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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김형태, ‘창세기전’과 ‘블소’ 매력을 창조한 아티스트

김형태. 대한민국에서 게임 좀 했다 하는 이 중에서 그의 그림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김형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트 디렉터 중 한 명으로, 신체 특정 부위를 과장시켜 매력을 극대화한 인체 묘사, 독창적이고 세련된 디자인, 강렬한 구도, 수위를 넘나드는 노출 등 자신만의 뚜렷한 세계를 구축해 국내 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 등에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는 ‘창세기전 3’ 시리즈를 통해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마그나카르타’ 시리즈와 ‘블레이드 앤 소울’ 에 이르러서는 원화가에서 벗어나 캐릭터 모델링 등 게임의 그래픽을 총괄하는 아트 디렉터(AD)의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독보적 분야를 개척했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 '창세기전' 과 ‘마그나카르타’ , ‘블레이드 앤 소울’ 을 그려낸 김형태 AD

출판업계에 실망한 만화가 지망생

김형태는 이른 1978년, 서울 등촌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주변의 하얀 종이만 보면 무엇인가를 그려서 채워야만 직성이 풀렸다. 달력 뒷면 등 집안의 모든 종이는 그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고, 이 때문에 부모님은 동네의 철 지난 달력을 모아 오느라 바빴다.

어린 김형태는 단순히 그림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유치원 때, 그는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자동차나 전차 등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어린 나이에 지하철 본체와 바퀴 사이의 전극과 파이프, 라이트 손잡이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묘사를 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김형태는 자연스레 TV에서 방영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졌고, 5학년 때 목동으로 이사를 간 후 본격적으로 연습장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그림체에 영향을 미친 작품은 ‘건담’ 등의 로봇 만화를 비롯해 ‘고독한 레인저’ , ‘최후의 바탈리온’ 등을 그린 김형배 작가의 만화였으며, ‘공각기동대’ 등을 그린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과 유키토 키시로의 ‘총몽’ , 가이낙스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등도 그의 캐릭터 디자인과 그림 스타일 정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김형태는 만화 외에도 게임과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학창시절 그는 MSX로 출시된 ‘사이코 월드’ , ‘하이드 포스’ , ‘피드백’ , PC용 ‘페르시아의 왕자’ , ‘알카노이드’ 등 SF와 액션 게임을 즐겨 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FM사운드를 이용한 MIDI 음악 작곡에 몰두했다. 당시 하이텔 PC통신 게임제작동호회를 통해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 소프트맥스 조영기 이사를 비롯한 다양한 1세대 게임개발자들과 어울렸으며, 게임 음악을 만들어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만 그의 주 관심사가 그림이었다는 것은 늘 한결같았다. 그림은 연습장과 연필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기에, 비싼 PC나 게임기가 필요한 게임이나 음악보다 손쉽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정중학교 재학 중 그는 쉬는 시간과 수면 시간을 쪼개 가며 쉴 새 없이 만화를 그려 왔고, 어느새 주변에서 ‘만화 그리는 아이’로 도장이 찍혔다.

김형태가 프로 만화가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찾아왔다. 훗날 ‘리니지 2’ 원화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일러스트레이터 정준호를 만난 것. 동네 게임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정준호는 단순한 취미를 뛰어넘어 프로의 기법과 소재, 구도 등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소년이었다. 김형태는 비슷한 나이 또래인 정준호의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진로를 만화가로 정한다.


▲ 학창 시절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김형태(좌)와 정준호(우)의 일러스트

정준호는 김형태보다 한 살 많고 학교도 달랐지만, 그림이라는 공통 분모로 인해 둘은 급속히 친해졌다. 이 둘의 인연은 훗날 강서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더욱 두터워진다. 강서고등학교 재학 중, 김형태는 많은 그림 동료들을 만났다. ‘제라’ 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이슬기 역시 그와 고등학교 동기이며, 후배 중에는 ‘던전스트라이커’ 아트디렉터, ‘블레이드 앤 소울’ 몬스터 치프 디자이너, 소프트맥스 ‘테일즈위버’ 디자이너 등이 포함되어 있다.


▲ 김형태가 1996년 그린 SF 만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김형태는 입시미술을 시작했다. 프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려야 했고,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는 미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모님 역시 학교 공부에만 충실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기에, 그는 3년 내내 그림과 학업에 몰두했다. 결국 그는 1996년, 중앙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대학에 진학한 김형태는 한 학기 동안 미친 듯이 학교 수업을 들어 장학금까지 받지만, 시각디자인과는 광고나 CF, 제품디자인 분야를 배우는 곳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1학년 2학기 때부터 강의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공모전 제출용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2학년 등록 전 집안 사정이 다소 나빠졌고, 김형태는 마침 잘 됐다며 휴학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프로 만화가 데뷔를 준비한다. 그렇게 완성한 만화 원고는 ‘소년챔프’ 를 발간하던 대원동아와 ‘찬스’ 를 발간하는 학산문화사의 신인공모전에 당선됐다.

김형태는 그 중 학산문화사와 함께 연재 만화가로서의 데뷔를 준비했다. 학산에서의 데뷔가 결정되자 김형태는 주간 연재를 염두에 두고 7~8회 분량의 펜터치 원고를 준비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만화에 전념한다. 그러나 예정되어 있던 자신의 원고 대신 다른 작가의 원고가 실리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준비했던 원고를 ‘아이큐점프’ 의 서울문화사에 제출했으나, 이번에는 학원폭력물이라는 장르가 문제가 됐다. 당시는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는 즈음 만화가들이 법정에 불려가는 등 만화산업에 대한 제약이 심했던 시대였다. 결국 김형태의 만화가 데뷔작은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이 때 크게 상심한 김형태는 만화가로서의 꿈을 접고 게임회사에 취직한다. 1997년도의 일이다.

험난한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의 길

사실 김형태의 게임업계 데뷔는 만화가를 준비하기 전, 대학교 1학년 때 ST랩이라는 회사에서 도트 찍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의 본격적인 게임 인생은 1997년, 휴학 후 게임 유통/개발사 만트라에 취직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병역특례로 입사한 만트라에서 그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 ‘오컬트 랩써디언 어컬텔러(이하 어컬텔러)’ 라는 작품에 참여한다. 게임 일러스트 작업에서, 김형태는 만화와 다른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먹선과 스크린톤이 전부인 만화에 비해, 게임 일러스트는 매킨토시와 초기 버전의 포토샵, 페인터 등을 이용해 디지털 컬러링을 입혀 가며 작업을 할 수 있어 더욱 깊고 폭넓은 표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작업은 당시로선 신기술이었다. 1996~97년 당시,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일부만이 막 손대기 시작한 새로운 분야였다. 그러나 김형태는 이미 만화를 그릴 때부터 매킨토시를 이용해 디지털 원고 작업을 해 왔던 터라, 누구보다 빠르고 능숙하게 디지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렇듯 김형태는 늘 주변의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러한 삶의 자세는 향후 ‘블레이드 앤 소울’ 의 비주얼 분야를 총괄하는 아트 디렉터로서의 길을 걷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만화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다양한 색을 쓰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김형태. 만화의 그림과 디지털 작업을 통한 컬러링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은 그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그의 첫 참여작인 ‘어컬텔러’ 가 완성 단계에 도달했고, 일반 소비자들에게 게임을 선보일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첫 작품이지만 만트라의 부도로 인해 출시되지 못 한 ‘어컬텔러’  

그러나, ‘어컬텔러’ 가 출시되기 직전. 만트라는 ‘프린세스 메이커 3’ 베타 유출사건에 휘말리며 순식간에 부도를 맞이하고 만다. 결국 ‘어컬텔러’ 는 스크린샷 몇 장만이 세상에 공개된 채 빛도 못 보고 사라졌다.

회사 부도 이후, 직원들이 모두 나간 사무실에는 차압 딱지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형태는 병역특례 때문에 차마 회사를 나가지 못하고, 결국 같은 처지의 동료 둘과 빈 사무실을 지키는 신세가 된다. 그렇다고 멍하니 세월을 보냈던 것은 아니다. 이 기간 중, 김형태는 동료로부터 3D 디자인을 배웠다. 이 때의 처음으로 3D 기법을 접한 김형태는 자신의 일러스트를 3D 세계에서 구현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의 첫 3D 작품은 ‘창세기전 3’ 의 오프닝 영상으로, 훗날 ‘마그나카르타’ 와 ‘블레이드 앤 소울’ 등을 통해 더욱 발전된 모습을 선보인다.

황량한 사무실에서 근근히 버티며 3D 기술과 그림 연습을 하던 김형태는, 소프트맥스에서 게임음악 작업을 하던 친구의 소개로 인해 ‘창세기전 외전 2: 템페스트(이하 템페스트)’ 의 엔딩 부분과 서브 캐릭터 일러스트 외주 작업을 맡게 된다. ‘템페스트’ 는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타카 토니(TONY)가 메인 캐릭터 일러스트를 맡아 화제가 된 작품인데, 당초 ‘창세기전’ 과 무관한 작품으로 제작되다가 중간에 ‘창세기전 외전 2’ 로 편입되면서 게임의 스케일이 커지고 엔딩 부분이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 도입된 전생과 관련한 추가 일러스트가 대량으로 필요해졌고, 그 일이 김형태에게 넘어온 것이다. 그는 ‘템페스트’ 엔딩 부분의 일러스트를 맡아 루시퍼와 리리스, 주신과 악신들의 생애를 멋지게 그려냈고, 그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 토니(TONY)가 그린 ‘템페스트’  메인 캐릭터 


▲ 김형태가 그린 ‘템페스트’  의 엔딩 일러스트

소프트맥스 입사, ‘창세기전 3’ 부터 ‘마그나카르타’ 까지

소프트맥스는 ‘템페스트’ 에서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낸 김형태를 스카우트해 ‘창세기전 3’ 의 일러스트 작업을 맡긴다. 마침 방위산업체 근무를 마치기 위해서라도 일자리가 필요했던 그는 주저없이 소프트맥스에 입사해 그래픽을 총괄하는 전석환 팀장(현 소프트맥스 이사)밑에서 ‘창세기전 3 파트 1’ 과 ‘창세기전 3 파트 2’ 제작에 참여해 살라딘, 세라자드, 베라모드 등 수많은 캐릭터의 원화를 그렸다.

‘창세기전 3’ 작업을 하며 김형태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이 당시는 김형태 풍 그림의 특징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며, 유럽과 중동 지역의 다양한 의상을 독특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탈바꿈시켜 디자인적으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특히 김형태는 SF적 성격을 띄고 있는 ‘창세기전 3 파트 2’ 에서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 복잡한 문양이 특징인 다양한 금속 계열 소품과 장비를 수없이 디자인한다. 이 같은 메탈 장비류는 이후 ‘마그나카르타’ , ‘블레이드 앤 소울’ 등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 요소로 자리잡았다.


▲ 소프트맥스 입사 후 본격적으로 작업한 ‘창세기전 3’  시리즈 

훗날 김형태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SF 요소를 마음껏 다루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고정관념 없이 마음껏 그려낼 수 있었던 ‘창세기전 3 파트 2’ 개발 당시가 가장 즐겁게 일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당시 한 명의 캐릭터를 100컷 넘게 그려가며(창세기전 3 시리즈에 등장한 캐릭터는 주연급만 100여 명이 넘는다) 최적의 스타일을 찾아냈고, 그 결과 ‘창세기전 3’ 시리즈는 한국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캐릭터성을 갖게 된다.

참고로 그는 ‘창세기전 3’ 작업을 하며 ‘악튜러스’ 의 일러스트 작업을 하던 임학수(현 엔씨소프트)와도 친분을 쌓았다. 당시 임학수와 김형태는 게임 일러스트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던 이들이었는데, 이 둘의 인연은 훗날까지 이어진다. 임학수는 ‘악튜러스’ 이후 ‘그라나도 에스파다’ 를 거쳐, 엔씨소프트 ‘블레이드 앤 소울’ 아트팀에서 김형태와 함께 진서연 일당 디자인을 비롯한 다양한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창세기전 3’ 을 통해 김형태는 국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 떠올랐다. 그러나 ‘창세기전 3’ 는 2D 도트 그래픽을 사용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의 일러스트는 생생한 대사 전달을 위한 초상화, 그리고 간혹 이벤트 컷 씬에 활용되는 정도에 그쳤다. 미려한 일러스트와는 달리 정작 게임 내에서는 SD화 된 캐릭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몇몇 경우에는 원화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묘사되어 설명이 없이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에 김형태는 새로운 프로젝트에선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화를 그대로 3D 캐릭터로 구현하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이 적용된 작품이 바로 ‘마그나카르타’ 였다.


▲ '창세기전 3' 는 2D 도트 그래픽을 사용해 일러스트와 다른 모습의 캐릭터가 많았다


▲ 본격 아트디렉터로서의 길을 걷게 된 ‘마그나카르타’

'마그나카르타’ 는 ‘창세기전’ 시리즈와 달리 3D 그래픽으로 제작되어 캐릭터를 모든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섬세한 3D 모델링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김형태는 ‘마그나카르타’ 의 3D 모델링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게임 속에서 구현한다. 원화가에서 벗어나 게임 아트디렉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작업 시, 김형태는 다른 게임 아트디렉터들이 잘 신경을 쓰지 않는 캐릭터의 뒷모습 묘사에 특히 열정을 쏟았다. 그는 “게임을 플레이 할 때,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정면보다는 뒷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게 됩니다. 때문에 뒷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죠.” 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포트폴리오 디자인이 아닌 플레이어 입장에서 보기 좋은 그래픽을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첫 작품인 ‘마그나카르타’ PC판의 3D 캐릭터 모델링은 김형태 특유의 화풍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김형태의 화풍은 정형적인 인체비율에 얽매지지 않은 채 신체 특정 부위(가슴이나 허벅지, 둔부 등)를 강조하고, 근육과 지방의 곡선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인데, ‘마그나카르타’ 의 게임 캐릭터는 이와는 달리 다른 밋밋하고 정형적인 3D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게임이 출시되자, 3D 모델링 디자이너가 누구길래 김형태의 일러스트를 망치느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일러스트와 3D 모델링 모두 김형태의 손에서 나왔음에도 말이다.

이 때의 충격은 김형태로 하여금 3D 기법에 흠뻑 몰두하게 만든다. 일러스트의 매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수준의 3D 모델링을 구현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는 테크니컬 아트디렉터(TAD)를 겸임하면서 최신 게임 제작 과정에서부터 쉐이더, 라이팅, 물리 효과 등 다양한 기술을 직접 보고, 배우고, 토론하며 3D 기술을 공부했다. 업계의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각종 논문을 찾아 읽고, 각종 세미나에 찾아가 강연을 들었다.

3D 모델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가 목표로 하는 원화풍의 그래픽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때의 발전상은 이후 플레이스테이션2로 출시된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 을 보면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데, PC버전에 비하면 그래픽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묘사 기법이 훨씬 진화해 김형태의 그림을 3D화 시켰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 PC로 출시된 ‘마그나카르타(위)' 와 PS2로 출시된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아래)’

대한민국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부부 탄생

2005년, 소프트맥스에서 ‘마그나카르타 2’ 원화를 그리고 있던 김형태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그림과 관련된 논쟁을 발견한다. 김형태의 그림은 신체의 곡선을 인위적으로 왜곡시킨 데포르메 기법을 적극 활용하고, 덕분에 다른 그림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동적이고 과장된 강렬한 인상이 남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김형태는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점잖은 척 할 필요가 없다’ 라는 일종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여체의 곡선을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굳이 사회적 통념이나 분위기 때문에 숨길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당당히 표현한 결과 노출이 심한 의상이 자주 등장한다.

이 같은 김형태의 화풍은 많은 팬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역으로 상당한 안티 팬들도 양산했다. 인터넷에서 벌어진 논쟁도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기서 한 코스플레이어 겸 동인 일러스트레이터였던 한 블로거가 김형태의 그림에 대해 자신이 아는 미술적 이론을 총동원해가며 적극적이고 논리적인 지지를 했는데, 이를 본 김형태는 해당 인물에 대해 꽤나 좋은 인상을 받고 흥미를 갖게 된다.

그 블로그의 주인공은 게임&애니메이션 코스튬 플레이 및 동인 일러스트 작업을 해 오던 채지윤(닉네임: 꾸엠)이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김형태는 주변인들을 통해 채지윤을 수배하기에 이르고, 우연히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의 소개로 만남을 성사. 7년 간의 연애 끝에 지난 2011년 결혼에 골인한다.

채지윤과 김형태는 그림 부문에서 수많은 영감을 주고받았으며, 이후 채지윤은 TCG ‘확산성 밀리언아서’ 를 비롯해 보컬로이드 ‘시유(SeeU)’ , ‘DJ MAX’ 시리즈 등의 일러스트를 맡으며 김형태 못지 않은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현재 김형태-채지윤 부부는 다양한 동인 활동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 채지윤 씨와 함께 출전하는 日 코믹마켓

더 큰 작품을 향해, 엔씨소프트 ‘블레이드 앤 소울’ 합류

다시 2005년으로 돌아가, 김형태는 ‘창세기전 3’ 시리즈와 ‘마그나카르타’ 시리즈를 통해 소프트맥스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더 큰 무대로 나가고 싶었다. 당시 소프트맥스는 일본에서 터를 닦은 콘솔 패키지 사업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대세로 떠오른 온라인게임 사업에 진출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마그나카르타 2’ 를 필두로 한 콘솔 사업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형태는 수백억 규모의 작품이 탄생하기 시작한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살려 보고 싶었다. 엔씨소프트의 이적 제의가 온 것도 그 때였다.

사실 엔씨소프트가 김형태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은 이 때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마그나카르타: 진홍의 성흔’ 개발 도중이었는데, 당시 ‘리니지 2’ 를 제작하고 있었던 엔씨소프트의 배재현 실장이 ‘리니지 2’ 의 일러스트 작업을 제안했던 것. 그러나 김형태는 당시 ‘마그나카르타’ 를 통해 아트 디렉터로서의 첫 발을 막 내딛은 상태였기에 이적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참고로 당시 김형태가 엔씨소프트에 소개시켜 준 사람이 바로 중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정준호로, 결국 ‘리니지 2’ 는 정준호의 손 끝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다.

몇 년 후, 배재현은 ‘마그나카르타 2’ 를 제작 중이던 김형태에게 2차 제의를 한다. ‘리니지 2’ 를 능가할 만한 대작을 함께 해 보지 않겠냐는 것. 이 때 김형태는 패키지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시기였고, 결국 ‘마그나카르타 2’ 의 일러스트 작업을 끝으로 그는 더 큰 자신의 역할을 찾아 엔씨소프트로 적을 옮겼다.

엔씨소프트에서 김형태는 배재현이 구상 중이던 새로운 프로젝트(프로젝트M)의 아트 그래픽 팀장으로 임명된다. 사실 말이 팀장이지, 처음에는 팀 전체에 김형태 혼자 뿐이었다. 배재현 실장과 김형태를 중심으로 PM과 기획자가 더해져 총 4명이서 시작한 신규 프로젝트. 이 게임이 바로 ‘블레이드 앤 소울’ 이다.

김형태의 합류 당시, ‘프로젝트 M’ 은 ‘블레이드 앤 소울’ 이라는 이름은 커녕, 컨셉이나 장르조차도 구체화되지 않은 백지 상태였다. 이에 김형태는 자신이 꿈꿔 왔던 SF장르 대전격투 온라인게임을 제안했고, 이 역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뻔 했다. 그러나 이미 배재현 실장의 머릿속에는 퓨전 무협 MMORPG ‘블레이드 앤 소울’ 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잡혀 있었다. 결국 김형태는 무협 게임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다.


▲ ‘창세기전 3’ 를 통해 그린 동양적 의상들 

사실 이제껏 김형태가 참여한 작품 중 무협이라고 할 만한 게임은 없었다. ‘창세기전 3’ 나 ‘마그나카르타’ 시리즈에 동양풍 요소가 일부 섞여 있긴 했지만, 무협이라고 할 만한 컨셉은 아니었다. 그러나 과거 ‘창세기전 3’ 에서 난생 처음 아랍 문화권 복색1)을 그렸을 때처럼, 김형태는 무협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배재현 실장 역시 전형적인 무협보다는 새로운 판타지적 요소가 섞인 작품을 원했다. 동양적이지만 무협이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고, 오히려 현대나 미래풍 느낌까지 드는 ‘블레이드 앤 소울’ 특유의 디자인은 그렇게 정립되었다.

그러나 ‘블레이드 앤 소울’ 은 김형태가 이전에 작업했던 작품들과는 그 규모와 디테일 면에서 차원이 다른 작품이었다. 김형태는 이를 두고 ‘인생 최고 난이도의 작업이자 경험’ 이라고 평했는데, 실제로 ‘블레이드 앤 소울’ 의 그래픽 디자인 팀원만 8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웬만한 대형 게임 프로젝트 제작 인원보다 많은 수다. 그 전까지 대부분 혼자, 혹은 소수의 인원과 일을 해왔던 김형태에게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는 수 년에 걸쳐 엔씨소프트 내/외부의 인재를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며 80여 명에 달하는 팀원을 일일이 뽑고, 파트 별로 일을 나눠 지시하는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웠다.


▲ 많은 일을 동시에 진행한 까닭에 그림을 그릴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림만 그리던 시절과는 업무 내용이 많이 달라졌다. 팀원들에게 다소 힘든 업무 일정을 강요해야 하는 일도 생기고, 자신 뿐 아니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개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적절히 업무를 배분하기 위해 팀원들의 역량과 특징을 일일이 파악하는 등 관리자로서의 업무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원화부터 모델링, 이펙트, 라이팅, 배경, 그래픽 기술, 홍보 영상 등 ‘블레이드 앤 소울’ 의 비주얼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일을 도맡아 하고, 프로그래밍 팀과 언리얼 엔진을 손보는 작업에도 참여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횟수가 부쩍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김형태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창세기전’ 과 ‘마그나카르타’ 를 통해 익히 알려진 바 있으며, 특색도 뚜렷해 이해하기 비교적 쉬웠다. 때문에 8년여에 걸친 ‘블레이드 앤 소울’ 아트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한 장의 일러스트처럼 느껴지는 ‘블레이드 앤 소울’ 의 그래픽이 만들어졌다. 이는 게이머와 업계에서도 대호평을 받았으며, 김형태 스스로도 ‘이보다 더 내 그림을 잘 표현할 그래픽은 없을 것이다’ 고 평할 정도였다.


▲ 무려 7년 간 개발된 ‘블레이드앤소울’  


▲ 뒷태에 대한 김형태의 철학이 백분 반영되어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본질로 돌아가다

1997년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해 ‘창세기전 3’ 와 ‘마그나카르타’ 시리즈를 거쳐 ‘블레이드 앤 소울’ 까지. 장장 16년 간 게임 아트 작업을 하면서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트 디렉터로 떠올랐다. 김형태와 배재현 실장, 홍석근 팀장 등이 함께 만든 ‘블레이드 앤 소울’ 은 2012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했고, 김형태의 이름은 대한민국을 넘어 외국으로 뻗어나갔다.


▲ 2012년 게임대상 시상식에서의 김형태 AD(좌)

그러나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던 그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아트 디렉터에 이르기까지 3D 기술과 그림의 일치화를 추구해 온 그였지만, ‘블레이드 앤 소울’ 을 통해 그 정점에 도달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여기서 더 고품질 그래픽을 추구한다면 실사 지향적으로 가게 될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원화와의 차이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고민에 빠진 것이다.

결국 그는 ‘블레이드 앤 소울’ 의 중국 서비스가 시작된 2013년 후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원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했다. 현재 김형태는 배우자 채지윤과 함께 게임의 본질은 무엇이며, 자신의 그림이 게임에 사용된다는 것의 의미를 돌이켜보고 있다. 자신의 그림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해 게이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그것이 현재 김형태의 최대 고민이다. 그의 향후 행보가 어떤 방향일 지는 미지수이지만, 앞으로도 멋진 그림으로 대한민국 게임업계를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장장 8년간 ‘블레이드 앤 소울’ 을 통해 아트 디렉터 일을 해 왔다. ‘블레이드 앤 소울’ 개발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아트디렉팅 분야에서 끝을 볼 것인지, 혹은 내 그림을 다시 돌아볼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블레이드 앤 소울’ 보다 더 고품질의 게임을 만들려면 기술도, 시간도, 비용도 너무 많이 들지 않겠냐는 생각에 현재는 내 그림으로 회귀하겠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일단은 규모가 작더라도 나 자신의 그림을 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하는 게임을 찾아보려고 한다. 당분간은 ‘블레이드 앤 소울’ 과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보다는 작더라도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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