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가 뭐하는 회사냐?”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컴퓨터 전원버튼도 켤 줄 모르시는 아버지가 대뜸 ‘엔씨’의 정체를 물었을 때 아들이 취할 수 있는 스탠스는 대략 그러했다. 당황했으며 놀라웠고 신기했다. 아버지가 ‘엔씨소프트’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던 이유는 제9구단 창단 때문이었다. 평소 야구에 관심이 많으셨기에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엔씨소프트’라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회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게임업계 종사자 이전에 한 개인의 입장에서 엔씨소프트의 창단 소식이 마냥 달가웠던 것은 아니다. 속 좁은 이야기겠지만 마음속 한 구석엔 ‘돈은 게이머한테 벌고 선심은 타업계(스포츠)에 쓰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엔씨소프트라는 이름이 이렇게 안방에 ‘턱’하니 그것도 아버지 입으로 듣고 나니 기업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엔씨소프트의 전략이 얼마나 탁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졌듯 엔씨소프트는 온라인게임업체 최초로 야구구단을 창단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게임업체로 최초는 아니다. 바로 바다건너 이웃나라 일본의 게임업체 ‘닌텐도’가 메이저리그 구단인 ‘시애틀 매리너스’의 구단주이기 때문이다. 닌텐도 3대 회장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1992년 시애틀 매리너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미국 주류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며 현재 닌텐도의 위상과 이들의 의도를 알리기 위해 부단한 애를 썼다. 현재 엔씨소프트의 창단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큰 화제였지만 그렇다고 마냥 환영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닌텐도의 미국 진출 이후 아이들이 닌텐도 게임에 지나치게 빠진 나머지 의료업계에서는 ‘닌텐도 증후군’이라는 신종어가 탄생했고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TV토크쇼에서 ‘닌텐도의 좀비들’이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게임 과몰입을 우려했다. 언론들도 이에 편승에 닌텐도 아메리카의 이런 성과를 현대판 ‘트로이 목마’라 소개했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도 한몫 했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JYP와
제휴 협약식이 진행되는 장면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놀랍게도 당시 닌텐도의 상황과 현재 엔씨소프트의 입장이 묘하게 비슷하다. 세계적인 게임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인력, 자금, 인프라가 모두 구축됐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 그렇다.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사회적인 반감이 만만치 않은 이때 엔씨소프트가 게임업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확장이고 프로야구구단 창단은 최근 JYP나 iHQ업무제휴와 마찬가지로 엔씨소프트가 그린 밑그림에 끼워질 커다란 퍼즐조각임은 분명하다. 과연 잘 끼워질 수 있을까?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닌텐도가 걸었던 길을 되돌아보면 어렴풋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약 10년간은 닌텐도가 미국진출을 위해 가장 공들였던 시간이었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퀄리티만으로 승부하기엔 미국시장은 너무나 컸고 경쟁자도 많았다. 정체된 흐름을 뚫기 위해 닌텐도가 시도한 것은 바로 문화 융화정책이었는데 닌텐도라는 이름을 미국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 일환으로 닌텐도는 TV광고는 물론 펩시, 맥도널드, 유니버설(영화), MTV, 잡지 등 다양한 업종과 업무제휴를 실시하며 닌텐도라는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힘썼다. 1992년 메이져리그 야구구단 ‘시애틀 매리너스’ 인수 역시 밖으로는 미국시민을 위한 보답이었지만 안으로는 미국 문화에 녹아 들기 위한 큰 투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런 통큰 결정은 오히려 닌텐도를 곤경에 빠뜨렸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트 셰프(David Sheff)는 자신의 저서 ‘닌텐도의 비밀’을 통해 이렇게 묘사했다.
“1992년 초, 닌텐도가 핫이슈가 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미국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야마우치가 신문의 제1면을 장식했다. 그가 시애틀의 메이저리그 야구팀 매리너스를 인수할 거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야마우치의 구단 인수 제의가 있던 주에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미국의 근로자들은 게으르다는 발언을 무심코 하는 바람에 논란이 일었다. 이 실언은 금세 떠들썩해졌는데 하필 그 불똥이 야마우치에게 튀어 구단 매수가 어렵게 됐다. 미국 국민들이 마음속으로 록펠러센터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미국 야구팀 중 하나에까지 ‘뻔뻔스러운 그들’이 손을 대려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
확실히 1992년은 미국 경제의 불황기였고 이런 상황에서 일본 기업이 미국인의 자존심과 같은 메이저리그 구단을 인수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일부에서는 ‘일본 기업이 메이저리그 구단을 훔치려 한다’는 여론도 생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야구단 인수에 대한 이런 부정적 기류는 야마우치 회장의 시니컬한 말투가 크게 기여한 알려졌다. 일본 내에서도 거칠 것 없는 강경 발언 때문에 망언 대마왕로 통하는 야마우치 회장은 ‘시애틀 매리너스’ 매입 의사를 밝힌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일생 동안 야구장을 가본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밝혔는데 사실 이 발언은 구단을 인수하더라도 경영권에 절대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였지만 야구에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반일(反日) 기류를 촉발시켰다.
▲세이프코
필드 구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당시 신문 기사
▲야마우치
히로시 회장의 사진도 걸렸있다
야마우치 회장의 이런 거침없는 입담은 이후에도 반일여론의 알뜰한 자양분(?)이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뉴욕타임즈와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미국 동정론’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부자로 만든 나라에 뭔가 보답하고 싶었다.”고 구단 인수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지만 이 발언이 와전돼 일본기업이 미국에게 ‘선심’쓰는 듯한 인상으로 비춰지면서 미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내에서도 큰 파장을 일의 켰는데 일본 신문사 저팬타임즈는 기고문을 통해 “메이저리그의 직업 야구는 일본의 스모 같이 미국에겐 내셔널스포츠와 같은 것이다. 일본기업의 일부 경영층은 한 나라엔 침투해서는 안될 ‘성역’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 그것이다.
확실히 타이밍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미국 국민과 일본의 여론이었지 당사자인 시애틀 시민의 여론은 아니었다. 당시 시애틀은 인구 50만명의 규모의 작은 도시였고 매년 적자가 누적돼 구단 운영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애틀매리너스가 플로리다로 이전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현지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워싱턴 주 유력 인사들과 시애틀 시장은 닌텐도에 구단을 인수해달라고 요청했고 닌텐도 회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적자구단임을 알고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흔쾌히 수락했던 것이다. 반일 여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현재 현역으로 뛰고 있는 스즈키 이치로
1992년 2월 18일, 워싱턴포스트지 칼럼니스트 호바트 로웬은 현재 닌텐도의 상황을 간파하고 칼럼을 통해 현재 미국 내에서 불고 있는 반일 감정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 설명했다. 그는 미국야구협회의 부원장인 스티븐 그린버그가 말한 ‘외국계 기업이 구단을 매입하면 미국 야구계의 기초를 흔들어 놓을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현재 미국의 내셔널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팀과 몬트리올 엑스포스팀 두 팀을 캐나다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캐나다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고 일본에 대해서만 나쁜 감정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균형을 잃은 반일감정의 발로이다.”라고 논평했다.
결국 닌텐도의 ‘시애틀매리너스’ 인수 결정은 인수 발표일로부터 4개월이 지난 1992년 6월 12일에 메이저리그 26개 구단주가 표결 끝에 만장일치로 승인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었다. 우여 곡절은 많았지만 닌텐도의 시애틀매리너스 인수가 확정되자 미국 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닌텐도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를 쏟아냈고 구단의 재정 상태도 좋아지면서 시애틀 시민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달은 또 닌텐도 정기 주주총회가 있었는데 야마우치 회장은 사업실적 보고에서 닌텐도 하드웨어 보급률이 일본에서는 40%, 미국에서는 33%에 이르렀다며 세전이익 또한 지난해보다 14% 증가한 12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닌텐도의 수익의 60%가 닌텐도 아메리카를 통해 창출되었는데 이듬해 3월 닌텐도는 일본 제조업 분야에서 도요타 자동차와 NTT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기업이 되었다.
시애틀 매리너스 인수로 닌텐도는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미국 문화에 빠르게 흡수될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가 되었으며 아이들만 하는 오락으로 인식되었던 ‘닌텐도 게임’이 좀더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닌텐도가 적극적으로 투자에 임했던 이시기에 시애틀은 ‘랜디 존슨’, ‘켄 그리피 주니어’, ‘에드가 마르티네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주옥 같은 선수가 탄생하면서 95년, 97년, 01년 지구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세이프코
필드 구장에 NDS를 들고가면 다양한 편의를 맛 볼 수 있다
야마우치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후 닌텐도는 NDS를 발매하고 한번 더 큰 성공을 거뒀는데 세이프코필드 구장에서만 구동할 수 있는 ‘닌텐도 팬 네트워크’ 소프트를 개발해 다시 한번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소프트는 야구장 프로그램과 연동시켜 NDS를 통해 선수 정보와 통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간단한 간식까지 주문할 수 있는 야구 관람 지원 프로그램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소프트지만 이는 닌텐도가 야구구단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1992년 닌텐도가 미국 야구구단을 인수한다고 했을 때 이를 달갑게 봤던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닌텐도는 그저 자국의 돈을 탐내는 얄미운 일본 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2년 현재 닌텐도를 보자. 이제 미국에서 닌텐도를 빼놓고 문화산업을 논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제국으로 탈바꿈했다.
닌텐도의 이런 놀라운 성과는 현재 엔씨소프트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해준다. 게임이 더 이상 골방에서 눈치보며 즐기는 음지의 문화가 아니라 당당히 엔터테인먼트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업이 먼저 대중 앞에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무형의 가치를 서비스하는 엔씨소프트는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닌텐도보다 수배는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야 한다. 그 어느때보다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이때 게임업계의 선두기업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임무가 막중하다. 한국 게임업체에서는 최초로, 온라인 게임기업으로는 세계 최초로 야구구단을 창단하는 엔씨소프트가 더욱 힘을 내야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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