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2012년 핵심 기술, 크로스플랫폼의 현재와 미래

/ 4

20여년 전, 기자는 집에 있던 ‘패밀리(NES)’ 오락기에서 당시 오락실 대세였던 ‘스트리트 파이터 2’ 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세뱃돈에 몇 달치 용돈까지 털어 게임팩을 산 적이 있다. 심지어 제목도 ‘스트리트 파이터 3 터보(!!)’ 였다. 그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 게임은 농담으로도 이식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몇 개의 ‘스트리트 파이터’ 캐릭터를 조잡하게 따 온 ‘짝퉁’ 게임이었다.

또 하나의 아픈 기억으로는, 동네 게임샵에서 친구가 ‘PS1’ 복제 CD를 샀는데, 옆에서 보고 있자니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는 ‘철권 2’ 가 있었다. 가격도 3~4000원으로 꽤나 싼 편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쥐꼬리 용돈을 탈탈 털어 그 자리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철권 2’ CD를 사 왔다. 문제는 필자는 그 CD가 PC게임이라고 알고 있었다는 것. 더불어 PS1 같은 고급(?) 콘솔 기기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

▲ 플랫폼과 이식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의 추억

▲ PS1의 존재자체도 몰랐던 시절, 용돈을 털어 산 PS1 디스크는....

아마도 위에 언급한 불행, 좌절, 상실감은 기자 혼자 느낀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90년대 초, 가정용 게임기가 보급되던 그 시절엔 멀티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게임기들의 성능이 워낙 천차만별인데다, 하나하나의 시장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차츰 상황은 달라졌다. 난립하던 게임기 기종들은 어느덧 PC(온라인), 가정용 콘솔(PS3, Xbox360, Wii), 휴대 콘솔(NDS, PSP), 스마트폰(아이폰, 안드로이드 등), 아케이드 등으로 어느 정도 정형화 되었으며,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플랫폼 간의 격차도 많이 줄어들어 이제는 웬만한 작품은 대부분 멀티플랫폼으로 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최근 1~2년 새에는 멀티플랫폼을 넘어선 ‘크로스플랫폼’ 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크로스플랫폼이란 멀티플랫폼으로 출시된 게임을, 플랫폼의 구분 없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즐기는 것을 뜻한다. 이미 스마트폰으로 PC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기도 하고, 휴대용과 가정용 콘솔 기기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 심지어 플랫폼의 대상도 TV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에는 주변의 모든 기기에서 하나의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가 올까? 엄마는 안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아빠는 거실에서 스마트TV로, 동생은 작은방에서 PC로, 나는 내 방에서 콘솔 기기로 하나의 서비스에 접속하는 장면 말이다. 아, 이러면 가족 간의 물리적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없어지려나? 아무튼 넉넉잡아 5~10년 후에는 이러한 기술이 일반화 될 수 있을까? 크로스플랫폼의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상해 보자.

▲ 크로스플랫폼 = 모든 기기에서 동시에 접속해 함께 즐길 수 있게 출시되는 콘텐츠

 

PC 온라인게임 ↔ 스마트폰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크로스플랫폼 게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근 가장 흔하게 접하는 크로스플랫폼 게임은 PC와 스마트폰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셜형 웹게임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서비스하는 소셜게임 같은 경우에는 예전부터 스마트폰에서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며, 아이폰의 경우 Flash 플레이어를 지원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이를 사용하지 않는 웹게임도 많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 비록 대부분의 게임이 저사양 그래픽에 맞춰져 있긴 하지만, 넥슨에서 발표한 ‘삼국지를 품다’ 등을 보면 이제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여기에 최근에는 웹게임이 아닌 일반 온라인 게임들도 모바일과의 크로스플랫폼 연동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리뉴얼로 다시 태어난 ‘포트리스 2: 레드’ 는 스마트폰 유저와 PC 유저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LG U+의 LTE 단말기에 기본으로 탑재되어 클라우드 방식으로 게임에 접속해 기존과 동일한 게임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 스마트폰으로 PC 유저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포트리스 2: 레드'

 

iOS ↔ 안드로이드

같은 스마트폰 플랫폼 간의 벽도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통신사나 게임업체들이 구현하고 있는 ‘자체 플랫폼’ 이 그 주인공이다. 자체 플랫폼은 iOS건 안드로이드건 상관 없이 하나의 플랫폼에 접속하여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 사용자 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등 하나의 ‘놀이터’ 역할을 한다.

현재 컴투스, 게임빌, 네오위즈 등의 업체들이 ‘컴투스 허브’, ‘게임빌 라이브‘, ‘피망플러스’ 등의 모바일 플랫폼을 운영/준비 중이며, 최근에는 국내 2위 포털사이트 ‘다음’ 과 일본 최대 모바일기업 ‘DeNA’ 가 손잡고 ‘다음 모바게’ 를 발표하기도 했다.

▲ 이제 더이상 안드로이드와 iOS 이용자들 사이의 벽은 없다
(사진은 네오위즈의 자체 플랫폼 '피망플러스')

 

PC ↔ 콘솔 게임기

한편 밸브는 자사가 운영하는 디지털 다운로드 게임 판매 플랫폼 ‘스팀(Steam)’ 에서 다양한 크로스플랫폼을 시도 중이다. 모바일과의 연동, 스마트 TV와의 연동 등 다양한 스팀클라우드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밸브의 크로스플랫폼 사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작년 2월 PS3와 Xbox360, PC의 멀티플랫폼으로 발매된 공간퍼즐액션게임 ‘포탈 2’ 에서의 PS3-PC간 멀티플레이 연동 시스템을 들 수 있다.

‘포탈 2’ 의 협동 멀티플레이는 PC와 PS3 유저들이 한 서버에 모여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이루어졌다. 밸브는 ‘포탈 2’ 에서 도입된 `스팀플레이` 서비스에 대해 `게임을 구입한 게이머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한 한 많은 기기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포탈 2’ 가 선보인 크로스플랫폼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바로 MS의 가정용 콘솔 Xbox360은 크로스플랫폼 연동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Xbox360이 `스팀플레이` 서비스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밸브의 더그 롬바디(Doug Lombardi) 마케팅 이사의 “Xbox360에서 `스팀플레이` 를 즐기는 것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밸브와 MS간의 사업상 문제로 인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포탈 2’ 가 출시된 지 어언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와 같은 크로스플랫폼을 지원하는 게임이 거의 출시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의 과제로 지적된다. 밸브는 향후 PS3, PC 기종으로 출시되는 멀티 타이틀에도 ‘스팀플레이’ 서비스를 확대시키겠으며, ‘스팀플레이’ 를 통한 크로스플랫폼 출시가 새로운 유통 구조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밝혔으나, 정작 제대로 된 크로스플랫폼 게임의 출시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FPS나 액션 게임의 경우 마우스와 키보드를 이용해 플레이하는 PC 이용자와 아날로그 스틱과 게임패드를 사용하는 콘솔 이용자간의 컨트롤 능력 차이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점도 과제로 지적된다. ‘포탈 2’ 의 경우 그 정도가 덜하지만, 일반적으로 FPS는 키보드+마우스 조합이 게임패드보다 훨씬 사용하기 편하고 정밀하면서도 순발력 높은 조작이 가능하다. 때문에 게임패드의 달인급이 되지 않은 콘솔 유저가 같은 실력의 PC 유저와 맞붙을 경우, 실력 차이가 아닌 컨트롤 방식 문제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콘솔용 마우스 컨트롤러가 존재하긴 하지만 모든 콘솔 유저에게 그런 장비를 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PS3와 PC 크로스플랫폼으로 발매된 '포탈 2'
이와 더불어 PS3 버전을 사면 PC 버전을 공짜로 주는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PC ↔ 콘솔 게임기 ↔ 스마트폰

한편 ‘포탈 2’ 를 포함한 콘솔-PC 크로스플랫폼 정책에 참여하지 않은 MS는 Xbox360과 윈도우폰, PC(윈도우 운영 체제)를 하나로 묶는 또 하나의 자체 크로스플랫폼을 구성했다. 윈도우폰 7 OS를 갖춘 스마트폰을 통해 Xbox 라이브와의 연동을 가능케 해 주는 ‘게임 허브’ 는 Xbox라이브 특유의 아바타 꾸미기, 친구 목록, 업적 관리 등의 시스템은 물론, ‘윈도우폰 7’ 를 통해 내려받은 게임을 Xbox 라이브와 PC에서도 연동시켜 플레이 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같은 게임을 콘솔과 모바일에서 동시에 즐긴다는 크로스플랫폼과는 거리가 멀지만, MS의 기기들을 하나로 모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깊다.

여기에 MS는 스팀형 게임 다운로드 서비스 `게임즈 포 윈도우` 를 발전시켜 PC 게이머들에게 과거 유명 게임들과 Xbox360 게임들을 제공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MS가 그동안 제 3사의 콘솔-PC간의 크로스플랫폼(스퀘어에닉스-‘파이널 판타지 11, 13, 밸브-포탈2 등)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게임즈 포 윈도우’ 를 통한 PC-Xbox360 크로스플랫폼을 위해서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PC 패키지, 콘솔, 온라인, 모바일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EA는 자사의 온라인 패키지 유통 서비스인 ‘오리진(Origin)’ 을 통한 멀티플랫폼을 전개하고 있다. PC, 콘솔, 스마트 모바일, 타블렛PC 등 다양한 환경에서 동일한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크로스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EA는 유/무선 클라우드(인터넷 상의 서버를 통하여 데이터를 저장한 후, 네트워크, 콘텐츠 사용 등 IT 관련 서비스를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환경) 기반의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 최근들어 PC, 모바일, 콘솔 기기의 콘텐츠를 하나로 모으고 있는 MS

 

크로스플랫폼의 미래 전망과 남은 과제

이처럼 많은 크로스플랫폼 시도들이 존재하지만, 최근의 대세는 스마트 모바일 플랫폼과의 연계다. 최근 들어 스마트폰의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온라인, 콘솔 등 타 업계들에서 스마트폰과의 연계를 적극 추진해 나감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 모바일 게임 업계가 자발적으로 크로스플랫폼을 추진하는 경우는 흔히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스마트 모바일 연동은 PC 온라인, 혹은 콘솔 게임 업체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스마트 모바일 기기가 아닌 PC, 온라인, 콘솔, 아케이드 간에 이루어지는 크로스플랫폼 게임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위의 ‘포탈 2’ 에서 언급했다시피 플랫폼 업체 간의 사업적인 마찰이 존재한다. 콘솔 분야의 경우 한정된 유저 풀을 소니와 MS, 닌텐도가 나눠 가지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덜컥 손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업적 요인이 얽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플랫폼 간의 사양 문제도 크로스플랫폼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비록 최근에는 아이폰에서 언리얼엔진이 돌아가고 PS비타에서 PS2급 이상의 그래픽이 구현되는 등 플랫폼 간의 격차가 조금씩 좁아지고는 있지만, 차세대 콘솔의 등장과 함께 그 격차는 다시금 벌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몇몇 기기에서는 다운그레이드를 하는 등 개별적인 조치가 필요한데, 이는 개발사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흥행을 확신하는 대작이 아닌 이상에야 이런 ‘모험’ 에 앞장서는 업체는 없을 것이다.

기존 플랫폼들의 특화도 걸림돌이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자기 자신일지도) 특정 콘솔의 패드만을 고집하는 게이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하드코어 게임의 경우 고사양의 게임용 PC나 최신용 콘솔 기기에서 즐기지 않으면 제 맛을 느끼기 어렵고, ‘키넥트’ 나 ‘위모컨’ 등의 모션 컨트롤러 등 독자적인 조작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게임의 경우 타 플랫폼으로 즐기기가 어렵다. 특정 기기의 유저들이 고착화되면, 크로스플랫폼의 게임이 구축되더라도 결국 활발한 타 기기 사용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jong31_120105_crosst15.jpg

▲ 코어 게이머들은 패드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물며 기기 간의 차이란!

특히 아케이드 게임의 경우 태생적으로 가정용/휴대용 기기와의 크로스플랫폼이 어렵다. 오락실 등에서 직접 코인을 지불하고 일정 시간 동안 게임을 즐기는 아케이드 게임은 타 기기와 크로스플랫폼으로 연결되는 순간 그 가치를 잃어버리기 쉽다. 만약 아케이드 게임과 스마트폰, 혹은 콘솔 기기나 PC가 크로스플랫폼으로 연결될 경우 둘 중 하나는 생명력을 잃게 된다. 때문에 현재 아케이드 게임은 온라인으로 서로 떨어진 곳의 기기끼리 연결하거나, 온라인으로 자신의 게임 정보를 관리하는 등의 연동만 제공할 뿐, 크로스플랫폼의 물결에서는 벗어나 있다.

이러한 점을 통틀어 볼 때, 크로스플랫폼을 통한 게임 시장의 전체적인 통합은 당분간 무리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향후 5년 정도는 최근 대세인 게임/업체 단위의 자체 플랫폼, 클라우드 서비스, 혹은 파격적인 계약 성사로 인한 2~3 플랫폼 간의 협업 등이 주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항상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지 않았나. 지금은 ‘이상향’ 만으로 여겨지는 전 기종의 크로스플랫폼 게임이 등장할 날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만평동산
2018~2020
2015~2017
2011~2014
2006~2010
게임일정
2024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