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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타격감 하면 이 사람, ‘릴’ 과 ‘C9’ 제작자 김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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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는 주 소비층인 젊은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젊은 개발 마인드를 필요로 한다. 해외로 나가면 20대 초중반의 게임 프로듀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며, 간혹 10대 개발자나 심지어 회사 대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국내 게임업계 역시 비슷한 양상을 띤다. 비록 대학 진학이나 병역 의무 등의 이유로 외국처럼 어린 나이에 게임업계에 뛰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게임산업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기 때문에 평균 연령층은 확연히 낮은 편이다. 대한민국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이 평균적으로 40대 중반 정도니 말이다.

신생 게임개발사 펄어비스를 이끌고 있는 김대일 대표는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개발자다. 2013년 현재 그의 나이는 서른넷으로, 온라인게임 2세대 개발자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발자취는 여느 1세대 개발자 못지않다. ‘릴 온라인’을 시작으로 ‘R2’, ‘C9’ 등 쟁쟁한 작품을 개발했으며, 자신의 회사를 차려 새롭게 제작 중인 ‘검은 사막’ 역시 수백억 규모의 자금이 들어간 온라인게임들보다도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메이커라고 불려도 될 듯하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 ‘릴 온라인’과 ‘C9’으로 이름을 알린 펄어비스 김대일 대표

그저, 게임이 좋았던 어린아이

김대일은 1980년 1월,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80년대 중반의 어린이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 역시 어린 시절에는 오락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원더보이 인 몬스터랜드’, ‘WWF 슈퍼스타즈’, ‘스트리트 파이터 2’, ‘파이널 파이트’, ‘사무라이 쇼다운’ 등의 게임을 통해 액션 게임에 대한 꿈을 키우던 김대일은 조금 철이 들고 난 이후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주로 즐겼다. 당시 집에 있던 286 AT 컴퓨터를 통해 ‘대항해시대 2’, ‘듄 2’, ‘삼국지 3’ 등을 진득이 플레이했고, 높은 사양 탓에 집에서 구동되지 않았던 ‘심시티 2000’이 매우 하고 싶어서 친구 집에 밤낮으로 출입하며 즐기곤 했다. 이와 같은 명작 게임들을 접하면서 그의 어릴 적 게임관이 확립되었다.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기만 하던 그가 게임 제작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완도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90년대 중반, 김대일은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마침 공부를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전남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었는데, 이때 게임을 만들려면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야 하고,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해야 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게 된다. 이후 그의 자율학습은 선생님에게 얻은 C언어 책과 동네 서점에서 산 다양한 프로그래밍 기초 관련 책을 익히는 시간이 되었다. 다행히 학교에서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는 것을 말리진 않았다. 프로그래밍에 푹 빠진 김대일은 집 컴퓨터가 고장 나자 연습장에 홀로 코딩을 하며 머릿속으로 프로그램을 상상하곤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게임과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던 김대일의 학과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나마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게임을 만들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학업에 매진했고, 한양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해 상경한다.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진학한 대학교에서, 그는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며 2년간의 시간을 보낸다. 학과 공부와 프로그래밍을 번갈아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대학교에서는 훨씬 다양하고 심화적인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김대일이 대학 생활을 보내던 98~99년 당시는 대세가 2D 게임에서 3D로 차츰 옮겨지던 시기로, 그 역시 3D 프로그래밍 습득에 특히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 흔한 배낭여행 한 번 안 가고, 주말에도 코딩만 하며 대학 생활을 보내던 김대일은 2학년을 마치고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일반 기업에 취업할 경우 게임 개발과는 영영 연이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지금 게임개발을 해 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마음에, 결국 그는 학교를 휴학하고 당시 ‘릴 온라인’을 개발 중이던 게임 개발사 가마소프트에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훗날 김대일의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사실 김대일의 가마소프트 입사는 조금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겨울방학이 한창이던 2000년 2월, 게임 개발을 주제로 한 하이텔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그를 가마소프트 관계자가 눈여겨보고 부른 것이다. 어릴 적부터 꿈이던 게임 개발을 시작할 기회가 찾아오자 김대일은 그 길로 가마소프트에 입사한다. 그리고 당시 가마소프트가 야심 차게 진행 중이던 3D MMORPG ‘릴 온라인’ 프로젝트에 신입 프로그래머로 배정받아 3D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21살이었다.


 김대일의 첫 온라인게임 개발작이었던 ‘릴 온라인’


 얼떨결에 맡게 된 첫 번째 총괄 작품이었지만, 생생한 타격감으로 주목을 받았다

‘릴 온라인’ 프로젝트에서 말단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김대일은 ‘위에서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구현해 내겠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했다. 그러던 와중, 입사 3년 차인 2002년도에 기회가 찾아왔다. ‘릴 온라인’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초기 멤버들이 내/외부적인 사정으로 조금씩 회사를 퇴사하거나 프로젝트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 결국, 클라이언트 개발을 하던 김대일의 상사들도 조금씩 사라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프로그램 파트장을 거쳐 첫 베타테스트를 앞둔 시점에서는 급기야 개발 총괄이 되어 있었다. 온라인게임 초창기였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일들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로세스를 다 이해하며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이 총괄을 맡을 필요가 있었다.

23살. 젊다기보다는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나이에 ‘릴 온라인’ 의 개발 총괄이 된 김대일에게는 수많은 시련이 닥쳐왔다. 게임 개발업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어렵고 고된 작업인데, 스튜디오를 조율하고 관리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팀원들의 의견을 일치시키고, 어떤 것을 개발해야 하는지 인지시키고, 자금과 일정 등을 고려해 팀 전체의 개발 스케줄을 짜는 등 개발 총괄로서 주어지는 수많은 업무가 그를 괴롭혔다. 사실 스튜디오 전체에 대한 관리감독은 베테랑 개발자들도 힘들어하는 일이다. 그러나 팀원들의 도움에 힘입어 김대일은 ‘릴 온라인’ 의 개발을 무사히 완료했고, 공개서비스와 상용화에 돌입하게 된다.

사실 김대일의 첫 작품이라 불리는 ‘릴 온라인’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릴 온라인’을 김대일의 작품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대일이 ‘릴 온라인’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조리 관여한 것도 아니고, 그 전후에 거쳐 개발에 관여한 여러 사람의 색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일은 당시 재밌게 플레이하던 ‘마이트 앤 매직 크루세이더’나 ‘퀘이크 3’ 등의 WASD 조작법을 집어넣기도 하고,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의 종족 간 RvR을 반영시키는 등 다양한 요소를 구현하며 개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긴 했다. 그러나 역시 중간에 넘겨받은 프로젝트인지라 완벽하게 자신의 게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릴 온라인’ 은 ‘Risk Your Life’ 의 약자로, 이름 그대로 자칫 방심하면 목숨을 잃는 인간과 아칸 양 진영 간의 치열한 전투를 중심으로 한 MMORPG였다. 특히, 게임 내 타격감이 매우 뛰어났는데, 실제로 많은 게이머들은 ‘릴 온라인’ 의 타격감을 아직도 추억하고 있다. 당시로써는 찾아보기 어렵던 반타겟팅 방식의 액션과 묵직한 타격감, 두 종족 간의 치열한 RvR 등은 공개서비스 시작 때부터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성공을 예감하는 듯했다.

그러나 김대일은 ‘릴 온라인’ 상용화 시작 두 달여 만인 2003년 8월, 가마소프트를 퇴사해 NHN(현 NHN엔터테인먼트)으로 적을 옮긴다. 3년 반에 걸친 프로젝트 ‘릴 온라인’을 완성하며 게임 개발을 시작하겠다는 꿈을 이뤘고,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게임 개발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시기임을 인식한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칠 만한 무대를 찾아 마침 MMORPG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곳으로 입사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릴 온라인’은 서비스 문제와 운영진과 개발진 간의 마찰 등으로 인해 상용화를 기점으로 인기가 점차 쇠락해 갔고, 결국 서비스 3년여 만인 2005년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릴 온라인’은 타격감과 파티 플레이의 즐거움 등으로 당시 인기를 모았다

기획부터 개발까지 직접 총괄한 첫 작품 ‘R2’

이후 김대일은 신작 MMORPG 프로젝트 ‘R2(Reign of Revolution)’를 기획하고, 개발에 돌입한다. ‘릴 온라인’을 만든 김대일이 ‘R2’를 만든다는 소식에 게이머들은 ‘릴2’가 아닌가 하며 환호했지만, 사실 ‘R2’는 세계관이나 설정 등 모든 부분에서 가마소프트의 ‘릴 온라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게임이다. 그러나 ‘릴 온라인’을 만든 개발자가 또다시 중세 판타지 배경의 MMORPG를 만든다는 소식만으로도 ‘R2’는 개발 발표와 동시에 엄청난 화제를 한 몸에 받았다.

김대일은 ‘R2’를 제작하면서, ‘릴 온라인’ 제작 당시 경험 부족과 주변 경황상 미처 이루지 못했던 아쉬운 점들을 극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공성전이 없어 아쉬웠던 RvR에 공성 시스템을 추가하고, 다소 복잡하고 유동적이지 못했던 아이템 체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탄탄한 틀을 잡았다. 특히, 게임의 재미와 매출의 상관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이에 대한 해답을 게임 내에 구현했다. 때문에 ‘R2’는 현재까지도 활발한 게임 내 경제 활동과 공성전이 이루어지며 서비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2006년 8월, 김대일의 두 번째 작품 ‘R2’는 대망의 공개서비스에 돌입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한다. ‘릴 온라인’ 과 ‘R2’를 연이어 히트시킨 김대일은 이때부터 스타 개발자의 반열에 한 발을 올린다. 김대일 개인적으로도 이 시기는 프로젝트 총괄 개발자로서 필요한 많은 것을 배운 귀중한 시간이었다. 대형 게임업체에서 많은 사람들과 작업하며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도 익혔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지휘한 첫 작품 ‘R2’의 흥행으로 인해 김대일은 디지털콘텐츠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하며 내/외부적인 인정을 받았다.

다만, 경험 부족과 주변상황으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미흡한 점도 남겼다. 일단 중소기업이었던 가마소프트와는 달리, 수많은 프로젝트가 오가는 대기업에서 게임을 제작하다 보니 프로젝트가 중간에 접히거나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개발 내내 그를 엄습했다. 또한, 개인적 인지도가 높지 않다 보니 원하는 인재들을 쉽게 영입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다. 경험 부족으로 인해 게임 초반부가 특히 재미없게 만들어진 부분 역시 지금도 김대일에게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R2’는 흥행에 성공했으며, 김대일은 그 개발력을 인정받아 개발부실장으로 승진한다. 휴학 상태에 있던 대학교를 자퇴한 것도 이때쯤으로, 게임 개발자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에게 대학 졸업장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후 그는 ‘R2’ 가 상용화에 돌입한 지 8개월이 지난 2007년 4월, 자신의 세 번째 게임이자 그를 한국 최고의 개발자 중 하나로 인정받게 해 준 ‘C9’ 개발에 들어간다. 한국 나이로 28살이었다.

사실 이 당시 김대일에게는 유저들의 수많은 원성이 쏟아졌다. ‘릴 온라인’ 때도 상용화 2개월 만에 퇴사했는데, ‘R2’에서도 운영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은 채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하자 ‘책임 없는 개발자’ 라는 악성 댓글이 수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대일은 ‘C9’ 개발을 위해 ‘R2’를 버리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재직 당시 바로 옆자리에 ‘R2’ 개발팀이 있었기에 업데이트와 관련된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으며 ‘C9’를 개발했다. 그래서일까, ‘R2’는 출시 7년이 넘은 지금도 활발히 서비스 중이다.


 김대일의 두 번째 작품인 ‘R2’, 현재까지 서비스가 이어지고 있다


 극한의 액션을 추구했던 ‘C9’

김대일의 세 번째 작품, ‘C9’은 전작들과는 달리 액션 MORPG 장르의 게임이다.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과 커다란 필드에서 즐기는 작품이 아니라, 수 명에서 많으면 십 수명의 사람들이 모여 던전을 공략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대신 그의 전매특허인 액션에 집중했다. MMORPG는 워낙 신경 쓸 구석이 많은 장르이다 보니 각종 부가 콘텐츠를 구현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뿐더러 부담도 크다. 반면 ‘C9’같은 액션 MORPG는 다른 쪽보다 액션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릴 온라인’과 ‘R2’에서 차마 구현하지 못했던 진정한 액션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으로 김대일은 ‘C9’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김대일이 ‘C9’ 개발에 쏟은 시간은 약 2년 반, ‘R2’ 보다 반년 이상 개발기간을 단축했다. 다년간 쌓인 경험과 노하우 덕이다. 이때의 김대일은 더는 ‘릴 온라인’이나 ‘R2’ 개발 당시의 풋내기 개발자가 아니었다. 그는 먼저 개발 공정을 대폭 단순화시켰다. ‘R2’ 당시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개발이 지연되었던 부분, 좀 더 단순화시켜도 상관없는 부분, 더 보강해야 할 부분들을 콕 집어 제시했고, 덕분에 투자 대비 효율이 극대화됐다. 여기에 ‘R2’에서 쓰던 엔진을 기반으로 작업했기에 개발은 더욱 가속을 붙였고, 개발 과정 중에서의 여유도 생겨 게임의 방향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2009년 8월 공개서비스를 시작한 ‘C9’는 높은 완성도와 게임성으로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2009년 인기작으로 떠올랐다. 오픈 첫날에는 42만 명 이상의 유저가 몰렸으며, 연말에는 2009 게임대상 대상(대통령상)을 비롯해 기술창작상(그래픽, 캐릭터, 사운드), 그리고 김대일 개인에게 주어진 올해의 개발자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여기에 ‘C9’ 네이버 카페까지 게임 커뮤니티상을 받으며 사실상 6관왕의 위엄을 달성했다. 그렇게 ‘릴 온라인’, ‘R2’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인 ‘C9’까지 대히트시키며, 게임업계의 떠오르는 신예였던 김대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발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C9’는 액션성이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서비스 이후 큰 인기를 얻었다

‘C9’의 서비스가 계속되면서 김대일은 게임성 보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당시 ‘C9’은 액션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오랫동안 즐길 만한 추가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김대일 역시 ‘C9’가 장시간 플레이 시 다소 지루해진다는 판단 하에 과거 ‘삼국지’ 등에서 영감을 얻은 ‘이계점령전’이나 ‘공성전’ 등 전략적이고 꾸준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김대일은 ‘C9’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퇴사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개발자가 게임 운영과 업데이트 방향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 10년 동안 개발자로 살아왔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개발자의 입지는 ‘크리에이터’ 가 아닌 ‘기술자’ 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점점 크게 들었고, 이는 ‘C9’ 개발 완료 직후 극에 달했다.

결국, 김대일은 자신이 구상하던 ‘C9’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2010년 2월 사표를 제출한다. 결국 액션성 하나로 버티던 ‘C9’는 고질적인 콘텐츠 문제에 시달리며 차츰 하락세를 기록하다, 2012년 10월부터 웹젠으로 서비스 이전을 준비하며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릴 온라인’과 ‘R2’, ‘C9’까지 10년 동안 세 개의 히트작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R2’를 제외한 두 작품은 좋지 않은 결말을 맞고야 말았다. 여기에는 서비스와 사업, 운영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어 모든 것을 그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김대일에게 붙은 ‘개발만 하고 운영은 뒷전’ 이라는 꼬리표는 더욱 커져 있었다.


 2009년 ‘C9’는 대상을 포함 대한민국게임대상서 6관왕을 차지했다

진정 자유로운 개발 여건을 찾아… 펄어비스 설립과 ‘검은 사막’

김대일은 2010년 8월, ‘릴 온라인’과 ‘R2’, ‘C9’에서 자신과 함께해온 일명 ‘김대일 사단’ 과 함께 게임개발사 펄어비스를 설립했다. 김대일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개발자들을 모아 우리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가자는 제안을 했고, 이에 많은 이들이 펄어비스에 들어왔다. 게임의 개발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하고자 설립한 회사이기에, 김대일은 자신의 역량을 총 집결할 환경을 만든다. 그리고 그동안 꿈꿔 왔던 이상적인 게임의 개발을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검은 사막’이다.

‘검은 사막’은 전작 ‘C9’와는 달리 수백 수천 명의 유저가 함께 즐기는 MMORPG로 회귀했다. ‘C9’ 부분에서도 언급했듯, 과거의 김대일은 MMORPG를 약간 부담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로 한층 발전한 김대일은 비로소 MMORPG라는 장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개발 프로세스의 전 과정을 제대로 읽어내고, 이를 관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비전을 확립한 김대일은 대기업에서 만든 메이저 게임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대작 게임을 목표로 ‘검은 사막’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 대표가 되면서 직원일 때는 없었던 새로운 부담들도 생겼다. 경영과 게임 개발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입장 변화, 그리고 회사 운영을 위한 금전적 부담 등이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인해 실질적인 업무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펄어비스 팀원들을 조율하고, 개발을 총괄한다. 게임 개발의 모든 과정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검은 사막’은 광활하고 섬세하게 묘사된 오픈 월드가 제공하는 높은 자유도, 블랙스톤을 놓고 벌어지는 길드 간 치열한 전투, 그의 장기인 실감 나는 액션, 하우징 시스템을 포함한 생활 콘텐츠 등이 어우러진 MMORPG다. 동시에 어떠한 외부 압력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김대일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한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검은 사막’을 훗날에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며, 이전 작품에서 구현하지 못했거나 부족했던 부분들을 채워 넣는 중이다. ‘검은 사막’에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니 차기작에 대한 구상조차도 못 하고 있을 정도다.

“나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 회사까지 차렸습니다. 인생 대부분을 게임 개발과 함께해 왔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가 아닌 인생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 같아요. 아마 아버지 김 공장에서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겠죠. 개인적으로는 게임 개발자가 된 것이 제 인생의 업을 이뤘다고 봅니다.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한 번쯤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힘들긴 하지만, 그 어떤 일보다 재밌거든요.”

휴일에도 집이나 회사에서 개발을 하거나, 아니면 회사 직원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취미의 전부라는 김대일 대표. 그의 진정한 모험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


 김대일이 현재 개발 중인 신작 ‘검은 사막’


 게임 개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전혀 녹슬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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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사막 2015년 7월 14일
플랫폼
온라인
장르
MMORPG
제작사
펄어비스
게임소개
'검은사막'은 각종 클래스의 특성을 살린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스킬, 플레이어가 직접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타격감, 전술적인 면을 강조한 대규모 공성전, 개성넘치는 캐릭터와 화려하면서 사실적인 비주얼을 장점으로 ...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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