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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제 시행 1주일, 중학교 1학년 김군의 생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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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올해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 모 군(부모님께 들키면 안 된다는 본인의 간곡한 부탁 하에 이름을 익명 처리합니다)은 하교 후 집이 아니라 학원으로 향한다. 영어와 수학, 국어와 과학, 사회, 검술과 마법(?) 등을 모두 가르치는 종합 보습학원이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밤 10시를 넘긴다. 김 군은 책가방을 벗어 침대에 던져놓음과 동시에 씻지도 않은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이 때부터 12시 전후까지가 김 군의 유일무이한 자유 시간이다.

현재 김 군은 ‘메이플스토리’ 와 ‘던전앤파이터’ 두 개의 온라인게임을 즐기고 있다. 딱히 횡스크롤 액션 RPG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주변 친구들이 죄다 하기에 얼떨결에 시작한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재학 중이던 2008년, ‘메이플스토리’ 는 만화책에서부터 각종 캐릭터 문구 상품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열풍’ 을 일으키고 있었고, 올해 초 중학교에 들어오니 많은 친구들이 ‘던전앤파이터’ 를 즐기고 있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친구들끼리 만나도 이야기 주제의 80%가 게임이란다(참고로 기자 세대에서는 바람의나라와 리니지였다). 이러다 보니, 김 군도 자연스럽게 게임을 접하게 되었고, 이제는 한 명의 당당한 중견 유저가 되어 게임 내 커뮤니티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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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뿐 아니라 서적, 문구 등 각종 캐릭터상품으로도 진출한 '메이플스토리'

김 군은 게임을 좋아하는 일반적인 초/중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어째 넥슨 게임만 줄줄히 언급하는 것 같긴 하지만). PS3나 Xbox360 같은 전문 콘솔 게임을 즐기기에는 ‘게임기’ 라는 전용 기기를 사야 하기에 부모님의 눈치가 보이고, 몇 년 전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내 선물받은 NDS는 학교나 학원에 가져가면 압수당하기 십상이라 오래 즐기지 못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김 군은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김 군은 평균적으로 하루 1~2시간 가량의 게임을 즐긴다. 평일 12시가 넘어가면 부모님이 눈치를 주기도 하지만, 위에서 봤듯 사실상 게임을 오래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세 살 어린 동생과 한 대 밖에 없는 컴퓨터를 놓고 다투기도 하니까). 대신 저녁 시간에 학원에 가지 않는 토/일요일엔 부모님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게임을 즐기는 편이다. 특히, 토요일 밤에는 약속이나 한 듯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결성해 던전을 공략하곤 한다. 이렇게 토요일 자정을 넘겨 일요일 새벽 2~3시까지 게임을 하고 나면 일주일 간 받은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 “오늘 같은 새러데이 나잇, 미친듯이 노는거야~ 우 베이비 우우 베이비~”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셧다운제 시행 하루 째

“그.. 밤 12시부터 게임 못하게 하는건..가?” 19일 오후, 김 군에게 개정된 청소년보호법, 셧다운제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를 묻자, 이 나이 또래 애들이 늘상 그렇듯이 김 군 또한 애써 쿨한 척 하며 대답했다. 그래봐야 썩 멋있어 보이진 않는데. 이대로는 기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재차 캐물었다. 이제 12시 넘으면 게임 못하게 되는데 신경쓰이지 않냐고. 기자의 불 같은 질문에 김 군은 뻘쭘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더니 “뭐… 그때 가서” 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사춘기인가?

그리고 대망의 토요일 밤이 밝았… 저물었다. 토요일은 김 군이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는 날이다. 그리고, 대망의 셧다운제 적용일이기도 하다. 저녁 9시경,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카트라이더’ 를 하고 있던 동생을 쥐 잡듯이 컴퓨터 의자에서 끌어낸 김 군은 빽빽 소리를 지르는 동생의 눈 앞에서 살포시 Alt+F4 키를 눌러 된통 삐치게 만든 후 ‘던전앤파이터’ 를 켰다. 가족형 ‘셧다운’ 을 당한 동생은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게 고인 채로 방으로 들어갔고, 김 군은 같이 게임을 하는 반 친구들과 만나 열심히 게임을 즐겼다.

게임 화면을 슬쩍 보니 전반적인 레벨은 4~50대, 무기도 그다지 높은 등급은 아니었다. 뭐, 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 중에서는 만렙 캐릭터도 몇 개씩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기자도 그 나이 때는 허세로 똘똘 뭉쳐 있었으니… 기자는 잠시동안 김 군이 게임을 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삐친 동생과 돌아주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2시간 쯤 후에 벌어질 참상(?)을 기대하며…

“아, 뭐야! 다 깼는데, XXX”

12시 정각. 한창 레고에 빠져 있던 기자의 귀에 분노에 찬 김 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군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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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나타난다던지 이런
경우에는 과다한 공격이 일어나면서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셧다운이라는 것이 12시 정각에 신데렐라의 마법을 풀어버리듯, 실험을 위한답시고 PC방의 전원을 끄듯 아무런 예고 없이 무자비하게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따뜻한 인정을 발휘해서 던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게임 화면 위쪽에 셧다운 적용 대상이라던가, 실시 시간 이전에도 채팅창을 통해 셧다운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등의 사전 공지가 행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셧다운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일까, 김 군을 비롯한 많은 청소년들은 강제 종료가 이뤄질 때까지도 게임을 지속했다. 마치 셧다운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믿고 싶은 듯 말이다.

이후 김 군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메이플스토리’ 에 접속하려 했으나 역시 실패, 이후 자유게시판과 메신저 등에서 다른 유저/친구들과 이 사태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게임이 종료되자 미련이 남아서일까, 김 군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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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다양한 공지를 볼 때 '셧다운제' 를 몰랐던 건 아닐테고
아마도 모르고 싶었을 것이다

 

셧다운제 시행 이틀 째

김 군은 일요일 점심 무렵까지 늦잠을 잤다. 여성부의 의도대로 자정 이후의 온라인게임 플레이는 금지되었지만, 그렇다고 실컷 놀 수 있는 토요일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는 아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셧다운제를 경험한 날 밤, 김 군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유머 자료와 유튜브 동영상 등을 보다가 잠시 동안 PC게임을 즐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김 군에 의하면 이 날의 ‘워크래프트3’ 카오스 멀티플레이는 그 어느 때보다 붐볐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PS3, Xbox360, Wii, NDS, PSP 등의 콘솔 기기 사용률도 순간적으로 꽤나 올랐을 것이다.

“우리가 밤 새면서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12시 반에서 1시 정도까지만 하는 건데, 이걸 왜 못하게 하는 거야? 온라인게임 말고 다른 게임 하면서 밤 새는 건 괜찮고?” 김 군의 원초적인 물음에 기자 역시 잠시 동안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게임 기자로서 여성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맞장구치는 것은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군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았다.

“난 그냥 다른 아이디로 게임하면 돼.” 어제는 잠시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김 군이 갑자기 침착한 모습으로 말했다. “옛날에 엄마 주민등록번호로 만들어 놓은 계정이 있거든, 친구들하고 다같이 새로 키우자고 했어. 키워 놓은 캐릭터는 아깝지만 아이템하고 돈만 옮긴 다음 친구들하고 같이 하다 보면 금방 다시 키우니까…”

예상했던 대처법 1위인 ‘부모님 주민등록번호 사용’ 이 등장했다(이 부분 때문에 굳이 익명을 강하게 요구한 듯 하다). 사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학생들에게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주민등록번호 정도야 의료보험증이나 화장대 서랍 속 주민등록증만 슬쩍 봐도 금방 외울 수 있고, 도용을 방지하기 위한 휴대폰 인증 역시 거실에서 충전 중인 부모님 휴대폰만 살짝 가져오면 금방 인증코드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군의 말에 의하면, 주변에서 게임을 즐기는 많은 학생들이 서브 계정을 만들거나 15세, 18세 이용가 온라인게임을 즐기기 위해 부모님이나 형제 등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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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 휴대폰과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그러나 고레벨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김 군처럼 쉽게 계정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온라인 RPG 장르의 경우 자신의 캐릭터를 계속해서 키워가는 것이 게임의 주된 재미이기 때문에, 계정을 바꿔 버리기에는 몇 달, 혹은 몇 년간 공들여 온 캐릭터가 눈에 밟힌다. 때문에 청소년보호법이 정해놓은 규정을 순순히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셧다운제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뒀다고 봐야 할까? 사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당장에 김 군 동생이 즐기던 ‘카트라이더’ 만 해도 캐릭터의 레벨 등급만 신경쓰지 않는다면 손쉽게 새 계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처럼 슈팅, 스포츠, 퍼즐 등 비교적 캐릭터 의존도가 적은 게임의 경우에는 ‘셧다운제 때문에 밤에는 게임 안 해야겠다’ 가 아니라 ‘그냥 계정 새로 만들지 뭐’ 가 되는 것이다.

‘혹시나’ 하고 살펴본 셧다운제는 ‘역시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뻔한 결과였다.

 

과연 셧다운은 국가가 져야 할 짐인가?

시행 전에도 그랬지만, 셧다운제는 계속해서 목적도, 방향도, 수단도, 효율성도 잃어가고 있다. 얼마 전 ‘과금’ 을 기준으로 Xbox라이브와 PSN도 규제 대상이라고 밝힌 것이나, 모바일이나 PC 패키지, 콘솔 게임에 대해서는 손을 못 쓰는 것 등…

그렇다면 셧다운제가 효력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을 고민하던 필자의 머릿속에 한 인터뷰 장면이 떠올랐다. ‘추적 60분’ 에 나오던 여성가족위원회 최영희 의원의 “청소년 게임활동을 일반 가정의 부모, 어머니에게 맡길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짐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셧다운제 발의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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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그럴까요

부모나 어머니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다라… 기자는 독한 마음을 먹고 이를 직접 실험해 보았다. 간단했다. 김XX 군의 어머니이자 필자의 고모에게 찾아가 살짝 귀뜸해 줬을 뿐이다. “XX이가 고모 주민등록번호로 새벽에 게임하고 있더라.” 고 말이다. 물론 제보에 대한 비밀 보장은 확실히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취재 다음 날, 김 군에게 살짝 전화를 걸어 봤다.

“엄마한테 혼났어. 이제 토요일 밤에 뭐하지?”

국가가 막지 못하던 김 군의 게임 플레이 규제는 결국 ‘일반 가정의 부모, 어머니’ 에 의해 해결되었다. 사실 각 가정의 교육방침에만 맞는다면 자정을 30분 넘기든, 1시간 넘기든 간에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 군의 어머니가 기자에게 던진 물음을 적어 본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대해 시원한 답을 하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여성부와 문화부 관계자들에게 그 답변권을 넘겨 본다.

“그래도 평일에 못하게 하는 만큼 토요일 밤만큼은 어느 정도 게임 하도록 허락하고 싶은데, 부모 동의 하에 게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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