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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프메’·‘디아블로’… 고전 IP에 바라는 것은 ‘추억’



있던 입맛도 달아나는 더위의 연속입니다. 찌는 날씨에는 시원한 음료와 선풍기 바람이 능사라지만, 매일 차가운 음식으로 속을 달랬다가는 체력이 바닥나기 쉽죠. 그래서 지혜로운 선조들은 ‘이열치열’이라는 좋은 속담을 남겼습니다. 더울 땐 뜨거운 것을 먹고, 땀을 한번 쫙 뺀 후 기력을 보강하라는 뜻이죠. 이게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어르신들 말마따나 삼계탕 한 그릇 먹으면 괜히 기운이 펄펄 나곤 합니다. 

‘과거의 것이 좋다’는 공식은 이 외에 많은 분야에 통하는 듯합니다. 요 몇 년간 ‘복고’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거든요. 패션업계에서는 빈티지 무드라며 80년대 나팔바지를 다시 내놓고, 게임업계에서조차 8비트 도트 그래픽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게다가 패키지게임 시절에 출시되어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던 타이틀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다시 만들어낸 작품들도 많아졌죠.

대 ‘복고’ 시대를 맞이하여, 이번에는 무려 17년 전(!)의 기억을 되새겨보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1997년도에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신작들의 모태가 된 타이틀이 대거 포진해 있더군요. 지금은 굉장히 세련된 유저 인터페이스와 그래픽으로 무장한 그 작품들이 과거에는 어땠는지, 함께 살펴보실까요?

1997년 7월 PC챔프


▲ PC챔프 1997년 7월호 표지

1997년 7월 PC챔프 표지를 보니, 추억의 이름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네요. ‘대항해 시대 3’와 ‘던전 키퍼’, ‘포가튼 사가’, ‘엑스컴 3’… 모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명작으로 남은 작품들입니다. 가장자리에 살짝 등장하는 ‘프린세스 메이커 3’와 ‘심시티 3000’도 반갑게 느껴지네요.

국내 게임 ‘시리즈화’ 열풍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PC챔프를 살펴보면,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입니다. 세가의 영원한 친구 소닉, 악마의 게임 서막을 알렸던 ‘디아블로’ 패키지 사진도 있네요. 거기에 ‘대항해시대 3’까지 정말 유구한 역사를 지닌 IP들입니다.


▲ 플레이하는 사람 눈까지 팽팽 돌게 만들었던 소닉


▲ 이 때 디아블로는 남자답게 생겼었군요


▲ 최근 일본에서 '대항해시대 5'가 웹게임으로 출시됐죠
빨간 말풍선으로 강조된 출시일이 인상적입니다

신작 대신 인기 IP의 속편을 제작하거나, 색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 타이틀을 출시하는 경향은 1997년에도 있었습니다. 잡지 뉴스 코너 몇 개만 뒤적거려 봐도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해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업계 전반적으로 이미 한번 인기를 얻은 IP는 고정 팬층을 보유한 데다, 웬만큼 망작(?)이 아니고서야 일정 이상의 판매량은 나왔기 때문이지요. 


▲ PC챔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해외 타이틀 확장팩 출시 기사



 최근 윈도우용 다마고치인 ‘달걀고치’를 출시한 바 있는 막고야에서 그 후속작인 ‘요정고치’를 제작중이다. 요정고치의 특징은 기존의 달걀고치에 비해 훨씬 더 늘어난 이벤트에 있다… (이하 후략)

- <막고야, 달걀고치 2탄 ‘요정고치’ 출시한다>, 1997년 7월 PC챔프




트릭에서 ‘쥬라기 원시전’ 후속작을 준비중이다. ‘쥬라기 원시전’ 2편은 올 겨울 출시를 목표로 현재 시나리오를 보완 중이며 윈도우95용으로 제작해 보다 깔끔한 그래픽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하 후략)

- <트릭, 쥬라기 원시전 2편 준비중>, 1997년 7월 PC챔프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기존 IP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많았습니다. 사실 1997년이 국내 게임에 ‘시리즈’ 개념을 접목한 원년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당시에 일종의 트렌드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타이틀 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작품은 ‘코룸’ 뿐이지만요.




올 여름 게임시장은 유통업계의 불황에도 불구, 최근 출시된 게임들의 후속작들이 일제히 기획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코룸 2’, ‘캠퍼스 러브 스토리 2’, ‘아담 2’를 비롯, ‘스톤액스’의 후속편인 LG 소프트의 ‘탈’ 등이 그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하나의 게임이 제작에 성공하여 큰 호응을 얻은 경우 후속편이 제작되는 통례로 미루어, 국산게임들의 후속편 제작은 외국 게임과의 경쟁력을 갖추고 나가는 과도기에 있어서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언급했다.

- <국내 게임 속편 제작 붐>. 1997년 7월 PC챔프


지금까지도 이제나저제나 후속작이 나올까 유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IP도 종종 보입니다. 출시 전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손노리의 ‘포가튼 사가’가 그중 하나죠. 1997년 4월에 예약판매를 시작한 후 3개월 넘게(그 이후에도 더 미뤄졌고) 게임이 출시되지 않은 탓에 우려 섞인 비판도 받았지만, ‘역시 손노리’라는 말이 나올 만큼 괜찮은 작품이었죠.



▲ 포가튼 사가, 제목처럼 잊혀지지 않았으면!



▲ 무사수행이 없어져서 아쉽지만, 그래도 예쁜 일러스트와 수확제 시스템으로 인기를 얻었던 '프린세스 메이커 3'


‘심시티 3000’, ‘프린세스 메이커 3’등 단단한 팬층을 지닌 해외 IP도 보이네요. 특히 ‘프린세스 메이커 3’는 17년 전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인터페이스와 일러스트 덕분에  요즘 작품들과 비견해 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네요.



▲ 여담이지만, 1997년에는 밸브의 '하프라이프'가 출시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네요

밸브는 3을 모르기로 유명하죠


마케팅 전략이 된 ‘고전 IP’


17년 전, 인기 IP는 흥행 보증 수표 같은 존재였습니다. 개발사가 바뀌고 세계관이 변해도, 큰 틀만 바뀌지 않는다면 후속작도 여전히 괜찮을 거라는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높은 로열티를 지불하고 IP를 가져오는 것 자체를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는 회사도 많아졌습니다. 특히 모바일게임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PC나 콘솔로 출시됐던 IP가 한둘씩 모바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 '프린세스 메이커 for Kakao'

참 예쁜데, 아쉬웠어요



▲ 출격을 앞두고 있는 '건담' IP 모바일게임 'SD건담 배틀스테이션'


▲ 타이토의 아케이드게임 '퍼즐버블' 이식작은 나름 잘 된 편입니다


다만 조금 달라진 것은, 이제 유명 IP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17년 전보다 유저들의 눈이 높아졌고, 정보 공유도 활발해졌죠. 사실, 최근 출시됐던 유명 IP 타이틀 중 대부분이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던 건 최신 트렌드와 기술을 접목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원작의 재미를 잃어버렸던 탓이 큽니다. 


많은 게이머들이 고전 IP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뭘까요? 그건 다름 아닌 ‘추억’이라 생각합니다. ‘프린세스 메이커 2’ 무사수행이 하고 싶어 딸을 몇 번이나 새로 키웠던 기억, 그리고 열리지 않는 ‘디아블로 2’의 입구를 지켜봤던 시간처럼요.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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