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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피규어는 게임의 감동을 현실에 붙잡아두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2D 일러스트나 폴리곤으로만 존재하던 최애 캐릭터가 내 책상 위에서 실물로 존재하는 모습은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터다.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켜지 않더라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봐 주는 모습은, 피규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다
※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단언컨대 피규어는 게임의 감동을 현실에 붙잡아두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2D 일러스트나 폴리곤으로만 존재하던 최애 캐릭터가 내 책상 위에서 실물로 존재하는 모습은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터다.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켜지 않더라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봐 주는 모습은, 피규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다.
하지만 고도의 공학적 설계와 미학적 고민 없이 제작된 피규어는 가끔 대참사를 불러일으킨다. 그 중에는 '사신상'이라 불리는 불량품도 있지만, 기획 단계부터 이미 예견된 구조적 실패작들도 존재한다. 전 세계 콜렉터들의 지갑과 멘탈을 사정없이 뽀개버린 사례들이 존재한다. 오늘은 내 최애의 정체성을 기괴하게 뒤틀어버린, 역대급 피규어 설계 대참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봤다.
TOP 5. 스파이더맨 가랑이에 뭐가 보여
TAMASHII NATIONS의 6인치 액션 피규어 라인업인 S.H.Figuarts에서 제작한 스파이더맨 어드밴스드 수트 버전. 제작진은 뉴욕 빌딩 숲을 종횡무진하는 스파이더맨 특유의 역동적인 웹 슬링 동작과 완전히 웅크린 비행 포즈를 액션 피규어에서 완벽하게 재현하고 싶어했다. 문제는 스파이더맨의 액션은 일반적인 캐릭터와는 달리 가동폭이 꽤 극단적이라는 것. 이에 넓은 가동폭을 확보하기 위해 골반과 허벅지 연결 부위에 높은 경사 컷을 넣고, 하부에 회전축을 이식하는 '3분할 엉덩이 설계'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다리를 앞으로 찢거나 벌릴 때마다 적색의 유기적인 수트 라인과 청색 라인이 매끄럽게 연결되기는커녕, 골반 부품이 좌우로 완전히 분할되어 툭 튀어나오는 시각적 재앙이 연출됐다. 덕분에 골반은 기괴하게 좁아 보이고 허벅지만 바깥으로 툭 불거져, 마치 영웅의 쫄쫄이 수트 위에 민망한 여성용 티팬티나 꽉 조이는 유아용 기저귀를 덧입힌 듯한 형상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마치 팬티처럼 보이는 가랑이 사이로 관절 연결부 일부가 삐져나온 듯한 민만한 모습이 연출됐다. 가동성 중심주의가 초래한 대참사라 아닐 수 없다.
▲ 다 좋은데 가랑이 사이에 눈을 둘 수가 없다 (사진출처: amazon)
TOP 4. 저건 살인마의 눈이다
눈동자 도색 방식의 미세한 차이 하나로 인해, 귀엽고 무해한 캐릭터가 순식간에 공포영화 속 연쇄 살인마의 인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발단은 2014년 닌텐도가 야심 차게 출시했던 슈퍼 스매시브라더스에 나오는 동물의 숲 마을 주민 아미보 초기 생산분이었다. 원작의 동글동글한 눈망울을 구현하려 헀는데, 도색 범위 설계에서 미세한 오차가 발생한 것이 화근이었다.
초기 공정에서 사출된 마을 주민의 눈동자는 원작보다 묘하게 크기가 컸고, 초점이 왠지 모르게 뒤틀린 듯한 도색이 적용됐다. 이 미묘한 차이가 부른 효과는 엄청났다. 생기를 잃고 허공을 응시하는 그 눈빛은 팬들 사이에서 '영혼 없는 살인마의 눈'이라 불리며 밤마다 악몽에 나올 것 같은 공포를 자아냈다. 결국 닌텐도는 이후 눈동자 크기를 줄이고 위치를 전면 조정하는 디자인 수정을 거쳐야 했다. 아주 작은 도색 설계 미스가 캐릭터의 정체성을 어떻게 뒤바꾸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 원래 의도했던 피규어 디자인(위)과, 실제로 나온 초회판 디자인(아래) (사진출처: ebay)
TOP 3. 왜 하필 지지대가 저기에...
닌텐도의 아미보 시리즈는 피규어 소장 욕구와 게임 내 특전을 동시에 만족시키지만, 초기 모델들은 조형적 안정성을 위해 도입한 '투명 지지대' 때문에 콜렉터들의 집단 반발을 샀다. 역동적인 자세로 인해 바닥과의 연결 부위가 약한 경우, 튼튼한 고정 보조물이 필수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을 캐릭터와 어우러지지 않는 반투명 기둥만으로 해결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참사들은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서 일어났다. 돌진하는 링크에 굵직한 노란색 플라스틱 기둥을 박아 넣었는데, 색도 그렇고 각도에 따라서는 가랑이 사이에서 나오는 듯한 모양으로 일명 '오줌 지지대'라고 불리기도 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르보사 아미보에서는 공중에 뜬 듯한 포즈를 고정하기 위해 꽂아넣은 투명 지지대가 하필이면 엉덩이와 치마 아래쪽에 꽂혀 있는 모습으로 설계돼 극도의 민망함을 유발했다.
▲ 왜 하필 고정 위치가 저기여야만 했나 (사진출처: ebay)
TOP 2. 가랑이 사이의 기묘한 무엇
포켓몬스터 5세대 메인 전설의 포켓몬이자 '포켓몬스터 블랙'의 타이틀을 당당히 장식했던 레시라무. 북극늑대와 용, 새를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고결하고 신비로운 비주얼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녀석이다. 디자인적인 특이점이 있다면 온몸이 하얀 털로 뒤덮여 있다는 것인데, 양쪽 가랑이 사이에도 곧게 뻗은 털 한 웅큼이 고고하게 솟아 있다. 물론 원작 2D나 게임 그래픽에서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조형이다.
문제는 털이라는 부드러운 소재의 실루엣을 플라스틱이나 봉제 인형으로 어설프게 구현하며 발생했다. 몇몇 양산형 피규어와 인형들이 이 가운데 뻗친 털을 디테일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앞끝이 뭉툭한 원통형 기둥 모양으로 툭 튀어나오게 마감해 버린 것이다. 신비로운 전설의 포켓몬을 순식간에 가랑이 사이에 거대한 무기를 숨긴 '바바리 포켓몬'으로 타락시킨 어설픈 입체화의 표본이다.
▲ 털이라고 말해주기 전엔 절대로 털로 안 보인다 (사진출처: toysonejapan.com)
TOP 1. 마리오... 그거 뭐야?
대망의 1위는 북미의 완구 제조사 잭스 퍼시픽이 1986년 발매한 '월드 오브 닌텐도' 쿠파 피규어다. 메인 피규어는 쿠파지만, 주인공인 마리오도 어떻게든 끼워 넣고 싶어 했다. 특히 쿠파 옆에서 '점프'를 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피규어에 직접 구현하고 싶었나 보다. 이를 위해 쿠파 옆에 점프를 하는 마리오 부품을 붙이고, 그 하부에 스프링을 달아 점프 하는 듯한 기믹을 넣었다.
문제는 이 스프링 장치를 고정하는 축 부분이 하필이면 마리오의 엉덩이와 가랑이 사이, 즉 고관절 정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량 생산 과정에서 이 기계적 돌출부는 숨겨지거나 매끄럽게 마감되지 못했고, 결국 마리오의 하체 중앙에는 원통형의 굵고 긴 돌출부가 그대로 사출됐다. 그야말로 시각적 재앙과도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기능 작동 여부에만 치중해 외형은 신경쓰지 않았던 이 피규어는, 역설적으로 전설의 피규어로 칭송받으며 레어 아이템 취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