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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엠의 역사 '봉천동 오락실-루니아전기-크리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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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엠의 역사 '봉천동 오락실-루니아전기-크리티카' <<


좁은 게임업계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주역이 돼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죠. 이런 분들 중에는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게임메카는 [1%]라는 연재코너를 통해 결코 평범하지 않거나 특별한, 혹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분들을 찾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좀 늦긴 했지만 두 번째 연재 주인공은 올엠의 창립멤버인 이종명 대표, 김영국 이사, 권혁 이사입니다. 봉천동 패밀리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 한 청년이 있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건장한 청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94 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공부도 공부지만 '즐거움을 찾는 것'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현재 올엠의 이종명 대표 이야기다. 그는 학창시절 우연한 기회에 외국 기업 탐방 프로그램으로 모토로라 미국 본사를 방문하게 됐는데, 여기서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쌓게 된다. 가이드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는데 '내 인생은 이 회사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나에게 너무 많은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한 곳이기 때문이다'라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 혹은 꿈. 이를 기반한 열정이 몸 구석구석을 파헤치며 스며들었다. 이후 그는 과거 재수학원에서 인연을 맺은 한 동기에게 '회사 설립'을 제안했다. 듣기만 해도 즐거운 '게임회사'였다. 이를 시작으로 현재 올엠의 뼈대가 만들어졌다. 때는 1996년. 초라한 하숙방에서 오직 '달콤한 꿈'와 '열정'에 젖어 시작한 일이었다. 

-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니 태생부터 게임을 좋아했다던 이 남자. 10대 초중반, PC를 접해보고 어린 소년이 다루기 힘든 프로그램을 만지며 게임 제작에 호기심을 키웠던 남자. 바로 이종명 대표와 서울대학교 동기이자 현재 올엠의 개발총괄을 맡고 있는 김영국 이사 이야기다. 그가 얼마나 게임을 좋아하는지는 커리어가 증명한다. '둠'과 '퀘이크' 시리즈는 물론, 대학시절 당시 봉천동 오락실 일대를 주름 잡으며 대전격투게임으로 꽤나 이름을 알렸기 때문. 특히 '버추어파이터' 시리즈를 좋아했는데, 팀을 구성해 당시부터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즐기곤 했다. 이런 그에게 이종명 대표의 '회사 설립' 제안은 무척이나 달콤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김영국 이사는 95년 이미 '게임회사' 설립을 꿈꾼 경험이 있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혈기 넘치는 두 청년에게 회사 설립 이후 갖가지 어려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고민거리도 안 됐다. 이런 고민을 상쇄하고도 남을 도전에 대한 열정이 충분하다 못해 넘쳤기 때문이다. 

▲ 작년 10월, 신작 '크리티카'를 소개하는 김영국 개발이사


- 여기 또 한 명이 있다. 김영국 개발이사의 죽마고우. 바로 올엠의 그래픽 총괄 이사로 재직 중인 권혁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권 이사는 김영국 이사와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던 권 이사는 기상천외한 작품으로 동기들을 감탄시켰고, 이를 계기로 김영국 이사와 친분을 쌓게 된다. '즐거움'이라는 코드가 맞았던 셈. 권 이사는 집안의 강요로 공대에 입학했지만, 디자인에 관심 있는 그에게 학교생활은 영 맞지 않았다. 결국 내 길이 아니다 싶었던 그는 자퇴를 하고, 군대를 다녀와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로 앞날 설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김영국 이사의 '달콤한 이야기'가 그를 흔들었다. 맞다. 바로 회사 설립 이야기다. 김 이사 만큼 게임을 즐겨한 건 아니지만,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디자인의 한계가 없는 게임은 꿈틀이는 그의 감각을 채워줄 충분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역시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또 한 명이 합류했다. 

- 이렇게 해서 현재 올엠의 핵심멤버라 할 수 있는 세 남자가 모였다. 어찌 보면 특이하다. 학벌 좋고, 능력 있고, 전공만 살려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법한' 그런 청년들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비슷한 목표가 있었고, 무언가에 도전해보고 싶은 근질거림이 더 컸다. 특히 게임개발에 꿈이 있던 김영국 이사는 '즐거움' 혹은 '재미'의 본질을 아는 남자였다. 봉천동 일대를 주름 잡던 시절에도 그는 '잘하는' 게이머라기 보다 '재미있게 하는' 게이머에 더 가까웠기 때문. 그러나 당장 게임을 제작하기는 어려웠다. 경험도 전무한데다, 자금부터 시작해 기반이 없었던 게 이들을 가로 막았다. 잠시 게임의 꿈은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즐거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동기부터 시작해 후배까지, 마음 맞는 동료들도 슬슬 끌어모았다. 이렇게 모인 이들 모두 '즐거움'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던 만큼, 하숙집 형광등은 꺼질 틈이 없었다. 




▲ 김영국 개발이사(좌), 권혁 디자인 총괄 이사(우)

- 이들이 모여 처음 내놓은 작품은 2000년도에 서비스를 시작한 인터넷 개인 방송국 '끼리'였다. IT의 발전으로 수혜를 받은 지금의 세대라면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이름이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당시 '끼리'는 약 100만명의 이용자를 끌어모여서 나름 이름을 알렸지만, 결과적으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끼리'는 세이클럽 등에 밀리며 아쉽게 서비스가 종료됐다. 이후 그들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그렇게 원하던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지금 타이밍에 신생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 게임산업은 자본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래서 그들은 처녀작인 '루니아전기'의 기획하고 프로토타입을 준비하게 시작했다. 

- '루니아전기'의 프로토타입을 준비하던 시절, 다행히 권혁 이사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자금 문제는 해결했다. 회사를 만든 96년 이후 이종명 대표와 김영국 이사가 군 입대를 했는데, 혼자 남은 권혁 이사가 웹 사이트 제작으로 뜻밖에 성과를 냈기 때문. 특히 그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는데, 그가 제작한 '취화선' 홈페이지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해당 웹사이트는 2002년 칸 국제 광고제에게 은사자상을 수상한데이어, 권 이사가 05년 향후 국내를 이끌어 갈 차세대 디자이너로 선정됐기 때문. 그가 웹 에이전시로 자금을 조달하고, 나머지 멤버는 '루니아전기'에 올인했다. 물론 초기 개발 멤버가 10여명 남짓 밖에 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삽질'은 서서히 가속화됐다. 

▲ '루니아전기' 초창기 홍보이미지


- 그들의 '삽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또 언급해야 할 인물이 있다. 현재 올엠 제작기획팀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조경식 실장과 프로그램팀 총괄을 맡고 있는 나승원 실장이다. 조경식 실장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나승원 실장은 연세대학교 생물학을 전공했다. 맞다. 두 인물 역시 '게임'과 전혀 연관이 없다. 이들과의 연결고리는 과거 '봉천동의 추억'에서 찾을 수 있다. 조경식 실장은 김영국 이사가 '버추어파이터'로 한창 날리던 시기, 뒤늦게 합류해 무서운 '신예'로 각광받았기 때문(웃음). '루니아전기'를 막 기획하던 시기, 김영국 이사는 두 후배에게 연락을 했고, 역시나 '달콤한 이야기'로 입사제안을 했다. 당시 조경식 실장은 자신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기에 이 달콤한 이야기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역시 창립멤버가 됐다. 당시를 떠올린 조경식 실장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당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법조인이신데, 집안의 강요로 전공을 선택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거 같고요. 그러면서 문득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막상 찾아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러다 게임산업이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여기저기 소수문 끝에 한 동기와 인맥이 돼 게임회사에 입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과거 오락실에서 인연이 된 김영국 이사가 입사 제안을 하더군요. 결국 이쪽으로 오게 됐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아무런 경험이 없는 분들이더라고요(웃음). 당황하긴 했지만, 그때부터 함께 공부를 시작했죠" 


▲ 아버지의 반대에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던 조경식 실장

- '루니아전기' 개발 돌입 이후 올엠이란 법인을 세운 이들은, 그때부터 즐거운 '삽질'을 시작했다. 당시 그들은 게임이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 지 전혀 '감'이 없었다. 대충 이렇게 해보면 되겠지,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도전한 게 전부였다. 이렇게 저렇게 하고, 이 정도 인력을 충당하면 1년 정도면 충분히 원하는 게임이 완성될 거 같다는 허무맹랑한 계획도 세웠다. 그렇게 짜인 계획대로 게임제작에 몰두하고, 결과물이 나와야 할 때쯤 비로소 프로도타입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웃음). 워낙 '삽질'이 많았던 탓에 프로도타입이 나온 것만으로도 그들은 만족해야 했을 정도. 다만 당시 MORPG는 흔하지 않은 장르였기 때문에 가능성을 본 이들이 투자를 하고, 정부의 게임 사전제작 지원 프로그램으로 자금도 지원받았다. 게임 제작의 고단함을 몸소 느낀 그들이었지만 '즐거움'이라는 목표가 이를 감내할 수 있는 목표의식이 됐다. 김 이사는 "악으로 깡으로 덤볐는데,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일"이라고 당시를 회상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어코 '루니아전기'의 테스트 버전을 완성한다. 

- 결과는 나름 뿌듯했다. 이미 해외에서 '와우'가 등장해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없이 하숙방에서 시작한 그들에게는 '루니아전기'에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 몇 차례 테스트가 나름 성과를 거두자 퍼블리셔로 넥슨이 손을 내밀었다. 이후 2005년 지스타에서 '루니아전기'는 넥슨 부스에서 특별 프로모션까지 진행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6년 1월 24일, 넥슨닷컴을 통해 마침내 공개 서비스가 시작됐다. '게임제작'의 꿈을 안고 시작한 그들의 실체 혹은 결과물이 비로소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루니아전기'는 다른 게임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흔들리기도 했지만, 초기 2만명의 동접을 찍고 '몬스터 개간지'라는 식의 그들만의 즐거움 가득 배인 업데이트를 꾸준히 단행하며 정체성을 이어갔다. 워낙 애착이 있던 탓인지 인기가 식은 서비스 4년차에도 2D 그래픽을 3D처럼 입체화하는 대대적인 패치와 함께 게임명을 '루니아Z'로 바꿨다. 이후 아쉽게도 서비스가 종료됐지만, 현재 '루니아Z'는 글로벌 프리서버로 전향하며 그들의 처녀작을 아껴준 이용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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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전! 서울대 동기 넥슨 민용재 전 이사와의 '특별한' 퍼블리싱 계약식, 당시에는 이래서 재미있었다


▲ 기억하나요? 당시 김영국 이사는 '루니아전기'로 '세계정복'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됐다



▲ '루니아전기' 서비스를 앞두고 OST를 부른 김수정양에 기뻐하는 김영국 이사, 볼수록 유쾌한 사람이다


▲ 06년 6월 도입된 '고블린개간지' 업데이트, 사실 이런 표현도 올엠이기에 가능하다 

- 현재 그들, 정확히 말해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올엠이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작품은 '크리티카'다. 시원시원한 액션을 강조하면서 '스트레스 해소' 게임으로 준비한 두 번째 MMORPG. 이 게임은 어찌보면 봉천동 패밀리의 전공이다. '버추어파이터'부터 시작해 액션에 큰 매력을 느낀 이들이 기반이 됐기 때문. '크리티카'의 바로 이 액션의 즐거움을 그대로 따른다. 각 직업에 따라 조작 등을 통해 완전히 다른 체험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제작됐기 때문. 어떤 직업은 베는 맛이 탁월하게, 또 어떤 캐릭터는 AOE를 하는 느낌처럼, 연타와 콤보 위주 캐릭터는 그에 맞는 조작과 비주얼 효과로 '느낌'을 달리 했다. 지난 몇 차례 기간 동안 이용자들의 유저들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수용하면서 현재 완성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는 2월 중, 이번에는 넥슨이 아닌 NHN한게임을 통해 공개 서비스에 돌입할 예정이다. 

- 그러나 '크리티카'는 어찌보면 시장 트렌드에 부합하는 게임은 아니다. 액션을 기반에 둔 MORPG는 이미 몇 년 전 'C9'와 '마비노기 영웅전'이 휩쓸었고, 현재는 그 여파가 미미하게 남은 상황이기 때문. 그럼에도 김영국 이사와 핵심멤버들은 자신이 있다. 맞다. 절대 깨어지지 않는 그들의 개발철학이 몸 구석구석에 확실히 박혀 있고, 바로 여기서 자신감이 샘솟기 때문이다. 올엠의 개발철학은 하나다. 바로 FUN, 즉 즐거움이다. 김영국 이사는 20세기가 디자인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FUN의 시대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원리에 가장 선봉에 서 있는 게 바로 게임이라고 말한다. 조직이 커질 수록 그가 올엠만의 즐거운 문화를 꾸준히 전파하려는 데 무게추를 두는 이유다. '크리티카' 역시 FUN에 기반한 게임이다. 게다가 액션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 '아키에이지'가 시장을 흔들고, 각종 트렌드 장르가 인기를 얻고 있어도 '크리티카'의 성과에 자신이 있어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렇다고 올엠이 급변하는 시장에 대해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 김영국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게임산업이 국내에 정착한 지 어느덧 15년 가까기 됐죠. 시스템화도 잘 돼 있고, 퍼블리셔도 체계가 잘 잡혀있어 확실히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편해졌습니다. 그만큼 지식 공유도 잘 되고 있고요. 몸으로 헤딩하는 시대는 지난 거 같아요. 그런데 그만큼 많이 회사가 덤비기 때문에 시장 자체는 어려워진 거 같아요. 게다가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시장도 열리고 있고요. 우리는 지금 시장이 도대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계속 주시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FUN을 보기 때문에, 앞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놀 것이냐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만큼 내부에서도 FUN을 위한 고민과 공부는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기존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면 '크리티카'로 오시면 됩니다. 좋은 선택이죠(웃음)." 

 

▲ `크리티카`의 2차 테스트 프로모션 영상


▲ 2012년 2월 인터뷰 당시 김영국 이사, 확실히 즐거움을 꿰뚫고 있는 콘셉 (관련 인터뷰 링크)


- 이들은 최근 게임에 대한 암담한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정부 규제부터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까지, 갈수록 문제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우울한 건 어찌보면 이들이다. 집안의 반대나 개인적인 걱정을 뒤로 한 채, 순전히 꿈만을 좇아 달려온 10여년 세월의 가치가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영국 이사는 게임을 너무 두려워하는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21세기 문화의 중심은 게임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쌍방향 인터랙션이 되는 건 게임뿐이니까요. 글로 써있는 걸 영상으로, 영상이 다시 게임으로 가는 게 다음 문화 엔터테인먼트죠.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이러한 부분에 너무 겁을 먹은 게 아닌가 싶어요. 시대는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과거 '금주법' 같은 법안들이 나오는 게 안타깝습니다. 문화에 중심에 서 있고, 또 이런 산업이 커지고 있는데 이걸 죽이면 미국이나 일본 문화를 수입할 생각인 건지 답답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 건, 사회는 이론이 받쳐주면 인식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대학과 연계된 연구 프로젝트가 많은데, 이게 기반이 돼 분위기를 형성하잖아요. 한국도 이런 게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창의력이 높아지는 등 게임의 긍정적 요인도 더 밝혀내야겠죠. 물론 저희도 많이 노력할 생각입니다(웃음)" 

- 게임 개발자로써 살아간다는 것. 사실 어려운 질문이다. 해당 질문에 게임메카와 만난 김영국 이사, 권혁 이사, 조경식 실장은 쉽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현재 그들은 게임 개발자로써 삶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들은 이렇게 답변했다. 

"게임 2종을 다 만들지 못했는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만드는 만큼 자식을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는 그런 기분이에요.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요. 우리가 경험했던 게임이 과거 1세대가 만든 게임이라고 하면, 우리는 2세대 혹은 3세대가 돼 다음 세대에게 이와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런 역할을 하는 직업인 거 같아요(조경식 실장)"

"삶을 살아가며 느낄 수 없는 부분에서 문화를 창조해 여러 사람에게 경험을 주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하는 경험, 그리고 다른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까지 무척 다양하죠. 상상력과 창조에 기반한 대리 경험은 홀로그램같은 차세대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게임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전달 수단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인 만큼, 이를 통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게임산업 출신 대통령이 나오기도 희망합니다(김영국 이사)"


▲ 이사님, 다음에 기회가 되면 확실한 콘셉 사진으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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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카 . 01. 01
플랫폼
온라인 |
장르
액션 RPG
제작사
올엠
게임소개
초(超)액션을 표방한 '크리티카'는 빠르고 통쾌한 액션을 내세운 액션 RPG로, 카툰 랜더링 그래픽의 특성을 살려 약간은 과장되고 화끈한 액션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저사양에서도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할 정도의 최...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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