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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이지의 성공요소와 불안요소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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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된 즐거움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계를 벗어나서, 연출된 즐거움이 아닌 창발적 즐거움. 개발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새로운 상황, 뭐 이런 것이 나오려면 놀이동산형 어프로치와 철학이 아니라 가상세계의 개념으로 접근해야죠.”

 송재경 대표가 지난해 10월 한국국제개발자컨퍼런스(KGC) 키노트 연설에서 ‘MMORPG 변화하는 세계’라는 주제로 꺼냈던 말이다. 돌려 말하긴 했지만 송 대표의 이런 발언은 국내 MMORPG의 현주소를 지적하는 것이었고 뻔히 수가 보이는 패를 순서만 바꿔서 내놓는 게임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었다. 까놓고 말해 본인은 국내 MMORPG는 ‘와우’ 등장 이후 단 일보의 발전도 이룩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슬로건만 화려했다. 차세대, 2.0, 한국형 MMORPG 등 저마다 조커로 꺼내 들었던 게임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미 봤던 패들을 한번 다시 섞어 놓은 것뿐이다. 지리멸렬하게 깔린 콘텐츠는 ‘이건 이렇게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 보여준다. ‘판 갈이’를 하지 못한 게임의 한계다. 구태의연하게 소개된 콘텐츠는 저마다 화려한 말 잔치로 끝났을 뿐 상업적 성공을 이룰망정 게임성을 모두 박한 평가를 받았다.

송대표의 발언이 주목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 벌려진 판에서 놀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 판을 다시 짜겠다는 것이다.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 하나 더 추가하고 이벤트로 유저 끌어 모으겠다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들이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다. 이번 1차 CBT는 ‘아키에이지’의 수준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지나간 이번 테스트에 과연 뭐가 남았는지 한번 살펴봤다.


▲ID Mullet님이 직접 찍은 스크린샷(출처: 공식홈페이지)

독보적인 비주얼 VS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수

자유도를 추구하는 샌드박스형 게임은 개발 난이도 덕분에 그래픽 등 보여주는 비주얼은 한 단계 양보하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여줄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고 각각의 콘텐츠가 서로 상호작용하게끔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키에이지’는 달랐다. 한발 물러서도 모자랄 판국에 현존하는 MMORPG 비주얼의 정점을 찍었다. ‘크라이2엔진’을 썼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지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적용된 물리효과는 향후 ‘아키에이지’의 행보를 짐작하게 만든다.

 ‘아키에이지’가 가지고 있는 문제 역시 여기에 있다. 대중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1차 비공개테스트 최소 사양은 Intel core2 duo, HDD 30G, 메모리 3GB, 그래픽카드 지포스 8000시리즈 라데온 HD 4000 시리즈(512MB)로 아이온, 스타크래프트2 권장사양보다 더 높다. 그런데 이게 최소사양이다. 아직 최적화 되지 않았다고 해도 현재 그래픽 수준으로 보건대 더 이상 양보할만한 ‘건덕지’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아키에이지’의 엔드콘텐츠가 ‘공성전’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았을 때 XL게임즈 지하 창고에 납치한 UFO가 있지 않은 이상 현재 최소사양으로 밑으로 끌어 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스타크래프트나 아이온이 국내 PC방이나 게이머들의 PC사양을 업그레이드하게 유도했던 것처럼 스스로 게임성을 인정받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내수용 멘트일 뿐 유럽, 중국, 대만 등 상대적으로 저사양 PC가 보급된 나라의 수출 길 역시 큰 걸림돌이다. 이것이 하이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아키에이지의 무리수인지 기술력을 담보로 한 자신감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퀄리티의 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계 없는 자유도 VS 그렇게 보이는 듯한 착각

벌써 평가를 내리기엔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진 평범해 보인다. 삽을 들어 땅을 팠으면 모랫바닥에서는 모래를, 진흙 바닥에서는 진흙을 캐야 하는 것이 자유도의 기초다. 하지만, 아키에이지는 오브젝트를 늘려 캐야 할 재료만 벌려 놨을 뿐 기존 MMORPG의 관성을 그대로 따랐다. 미친 척 나무를 심어 황무지를 숲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래야 할 동기가 부족하다. 적어도 나무를 베서 쓰러트릴 수 있는 기술력을 구현했다면 물살이 쎄 건너가지 못하는 계곡을 나무를 베서 임시다리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의 활용도는 보여줘야 했다. 아니면 불이라도 붙여 요리용 장작으로 활용할 수 있다든지.

현재 ‘아키에이지’의 자유도는 딱 그만큼이다. NPC에게 묘목을 사서 필드 어디에서든 심을 수 있다는 것은 ‘자유도’가 아니다. 이것 역시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자유도를 가장한 놀이기구일 뿐, 기술력이 있다면 차라리 숲에서 묘목을 캐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숲을 누비며 희귀한 묘목을 찾아 자기집 마당에 심어 놓는 것과 NPC에게 돈으로 비싼 묘목을 사는 것의 차이는 기술력으로는 ‘오십보백보’지만 유저가 느끼는 자유도의 차이는 크다. 요컨대, ‘아키에이지’는 충분히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스스로 제한하거나 기존 MMORPG의 관성을 그대로 따라감으로써 제한된 자유도를 보여줬다. 의도한 것인지 아직 그럴만한 단계가 아닌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유도를 전면으로 내세웠다면 땅파기 -> 우물찾기-> 우물 길러 작물에 물주기 등의 형태로 좀더 폭 넓은 가능성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분명 현재 ‘아키에이지’ 기술력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아쉽게도 1차 CBT에서는 예상했던 수준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처럼 뭐든 변화할 수 있는 조커가 ‘아키에이지’에는 아직 많다는 것이다.


▲눈 앞에 보이는 나무 제가 심은 겁니다


▲이렇게 도끼질을 해서


▲다 베어버렸다

창의적 노동력의 개념 VS 여기는 대한민국

처음엔 노동력을 아키에이지의 자유도를 제한하는 아주 비겁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플레이를 해보니 그럴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XL게임즈의 명민함이 돋보였다.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여기 보기만 해도 돈이 될 것 같은 ‘금광’과 한 입만 먹어도 병이 치료될 것 같은 ‘약초’가 있다. 만약 ‘와우’였다면 해당되는 직업이 둘 중 하나를 골라 캐갈 것이다. ‘아이온’이었다면 볼 것도 없이 둘 다 캐갔을 것이다. 일단 모아 놓으면 경매장에 팔던 언제간 써먹을 재료니깐. 하지만 ‘아키에이지’는 다르다. 파종, 채집, 제작 등 일련의 소모성 행위는 모두 노동력이 소비된다. 때문에 언제든 써먹을 수 있다고 무작정 캐다가는 정작 중요할 때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이런 ‘노동력’의 개념은 일단 두 가지를 제한한다. 먼저 작업장으로 대변되는 장사꾼의 제한이다. 어떤 재료든 캘 때마다 노동력이 소비 되기 때문에 하루에 캘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라이트유저와 하드코어 유저의 간극 조율이다. 하루에 획득할 수 있는 노동력을 가령 5000포인트로 친다면 하드코어 유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제한된 포인트 내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라이트 유저는 1~2시간이나마 게임에 접해서 빠르게 소모하면 그만이다.

또, 하드코어 유저는 상대방의 노동력을 임금을 지불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력 보다 돈이 필요한 저렙에게는 이만한 장사가 따로 없다. 더불어 유저간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도 이루어질 테니 개발자 입장에서는 ‘꽁 먹고 알 먹고’가 아닐수 없다. 간단한 예로 주택을 짓고자 한다면 다수의 저렙 유저에게 돈을 지불해 집을 짓게하고 본인은 축척한 노동력을 이용해 고급가구나 기타 주변환경을 꾸미는데 활용하면 된다. 물론,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가정하에서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만렙 캐릭터로 답하는 나라다. 개발자의 머리 안에서 놀아날 유저는 한반도에선 없다. 언뜻 비상한 듯 보이는 노동력은 투 컴, 쓰리 컴 계정으로 활용해 변질될지도 모를 일이다. 작업장은 여전히 수십 개의 서브 캐릭터가 돌아가 노동력의 한계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머리꼭대기에 올라가있는 것은 유저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이런 문제점 마저 새롭게 보이는 ‘아키에이지’의 시도다. 모처럼 잔뜩 불만을 쏟아내도 될만한 게임이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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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엑스엘게임즈
게임소개
'아키에이지'는 첫 번째라는 의미의 'Arche'와 시대라는 뜻의 'Age'를 합친 제목의 MMORPG로, 크라이 엔진 3를 기반으로 개발된 게임이다. 누이안과 하리하란 동맹간 갈등을 그린 '아키에이지'는 가상 ...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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