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리움의
기적, 진의 본명은 폴리티모스였다. 진짜 이름을 알기까지 9년이나 걸렸지만. 그는 본명을 찾은 후로도 여전히 진이라는 이름을 선호했다. 그 이름은 단순하고 가볍고 친숙했다. 또한 진이 진실로 그리워하는 세월을 담고 있었다. 진은 에페리움에서 태어났으나 여덟 살까지는 그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보았다. 어머니가 의도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에페리움으로 돌아오고도 진은 어린 시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뒷골목을 잊지 못했다. 그러나 거리로 나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진도 감히 나가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3년간은 그랬다. 열네
살이 된 어느 날, 족쇄에 묶인 신세를 참다못한 진은 충동적으로 담을
넘어 밤거리로 나갔다. 비록 그가 자란 거리는 아니었지만 온갖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야시장을 걷자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길도 모르면서 정처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시장의 끝까지 왔다. 에페리움에 돌아온 후 줄곧 갇혀 지내다시피 한 진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 시장이 끝나는 곳에는 선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옛날 진을 귀여워하던 술집 주인의 가게와 비슷해 보였다. 실은 그리 많이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진은 대담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의 반항하고픈 충동도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안에서는 우락부락한 사내들 서넛이 모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잘 차려입은 도련님 같은 진을 본 사내 하나가 기가 막힌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썩 나가." 진은
사내의 말을 무시하고 한쪽 테이블에 앉더니 커피를 주문했다. 주인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진이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또 다른 사내가 그를 불렀다. "아가, 왜
그러느냐? 엄마가 당밀과자를 감춰두고 주지 않더냐?" 사내는 후리후리한 장신에 온 몸이 근육질이었고 드러낸 어깨와
팔에는 무수한 흉터가 있었다. 날렵한 몸만 보면 삼십대 같은데 얼굴은
예순 살은 먹은 사람처럼 주름투성이였다. 젊었을 때는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었을 법했지만 지금은 웃을 때만 부드러운 인상이 되었다. 마침 사내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 세상 엄마들은 아들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살지. 안 그러냐?" 사내의 이름은 베카라고 했다. 그는 검투사였다. 에페리움 왕도 시민들이 가장 즐기는 유흥거리였지만 진은 한 번도 검투장에
가본 일이 없었다. 그날 술을 좀 더 마신 베카와 동료들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진을 검투사 숙소로 데리고 갔다. 그들도 술에 취했기에 그랬을
테지만 한 잔 이상 마시지 않은 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휘장으로만
나눠진 방들은 어디든 땀과 술 냄새가 코를 찔렀고 사방에서 옷을 적게
걸친 여자들이 튀어나왔다가 깔깔 웃으며 사라졌다. 베카는 진을 자기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서 자게 해 주었다. 진은 숨도 못 쉬고 그 모두를 보았다. 최고의 선생에게 교육받고
있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빠르기와 절도 있는 움직임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베카의 몸놀림은 현란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동작뿐이었고, 동작과
동작을 연결할 때도 약간의 낭비조차 없었다. 마침내 멈췄을 때 진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베카가 방으로 돌아오자 진은
벌떡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베카가 씩 웃었다. "잠
설쳤냐? 괜히 따라왔다 싶지?" 물론 베카는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진은 하루 종일 베카를 따라다녔다. 검투장까지 갔다. 처음으로 검투 광경도 보았다. 온갖 사나운 검투사들이 있었지만 베카는 그들 중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런데 베카는 그 점을 불만스러워했다. 마침 젊은 검투사 하나가 베카에게 도전해서 모든 관중이 흥분하며 그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카는 싱겁게 이겼다. 무릎을 꿇은 상대를 죽일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가슴팍을 차 넘어뜨리며 소리쳤다. "나 따위를 이길 자가 없단 말이냐!" 모두가 오만한 외침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진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저건 말 그대로의 뜻일지도
모른다. 베카는 스스로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데 더 나은 실력자를
만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었다. 화가 난 베카는 대기실로 돌아와 진을
보더니 다짜고짜 따귀를 후려쳤다. "아직도 안 가고 여기서
뭘 해!" "그 말, 지키지 못한다면 네 목숨은 내 것인 줄 알아라." 진은 베카의 제자가 되었다. 사흘에 한 번, 밤중에 찾아오는 조건이었다. 때로는 감시가 엄중해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했지만 진은 약속을 거의 지켰다. 그리고 지키지 못할 때는 두 배로 연습해 왔다. 그런 나날은 4년이나 이어졌다. 4년간의 밤 외출이 발각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열여덟 살이 된 진은 예전처럼 남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미행이 붙기도 했지만 따돌리는 진의 실력이 더 뛰어났다. 수업은 순조로웠다. 진은 베카가 검뿐 아니라 어떤 무기든 완벽히 다루는 것에 놀랐고, 베카는 진이 그 모두를 빨아들이는 속도에 놀랐다. 그러는 동안 베카의 이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베카는 북부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젊은 시절은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위대한 도시, 델피나드에서 보냈다. 스물여덟 살에서 마흔 살까지 그는 델피나드에서 가장 악명 높은 존재였다. 그는 암살자였다. 몇 백 명을 죽였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돈을 만졌지만 모조리 써버렸다. 검 두 자루만으로 그날의 빵을 벌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작정이라고 했다. 베카는 아직도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성기의
실력은 사라졌다. 오른손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래 오른손잡이였으나 그 후로 왼손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왼쪽 검으로도 에페리움에서 가장 강했지만 신출귀몰하던
오른손에는 미치지 못했다. 베카의 경쟁자는 다름 아닌 자신의 전성기였다.
`오른쪽 검`이었을 때 그는 델피나드의 일인자였다.
전 대륙의 실력자들이 모여드는 델피나드였으니 어쩌면 전 대륙에서
가장 강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검투장에 소문이 돌았다. 남부에서 최고라는 검투사
`붉은 칼`이 온다고 했다. 왕도가 술렁거렸다.
모두가 베카와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었다. 베카는 웃었다. 그자가 정말로
강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진만이 베카의 내심을 알고 있었다. 베카는
이미 예순 셋이었다. 엄격하게 가다듬어 왔건만 몸은 점차 쇠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이 침침하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몇 년 뒤 베카는
보잘것없는 자에게 져서 죽을지도 몰랐다. 그런 치욕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죽으려면 진짜로 강한 자에게 죽어야지.`
베카가 입버릇처럼 뇌까리던 말이었다. 그 일부라도 물려받은
자로서 진은 이야기를
마친 베카는 내가 정말로 진다면 말이지만, 하고 말하며 웃었다. 진은
웃을 수 없었다. 그때 베카가 잠시 비틀거렸다. 진은 깜짝 놀랐다. 그럴 리가 없는데.
베카는 방향을 돌리려 했지만 붉은 칼이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해 왔다.
잠시 후 다시 한 번 베카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한쪽 팔에 상처를
입었다.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소녀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기를 멈춰야 했다. 진은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귀족들의 특석은 까마득히 멀어보였다. 실은
멀지 않았지만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마침내 특석을 지키는
경비병 앞에 선 진은 안쪽에 앉은 대신을 향해 외쳤다. "난
폴리티모스 왕자다! 명령이니 당장 경기를 멈춰라!" "저 여기 있어요!" 그리고 베카는 쓰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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