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게임을 즐긴 30대 이상 독자라면 한때 천하의 ‘삼성전자’도 게임기들을 라이선스받아 발매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삼성은 세가의 겜보이(세가마크3), 슈퍼겜보이(메가드라이브), 핸디겜보이(게임기어)등 꽤 오랫동안 세가의 게임기를 통해 콘솔 게임 시장을 확대해 나갔지만, 새턴의 실패로 삼성은 게임기 시장에서 손을 떼게 됐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었던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삼성이 이후에도 또 다른 게임기를 시장에 팔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꽤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말이다. 물론 다시금 실패를 맛보고 말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2와 드림캐스트가 차세대 게임기의 왕좌를 놓고 격돌하던 2000년 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진 삼성의 게임기 ‘Nuon’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Nuon 기기는 보통 이런 형식 (사진 출처 : 얼티밋 콘솔 데이터베이스)
삼성 - Nuon
정확히 말하자면 Nuon은 게임기 이름이 아니다. 게임 기능이 탑재된 멀티미디어용 DVD 공통 규격의 이름이다.(어렵다) 미국의 VM Labs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일종의 ‘기능’인데, 쉽게 말해 “게임기가 없어도 가볍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DVD 기기에 게임 기능을 탑재하자” 라는 콘셉트로 탄생했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세가나 소니같은 특정의 회사만이 발매할 수 있는 게임기가 아니라 DVD 내에 ‘Nuon’의 게임 기능 기판과 OS를 탑재하여 어느 회사나 Nuon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스타일의 게임기다. 마치 과거 3DO가 LG 3DO, 파나소닉 3DO, 산요 3DO TRY등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디자인으로 3DO를 발매하게 한 것과 동일한 콘셉트다.
삼성은 Nuon 규격에 크게 흥미를 느껴 자사의 DVD에 Nuon 탑재를 결정하고,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Nuon 규격의 DVD 플레이어를 출시했다. 국내에서는 삼성 엑스티바 라는 이름으로 나왔는데, ‘게임을 겸한 차세대 멀티플레이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 참고: 엑스티바는 공식적으로 DVD 플레이어이며, 게임 관련 기능이 탑재된 것입니다. 이번 1인치에서는 게임기로 간주하고 엑스티바의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Nuon규격은 위의 콘셉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게임이 메인이 아니라 DVD가 메인이고, 게임기능은 덤에 가깝다. 따라서 게임기의 스펙만 따지고 보자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1 이하,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자세한 상세 정보도 비공개였기 때문에 정확한 스펙을 알 수는 없었다. 대략 인텔 펜티엄2 500Mhz 정도의 CPU 성능을 지닌 게임기였다는 정도만 전해질 뿐이다.
시장에서는 Nuon 탑재 기종이 고급기종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일반 DVD 플레이어의 형태를 하고 있어도, 가격은 매우 고가였기 때문.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 점도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일례로, 삼성 엑스티바는 대략 40만 원 상당의 가격에 판매됐다.
당시 한국의 게임 전문지나 일반 신문에서도 초반에는 삼성에서 본격적인 게임기를 냈다면서 큰 관심을 보였지만, 막상 발매된 후 소프트웨어 부족이나 게임의 저품질 사양들을 거론하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감추지 않았다.
초기 Nuon 게임 타이틀은 기기의 설계를 담당했던 VM Labs에서 발매하였으며, 일부 서드파티 회사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이중 삼성전자에서 내놓은 게임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 초보적인 수준의 게임들이었으며, 소프트웨어의 총 개수는 10개가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일부 게임은 한국 혹은 일본 전용으로만 발매되기도 했다.

▲ Nuon용 게임 소프트웨어 패키지 (사진 출처 : 재규어섹터)
Nuon으로 발매된 게임들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게임은 매우 적었으며, 대부분 고전 게임의 리메이크나 이식작이었다. 아래에 몇 가지의 Nuon용 게임들을 소개해본다.

▲ Nuon의 데모게임으로서 알려진 'Ballistic' (사진 출처 : Nuon dome)

▲ 한국에만 발매된 삼성의 '짱구는 못말려 3' PC용 게임의 이식작이었다.
(사진 출처 : Nuon dome)

▲ 타이토에서 발매한 스페이스 인베이더 (사진 출처 : Nuon dome)
스크린샷은 그럴듯해도 실제로 움직이는 게임화면을 보면, 동시대에 발매됐던 PS2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 아이언 솔저3
(영상 출처 : 유투브)
▲ 짱구는 못말려3
(영상 출처 : 유투브)
엑스티바가 발매했을 당시 삼성이 발행한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전용 게임을 한 해에 10여 종 이상 선보이고 그 이후에도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로 발매된 타이틀 수는 5개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하드웨어로도 소프트웨어로도 크게 빛을 보지 못한 Nuon이지만,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지는 않다. Nuon의 소프트웨어 중 아타리의 고전 게임인 ‘템페스트(Tempest)’를 리메이크한 ‘템페스트 3000(Tempest 3000)’이라는 타이틀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오직 ‘템페스트 3000’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Nuon을 구매했거나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는 유저도 있을 정도로 컬트한 인기를 얻었다.

▲ 아타리의 고전 게임 '템페스트' (사진 출처 : 아타리포토스)

▲ 이를 리메이크한 Nuon의 '템페스트 3000' (사진 출처 : 월드 오브 스튜아트)
최종적으로 Nuon DVD 플레이어는 삼성에서 세 종류, 일본 토시바에서 한 종류, 그리고 미국의 RCA에서 두 종류가 나왔으나 모두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결국, Nuon 규격은 어둠 속으로 묻혀지고 말았고, DVD와 게임기 기능을 동시에 만족한다는 콘셉트는 플레이스테이션 2가 이어받게 된다.

▲ 타이토에서 발매한 스페이스 인베이더
(영상 출처 : : Nuon dome)

▲ 북미에 출시된 Nuon규격 컨트롤러
어디서 많이 본것 같지 않는가? (사진 출처 Nuon-dome)

▲ 바로 닌텐도64용 컨트롤러랑 똑같이 생겼다 (사진 출처: 360blog.org)
게임기 그 자체를 판매하는 데 급급해서 충분히 소프트웨어가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급하게 엑스티바를 선보였고, 엑스티바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한데다가 비싼 가격까지 더해져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만 것이다.
만약 삼성이 좀 더 자신을 가지고 풍부한 소프트웨어를 준비한 후에 엑스티바를 발매했다면 상황은 바뀌었을 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세계 시장까지는 무리지만, 그래도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막강한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뿌리내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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