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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질병코드 등록, 동성애 전철 밟으려 하나

지난 5월 17일은 ‘국제 동성애자 및 성전환자 차별 반대의 날’ 이었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동성애를 국제질병분류에서 삭제하기로 한 것을 기념해 제정된 날로, 그 전까지 동성애는 공공연한 질병으로 규정돼 있었다.

게임 전문매체 게임메카가 왜 갑자기 사회적 이슈인 동성애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할 것이다. 굳이 동성애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은 과거 동성애를 둘러싼 역사가 향후 게임업계가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임장애는 20일(현지시간) 시작되는 WHO 총회를 통해 질병목록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동성애는 그보다 70년 전 질병으로 분류됐다가, 29년 전 겨우 공식 질병에서 빠졌다. 한 번 결정된 질병분류가 취소되기까지 40년 넘게 걸렸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다 아물지 못했다. 즉, 동성애가 질병등재로 인해 받은 차별과 탄압 역사를 살펴보면, 게임업계에 미칠 수 있는 파장을 예측할 수 있다.

중세 시대 동성애자는 마녀와 함께 화형 대상이었다. 사진은 요한 야콥 윅의 1585년작 '바덴에서의 마녀사냥' (사진출처: 위키디피아)
▲ 중세 시대 동성애자는 마녀와 함께 화형 대상이었다. 사진은 요한 야콥 윅의 1585년작 '바덴에서의 마녀사냥' (사진출처: 위키디피아)

동성애는 유럽에 기독교가 퍼진 고대부터 규탄받기 시작했으며, 중세시대에는 교회법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다. 이는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시민의식이 변화하며 점차 가라앉았지만, 20세기 중반 질병으로 지정되며 다시금 점화됐다. 1948년 출범한 국제보건기구 WHO는 1949년 첫 국제질병분류 ICD-6을 편찬했는데, 여기서 동성애(homosexuality)는 근본적인 인격장애를 반영하는 정신질환으로 규정됐다. 이후 1952년 미국 정신의학회(APA)가 처음 편찬한 정신장애진단통계편람(DSM)에도 동성애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이자 품행 장애며 치료 대상이라 명시됐다.

ICD와 DSM 질병 등재는 동성애를 '고쳐야 하는,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으로 낙인찍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 사회는 2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사회 질서 회복을 위해 일심단결하던 시기였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동성애가 질병으로 규정되자, 전세계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거세졌다. 동성애자임이 알려지면 성도착자와 같은 위험인물로 취급받아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공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호르몬 요법이나 전기 충격, 약물 치료, 음핵 제거술 등 과격한 치료를 받았다. 당시 동성애는 막아야 하는, 확산되어선 안 될 질병으로 취급됐다.

실제로 이 당시 미국 대다수 주에서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했는데, 기독교적인 사회 분위기와 함께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규정한 ICD와 DSM 질병분류 역시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 실제로 동성애가 질병으로 규정된 직후인 1950~60년대에는 동성애에 대한 공권력 탄압이 극에 달했고, 뉴욕 주에서는 공공시설에서 동성애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해 경찰이 동성애자 바를 습격해 사람들을 연행하는 사건도 횡행했다.

1952년 첫 편찬 당시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한 미국 정신의학회 DSM (사진출처: 아마존)
▲ 1952년 첫 편찬 당시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한 미국 정신의학회 DSM (사진출처: 아마존)

1980년대 치료법이 마땅치 않은 질병 ‘에이즈’가 발견되고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도 동성애가 주 원인으로 지적됐다. 1981년 에이즈가 최초 공표되었을 당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에이즈의 적극적인 치료법 개발 지원과 정책 수립보다는 동성애자를 원인으로 앞세우는 데 치중했다. 정부 차원에서 국제사회를 공포로 몰고 간 에이즈 원인과 확산은 동성애자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이 같은 판단에 과학적 근거는 없었다. 에이즈를 학계에 최초 보고한 마이클 고틀립(Michael Gottlieb) 박사는 에이즈가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임상적 근거를 여럿 제시했다. 실제로 에이즈 사망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아프리카로, 동성애가 원인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들은 ‘동성애는 WHO가 인정한 질병’에서 비롯된 확고한 믿음을 깨뜨리지 못했다. 구시대적 조항이 과학적 근거를 이긴 것이다.

일각에서는 동성애자의 사생활을 헌법으로 보호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1982년 마이클 하드윅이라는 남성 동성애자는 변태성행위를 금지하는 조지아 주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하드윅은 자신의 집 안에서 적법하게 벌어진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한다고 위헌을 주장했으나, 1986년 미국연방대법원은 동성애는 헌법상 보호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는 동성애자의 성행위는 마약 복용과 같이 프라이버시권과 무관하게 처벌해야 하며,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적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이즈를 학계에 최초로 보고한 마이클 고틀립(왼쪽) (사진출처: michaelgottliebmd.com)
▲ 에이즈를 학계에 최초로 보고한 마이클 고틀립(왼쪽) (사진출처: michaelgottliebmd.com)

이 같은 탄압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동성애를 다룬 국내 신문기사를 보면 ‘정신병’, ‘치정살인’과 엮은 사례들을 중점으로 소개한 것을 볼 수 있다. 1968년 한국탄닌공업 회장 윤주복 피살 사건에서는 그와 동성애 관계를 맺던 20대 청년 둘이 범인으로 잡혔는데, 흔한 치정살인이었음에도 동성애가 크게 강조됐다. 국가 차원 규제도 가해졌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잡지에 실린 동성애 소재 수기를 강제 연재 중지시켰고, 1971년에는 퇴폐풍조 정화 계획을 통해 동성애 묘사를 영화나 드라마, 공연 등에서 금지시키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동성애자 8명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대한민국은 성도착 청정국’ 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동성애에 대한 국가적 탄압은 전세계적으로 동성애자 인권보호 운동이 확산되면서 조금씩 감소했다. 시작은 1974년,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회의를 통해 동성애를 DSM 정신질환에서 삭제한 때부터였다. 이윽고 16년 후인 1990년, WHO도 ICD 질병분류에서 동성애 질병코드 삭제를 결정했다. 위에서 언급한 마이클 하드윅 사건의 헌법판결 역시 2003년 들어 번복됐다. 이후 동성애에 대한 사회 전방위에서 법적/규정적 차별 철폐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계나 보수단체에서는 이러한 결정이 정치적 압박에 의한 것이었고, 동성애는 여전히 질병이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90년 ICD 동성애 질병 항목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하위 분류인 '성적성숙장애'라는 항목은 남아 있다. 이는 불확실한 성적 지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증 또는 불안증을 가리키는 '심리학적 질환(psychological condition)'으로, 2014년 들어서야 WHO 자문위원회의 삭제 권고가 진행될 정도로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법적/규정적 차별 문제는 ICD 질병분류 삭제 29년차인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사회적 시선은 말할 것도 없다.

게임장애의 질병코드 등록 관련 총회를 여는 WHO (사진출처: WHO.int)
▲ 게임장애의 질병코드 등록 관련 총회를 여는 WHO (사진출처: WHO.int)

게임업계에서도 이러한 동성애 질병화로 인한 부작용과, 철폐 후에도 30여년 간 이어진 투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20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WHO 총회에 게임장애 질병화를 건 안건(ICD-11)이 상정되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게임은 질병 유발원이 되고, 동성애가 겪은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들어 게임 중독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부터 게임은 교육계와 의료계, 종교계 등에서 끊임없이 공격 당해왔다. 게임장애가 ICD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과거 동성애가 그랬던 것처럼 게이머들과 게임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법적 차별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이다.

게임이 동성애와 다른 것은 기반 산업과 종사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게임이 마치 담배나 술처럼 질병 유발물질로 인정될 경우 이를 방지하고 치유하기 위한 책임은 게임업계로 향한다. 그 결과는 게임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세금으로 돌아올 것이다. 과거 게임사 매출 강제징수를 골자로 한 손인춘법 등 무위로 돌아간 법안이 전세계적 흐름을 타고 다시 돌아올 것은 뻔하다.

2013년 게임업계 매출 강제징수 법안을 낸 손인춘 의원 (사진출처: 국회 의사정보시스템 갈무리)
▲ 2013년 게임업계 매출 강제징수 법안을 낸 손인춘 의원 (사진출처: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증오범죄다. 1950년 이후 지금까지, 동성애자들은 혐오주의자들에 의한 증오범죄 표적이 돼 왔다. 실제로 2011년 미국 증오범죄 1/5이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일어났다. 게임장애의 경우 사회적 차별의 정도가 동성애보다는 약하지만, 지난 십수년 간 국내외에서 일부 강력범죄자들이 게임 중독 상태였다는 경찰 발표가 여러 번 보도되며 게임 과몰입에 대한 혐오 인식이 차츰 확산되고 있다. 그 외에도 사회나 가정에서의 부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낙인, 편견과 차별, 강제적 교정 등도 지금보다 더 심해져 선량한 게이머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동성애가 질병으로 지정되고 삭제되기까지 4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40년간 동성애는 각종 차별과 편견에 시달려 왔으며, 지금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지정되면 이를 원래대로 되돌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기간 동안 고통받는 것은 전세계 게임업계 종사자 및 게이머들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을 만든다는 이유로 과거 동성애자들이 겪었던 불합리한 차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WHO 총회의 신중한 결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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