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겹도록 길었던 여름을 지나 드디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죠. 더위를 피해 곧잘 자연인의 모습(?)으로 잠들곤 하던 필자도 어젯밤에 결국 잠옷을 꺼냈습니다. 갑작스런 외부온도 변화는 면역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 독자 여러분도 환절기 질병예방에 각별히 유의하세요!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왜 하필 사계 중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지에 대해선 ‘날씨가 선선해서 책 읽기 좋다’는 뻔한 얘기부터 ‘출판사의 상술’이라는 음모론까지 의견이 분분한데요. 필자의 생각에는 추석연휴가 끼여있어 놀 거 다 놀고도 책볼 시간이 조금은 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순위 정하는 남자]는 독서의 계절, 가을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게임소설 TOP5로 꼽아봤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머리 싸잡고 꾸역꾸역 번역해야 할 원서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깔끔한 완역을 거쳐 국내 출간된 게임소설이 의외로 정말 많거든요. 우리 모두 이번 가을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는 잠시 내려놓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게임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요?
5위. 데드 스페이스, 알트만은 정말로 ‘순교자’였을까
▲ 유니톨로지의 성인 '알트만'의 진실이 담긴 '순교자' (사진출처: 제우미디어)
‘데드 스페이스’는 좀비물 특유의 긴박감 넘치는 구성과 밀폐된 공간, 알 수 없는 외계물체가 주는 우주적 공포가 어우러진 걸작이죠. 그저 연인이 걱정됐을 뿐인 평범한 엔지니어 ‘아이작 클라크’가 본의 아니게 인류의 명운을 걸고 벌이는 사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언데드 괴물 ‘네크로모프’가 온갖 방법으로 ‘아이작’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다채로운 데드씬이 유명한데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공포는 뒷전이고 액션만 강조해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를 하다 보면 작중 사이비종교 ‘유니톨로지’ 때문에 인내심에 암세포가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온갖 이교 신앙에 외계인 숭배까지 뒤섞인 정신 나간 집단이 죽음을 통한 구원이랍시고 온갖 악질적인 사고를 일으키죠. 그렇게 죽는 게 좋으면 자기들끼리 오순도순 그리하면 될 텐데 왜 남들까지 끌어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알트만을 찬양하라!” 유니톨로지 신자들이 목청껏 외치는 구호죠. 알트만이란 예수나 무하마드처럼 유니톨로지에서 모시는 성인입니다. 그는 수백 년 전 지구정부에 맞서 외계물체 ‘블랙 마커’의 존재를 대중에 알리고 끝내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알트만은 정말로 만악의 근원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희생자일 뿐일까요? 진정한 진실은 소설 ‘순교자’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더불어 '데드 스페이스' 신작 소식이 어서 들려오길 기원한다 (사진출처: EA)
4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왕국에 파멸을 몰고 온 ‘리치왕의 탄생’
▲ 블리자드 문학의 최고봉 '아서스: 리치왕의 탄생' (사진출처: 제우미디어)
블리자드는 게임계의 내로라하는 이야기꾼입니다. ‘디아블로’와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3개 세계관을 구축하고 확장시키며, 게이머들을 놀랍고도 매력적인 모험 속으로 이끌죠. 서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블리자드이기에 자사의 대표작들을 꾸준히 소설로 출간하고 있는데요. 게임 속에서 못다한 얘기를 소설로 내놓아 세계관을 보다 풍성하게 가꿔나갑니다.
그간 블리자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만큼 국내에도 수많은 관련 소설들이 나와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리처드 나크作 ‘디아블로: 죄악의 전쟁’ 3부작과 크리스티 골든作 ‘스타크래프트’ 공식 소설들, 그리고 두 작가가 나눠 쓴 ‘아서스: 리치왕의 탄생’, ‘제이나: 전쟁의 물결’, ‘볼진: 호드의 그림자’ 등 ‘워크래프트’ 속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게임만해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깊이 있는 심리묘사와 박진감 넘치는 상황전개가 일품이죠.
위 소설들을 모두 살펴보기엔 지문이 부족한데요. 만일 단 하나를 추천해야 한다면 단연 ‘아서스: 리치왕의 탄생’을 꼽습니다. 한때 백성들을 지키고자 매진했던 정의로운 왕자가 망자들의 군주 ‘리치왕’이 되기까지의 비극적인 여정이 한 권에 담겼어요. ‘아서스’의 인기를 방증하듯 해외에선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 국내에서도 교보문고 인기작에 들기도 했는데요. 2010년 당시 실제 ‘서리한’ 진검을 증정하는 이벤트로 눈길을 끌기도 했답니다.
▲ 이것이 당시 증정된 '서리한' 진검, 물론 도검소지증이 필요하다
3위. 아키에이지, ‘전나무와 매’ 그리고 ‘상속자들’로 살펴보는 세계의 기원
▲ 인기작가 전민희가 집필해 화제를 모은 '전나무와 매' (사진출처: 제우미디어)
‘아키에이지’는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아버지 송재경이 야심 차게 선보인 MMORPG입니다. 비록 기대만큼의 대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양질의 콘텐츠와 풍부한 자유도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죠. 특히, 국내 온라인게임에선 보기 드문 탄탄한 세계관 설정이 호평을 받았는데요. 여기에는 ‘아룬드 연대기’와 ‘룬의 아이들’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전민희의 손길이 닿아있습니다.
당시 전민희 작가는 Project X라는 이름의 새로운 세계관을 한창 구상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중 마침 엑스엘게임즈의 협업제의를 받아 이를 ‘아키에이지’에 활용하게 된 것이죠. 그녀는 기존에 짜놓은 설정과 게임사측 요구사항을 적절히 배합해 하나의 거대한 판타지 세계를 구축했는데요. 이를 활용한 소설들을 통틀어 ‘아키에이지 연대기’라 부릅니다.
책으로 출간된 ‘아키에이지 연대기’는 ‘전나무와 매’와 ‘상속자들’이 있습니다. 어머니 신이 만든 '정원'을 찾아 떠난 ‘최초의 원정대’ 12인의 이야기인데요. 등장인물들은 현재의 ‘아키에이지’ 유저 입장에선 거의 신적인 존재들이죠. ‘전나무와 매’는 장르소설로서는 유일하게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가 추천하는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이외에도 ‘11월 밤의 이야기’나 ‘누이 여신의 촉복’ 등 잡지에 실리거나 작가 블로그에서 연재된 단편들이 많이 있답니다.
▲ '최초의 원정대' 12인을 다룬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엑스엘게임즈)
2위. 메트로 2033, 핵전쟁 이후 모스크바 지하 속 ‘어두운 터널’과 ‘사라진 태양’
▲ 국내 SF팬덤의 성원 덕분에 본편은 물론 외전도 출간됐다 (사진출처: 제우미디어)
흔히 핵전쟁 이후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게임이라면 ‘폴아웃’을 떠올리는데요. 4A게임즈에서 개발한 FPS ‘메트로 2033’과 후속작 ‘메트로: 라스트 라이트’도 매력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묘사로 마니아들의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도 동명의 소설이 있죠. 다만 앞서 소개한 책들이 게임에 기반한 것과 달리 ‘메트로 2033’은 소설이 원작이랍니다.
러시아 소설가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는 2005년 발표한 ‘메트로 2033’으로 일약 흥행작가로 발돋움했습니다. 핵전쟁 이후 낙진을 피해 모스크바 지하철로 삶의 터전을 옮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SF팬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데요. 그가 직접 집필한 ‘메트로 2033’과 후속작 ‘메트로 2034’ 외에도 여러 재능있는 작가들이 합류해 거대한 ‘메트로 유니버스’를 형성했습니다.
국내에는 ‘메트로 2033, 2034’와 외전 ‘어두운 터널’, ‘사라진 태양’이 출간됐는데요. 오늘 선정한 소설 중 유일하게 주요 독자층과 게임 유저층이 일치하지 않는 재미난 경우입니다. 게임과 별개로 국내 SF마니아들에게 필독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성원 덕분에 지난해에는 작가가 직접 방한해 광화문 교보문서에서 사인회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현장에는 방독면을 착용한 열성팬들로 성황이었다는 후문입니다.
▲ 한국팬들을 만나러 온 드미트리, 팬의 손에 들린 방독면이 범상치 않다
1위. 더 위쳐, ‘이성의 목소리’와 ‘운명의 검’ 하얀 늑대가 거기 있었다
▲ 리비아의 하얀 늑대, 게롤트의 전일담들 다룬 원작 소설 (사진출처: 제우미디어)
올해 상반기 가장 ‘핫’한 게임을 꼽으라면 대부분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미려한 그래픽으로 표현된 광활한 오픈월드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 강렬한 액션과 방대한 콘텐츠까지… 모두들 역대급 RPG가 등장했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죠. 고독한 괴물사냥꾼 ‘리비아의 하얀 늑대, 게롤트’는 바야흐로 게임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가 됐습니다.
당시 폴란드의 작은 개발사였던 CD프로젝트레드는 자국의 인기 판타지소설을 차용해 ‘더 위쳐’ 1편을 만들었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흔히 하는 ‘위쳐’란 표현이 게임 개발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겁니다. 소설에 쓰인 ‘베드막(Ведьмак)’이란 단어는 슬라브 신화 속 ‘남자 마인’을 뜻하는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영단어가 없어 결국 마녀(Witch)를 조금 고친 ‘위쳐(Witcher)’라고 임의로 지었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게임은 소설 완결 이후에 새롭게 펼쳐지는 주인공 ‘게롤트’의 여정을 그립니다. 즉, 현재 나와있는 ‘더 위쳐’ 소설은 전부 게임의 과거 얘기에요. 원작은 5권으로 이루어진 장편과 단편집 2권으로 나뉘는데요. 아쉽게도 국내에는 단편집 ‘이성의 목소리’와 ‘운명의 검’만이 나와있답니다.
여기에는 조금 슬픈 사연이 있는데요. 이 두 권은 ‘더 위쳐’가 널리 알려지기 훨씬 전에 국내 출간돼 여태껏 별다른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더 위쳐 3’ 덕분에 최근에야 명작대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했는데요. 이에 따라 남은 장편들도 곧 국내에 선보여질 계획입니다.
▲ '더 위쳐 3'에 빠져들었다면 원작도 마음에 들것이다 (사진출처: CD프로젝트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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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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