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러스는 JRPG에서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확보한 개발사다. 다만 묘한 공백이 있는 본편을 출시한 후 추가 콘텐츠를 채운 완전판을 발매하는 행보로 상술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면치 못했다. 이런 전례가 있다 보니 페르소나 제작진이 새로운 IP로 신작을 출시한다는 소식에도, 일각에서는 기존애 잘 팔리던 페르소나 시리즈에 새 스킨을 씌운 게 아니냐는 불신의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전작에서 페르소나 시리즈를 토대로 아쉬운 점을 해소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발굴해 재해석하고, 모자란 점은 채워내며 세간의 편견을 뒤집었다. 턴제 전투가 가진 느린 템포는 ‘실시간 전투’ 추가로, 일정이 제한된 여정과 일정량의 시간 투자가 필요한 유대감 형성은 ‘장갑 전차’로 해결했다. 제작진이 직접 “아틀러스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RPG”라 자신할 정도로, 페르소나 시리즈에서 낳았던 단점을 보완하고 아이디어를 보강해 만들어낸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틀러스의 35주년 기념작이라는 명성에 맞춘 조합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선보이는 게임이다. 이에 도입부 또한 세계관을 이해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종족간 차별과 왕이 죽은 이후 국민들의 분위기 등을 적극 전달하며, 게임 내 세계가 가진 ‘불안’을 적극 선보인다. 개발진의 전작인 페르소나 시리즈에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 감정을 섀도 등의 여러 단어로 표현했다면, 본작에서는 그 모습을 ‘인간’으로 그려냈다.
이 인간은 흔히 인류를 지칭하는 인간이 아닌 게임 속 괴물을 지칭하는 단어로 괴리감을 살렸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를 정 반대의 존재에 붙여, 게임 속 세계와 플레이어가 사는 현실 세계 사이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벽을 세우는 듯하면서도 전작들이 캐릭터의 이름만 물어본 것과는 달리,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이름을 각각 물어보며 게임과 현실을 교묘하게 엮어내려는 연출로 흥미를 북돋았다.
게임의 큰 흐름은 페르소나 시리즈의 ‘캘린더 시스템’에 기반한다. 이에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특정 시점 전에 던전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가 제시되고, 그 사이 여러 서브 콘텐츠나 비전투 콘텐츠로 동료를 성장시킨다는 경험은 동일했다. 하지만 ‘실시간 전투’ 덕분에 여러 성장 요소를 챙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게 된다.
던전에서는 두 가지 타입의 전투를 즐길 수 있다. 적이 약할 경우에는 무쌍 계열의 실시간 전투를, 보통 이상으로 강하면 턴제 전투로 나아간다. 이 중 실시간 전투는 플레이어의 레벨에 맞춰 강약이 정해지며, 적에게 피해를 입어도 턴제로 진행되는 커맨드 배틀이 시작되지 않고 그대로 공방을 겨루기에 좀 더 직관적이고 던전 돌파에도 속도가 붙는다.
이어서 레벨이 대등하거나 높은 적과 진행되는 ‘커맨드 배틀’은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프레스 턴 시스템에 세계수의 미궁 시리즈의 전·후열 시스템을 더했다. 프레스 턴 시스템은 적의 약점을 공략하는 등 유리한 판단을 할 경우 0.5턴을 사용하고, 반대로 무효화나 빗나가는 등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2턴을 소비하는 등 전략에 조금 더 치중됐다. 전투 중 이 0.5턴을 얼마나 많이 확보해 덜 맞고 더 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다만 커맨드 배틀에서 턴 절약에 유효한 스킬은 대부분 MP를 사용한다. 이 MP는 회복 수단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전투에 소모된 모든 MP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던전에서 나와야 한다. 던전 곳곳에 워프 포인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최상층에 있는 보스를 원활히 공략하기 위해서는 MP를 최대한 모으거나 아이템을 사오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면, 실시간 전투는 일반 공격으로 진행되기에 MP 소모가 없고, 작은 창으로 즉시 보상이 지급되기에 시간을 포함한 전반적인 자원을 아낄 수 있었다. 평시에 꾸준한 전투로 레벨을 올려 둔다면 전투 피로도가 그만큼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 덕분에 페르소나 시리즈를 플레이할 때처럼 MP 절약을 위해 마냥 적을 피하기보다, 적정선의 성장과 효율을 위해 스스로 전투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게 됐다.
관계와 유대로 이어지는 왕도적 전개
대화 및 서브 퀘스트를 통한 비전투 콘텐츠도 놓칠 수는 없다. 동료 및 NPC와의 대화를 통해 각 인물을 후원자로 삼으면 자연스럽게 랭크가 오르고, 그 과정에서 ‘아키타이프’ 혹은 ‘왕의 자질’에 도움을 준다. 아키타이프는 타 게임의 클래스 혹은 페르소나의 아르카나 시스템과 유사하다. 캐릭터에 어떤 아키타이프를 할당하느냐에 따라 공격 방식이나 스킬이 완전히 달라져, 던전에 따라 아키타이프만 바꾸어주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꾸준한 동행할 수 있다.
또다른 콘텐츠인 왕의 자질은 페르소나 시리즈의 ‘인간 파라미터’ 처럼 한층 더 풍부한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숨겨진 이야기를 이해하기 좋았다. 이 흐름을 따라 후원자 레벨이 오르는 과정에서 각 캐릭터들의 숨겨진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더해 상점 비용 감소 등의 유틸성 기능도 획득할 수 있는 점도 진행에 여러 도움을 줬다. 이에 낮에는 던전 탐사나 서브 퀘스트 및 동료들과의 대화를, 밤에는 주인공 캐릭터의 스탯을 올릴 수 있는 주변 NPC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자발적인 주경야독 플레이에 집중하게 된다.
이렇듯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성장하는 것을 권장하고, 그들과 손을 잡아 왕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주 골자로 삼았다. 하지만 초반에는 하나의 국가를 무대로 종횡무진하는 과정에서 각 인물을 만나 유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일이 어렵게만 다가왔다. 특히 캘린더 시스템이라는 시간 제약으로 인해 생각할 요소도 더욱 늘었다. 세계관이 확장되며 우려가 컸던 와중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콘텐츠 ‘장갑 전차’는 아주 반갑게 느껴졌다.
장갑 전차는 이동장치이자 주인공 일행에 있어 일종의 기지로 사용된다. 넓어진 무대에서의 이동을 담당함은 물론, 이동 중 주요 캐릭터들과의 대화가 가능해 왕의 자질을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전개할 수 있다. 아울러 시간 소모가 없는 순간이동 기능으로 방문 경험이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어 효율적인 성장과 콘텐츠 향유를 가능케 했다. 비전투 콘텐츠를 한곳에 모아둔 일종의 허브가 구축된 덕에 편의성이 대폭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하지만, 가독성이 부족한 UI
이번 작품에서는 아틀러스 특유의 UI도 눈에 들어왔다. 기존 페르소나에서 선호하던 단색 중심과는 달리, 특정 색상과 그 보색을 기반으로 채도조절을 통해 풍부한 색감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흰색의 선과 원으로 그려낸 자유분방한듯 규칙적인 배치로 메타포: 리판타지오만의 비주얼을 보여줬다. 전투를 클리어한 뒤 전투에 참여한 캐릭터들이 같은 길을 걷는 듯한 UI를 보고 있자면, 실제로 목표를 위해 함께 걸어가는 듯한 느낌도 줬다.
다만 이렇게 사용되는 색이 많을 경우, 정보값에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제작진은 주요 텍스트에 두꺼운 세로선을 가진 폰트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강조된 폰트와 화려한 색감 사이에 올라온 한국어 자막은 크기가 비교적 작고 선이 얇아 정보 전달력이 크게 떨어졌다. 크기 조절 등의 추가 설정을 찾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아틀러스가 만들어준 종합 선물세트, 메타포: 리판타지오
이외에도 곳곳에서 아쉬운 점이 비치기도 했지만,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아틀러스가 35주년을 복기하며 팬들과 함께 기념하려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비유하자면 아틀라스 식 테마파크나 놀이공원인 셈이다. 곳곳에 전작들을 연상케 하는 어트랙션을 배치하고, 각 어트랙션의 비주얼과 통로를 독자적인 색감과 분위기로 이어 붙였다. 혁신은 부족하지만, 개발사의 팬이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관람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아틀러스의 역사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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