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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아이돌, 청소년 콘텐츠에 여가부는 왜 규제만 고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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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가족부가 최근 공개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는 대중의 공분을 일으켰다 (자료출처: 여성가족부 공식 홈페이지)

최근 공분을 사고 있는 부처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다. 시작은 지난 12일 공개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다. 가장 격렬한 반대에 부딪친 것은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강조하지 말아달라는 부분이다.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라며 그 사례로 아이돌 외모를 들었다.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면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외모의 획일성은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난다’다.

비슷한 출연자를 많이 내보내지 말라는 부분에 그 예로 아이돌을 예로 든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말하고 싶었던 뜻은 다를 수 있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이돌 외모도 규제하려는 것이냐’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여성가족부도 진화에 나섰다. 여성가족부 이건정 여성정책국장은 20일 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을 통해 본래 과도한 외모지상주의를 자제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으나 사례나 표현에 있어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이를 수정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논란이 시작된 ‘획일적인 외모 기준’에 대한 생각은 여전하다. 특정 외모를 강조하는 방송이 과도한 외모지상주의를 불러올 수 있고, 이 부분이 성인은 물론 청소년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청소년에게 좋지 않다’는 여성가족부가 언제나 내세웠던 논리고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또 하나 의문으로 남는 것은 ‘획일적인 외모 기준’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이 방송은 획일적이고, 이 방송은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을 구분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출연자 수를 반으로 나눠서 한 쪽은 예쁘고 잘생긴 사람, 한 쪽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섭외하면 진정으로 '평등한 방송’일까? 여기에 사람마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외모는 모두 다르다. 무 자르듯이 명확한 기준을 잡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실 출연자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이 방송에 나오느냐보다는 외모는 사람의 가치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정부 규제나 정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속도는 늦더라도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방송이 끝이 아니다? 게임과 개인방송 모니터링도 준비 중

▲ 여성가족부는 게임과 개인방송에 대한 모니터링도 준비 중이다 (자료출처: 여성가족부 공식 홈페이지)

더 걱정되는 것은 여성가족부가 예의주시하는 것이 비단 방송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올해 업무보고에는 게임과 개인방송에 대한 모니터링도 포함되어 있다. 올해 3월부터 성평등 교육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한 모니터링 범위를 게임과 개인방송으로 넓힐 계획이다. 목적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성차별적인 요소가 없는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앞서 방송에서 대중이 공감할 수 없는 내용으로 공분을 일으킨 여성가족부과 게임과 개인방송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성차별적인 콘텐츠를 가려내느냐가 의문으로 남는다. 현재 논란으로 떠오른 ‘아이돌 외모 규제 우려’가 게임과 개인방송 모니터링 과정에서도 터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울러 앞서 이야기한 아이돌에 이어 게임과 개인방송은 모두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다. ‘생활 속 성평등’을 앞세운 여성가족부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청소년에게 인기가 많은 콘텐츠로 집중되는 격이다. 여성가족부는 규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방송이나 게임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내거나 모니터링을 한다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이 역시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무슨 콘텐츠를 청소년에게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가려내고, 성차별 요소가 있다는 게임이나 영상을 걸러내는 것만으로는 청소년 스스로 ‘성차별을 하지 말아야 된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좀 더 장기적으로 접근해 그 어떠한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잡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셧다운제는 진정으로 ‘청소년의 수면권’을 위한 제도인가?

▲ 작년 5월에 열린 셧다운제 진단 및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 현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콘텐츠에 명확한 기준이나 근거 없이 잣대를 들이댄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게임 규제로 자리한 셧다운제도 본래 목적은 ‘청소년 수면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셧다운제가 시행된 지 8년 차인 지금도 청소년은 잠이 부족하다. 여성가족부가 작년 4월에 공개한 ‘2018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평균 수면시간은 주중에 7시간 52분으로 권장 수면 시간인 8시간보다 부족하다.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청소년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걱정되는 부분을 가려낼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병을 고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을 찾는 것이다. 무슨 병인지, 그 병이 왜 났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확실한 처방전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와 함께 진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는 비단 병원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단기 처방으로는 뿌리를 캐낼 수 없다. 그 문제가 생기고, 자라난 시기는 아주 길며 원인이 하나가 아닐 수 있다.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청소년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도 게임 하나는 결코 아니다. 혹자는 공부하느라 밤을 새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청소년도 있다. 심야 게임을 막아서 모든 청소년이 충분히 잘 수 있다면 셧다운제는 옳다. 청소년이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청소년이 충분히 잘 수 있는 사회는 만들 수 없다. 단기보다는 장기로, 무엇이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한 것인지 고민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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