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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동성] 왜냐고 묻지 마라, 그저 법을 준수한 것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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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심의 문제를 두고 또 한번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6일, 게임위는 스팀 서비스에 심의 규정을 적용하겠다며 해당 업체에 관련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이유는 스팀이 국내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임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 공문의 골자만 뽑아보자면 “스팀 서비스는 한글화 과정을 거친데다 결제 서비스까지 지원하고 있어 국내 이용자들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된다.”는 겁니다. 이는 게임법 21조에 명기된 “국내 유통을 목적으로 하는 자”에 해당하니, 시정 기한 내에 규정에 따라 심의를 받거나 서비스를 중지하거나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죠.

게임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디게임 쪽에도 손을 뻗쳤습니다.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모여 서로 만든 게임을 공유하는 ‘나오티’ 등의 사이트에도 “게임법을 어기고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비영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유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게임법에 따라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해당 사실이 각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되자 업계 관계자들과 이용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게임메카 독자 분들도 해당 기사가 게재된 이후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셨네요.

ID newcontinue님은 “한국은 정서가 다르다 그거 하나가지고 한국에 퍼지는 모든 컨텐츠에 대해서 사전심의라는 폭력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젠 아예 비영리적 목적으로 제작하는 게임에게도 사전심의 받으라고 하고 있으니 이건 엄연한 권력 남용입니다.”라며 게임위를 강력히 비난했고, ID pjn8643님은 “게임위가 이번 스팀에 대해서 심의하라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하필지금이란 말이냐? 이미 스팀이 글로벌 서비스할 때부터 이렇게 일을 추진했어야 하지 않았냐구...이런 서비스가 지속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런 식으로 제재를 가하려는 게임위의 행동을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게임위는 겉으로 공익적인 문제를 거론하면서 오히려 딴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해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밸브와 게임위 간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 건 우리 자국 스팀이용자들이다. 게임위는 우리 자국 스팀이용자들의 피해를 생각하고 어느 정도 조율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무작정 등급시비를 걸고 우리 국내 이용자들이 피해를 본다면 게임위는 이 피해에 대해서 충분히 보상해줄 수 있는가?”라며 적용 시기를 두고 비난했습니다.

물론 반대되는 의견도 상당합니다. ID baldur님은 “반대로 만약에 저걸 차단 안하게 되면? 해외에서 결제 받는 게임이 한국에서 서비스 가능해도 심의 안 받아도 돈 벌 수 있게 되는 판례를 남기게 되서 포르노 게임물 황제온라인같은 사행성게임이 심의는커녕 단속조차 못하고 서비스 하는 꼬라지를 우리나라에서 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사람은? 이정도로 법이 허술한 걸 욕해야 하는데 그냥 단순히 법만 집행할 수밖에 없고 직접 업무 정지도 못시키고 경찰에 신고해야한 하는 단체만 욕하고 있는걸 보자니 참으로 갑갑할 따름이네요.”라며 게임위가 아닌 현행법을 꼬집어 문제를 지적했고, ID stella님은 “근데 잘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무조건 게임위 싸잡아 욕하지 말고 왜 저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를 고민해봐야겠지. 뭐 우리도 게임위 들어가면 저렇게 할 수밖에 없을 듯.”이라고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 최근 인터넷에 확산 중인 이른바 `네이트온 경마 게임`
이용자들은 이 이미지를 게임위에 신고하고 처리해 달라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요컨대, 이번 사태는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습니다. 문제는 법에 있을 뿐이죠. 게임위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곳’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법을 어긴다면 지키도록 하는 것이 역할인 거죠. 사실 게임위는 인디게임과 플래시게임의 심의 문제를 두고 꽤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게임 산업 발전과 관습 사이를 오가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누군가가 이에 대해 제보를 하면 게임위도 어쩔 수 없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하죠. 이번 인디게임 사이트 심의건도 한 이용자의 제보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위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법을 지킬 수밖에 없겠죠. 이와 관련해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은 고스란히 게임위가 지게 될 테니까요.

물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콘텐츠 산업에서 국가기관이 이를 두고 검열한다는 것은 엄연히 산업 발전에 저해요소임이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심의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찮으니 아마추어 개발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번 사건이 ‘게임 만들지 말라’는 통보보다 더 어이없고 화가 나는 일이 분명하겠지요. 현재 몇몇 개발자들은 연대를 구성하고 게임위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해달라는 거죠. 하지만 법 앞에서 융통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가능해진다면 후에 더 치명적인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해답은 이른 시일 내에 법과 규정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뿐입니다. 그 전까지는 서로가 괴롭고 아픈 싸움을 계속 할 수밖에 없겠죠.

다행히 민주당의 전병헌 위원이 비영리 게임 개발자(아마추어 개발자)들의 활동을 적극 보장하겠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 한 가닥 희망이 보입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몇몇 게임법처럼 미뤄지지 않고, 하루빨리 신속하게 처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명언이 떠오르네요. 정치가였던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관습은 법만큼 현명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관습은 언제나 법보다 훨씬 보편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현재 상황을 대변해 주는 듯하군요. 반대로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 처음으로 성립한다. 이 세상에 법외에 자유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현재 게임위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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