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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게임의 모태, 3대 세계관 ‘월드오브다크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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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입니다. 전원 치유 마법을 선택한 것은 최악이었어요.
당신의 저급 마법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왕궁 경비병들이 눈치를 챘다고요.”

“제기랄!”

“한 명이 문 밖으로 나오는군요.”

“칼을 던지겠네.”

“정말요? 대미지가 작을 텐데.”

“난 40퍼센트의 확률로 크리티컬 히트를 할 수 있네. 말하는 토끼가 내게 마법의 팔찌를 줬잖아.”

“그래, 그 토끼인지 뭔지가 팔찌인지 뭔지를 줬었죠. 그 말이 맞군요. 자, 주사위를 굴리세요.”

“좋았어!”

“명중했습니다. 칼이 그의 머리를 반 토막 냈군요.”

 

- 영국 시트콤 '‘IT Crowd'에서 TRPG 플레이 장면-

 

인류의 시작이 세 개의 물줄기에서 시작됐듯이, 현재 우리가 즐기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의 뿌리는 나무 테이블 위에서 시작됐다.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Table talk Role-Playing Game,이하 TRPG) 혹은 펜 앤 페이퍼 롤플레잉 게임(Pen-and-Paper Role-Playing Game, 이하 PnP RPG)라고 불리는 이 게임 방식은 실제 참여자들이 탁자에 둘러 앉아 게임을 플레이 한다는 뜻에서 비롯된다.


▲ TRPG를 기품있게 플레이하는 방법

지금 우리가 세계 3대 세계관이라고 부르고 있는 ‘던전 앤 드래곤(D&D)’, ‘워해머’, 그리고 ‘월드오브다크니스’(이하 WoD)가 바로 테이블 위에서 펼쳐졌던 게임들이다.

‘D&D’는 TRPG외에도 컴퓨터 게임으로 발전한 RPG 게임의 기저를 이루었고, ‘워해머는’ 전략 게임으로 발전했다. 마지막 세계관인 ‘WoD'는 많은 뱀파이어 물에 영감을 주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뱀파이어물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WoD'의 세계를 기초로 생산됐으며, 이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 'WoD'의 뱀파이어 설정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위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뱀파이어 게임은 킬러 타이틀을 손에 꼽기 힘들다. 뱀파이어 물을 찾아다니는 마니아들은 있지만 아직까지도 ‘WoD' 게임은 소수의 팬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강하다. 물론, 완성도면에선 극찬을 받더라도 말이다.

이런 와중에 CCP의 '월드오브다크니스 MMO' 개발 소식은 상당한 화제를 일으켰다. 음지에 숨어 있던 ‘WoD' 세계관이 MMO 게임 제작 보도와 함께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브 온라인’을 만든 CCP의 프로젝트가 공개되자, 많은 ‘WoD’ 팬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것은 물론 ’WoD‘를 모르던 게이머들도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로 곧 우리 앞에 펼쳐질 거대한 암흑세계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모든 게임관 중 가장 섹시하고, 가장 스타일리쉬하다고 평가받는 ‘WoD’. 과연 이 복잡한 도시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1부. 가장 섹시하고, 치밀한 초자연체들의 사회 ‘WoD’
       그리고 명작 게임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2부. ‘뱀파이어: 더 머스커레이드’ 클랜의 대립 그리고 ‘월드오브다크니스 MMO’

(월드오브다크니스 시리즈는 2부에 걸쳐 게재됩니다)

 

가장 섹시하고, 치밀한 초자연체들의 사회 ‘WoD’

솔직히 화이어울프 사에서 만든 이 음침한 세계관을 100% 이해하는 것은 만 피스 퍼즐을 맞추는 것보다 어렵다. 게임 시스템을 설명하는 스토리 북의 권수만 세어도 너무 많고 각각의 양도 방대하다. 거기다 한글 번역 자료도 전무한 상황이다.

하지만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 기본 설정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WoD'는 스타일을 추구하고, 펑크락 밴드처럼 음울한 세계를 표방한다. 이 세계의 주인공들은 이른바 ‘간지’나는 초자연적 생명체들이며, 이들은 음란할 정도로 섹시하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 사냥감을 찾아 공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딕풍 도시를 헤매인다.

 


▲ 'WoD'의 컨셉 아트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위키)

고딕-펑크는 ‘WoD'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WoD'의 분위기는, 어디서 박쥐나 타락천사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허름한 교회의 모습이자, 오를 때마다 계단이 삐걱거리는 낡은 호텔이다. 골목길에는 쓰레기통이 널부러져 있고 심지가 다 타버린 양초와 깨진 유리조각들, 그리고 부서진 가구가 여기 저기 놓여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고딕'이다. '펑크'는 스타일이다. 나선형의 도형, 희뿌연 초승달, 해골 모양의 은제품, 거미줄과 눈동자를 그린 카드. 저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이트클럽 앞을 시끄럽고 빠른 음악 소리가 수놓을 때 우리는 '펑크'를 느낄 수 있다.

‘WoD'의 메인 컨셉인 ’고딕‘과 ’펑크‘는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로 문학, 영화와 같은 문화 흐름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예를 들자면,  홍대 락 클럽 근처를 떠올리면 된다. 제 멋대로 자른 커트 머리와 파격적인 염색, 거기에 코에, 귀에, 혀, 눈썹에 피어싱을 하고, 옷 여기저기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싸인펜으로 그린 듯한 문신 그리고 블랙, 화이트, 레드 컬러로 자신을 꾸민 무리를 보았을 때 기자는 ‘아, 고딕 펑크 매니아다’라고 울부짖곤 한다.(속으로)

우리가 이런 고딕-펑크 매니아를 가까운 홍대 앞에서도 볼 수 있듯이 ‘WoD'의 세계는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홍대처럼 가깝다. 이것이 바로 ’WoD'가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다.

‘WoD'에 존재하는 역사나 문화, 지리적 특성(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등), 사회 구조가 모두 현재 지구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부패한 정부단체, 어슬렁거리며 거기를 노다니는 초자연체들,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들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 사회의 단면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속내에 꼭꼭 감춘 저질스러운 ’현실‘보다 노골적으로 더러움을 표방하는 ‘WoD'의 세계가 더 진짜 같을 수도 있다.


▲ 우리는 'WoD'의 펑크적 요소에서 섹시함을
그리고 현실과의 동질감에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위키)
 

‘WoD'가 말하는 공포는 바로 이 현실이다. 단순하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한 끝만 더 부패하는 순간, 매일 밤마다 조금씩 조금씩 병들어 가는 생태계 환경이 어느덧 한계에 닿아 무너지는, 바로 그때, 피하고 싶었던 공포가 현실이 된다.

'WoD'의 이야기 전달자 GM의 역할은 바로 현실의 호러를 최대한 음울하게 전달하고, 참여자는 자신의 본능을 그대로 노출한 채 게임에서 마음껏 뒹굴어야 한다- 그때 공포는 자연히 당신을 찾아온다.

‘WoD’는 크게 두 개의 버전으로 분류된다. 고딕적인 냄새가 좀더 풍기는 ‘oWoD'와 좀 더 현대적인 면모의 신규버전 ‘nWoD'다. 클래식 버전인 ’oWoD'는 2004년 마지막 개정판을 끝으로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었으며, 현재는 새로운 월드오브다크니스(nWoD)만이 이어지고 있다.


▲ 'oWoD'의 대표 설정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공식 홈페이지)

‘oWoD'는 다섯 가지 오리지널 설정과 세기말 설정, 추가 설정, 그리고 특정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역사 설정 등으로 나뉜다.

오리지널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뱀파이어)
웨어울프: 디 아포칼립스(늑대인간)
메이지: 디 어센션(마법사)
레이스: 디 오블리비언(유령)
체인즐링: 더 드리밍(요정)

세기말

헌터: 더 레코닝(사냥꾼)
데몬: 더 폴린(타락천사)
오르페우스(유령)
킨더드 오브 이스트(동양의 뱀파이어)
헨게요카이(동양의 괴물)
머미: 더 레저렉션(고대 미이라)
월드 오브 다크니스 집시(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집시)
월드 오브 다크니스 데몬 헌터(악마 사냥꾼)

각 설정은 해당 팩션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다. 이들은 말로만 ‘oWoD'의 하위 설정일 뿐,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없다. 모두 월드오브다크니스 세계 안에 존재하는 팩션임에도 각각의 스토리 북이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없다.

방대한 양에 비해 부족한 상호작용은 게임의 장엄함을 낮추는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한 팩션의 이야기가 온전한 룰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그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콘텐츠를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oWoD'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방대한 양의 자료가 설명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관계다.

제 아무리 초자연체가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존재하는 한 무리가 만들어지고, 사회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플레이어를 위협한다. 그것이 경쟁관계든, 이해관계든, 혹은 교우관계든 간에 거미줄에 걸린 플레이어들은 고도의 심리극을 연기한다. 서로 얽키고 설키면서 온갖 음모론을 펼치고, 대립하며, 반전을 만들고, 이것이 ‘oWoD'의 재미를 극한으로 끌어 올린다.

하지만 ‘oWoD'의 한계는 게임 난이도가 높고, 룰북이 너무 많다는데 있었다. 그런 연유로 개정되어 나온 것이 바로 ‘nWoD'. 신 버전의 경우 앞전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게임이 짜여 있다.  ‘nWoD'의 세부 설정은 클래식보다 훨씬 간단하다. 다양한 뱀파이어를 플레이할 수 있는 ’뱀파이어: 더 레퀴엠‘과 ’웨어울프: 더 포세이큰‘ ’메이지: 디 어웨이크닝‘ ’프로메시안: 더 크레잉티드‘ ’체인즐링: 더 로스트‘ 그리고 ’가이스트: 더 신-이터스‘가 있다.

이번 특집 기사에 포함된 '뱀파이어: 더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과 CCP에서 개발중인 '월드오브다크니스 MMO'는 모두 'oWoD'의 설정을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를 차용한 게임이다.

  

첫 번째 명작-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 블러드라인


▲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 블러드라인

트로이카 게임즈가 개발한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 블러드라인(이하 블러드라인)’은 2004년 출시된 PC 게임으로, ‘WoD’ 설정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타이틀이다.

‘블러드라인’은 ‘WoD'의 뱀파이어 장르를 매력적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플레이어와 맞물려 변화하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LA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라인과 뱀파이어 육성이 결합한 정통 롤플레잉 게임으로 아직까지 많은 게이머들이 플레이하고 있다.


▲ 나를 따르다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위키)

‘블러드라인’은 일반적인 RPG와 달리 플레이어가 맡은 캐릭터가 바로 '스토리'가 된다. 게이머가 어떤 행동을 하고,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에 따라 온 세계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뱀파이어의 역을 맡아, 뱀파이어로써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역할수행'에 집중해야 한다.


▲ 특성과 스킬을 설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위키) 

이를 위해 게이머는 뱀파이어로써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먼저 주요 특성을 결정하고, 그에 맞춰 세부 특성과 하위 스킬을 정한다. 보통 RPG를 플레이할 때, 우리가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먼치킨 캐릭터’ 혹은 ‘먼치킨 스킬’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스킬에 ‘몰빵’을 하면 게임을 쉽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러드라인’에서 먼치킨 스킬은 치명적이다. 공포감, 언제 무엇이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에 게임 무드를 붕괴시킨다. 따라서 유저가 한 기술에 스킬 포인트를 몰아주려고 하면 캐릭터가 나서서 “이제 다른 스킬을 배우고 싶다”며 이를 방지하는 역을 맡는다.


▲ 어떤 클랜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에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특성이 달라진다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위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완료하면 게임이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플레이어는 시스템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자신에게 적합한 뱀파이어 클랜을 선택하게 된다. 클랜을 선택하는 것은 곧 뱀파이어의 혈통이며 특징이 된다. 각각의 클랜마다 강점과 취약점이 있어, 각 특성이 비상하게 발휘되면 재미있는 이벤트 영상을 볼 수 있다.

 


▲ 캐릭터는 저마다의 특성이 살아 있다, 매혹, 대화, 위트 등 (사진 출처: 화이트울프 위키)

예를 들어, 토레이도 클랜을 선택하면 매혹이나 설득 능력이 높아진다. 이러한 특성으로 게임 내 대다수의 캐릭터와의 대화를 나누거나 상호작용을 이끌 수 있다. 말카비안 클랜을 따르게 되면 캐릭터의 대화 선택이 ‘매드니스’ 수치에 영향을 주어서 랜덤 확률로 시스템이 게임 진행 힌트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게임의 골자는 주어진 미션을 완료하는 것이 첫 번째다. 미션은 캐릭터에 따라, 혹은 선택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스토리를 위한 인간 사냥 외에의 무자비한 살인은 경험치 특혜를 주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뱀파이어 신분을 숨기는 것이다. 괜히 필요없는 인간의 피를 빨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경찰 혹은 뱀파이어 사냥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섯 번 이상 신분을 들키게 되면, 게임이 종료된다.

아쉽게도 액션이나 FPS 장르의 뱀파이어 게임을 생각하고 '블러드라인'을 플레이하게 된다면 크게 실망할 여지가 많다. 물론 다양한 화기가 등장하고 스킬도 쌓을 수 있지만 FPS적인 측면에선 저질적인 완성도를 보인다. 또한 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펼쳐지는 뱀파이어들의 맨손 격투도 과격한 맛이 없다.

‘블러드라인’은 뱀파이어 전투 게임도 아니다. 다만 롤플레잉이라는 자체에 최고의 포커스를 둔 게임이다. 하지만 ‘WoD’의 정교하고 섬뜩한 스토리와 정통 TRPG만이 구사할 수 있는 디테일한 캐릭터 설정에 맞춰 움직이는 인게임 월드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부에서 '블러드라인'의 클랜별 특성과 MMO로 찾아오는 ‘월드오브다크니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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