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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려 죽고 먹다 죽을 뻔 한 크앙의 ‘타이페이게임쇼’ 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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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만 유일의 게임쇼인 ‘타이페이게임쇼 2013’ 이 열렸다. 약자로 하면 Taipei Game Show’ 의 약어를 따서 TGS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세계 3대 게임쇼인 도쿄게임쇼와 약자가 겹치기 때문에 TPGS라 불리우는 불쌍한 게임쇼다. 만약 국내에서 ‘통영게임쇼’ 라던지 ‘태안게임쇼’ 를 개최하게 된다면 게임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TGS’ 라는 명칭을 쓰자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다.

지난 1월 31일(목)부터 2월 4일(월)까지 5일 간 개최된 ‘TPGS 2013’.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다소 익숙치 않은 행사이지만, 나름 알찬 정보들이 발표되었다. 아마도 많은 게이머들이 지난 주말 ‘라스트 오브 어스’ 를 비롯해 ‘툼 레이더’, ‘갓 오브 워: 어센션’ 등의 한글화 소식을 듣고 기뻐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역시 ‘TPGS 2013’ 에서 발표된 소식이다. 사실 국내 게이머들에게 반가운 소식은 이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국제적인 게이머라 자부한다면 각종 게임에 대한 최신 정보와 현재 대만 게임계의 현황 등 좀 더 즐거웠을 것이다.

아무튼, 기자는 ‘TPGS 2013’ 취재의 사명을 안고 몸소 대만으로 떠났다. 인천공항을 떠나며 ‘며칠 동안 맛있는 건 실컷 먹겠군!’ 같은 기대감에 온 몸이 떨렸다거나, 짧은 일정임에도 군것질거리를 위해 5,000 대만 달러(한화 약 20만 원)을 환전해 가는 등의 모습만 보면 불순한 의도가 가득한 출장길이었지만, 이 곳에서는 그 불순한 의도를 최대한 감춰 가며 대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드리도록 하겠다.


▲ 엄청난 인파가 북적이는 'TPGS 2013' 속으로 크앙 기자가 직접 한 번 떠나보았습니다!

타이페이게임쇼는 어떤 모습인가

‘TPGS’ 에 대해 얘기하기 전, 국내 게임쇼 ‘지스타’ 얘기를 잠깐 해보자. 작년 ‘지스타 2012’ 관람객은 19만 명, 이는 중복 카운트를 뺀 수로 재작년까지의 집계 방법을 사용하면 29만 명 정도다. 수치로는 감이 잘 안 올테니, 예를 들자면 주말의 대기줄이 그 넓은 벡스코 회장을 한바퀴 휘감을 정도였다. 지스타에 처음 방문했는데 재미가 없었다는 포스팅을 읽은 적 있는데, 적어도 줄을 그렇게 서야 한다면 뭐든간에 재미있을리가 만무하다. 아, 맛있는 거라도 준다면 또 모르겠다. 치킨이라던가, 닭튀김이라던가, 가라아게, 너겟 같은 것 말이다. 예전에 통큰치킨을 사기 위해 세 시간도 기다린 나다!

아무튼, 한국에서 ‘TPGS’ 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던 중 입장객이 총 30만 명이라는 것을 보았다. 수치상으로는 ‘지스타’ 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물론 지스타보다 하루 많은 총 5일동안 열리고 아직까지 중복 카운트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상당한 규모의 관람객이 몰리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 19만 명이 몰린 '지스타 2012위)' 과 30만 명이 몰린다는 'TPGS 2013(아래)'
체감상 'TPGS' 쪽이 일단 대기열은 좀 더 적었다

다만, 참가 업체를 보면 솔직히 크게 기대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말이 나와서 묻는 얘긴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대만 게임업체를 몇 군데나 알고 있는가? 다섯 군데 이상을 댈 수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대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삶을 살고 있거나 본 기자보다 뛰어난 게임업계 지식을 보유한 사람일 것이다(그렇다고 마냥 그렇게 인정하면 내가 슬퍼지니까, 보다 뛰어난 대만 게임업계 지식을 갖고 있는 정도에서 타협하자).

이번 ‘대만게임쇼 2013’ 역시 국내에 알려진 업체는 몇 되지 않았다. 부스 배정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일단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대만 지사인 SCET가 가장 메인에 자리잡고 있었고, 최근 국내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한 ‘월드 오브 탱크’ 를 앞세운 워게이밍, ‘모바게’ 플랫폼으로 유명한 ‘DeNA’, 세가, LG, 그리고 게이밍 기기 업체 매드캣츠 정도만 알아볼 수 있었다. 대만 브랜드는 없다. 아, 대만 스쿠터 브랜드 SYM도 어쩐 일인지 구석에 자리잡고 있더라. 지스타로 따지면 대림혼다나 효성모터스가 출전한 셈이니, 꽤나 독특하긴 하다.

사실, 위에 언급한 업체 외의 나머지 업체들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들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 봐도 알 만한 게임은 거의 없었다. 참고로 기자는 고등학교 때 문과와 이과 중 이과를 선택했는데, 유일한 이유가 ‘한자가 싫어서’ 였다. 지금도 먹을 것 관련 한자가 아니면 읽지도 못한다. 뭐, 직접 방문해 보니 대만에서 인기리에 서비스 중인 ‘테라’ 도 발견할 수 있었고, TCG ‘매직 더 개더링’ 부스나 블리자드 공식 스토어 등도 보였지만 역시 현지 업체를 통해 출전한 터라 미리 알고 가진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2시간 반의 비행, 그리고 그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수하물 대기 시간, 그리고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간 즐거운 저녁식사와 꿀잠을 거쳐 2월 1일(금), ‘TPGS 2013’ 이 열리는 대만 난강전시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밖에서 본 난강전시관은 ‘지스타’ 가 열리는 부산 벡스코보다는 재작년 ‘KGC 2011’ 이 열렸던 대구 엑스코에 가까운 구조였다. 위로 5층, 아래로 1층의 길쭉한 직육면체 건물은 겉으로 봤을 땐 그다지 넓은 전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뭐, 건물의 가로 길이가 생각보다 길어 전시장 규모 자체는 예상보다 넓었으나, 역시나 예상치 못한 함정카드가 존재했다.


▲ 'TPGS 2013' 부스 배치도, 가로로 눕혀져 있지만, 사실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90도 꺾고 봐야 한다

일단 위의 부스배치도를 보자. 얼핏 보면 길쭉한 홀을 다 사용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출구의 위치를 유심히 지켜보면 함정 카드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전시홀이 양 옆으로는 좁고 안쪽으로 깊숙하다는 것이다. 앞서 난강전시관의 구조가 양옆과 위로 길쭉하다고 언급하지 않았는가. 즉, ‘罒’ 자 모양 홀에서 양 옆의 공간을 빼고 가운데 공간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임시 방벽 너머의 어두컴컴한 양쪽 공간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공간을 굳이 비워놓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업체 수가 적어서 홀 전체를 빌리면 너무 휑해 보일까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좁게 만들어서 북적북적한 느낌을 들게 만들려는 속셈인가? 그렇다면 이 게임쇼를 기획한 사람은 제갈공명임이 확실하다.


▲ 전시장을 100% 활용했다면 엄청난 규모가 되었을 텐데...

문화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몸은 피곤했다

사실 지난 ‘지스타 기행기’, ‘도쿄게임쇼 기행기’ 등을 쓸 때마다 말하고 싶은 사실이 있었지만, 그 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실이 있다. 이 기회를 통해 일단 그 얘기부터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기자가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항상 일정한 반응을 보인다. “좋겠네”, “잘 놀다 와”, “맛있는거 많이 사 와”, “부럽다”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기자의 해외 출장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일단 ‘기사’ 를 생산해내야 하기 때문에 일과를 끝내고 호텔방에 도착하더라도 마음 편히 쉬질 못한다. 국내 게임매체의 경우 실시간으로 기사가 휙휙 올라오기 때문에, 밤을 새워서라도 최대한 빨리 그날 취재한 꼭지들을 기사로 송고해야 한다. 오후 5~6시쯤 일정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후 9시쯤 호텔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제 2의 업무 일정이 시작된다. 새벽 3시에 자면 상당히 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뭘 보고 겪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이 글을 보는 업체 관계자들은 해외 출장 행사에서 공개되는 정보에 대해 엠바고를 넉넉~히 잡아주길 바란다. 그것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이번 게임쇼에서 가장 좋았던 게임이 ‘라스트 오브 어스’ 였는데, 게임성 말고 엠바고의 존재 또한 ‘가장 좋아!’ 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희한한 것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에스키모는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고래고기를 먹으며 살아가고, 물 한 방울 없어 보이는 사막에도 다양한 원주민들이 존재한다. 오죽하면 원전 사고지 근방 대도시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나라 국민들도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대만 출장에서 살아남기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이다. 잘못하면 목 막혀 죽기도 하는 그것 말이다.

얘기가 너무 옆길로 샌 느낌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일단 ‘TPGS 2013’ 회장은 위에서 언급했듯 상당히 좁고, 참여 업체 수도 그렇게 많지 않다. 작년의 경우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는데, 올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불참으로 인해 소니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졌다. SCET 부스에서는 수많은 PS3/PS비타 타이틀(합치면 거의 100개)이 시연되었고, 굵직굵직한 기대작의 관계자(이나후네 케이지라던지, 스다 고이치 등)를 초청해 최신 정보를 공개하는 부스 이벤트도 쉬지 않고 열렸다. 그야말로 소니를 위한 게임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 사실상 'TPGS 2013' 행사의 메인이었던 SCET 부스




▲ 그나마 많은 사람이 몰린 대만 게임 부스들

소니를 제외하고 나면 ‘테라’ 부스와 ‘월드 오브 탱크’ 부스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입구에 위치한 대만 게임 ‘PILI SHEN ZHOU(벽력신천)’, 그리고 'Dragons Prophet(군룡묵시록)’ 정도가 제대로 된 게임 시연대를 마련하고 관람객들을 유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대부분의 부스가 게임 시연이나 소개보다는 하드웨어 제품군 소개, 혹은 상품 전시나 판매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자사의 게임을 알리려는 목적의 국내/해외 유명 게임쇼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실제로 어떤 부스걸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뭔가 열심히 말하더니, 그 자리에서 몇 명을 뽑아 자사의 제품을 싼 값에 판매하는 모습도 여러 번 봤다(이벤트를 통해 무료 증정하는 행사도 있었는데, 사람이 오백 명 쯤은 줄을 서 있었다). 한켠에서는 게임과 전혀 관련없는 차량 블랙박스나 무선조종 장난감을 판매하고, 심지어는 일종의 서비스 가입을 권유하며 계약서를 쓰는 부스도 있었다. 대체 게임쇼를 뭘로 아는 거야!






▲ 여기가 게임쇼인가 야시장인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넘치는 인파와 좁은 공간이 만나 일으킨 시너지 효과다. 앞서 두 번이나 언급했듯이, ‘TPGS 2013’ 의 전시 공간은 결코 넓지 않다. 거기에 ‘지스타 2013’ 의 평일 관람객 정도(대략 6만여 명)가 꾸역꾸역 들어온다. 입구에서는 인원 제한 없이 계속해서 사람을 받고, 덕분에 마치 출근시간 강남역이나 신도림, 고속터미널역을 연상시키는 인파에 밀려 강제로 이동하게 된다.

더군다나, 대만의 날씨는 2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최저기온 15~18도, 오후 최고기온은 26~27도에 육박한다. 쉽게 말하면 초여름 날씨로, 더위 많이 타는 사람은 반팔 입고 다녀야 할 정도로, 낮에는 에어컨을 튼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차다 보니, 그야말로 대륙의 향기가 났다. 대만 사람들은 대부분 날씬하긴 하지만, 간혹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뚱뚱한 아저씨(내 얘기 아니다! 절대로! 절대! 네버!)와 몸을 부대끼게 되면 그 묘하게 따뜻하고 축축한 기분에 절로 말춤이 나왔다. 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한류 댄스를 대만에 전파하고 다닌 점은 자랑해도 될까?

‘지스타’ 에 육박하는(물론 여기서도 뻥튀기 수치는 있겠지만, 체감상 어느 정도 공감된다) 관람객, 그리고 1/3 정도밖에 안 되는 전시 공간. 그리고 겨울치고는 꽤나 더운 날씨. 이 세 요소의 시너지 효과는 상당한 애로사항을 꽃피웠다. 일단 취재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내 옆에서 뭔가 행사가 열리는데, 내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앞으로 밀려나간다. 저 멀리 예쁜 부스걸이 있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아무리 팔을 뻗어봐도 부스걸 앞으로 다다를 수가 없다. 시연 부스에서 게임 한 번 하려면 3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고, 사람이 밀려들면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불편은 대만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좁은 전시장과 넘쳐나는 인파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회장을 잽싸게 둘러보고 빠져나갔으며, 덕분에 회장 내에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가 주창한 ‘보이지 않는 손’ 의 법칙인가 싶었다.


▲ '엄마 보고 싶어요' 가 절로 외쳐지는 풍경




▲ 사...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몸이 내 멋대로 옆으로 움직여!!

글을 쓰다 보니 왠지 ‘TPGS’ 에서 느낀 불편함만 언급한 느낌인데, 그래도 ‘차이나조이’ 에 비하면 모든 것이 한결 낫다. 2월이라 그런지 그렇게 푹푹 찌는 날씨도 아니고, 행사장이 지나치게 넓지도 않아서 그나마 다리도 덜 아프다. 대만인들 역시 중국인들에 비하면 시민의식이 훨씬 뛰어나서 바닥에 먹던 컵라면을 휙휙 던지거나 하는 일도 없다. 비록 휴식공간이 불충분해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많긴 했지만, 이런 모습은 도쿄게임쇼에도, 게임스컴에도, 지스타에도 존재하는 정도의 풍경이다.

비록 한국과 대만의 국교가 단절된 이후 양국 관계가 결코 사이좋다고 볼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대만에서 만난 친절한 시민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이 이상의 불평은 삼가야겠다. 사실 대만에서 모 매체의 모 기자(동종업계의 정 때문에 이름은 말할 수 없다. 일단 본인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가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를 하루 간격으로 잃어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친절한 SCE 관계자와 호텔 직원에 의해 무사히 되찾기도 했다(참고로 그 분은 한국 입국 시 세관 신고서를 잃어버림으로써 삼위일체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셨다). 아무튼 대만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는 정도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짓도록 하자.


▲ 휴식공간이 부족한 것은 게임쇼의 숙명인가

대만의 하이라이트 야시장 탐방기, 먹고 죽자

앞서 말했듯, 대만은 동남아 국가만큼은 아니지만 사시사철 따뜻한 나라이다 보니 자연히 스쿠터를 많이 타고 다닌다. 어딜 가더라도 길가에 스쿠터가 쭉 늘어서 있는데, 처음 봤을 땐 ‘오토바이샵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따뜻한 나라들이 늘 그렇듯, 대부분의 시민들이 밤에도 쉽게 잠들지 않아 야시장이 발달해 있는 것 또한 특징이다. 브라보!

기자 역시 수많은 업무 속에서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대만의 야시장을 방문해 보았다. 타이페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쓰린 야시장에 들어서니 상당히 반가운 광경이 많이 보였다.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도 옛 말인듯, 들려오는 노래의 50%가 K-POP, 티셔츠 가게 중앙에 위치한 ‘강남스타일 싸이’ 셔츠, 한국 브랜드의 액세서리 샵 등이 늘어서 있었다.


▲ 따뜻한 기후 탓인지, 어디든 스쿠터들이 이렇게 세워져 있다


▲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대만의 야시장 (사진은 쓰린 야시장 입구)

야시장이라 그런지 생필품보다는 옷과 액세서리, 먹거리 가게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세계 각국의 음식을 즐기는 것이 취미인 기자에게는 이런 천국이 없었다. 최근 두 달간 지옥의 다이어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곳에서 그 결심이 깨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왕돈까스 크기의 치킨까스를 통째로 튀겨 준다거나, 그걸 오물대며 걷고 있으면 족히 1리터는 되어 보이는 버블티가 등장하고, 그 옆에는 30센티는 되어보이는 스테이크, 망고와 파파야 등 열대과일… 몇 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금방 배가 찰 정도였다.

위에 언급한 것 외에도 정말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이 존재했다. 진짜 돼지 창자로 만든 것 같은 대만식 소시지, 사람 팔뚝만한 대왕 소시지, 개수별로 계산하는 즉석 꼬치구이, 각종 면요리, 푸딩이 들어간 음료, 버블티 시리즈,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는 버라이어티 빙수들, 설탕 코팅된 과일꼬치, 일본식 타코야끼와 도미빵(정작 한국식 포장마차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비빔밥 불고기 김치 말고 떡볶이 순대 김말이튀김을 세계화시키란 말이다)… 아무튼 엄청난 먹거리가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다이어트로 줄어들어 버린 위장 탓에 이 모든 것을 배에 담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한으로 남는다.


▲ 대만식 굴 오믈렛(우)과 새우 춘권(좌), 모두 합쳐 한화 3,000원 정도이다




▲ 무려 소고기 스테이크(with 파스타와 계란후라이), 한국 돈으로 6,000원도 안 한다




▲ 지금도 생각나는 대만 야시장의 다양한 먹거리들, 맛 또한 거부감 없이 다들 좋다

그렇게 야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무렵,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하수구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뭔가 톡 쏘는, 그러면서도 몸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듯한 냄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 가게가 보였는데, 이상한 색의 국물과 거무튀튀한 물체들이 보였다.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건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고 말이다. 근처에 맛있어 보이는 게 튀김과 꼬치구이 가게가 있었으나, 서둘러 도망쳤다. 그 냄새의 정체를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보다, 생명이 위협받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냄새의 정체는 취두부였다. 이를 알게 된 계기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 냄새를 똑같이 풍기는 탕 요리를 보고 난 후였다. 대체 뭘 넣었길래 이런 시궁창 냄새가 나나 했더니, 취두부가 소량 들어간 듯 하다. 뭣도 모르고 그 냄새를 훅 들이켰을 때의 처절함이란! 어떻게 이런 독극물을 만들어 사람에게 먹일 수 있는지, 대만인들의 잔혹함과 악랄함에 대한 논문이라도 써내고 싶은 정도였다. 아, 참고로 중국에는 이것보다 냄새가 독한 다른 두부도 있다는 사실에 기절할 뻔 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나라의 청국장 냄새라던가 꼬리꼬리한 젓갈 향, 홍어 삭힌 냄새 등도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서양인에겐 갓 지은 밥 냄새도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사실 나 역신 청국장 냄새는 취두부 정도로 싫다. 우리 집은 옛날부터 청국장을 먹지 않았는데, 10살 무렵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그 냄새를 맡고 기절초풍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냄새는 한국의 고유 전통이다. 최근엔 냄새가 없는 청국장도 나왔다던데, 역시 청국장은 꼬릿꼬릿해야 제맛 아닌가(사실 난 아직 청국장을 먹지 못한다. 만화 ‘식객’ 에서 나온 지식을 갖다 썼을 뿐이다. 허영만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러니 취두부에 대한 비판은 여기까지만 하자.


▲ 아마도 이것이 시궁창 냄새의 주범 '취두부' 일 듯 하다. 튀기면 향기가 약해진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대만 먹거리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수십 가지는 되지만, 왠지 여기서 먹거리 얘기를 좀 더 하면 편집장님께 혼날 것 같다. 쓰고 나니 대만 게임쇼 기행기라기 보다는 대만 먹거리 탐방처럼 되어 버렸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 않던가. 이 정도는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대만에선 ‘대접받는’ 게임 산업

마지막으로 3박 4일 동안 대만에서 보고 듣고 접한 게임산업에 대해 언급하겠다. 일단 대만의 일반인들은 국내보다 게임 콘텐츠를 일상에서 접할 기회가 좀 더 많은 느낌이다. TV광고는 물론, 거리의 전광판, 캐릭터 상품, 편의점 등에서 게임과 관련된 볼거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도 언급한 ‘PILI SHEN ZHOU(벽력신천)’ 이라는 게임에는 중국 인형들이 나오는데, 게임쇼에서 만나기 전날 대만 거리를 2~3시간 돌아다니면서 4~5번이나 목격했을 정도였다. 처음엔 무슨 두통약 광고거나 TV 단편 프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게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약간 부러웠다. 누군가의 주장대로 게임이 마약이라면, 대만은 마약국가다. 그래서 국교가 단절된 것이라면, 정치인들의 선견지명에 대해 찬사를 보내야겠다.

한국보다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편의점에서도 게임은 주요 판매품목이었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게임 잡지에서부터 각종 캐릭터 상품, 그리고 CD 코너의 메인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CD들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게임 하나 사려면 용산이나 국제전자센터, 신도림 등으로 이동해야 하는 국내 게이머의 입장에서 상당히 배가 아픈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워낙 많이 먹고 다녀서 일정 내내 조금씩 배가 아프긴 했었다.




▲ '벽력신천' 이라는 이 대만 게임 광고는 정말이지 30분마다 한 번씩 볼 수 있다






▲ 동네 편의점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CD 코너의 게임들

최근에는 ‘지스타’ 에서도 가족 단위 관람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TPGS’ 현장에서도 수많은 가족 단위 관람객을 볼 수 있었다(인파에 쓸려 다니던 기억이 아이에게 악몽으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SCE가 ‘TPGS’ 에서 수많은 발표를 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대만에서는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영화나 음악, 도서와 같은 문화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어 보였다.

좀 더 얘기하다간 꿈과 희망과 재미가 넘치는 크앙의 기행기에서 ‘국내 게임산업의 암울한 현실’ 같은 블랙 순도 100%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그러니 이쯤에서 쿨하게 글을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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