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산업

[NDC 13] ‘화중 사형’은 게임 스토리텔링 전략의 성공적 사례

/ 1


▲ 블레이드앤소울의 리드 라이터 김호식 과장


현존 최고의 프로그래머이자 FPS 장르를 실질적으로 개척한 인물로 꼽히는 개발자 존 카멕은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있으면 좋지만, 사실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또 저스트 코즈를 개발한 아발란체 스튜디오의 창설자 크리스토버 선드베르그는 “왜 게임에 끝이 있어야 하나? 플레이어가 게임 스토리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데이터(저스트 코즈2의 구매자 중 18%만 스토리 완료)까지 있는데 왜 스토리에 신경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말 이들의 말처럼 게임 스토리는 중요하지도 않고, 있으나 마나 한 계륵일까? 장르와 추구하는 게임성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답은 달라지겠지만, 엔씨소프트의 김호식 과장은 이들의 생각과 다르다. 


‘블레이드앤소울’의 리드 라이터를 맡는 김호식 과장은 24일, NDC 2013에서 영화적 경험을 주는 게임 스토리텔링 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게임업계 입문하기 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프로듀서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한 김 과장은 영화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앞으로 MMO게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전했다.


그는 모든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인간’이며,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러 스토리텔링 기법이 개발됐고, ‘블레이드앤소울’은 이러한 영화 스토리텔링 기법이 그대로 적용된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 스토리의 중심은 인간이다


스토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며, 여기에는 세가 요소인 캐릭터, 갈등, 플롯이 들어있다. 이런 스토리는 12단계의 플롯으로 구성된 영웅서사로, 현대 영화에서는 3장 이론으로 구분된다. 1장은 모험의 시작과 목표를 다루고 2장은 목표를 찾는 과정, 3장은 목표를 달성하는 해피엔딩과 그 반대인 세드엔딩으로 된다.


'블레이드앤소울' 역시 이러한 기법이 충실히 녹아들었고, 3장의 구성을 통해 스토리의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 게임에서 가능한 위상변화를 적용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중요한데 김 과장은 미국의 신화종교학자이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는 조셉 캠벨의 캐릭터에 대한 7가지 아키타입을 ‘블레이드앤소울’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 7가지 아키타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뻔한 주인공(영웅) 캐릭터의 설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남자(여자) 주인공은 부모 없이, 누군가(친척 혹은 지인)의 손에 길러졌다. 성년이 된 주인공은 현명한 이로부터 정체성을 교육받고,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으며, 절대 악을 상대하여 마침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블레이드앤소울의 12 단계 플롯


그는 무엇보다 스토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캐릭터의 모습을 남기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 ‘블레이드앤소울’에 많은 에픽 캐릭터를 등장시켰고 저마다의 목적을 집어넣어 갈등이 일어나도록 설정했다고 밝혔다.


갈등은 이야기를 몰입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갈등에는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이 있다. 외적 갈등은 목표를 향해 가는데 장애물이 되는 캐릭터와의 대립을 나타낸다. ‘블레이드앤소울’은 진서연이 해당한다. 내적 갈등은 이야기의 깊이를 파고드는 요소다. ‘매트릭스’를 예로 들면, 주인공 네오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갈등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면서 숙적인 스미스 요원을 물리치게 된다. 하지만 게임 캐릭터는 이런 내적 갈등을 표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김 과장은 ‘블레이드앤소울’에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자 캐릭터의 내적 갈등을 시도했다며, 그 중 하나가 게임 초반의 환영 보기라고 전했다. 주인공 캐릭터의 복수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고자 환영을 통해 사부의 원수인 사형을 등장시켜 물리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또, 다른 내적 갈등 요소에는 심마가 있다. 게임 속 마을 중 하나인 유가촌의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주인공의 사부와 홍문파를 욕하며 갈등을 유발한다.



▲ 블레이드앤소울 캐릭터의 내적 갈등


이 와중에 주인공이 심마에 빠지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연출을 설정한 것이다. 그는 이런 내적 갈등을 주입한 이유에 관해 이야기의 깊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숙적인 진서연의 존재감을 계속 각인시키고, 사부의 가르침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런 시도의 성공적인 예가 바로 화중 사형이다. 화중 사형은 본래 스토리에는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였다. 1, 2차 비공개 테스트를 거치면서 게이머들이 연계기와 합격기 사용을 어려워하는 내부적인 평가가 있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별도의 튜토리얼 제작 여부가 논의됐다. 그러던 중 튜토리얼에 내세울 캐릭터를 누구로 할지 고민이 생겨났다. 이와 동시에 화중 사형이 스토리 상 시체로 등장했는데 심의 때문에 빠지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튜토리얼 퀘스트의 캐릭터도 등장하게 됐다.


이후 튜토리얼 퀘스트를 통해 화중 사형은 7가지 캐릭터 아키타입을 모두 내재한 캐릭터로 변모됐다. 김 과장은 3차 테스트에 등장한 튜토리얼 퀘스트(화중 사형)의 반응이 워낙 좋아지면서 김택진 대표가 직접 화중 사형의 등장과 죽음에 대한 컷신을 넣으라고 지시를 할 정도로 캐릭터성이 살아났다고 전했다.



▲ 게임 스토리텔링 시도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는 화중 사형


그는 영화 같은 스토리텔링을 게임에 접목해 성공한 원일을 앞서 언급한 인간적인 이야기에서 찾았다. 게이머는 잘 짜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고 극중의 캐릭터가 처한 상황과 자신을 동일화시키기 때문이란 것이다.


김 과장 역시 스토리텔링은 게임 디자인의 정답이나 해법은 아니라고 전했다. 게임은 이 스토리 적용이 쉽지 않은 콘텐츠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도움이 된다는 건 사실이다. 결국 존 카멕과 크리스토버 선드베르그가 말한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다’ 는 모든 게임에 통용되기보다는 특정 장르나 게임성에 국한 된다고 할 수 있다.


김 과장은 “미래의 게임은 깊이 있고, 인간다움을 생각하는 성숙한 콘텐츠로 나아가야 게임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하며 강의를 마쳤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0년 12월호
2000년 11월호
2000년 10월호
2000년 9월호 부록
2000년 9월호
게임일정
202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