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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니 우라늄 희석이니 하는 골치 아픈 이야기들이 오가는 모양인데, 일단 박수는 쳐주겠지만 이 '종전'이라는 단어가 영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앞서 벌인 일들도 있고, 수많은 게임 속 역사에서도 평화 협정이나 정전 선언은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니 우라늄 희석이니 하는 골치 아픈 이야기들이 오가는 모양인데, 일단 박수는 쳐주겠지만 이 '종전'이라는 단어가 영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앞서 벌인 일들도 있고, 수많은 게임 속 역사에서도 평화 협정이나 정전 선언은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게임에서 평화 조약이란 전력을 재정비하고 뒤통수를 치기 위한 쿨타임인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상호 협력과 평화를 외치지만, 뒤로는 몰래 전력을 찍어내거나 첩보망을 돌리는 등 음모를 꾸미고 있는 식이다. 부디 현실의 평화는 영원하진 않더라도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라며, 오늘은 게임 속 뒤가 구렸던 불안한 휴전/종전 조약과 통수 사례를 모아봤다.
TOP 5. 에이스 컴뱃 7 스카이즈 언노운
대륙 전쟁 종결 후, 승전국 오시아 연방은 전후 복구와 평화의 상징이라며 거대한 국제 궤도 엘리베이터를 건설했다. 대륙 전역에 평화 유지군을 주둔시키고 무상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그럴싸한 선전도 덧붙였다. 하지만 패전국인 에루지아 왕국 입장에선 이게 영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오시아의 제국주의적 상징이자 자국 주권을 강탈하는 군사적 알박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굴욕을 견디며 이 갈던 에루지아는 정전 체제의 허술한 감시망을 피해 은밀히 드론 무인기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평화에 취해 있던 오시아는 방심했고, 마침내 2019년. 에루지아는 선전포고조차 없이 민간 컨테이너에 숨겨둔 무인기들을 일제히 기동시켜 오시아 본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오시아의 자랑이던 항공모함 켈스트렐 II는 허무하게 격침됐고,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궤도 엘리베이터도 점거당했다. 이 기막힌 선제 역습은 대륙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며 '등대 전쟁'의 막을 올렸다. 평화의 상징이란 언제든 박살날 준비가 돼 있는 거대 표적지에 불과할 뿐인가.
▲ 에루지아군이 기습해 점거한 궤도 엘리베이터 (사진출처: 인게임 영상 갈무리)
TOP 4. 커맨드 앤 컨커 레드 얼럿 2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소련은 무장 해제라는 가혹한 평화 조약을 강요받았다. 이후 연합군은 얌전해 보이는 구 귀족 출신이자 평화 옹호자로 알려져 있던 알렉산드르 로마노프를 서기장 자리에 앉혔다. 로마노프는 공식 석상마다 연합국을 찬양하고 평화주의자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해내며 서방 수뇌부의 경계심을 완전히 녹여버렸다. 하지만 연합군은 이 모든 것이 소련을 짓밟은 연합국을 향한 거대한 복수극의 빌드업이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로마노프는 조약에 명시되지 않은 거대 공중함 '키로프'를 비밀리에 생산했고, 유리의 사이킥 부대로 전력을 재건했다. 결국 연합군 감시망을 무력화시킨 소련은 멕시코를 통해 미국 본토로 밀고 들어와 포탄을 떨어뜨린다. 뉴욕 한복판에 거대 상어 그림이 그려진 키로프 비행선이 떠다니며 자유의 여신상을 부수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다. 위장 평화가 불러온 제3차 세계 대전의 웅장한 서막이었다.
▲ 뉴욕을 타격하는 상어 비행선 '키로프' (사진출처: 인게임 영상 갈무리)
TOP 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전 우주를 공포로 몰아넣은 불타는 군단에 맞서, 오랜 숙적인 얼라이언스와 호드는 불가침 동맹을 맺었다. 그 징글징글한 원한마저 덮어둘 만큼 절박했던 싸움은 연합군의 헌신 덕에 간신히 막을 내렸다. 하지만 평화는 너무나 짧았다. 티탄 사르게라스가 남긴 상흔에서 강력한 자원 '아제라이트'가 분출되면서 또다시 이권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얼라이언스는 행성 치유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호드의 대족장 실바나스 윈드러너는 이를 적을 섬멸할 특급 무기로 여겼다.
실바나스의 여론 선동은 악랄했다. 얼라이언스가 먼저 우리를 칠 것이라는 '선제 공포'를 자극해 호드 내 강경파들을 구워삶았다. 정전 조약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녀는 나이트 엘프 영토를 기습하는 '가시의 전쟁'을 개시해버렸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녀는 생명의 원천인 세계수 텔드랏실과 그 위에 살고 있던 민간인들을 통째로 불태우기까지 했다. 결국 극대노한 얼라이언스가 반격하며, 아제로스는 다시 전쟁의 수렁에 빠졌다.
▲ 실바나스가 쏘아올린 화끈한 캠프파이어 봉화 (사진출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공식 홈페이지)
TOP 2. 스타크래프트
우주 깡패로 불리는 UED(지구 집정 연합) 원정 함대가 저그까지 조종해 가며 군사적 압박을 가하자, 생존의 위협을 느낀 코프룰루 구역의 세력들은 상상도 못 할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사악한 칼날의 여왕 케리건, 프로토스의 피닉스, 테란 저항군 짐 레이너, 그리고 멩스크의 잔당까지. 어제의 원수들이 손을 잡은 것이다. 이 눈물겨운 임시 동맹은 성공적으로 UED의 방어망을 뚫고 코랄 탈환이라는 승리를 이뤄냈다.
하지만 훈훈함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코랄 해방 바로 다음 날, 케리건은 그야말로 통수의 진수를 보여준다. 무방비로 쉬고 있던 동맹군 기지를 그녀의 군단을 이끌고 급습, 동맹군이었던 피닉스와 에드먼드 듀크 장군을 무참히 살해했다. 평화를 약속한 임시 동맹이 하루아침에 저그의 독점 지배를 위한 제물로 전락한 셈이다. 레이너는 언젠가 자기 손으로 그녀를 죽이겠다며 뒤로 물러났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애초에 캐리건은 동맹 훨씬 이전부터 통수를 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 훗날 '고짐고'로 격하될 만한 인물은 아니긴 하다.
▲ 고 피닉스 고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TOP 1. 위쳐 시리즈
제2차 북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닐프가드 제국과 북부 왕국 연합 지도자들은 신트라에 모여 평화 협정을 진행했다. 언뜻 군주들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평화 체제 같았지만, 실상은 북부 왕국들이 막대한 영토적 이득을 챙긴 협의였다. 여기에 북부 연합은 닐프가드 측의 스코이아텔 엘프 장교들을 전범으로 몰아 약속했던 사면마저 뒤집고 목을 쳐버렸다. 승자의 오만이 낳은 가혹한 전후 보복이었다.
이렇게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정전 체제가 오래갈 리 만무하다. 북부 왕국들의 얄팍한 상호 방위 조약은 테메리아의 폴테스트 왕이 암살되자마자 모래성처럼 붕괴했다. 케드웬의 헨셀트 왕은 눈치도 없이 동맹 영토를 침공해 신뢰를 박살 냈다. 사실 이 모든 혼란의 배후에는 복수의 칼을 갈던 닐프가드의 에미르 황제가 있었다. 그는 암살을 통해 북부 왕국들과 마법사를 분열시켰고, 이후 야루가 강을 통해 대규모 제국군을 북상시킨다. 얄팍했던 평화 조약은 그렇게 휴지 조각으로 돌아갔고, 제3차 북부 전쟁이 또다시 대륙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