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2000년대 초중반부터 국산 게임에 따라붙는 공통적인 비판이 있었다. 스토리텔링과 세계관이 빈약하고, 유저 간 경쟁만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90년대 PC패키지게임 시대를 거쳐 PC온라인게임에서 비로소 꽃을 피운 국내 게임산업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분야다. 최근엔 RPG 장르를 위주로 이러한 비판을 거두려는 목소리가 높긴 하지만, 이 역시 일부 장르에 국한돼 있다. 특히 FPS의 경우 '두 진영이 싸운다' 외엔 스토리도 없고, 알고 싶어 하는 유저도 없었기에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특징은 이른바 '한국 게임'의 한계처럼 여겨졌다. 국내에서만 서비스하면 그만이었던 과거엔 큰 문제가 안 됐지만, 국산 게임의 글로벌 흥행 시대가 오며 약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산 게임들도 부랴부랴 세계관 마련에 한창이지만, 홈페이지나 영상 등을 통한 간접적 시도에 그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가 10일 Xbox로 출시한 크로스파이어X는 이러한 선입견을 정면으로 깨부순 게임이다. 이 게임은 발표 당시부터 상당한 화제를 모았는데, 맥스 페인과 앨런 웨이크, 컨트롤 등 완성도 높은 싱글 스토리 기반 게임을 개발해 온 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싱글 캠페인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원작 크로스파이어가 멀티 대전 중심으로 흘러온 전형적인 한국풍 FPS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전례 없는 시도다.
레메디와의 협업은 크로스파이어라는 IP를 서구권 게이머들에게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원작의 경우 중국과 국내에서 흥행한 멀티플레이 FPS지만, 서구권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이에 대한 보완책 없이 콘솔 진출을 선언해 봐야 큰 효과를 불러오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반면, 레메디는 성공적인 전작들을 통해 개발사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브랜드화 된 개발사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레메디와의 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윈-윈 전략이다.
크로스파이어X의 협업 사례는 국내나 아시아에서 흥행한 IP의 차기작을 서구권 등 글로벌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국내 게임사에도 참고사례로 남을 법하다. 크로스파이어X를 비롯한 최근 게임들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최근에는 싱글과 멀티 모드를 반드시 같은 개발사가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국내 개발사가 멀티플레이에 자신이 있다면 이에 집중하고, 싱글 게임은 이쪽에 도가 튼 서구권 개발사와 협업하는 것은 합리적이면서도 화제성까지 끄는 전략이다. 더불어, 이번 싱글 캠페인으로 크로스파이어 세계관의 색깔도 더욱 뚜렷해져 향후 미디어믹스에 대한 기대감에도 살짝 불이 붙은 느낌이다.
참고로, 크로스파이어X의 싱글 캠페인에는 레메디의 색이 굉장히 짙게 배어 있다. 싱글 전용 스킬로 맥스 페인의 불릿타임이나 GTA 5의 특수기처럼 체감 시간이 잠시 느려지는 기능이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꽤 멋진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다. 개발사 전작으로 시간 흐름을 조절하며 싸우는 퀀텀 브레이크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콜 오브 듀티 등에 익숙한 게이머 입장에서는 이런 능력으로 전투를 손쉽게 진행한다는 점이 불만족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번 게임이 사실상 크로스파이어라는 IP의 입문작으로서 기능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레벨 밸런스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낯선 서비스 방식과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안정성이다. 크로스파이어X는 출시와 동시에 게임패스에도 등록됐는데, 게임패스 구독자는 2개의 캠페인 중에서 'Operation Catalyst'만 무료로 플레이 가능하며 'Operation: Spectre'는 별도 구매를 해야 한다. 원래대로라면 'Catalyst' 플레이를 통해 크로스파이어X 싱글 캠페인의 매력을 체험한 후, 'Spectre' 구매로 이어져야 하는 구도다. 그러나 출시 초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패스에서 무료 제공 캠페인에 접근할 수 없는 문제가 터졌고 꽤 오래 해결되지 않았다. 이는 일부 장면에서의 프레임 저하와 맞물려 크로스파이어X 비판 여론에 한 몫을 더했다.
참고로, 크로스파이어X는 멀티플레이에서도 꽤 독특한 시도를 했다. 크로스파이어X는 Xbox 독점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서구권 유저들을 주력 타깃으로 하고는 있지만, 원작이 이룩한 성과와 게임성 등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원작 자체의 기틀이 2007년 잡히다 보니, 2022년 기준에서는 아쉬운 점이 여럿 있다. 십 년 새 대세가 된 조준사격 시스템이나, 대시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스마일게이트는 두 가지 모드로 나눔으로써 해결했다. 기존 크로스파이어 특유의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클래식 모드', 현대식 FPS의 장점들을 받아들인 '모던 모드'다. 많은 국산 FPS 후속작들이 '전작과 너무 달라서', '전작과 너무 똑같아서' 혹평을 받았던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영리한 전략이다. 비록 주 타깃층인 서양 플레이어들은 특정 모드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서구권 공략을 위한 데이터 수집이 끝난다면 보다 본격적인 사후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내 게이머들은 크로스파이어X를 즐기기 여간 쉽지 않다. 출시 플랫폼인 Xbox의 국내 보급율이 상당히 낮은 데다, 게임패스 얼티밋을 통한 PC나 모바일에서의 클라우드 게이밍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게임의 미묘한 렉을 고려하면 FPS로서 이를 포기한 것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싱글 플레이만이라도 클라우드에 출시해 준다면 좀 더 많은 국내 게이머들이 크로스파이어X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이번 시도를 기점으로 크로스파이어 IP가 새로운 장을 맞이할 것이 확실시되기에, 국내와 중국 등을 타깃으로 한 차기작 역시 기대해볼 만 하다는 점은 확실히 긍정적이다. 더불어, 크로스파이어X가 열어 놓은 포문으로 더 많은 국내 게임사들이 해외 개발사와의 협업 등을 고려한다면 국산 게임에 붙어 있던 불명예스런 딱지가 떼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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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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