰었다. 이놈의 빌어먹을 체력. 헉헉헉.

▲ 12초 동안 난 그 누구보다 빨랐다
(이미지 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게시판)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편지에 써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깊은 동굴 속이었지만 의외로 넓고 아늑하면서도 상쾌한 것이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지. 날 불러낸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서연? 유란? 거거붕? 그것도 아니면 배신자인 무성?
“하하하, 왔구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중,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서 복면을 쓴 조그마한 인영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체구로 봐서 린족 같은데, 의아한 점은 목소리도 굉장히 익숙하다는 것이다. 물론 린족 목소리가 거기서 거기인데다, 입을 가리고 있는 복면과 동굴의 울림까지 더해져 제대로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넌 누구냐! 진서연의 부하냐?”
“흥, 성미도 급하긴. 그건 차차 말해주도록 하지. 네가 진정 홍문파의 제자라면, 나를 쓰러뜨려 봐라.”
“못할 줄 알고?”
선제공격은 필승. 진영 사저에게 배운 비법대로 나는 열화장을 날리며 의문의 인영에게 선공을 가했다. 진서연에게 입은 상처가 어느 정도 나아서인지, 계속되는 전투에 실력이 늘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요즘들어 기공의 파괴력이 상당히 늘어난 것은 확실했다. 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있었기에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의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내 공격이 간지럽다는 양 대부분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별 충격을 받지 않는 모습. 거기에 내 빈틈을 노려 간간히 시전하는 반격은 매우 날카로웠다. 분명 공격은 내가 훨씬 많이 하고 있는데, 전세는 급격히 상대방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내가 알고 있는 공격 기술을 모두 난사하기 시작했다.
“으윽… 왜, 왜 안 쓰러지는 거야?”
“뭐 하는 거야! 그런 마구잡이 식의 공격이 통할 것 같아?”
“…마구잡이?”
“모든 기술에는 순서가 있는 법. 무작정 생각나는 대로 공격하지 말고 흐름에 맞춰 기술을 발동시켜서 파괴력을 극대화 해야지!”

▲ 전투 중에 떠들기 좋아하는 이상한 놈. 누구냐, 넌
이상한 놈이다. 치열한 전투(나만 그런가) 중에 상대방에게 충고를 하다니. 나를 놀리는가 싶은 마음에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기술을 사용하고, 그로 인한 반동과 빈틈, 각종 효과를 계산해서 연계기를 사용해야만 최소한의 내력으로 최고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법. 그러나 다소 흥분했던 탓이었을까? 방금까지는 기술의 흐름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내가 알고 있는 공격기술을 순서 없이 무질서하게 퍼붓고 있을 뿐이었다.
작은 깨달음을 얻고 나니 공격에 리듬이 생겼다. 적에게 불씨를 중첩시켜 일거에 폭발시키기도 하고,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 자세를 무너뜨린 후 대규모 기술을 시전하기도 했다.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 나를 놀리듯 건성으로 상대하던 복면인이 비로소 진지하게 싸움에 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하게 생사를 건 대결보다는… 마치 무일봉 연무장에서 대사형에게 가르침을 받던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상대방의 공격 하나하나가 슬로우 모션으로 눈에 들어왔다. 마치 2012 런던 올림픽 펜싱경기 연장전의 마지막 1초처럼 찰나의 순간이 길~게 느껴졌다.
탓
비무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와중, 복면인이 갑자기 거리를 벌렸다. 장거리전으로 가자는 의도인가? 그렇다면…
“과연 홍문파로구나”
장거리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복면인이 공격 자세를 풀었다. 드디어 나와 홍문파의 위력을 실감한 건가?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놈이다. 그렇다 해도 한 번 시작한 싸움을 멈출 수는 없지. 재빨리 공격 자세를 취하려고 하는 순간, 복면인이 입을 열었다.
“헤헷, 제법인데? 막내야, 아직도 모르겠니?
이 목소리는…? 설마! 사실 조그마한 체구와 다람쥐 귀를 봤을 때부터 약간이나마 예상했던 것이긴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헛된 희망일 것 같아서 애써 외면했던 그것이 사실로 다가왔다. 복면인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조금은 잘난체가 심하고, 항상 밝은 홍조를 띄고 있는 모습. 바로 홍문파에서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넷째 사형 화중이었다.

▲ 화... 화중 사형이 살아 있었다
“나야 나. 화중 사형!”
“!!”
“놀랬지? 말도 마…. 흡!”
화중 사형의 얼굴을 본 순간 내 안에 있던 분노와 증오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경공보다 빠르게, 전신보보다 순식간에 화중 사형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내가 거대한 곤족이 아니라 조그마한 체구의 린족이라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린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화중 사형의 품에 안기지 못했을 테니까.
묻고 싶은 것도, 얘기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도 많았지만 목이 메여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코를 다섯 번 삼키고, 눈물을 열 번 닦고서야 겨우 화중 사형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대체… 지금까지 어디 갔다가 왔어요…?”
“헤헷, 내가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여기까지 온 나의 무용담을 설명하려면 사흘 날밤을 새도 모자랄 거다.”
“아니, 그 전에 어떻게 그 곳에서 살아 돌아온 거죠? 다른 사람들도 살아 있나요? 진영 사저, 길홍 사형, 영묵 대사형은요? 홍문파는 멸문하지 않은 건가요?”
“……”
그 질문에 화중 사형은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만나 기쁜 감정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공존하는 눈빛에서, 나는 화중 사형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와 화중 사형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역시 홍문파는 멸문한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화중 사형이라도 돌아왔으니… 뭔가 마음 속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아무튼, 널 만나게 돼서 다행이야, 막내야. 헤헤헷”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 너머로 티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화중 사형의 모습을 보자 팽팽했던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이후 들은 화중 사형의 고생담은 한도 끝도 없었다. 화중 사형에 의하면, 소환귀들에게 밀려 절벽으로 떨어졌지만 절벽에 자란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려 겨우 살아났으며, 이후 찾아가보니 사형들은 죽어 있고 사부님과 나, 무성 사형의 시체는 없었다는 것이다.

▲ 나, 않는다, 잊지, 너 무성
화중 사형은 그들의 유해를 수습한 후 무일봉을 떠나왔지만, 돈도 없고 기력도 없어 전전긍긍하던 중 홍문파의 후예가 대나무 마을에서 활동 중이라는 얘기를 전해듣고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 뭐, 말만 들으면 염화대성을 한 손가락으로 때려잡고 홍돈이 목살을 구워먹으며 살아남았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과장인 듯 하다.
“…그래서 내가 포화란인가 하는 여자애 머리끄덩이를 그냥~”
“그나저나 화중 사형, 계속 저랑 같이 있으실거죠?”
“어…? 안돼 그건. 난 아직 할 일이 있어. 그래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네게 무공을 가르쳐 주도록 할게.”
“그 할 일이 도대체 뭔데요?”
“헷, 비밀이야.”
칫. 아직도 어린애 취급이다. 뭐, 화중 사형과의 만남은 그 이후로도 자주 이뤄졌다. 화중 사형은 며칠에 한 번씩 나를 다양한 장소로 불러내 다양한 합격기와 새로운 무공,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부터 각종 꼼수까지 다양한 지식을 전수해줬다. 비록 함께 수련하는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단언컨대 화중 사형과 함께 한 시간은 무일봉을 나와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날이 갈수록 퀭해지는 화중 사형의 다크써클과 기침 소리가 눈에 밟혔을 뿐이다. 잠도 안 자고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 너무 의지만 내세우지 말고 휴식도 좀 취하라고 권했지만, 린족의 특성인지 화중 사형이랑 나만 이런 건지 말도 죽어라 안 듣는다. 에휴. 다음에 만날 땐 보약이라도 한 첩 가져와야겠다. 진영 사저 없다고 야채 안 먹고 맨날 고기만두만 먹으니까 그래.

▲ 아니, 린족 꼬마애가 덜덜 떨면서 노숙하고 있는데 바라만 보는 자경단은 뭐야!
그러나, 이별의 날은 갑자기 찾아왔다. 그 날도 역시 난 흑룡채 본거지 뒤편의 비밀 수련장에서 화중 사형과 함께 나무인형을 열심히 때려 가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참, 듣자 하니 홍문파에 수두룩하던 나무 인형도 전부 화중 사형이 만든 거라고 하더라. 처음 봤을 땐 어린애 같았는데, 의외로 능력자였다.
“쿨럭… 자, 그럼 이번엔 한빙장에 이은…”
“왠 놈들이냐!”
“어라? 흑룡채 놈들이 여길 어떻게 왔지?”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오는 길에 소란 좀 피웠거든요.”
“그래? 쿨럭, 그럼 강행돌파밖에 방법이 없겠네? 잘 따라와야 해, 이번엔 실전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중 사형은 흑룡채 똘마니의 얼굴에 화련장을 한 방 먹여준 후 앞장서 뛰기 시작했다. 나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경공을 꽤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화중 사형의 저 스피드를 쫒아가기는 꽤 힘이 들었다. 스타트 벨이 울리기 전에 머리가 먼저 움직였다며 실격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나는 화중 사형을 따라가며 흑룡채 산적들을 상대로 실전 수련을 벌였다. 아마도 화중 사형은 이번 전투를 통해 나에게 1대 1 대결이 아닌 소수대 다수의 대결에서도 합격기와 상태이상기 등을 교묘히 활용하면 이길 수 있다는 점. 특히 마음이 맞는 파트너와 함께라면 그 어떤 적도 두렵지 않다는 점을 가르쳐주려는 듯 했다.
사실 얼마 전에 합격기를 배우면서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잘 맞는 화중 사형이 있으니 다른 파트너는 필요 없어요.” 라고 말했다가 게이 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오해 마! 유일하게 세상에 둘만 남은(할아버지 격인 도천풍 단장님은 여기서 잠깐 빼자) 홍문파 동문이기 때문에 서로 호흡이 가장 잘 맞는다는 뜻이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수준?
그러고 보니 이렇게 기분 좋게 전투를 벌여 본 것도 얼마만이던가? 대나무 마을에서 수많은 충각단을 처치하긴 했지만, 이는 오직 복수를 위한 처절함 속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진서연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계속 욱씬거리는 데다, 스승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강해지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천성이 주책바가지인 터라 애써 웃어보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마음 속은 늘 허전했다.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내 옆엔 화중 사형이 있다.
“으으윽…”
흑룡채 정예병들을 대부분 쓸어버리고 잡병들이 도망가며 전투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갑자기 화중 사형이 신음을 흘리며 멈췄다. 뭔가 아파 보이던데, 흑룡채와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은 건가? 아니면 요즘 감기 때문에 안색이 안 좋았다고 하는데, 설마 폐렴 같은 병으로 악화된건가?
“어? 화중 사형, 왜 그래요?”
“헤헤… 막내야, 제법 잘 싸우던데? 이제 막내라고 놀리지도 못하겠어.”
“뭘요, 그런데 어디 아프신 것 같은데…”
“막내야, 너라면 언젠가 홍문파 오의를 깨닫게 될 거야. 이제 홍문파의 앞날은 너에게 달렸어. 잘 지내야 해!”
순간 화중 사형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화중 사형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고, 더 이상 서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나는 이 기운을 예전에 어디선가 느껴 본 적이 있다. 그래, 사부님이 죽을 때 몸을 휩싸고 있던… 그리고, 자경단 일을 하면서 탁기에 물든 시체를 발견했을 때 거기서 느껴지던 기운과 비슷한데… 설마?

▲ 괴로워하는 화중 사형
“화중 사형! 역시, 어딘가 부상이… 아까 흑룡채 놈들과 싸우다가…”
“이 몸이 그런 녀석들에게 당할 리 없잖아. 이… 이건… 쿨럭, 무일봉에서… 놈들에게 당했어. 탁기가… 온몸에 퍼지고 있어. 쿨럭. 그래도… 다행이다. 죽기 전에 널 만나서…”
“그… 그럴 리가. 아까까지도 건강했잖아요!”
“사실 마물이 되기 전에 사부님 곁으로 가려고 했지만, 네가 살아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을 고쳐 먹었지. 살아야겠다. 살아서 막내에게 내가 아는 걸 전해야겠다…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버텼어. 하지만, 이제 한계인가봐…”
“주.. 죽으면 안 돼요, 사형!”
“너와 함께 더 있고 싶은데,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 헤헤…”
트레이드마크인 배시시한 웃음을 억지로 짓는 화중 사형. 그러나 그의 조그마한 몸에서 새어나오는 탁기는 점점 더 짙어져 이제는 몸 전체를 거의 가릴 정도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끔찍한 기운을 내뿜는 탁기. 생명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듯한 어둡고 짙은 기운. 어떻게, 어떻게 하면 저 탁기를 없앨 수 있지? 방황하는 사이 이별은 다가왔다.
“막내야… 내 몫까지 살아. 살아서 꼭… 너의 길을. 홍문의 길을 꼭 찾아.”
“사형, 사형!”
“안…녕… 막내야.”
“안 돼!”

▲ 탁기에 오염되어 생을 마감하고 마는 화중 사형
그것이 내가 본 화중 사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눈물로 인한 환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중 사형이 눈을 감은 뒤 혼 같은 게 몸에서 빠져나와 푸른 빛으로 변해 하늘로 떠올랐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한참 동안 그 곳에 남아서 화중 사형이 떠난 곳을 바라봤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하하하, 왔구나!’ 라며 장난스럽게 등장하던 모습도, 직접 만든 나무인형을 이용한 가르침도, 만두 먹다 체해서 등을 두드려 주던 추억도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
이제 진서연을 죽여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마지막 남은 화중 사형마저 앗아간 철천지원수! 나는 다짐했다. 그녀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설령 악마에게도 혼이라도 팔 수 있다고. 사실 이 때는 몰랐다. 단순한 다짐에 불과했던 이 말이 얼마 안 가 실제로 다가오리라는 것을…….
[크앙의 블소스토리] 다른 편 보러가기 | |
글: 게임메카 류종화 기자 (크앙, 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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