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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개치는 불법 에뮬 게임기, 게임사는 왜 단속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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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게임기들이 SNS 등지에 광고를 내고 있는 모습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불법 게임기가 SNS 등지에 광고를 내고 있는 모습 (사진: 게임메카 촬영)

무허가 에뮬레이터 롬 파일을 내장한 불법 게임기들이 끊임없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 음지에서만 유통되던 이 제품들은, 최근 몇 년 새 '추억의 게임기'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일반인에게도 판매되고 있다. '나 혼자 산다' 등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수 차례 등장한 데 이어, 네이버나 쿠팡 등 오픈마켓에도 수 년째 버젓이 걸려 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광고도 대대적으로 실렸다. 얼핏 보면 마치 정식 라이선스 제품인 것처럼 당당한 모습이다.

이런 게임기들이 양지로 나선 배경에는, 해당 게임 저작권을 지닌 게임사들이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서지 않고 있는 현실이 크게 작용한다. 실제로 많은 게임사들이 신작이나 IP 자체에 대한 권리침해에는 꽤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고전게임에 대한 저작권 위반 소송은 거의 진행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재작년 SNK가 국내 상장을 준비하면서 '월광보합'이라 불리는 중국산 불법 아케이드 제품 판매 업자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 외에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게임메카가 국내에 지사나 본사를 둔 IP 홀더들에 문의한 결과, 국내 불법 유통되는 게임기들에 대한 저작권 침해 단속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단속을 위한 인력이 불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비정기적으로 단속에 나서더라도 사실상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답변이었다.

국내 게임센터나 게임상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월광보합' 게임기, 물론 불법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게임센터나 게임상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월광보합' 게임기, 물론 불법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2018년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국내 월광보합 판매 업체들에 소송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 SNK 측은 당시 직접적 성과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SNK 관계자는 "법 자체도 애매하고 판결도 오래 걸리기에, 해당 업체들과 유통을 중단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배상 청구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까지 가지 않은 데는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경비 대비 얻을 수 있는 배상금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관계자는 정기적인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저작권 위반은 민사이기에 경찰이 아닌 IP 홀더가 직접 단속해야 하는데, 그 경우 불법 고전게임기 단속을 위한 전담 인력 유지비와 변호사 비용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그래도 2018년 공론화 이후 대놓고 활동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게임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게임업체 국내 지사들은 유통과 마케팅만 담당하는 소규모인 경우가 많아 저작권 위반 단속까지 펼칠 여력이 되지 않는다. 이를 진행하려면 본사 측에서 국내 지사에 지시를 내려야 하는데, 대다수 관계자들은 최근 화제가 되는 모바일게임이나 IP 자체라면 몰라도 고전게임에 대해서는 저작권 단속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닌텐도 e숍에서 판매 중인 고전게임 (사진출처: 한국 닌텐도 e숍)
▲ 닌텐도 e숍에서 판매 중인 고전게임 (사진출처: 한국 닌텐도 e숍)

실제로 적게는 십수 년, 많게는 30~40년 전 게임들은 게임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닌텐도나 소니 등이 자사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고전게임들을 다운로드 방식으로 판매하고는 있지만, 신작 게임이나 하드웨어 판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한 업체 관계자는 "불법 제품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중국 등지라면 모를까, 소규모로 유통되는 국내 불법 고전게임기의 경우 본사에서 큰 관심을 가질 만한 사이즈가 아니다"고 넌지시 얘기했다.

다만, 과거 NDS 시절 불법 롬 유통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본 한국닌텐도의 경우 저작권 단속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닌텐도 관계자는 보안 이유로 단속 활동의 빈도나 결과 등은 공개할 수 없지만, 꾸준히 자사 게임에 대한 저작권 단속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닌텐도의 경우도 NDS, 3DS, Wii, 닌텐도 스위치 등 국내지사 설립 후 유통된 플랫폼에 대한 단속에 집중하고 있어, 과거 게임에 대한 단속은 우선순위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불법 게임기에 대한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판매업자들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과거 게임메카가 게임유통단지 등을 취재할 때도, 대부분의 판매업자들이 '월광보합'류 게임기에 대해서는 촬영을 막는 등 이슈화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예 일부 업체는 판매할 때는 게임이 탑재되어 있지 않는 단순 공기계지만, 상품을 받은 고객이 인터넷에 연결하면 자동으로 수천 가지 게임을 설치해 주는 방식으로 '합법'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판매 당시 자사가 제공하는 게임 목록과 자동 설치를 언급했으므로 저작권법 위반이다.

오픈마켓 등지에서 불법 게임기를 판매 중인 한 업자에게 '불법 게임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느냐'라고 문의한 결과 "우리는 중국에서 수입해 와서 파는 것 뿐이다. 추억의 고전게임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회피를 위해 둘러댄 것인지, 정말 저작권 위반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판매업자 입장에서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이 위법임을 모른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네이버 쇼핑에 '추억의 게임기'로 검색해 보면 다양한 판매자들이 나온다. 대부분 불법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쇼핑)
▲ 네이버 쇼핑에 '추억의 게임기'로 검색해 보면 다양한 판매자들이 나온다. 대부분 불법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쇼핑)

정리하자면, 일부 게임사에서 정식으로 내놓은 미니 콘솔류를 제외하면 이러한 게임기 대부분은 불법이다. 저작권자인 게임사들이 현실적 이유로 적극적인 단속을 벌이지 못하는 사이, 불법 게임기를 판매하는 업자들은 슬그머니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왔다. 결과적으로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오픈마켓에서 당당하게 파는 제품이 불법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단속의 구멍에서, '고전게임은 공공재'라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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