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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잠입 액션의 빅 보스, 코지마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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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본거지에 홀로 잠입해 경비병을 조용히 해치우고 임무를 달성하는 특수 요원. 최근 게임에서는 비교적 흔한 콘셉이지만, 게임산업 초창기에만 해도 이러한 방식을 생각해낸 사람은 없었다. 액션 게임이라면 람보나 코만도 같은 주인공이 튀어나와 총알을 난사하며 수많은 적들을 해치우는 것이 기본이자 불문율이었고, 이러한 법칙은 ‘메탈 기어’ 의 출시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메탈 기어’ 의 제작자인 코지마 히데오는 잠입 액션 장르를 창조한 것뿐 아니라 게임업계의 새로운 세계를 연 인물이다. 그의 이름 뒤에는 개발자에게 흔히 따라오는 디렉터나 프로듀서가 아니라 감독이라는 호칭이 더 많이 붙는다. ‘스내쳐’ 와 ‘폴리스너츠’ 등의 어드벤처게임에서 ‘메탈 기어 솔리드’ 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항상 영화 이상의 영상미를 선보였고, 시나리오와 연출 방면에서도 놀랄 만큼의 깊이를 추구했다. 이러한 연출력과 참신함 덕분에 그는 RPG나 액션 장르가 유독 많은 일본 게임업계에서 액션 어드벤처라는 희소한 장르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 잠입 액션 장르의 창조자, 코지마 히데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영화와 시나리오에 푹 빠져 있던 아이 

코지마는 1963년, 나름 유복한 집안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몽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간혹 뭔가를 멍하니 쳐다보며 갑자기 웃거나 울곤 하는 독특한 모습은, 주변에 있는 사물이나 인물, 사건 등을 가지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한 번 몽상을 시작하면 앞도 잘 보지 못 할 정도로 골똘히 몰두해, 길가의 도랑에 발을 빠뜨리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이러한 습관은 현재도 남아 있어, 코지마는 운전을 하다가 자주 집 대문을 들이박는다고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 마니아였던 코지마의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하는 재능을 일치감치 알아채고 북돋워줬다. 그 방법은 바로 다양한 영화를 꾸준히 보여줘 상상력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취학 전부터 코지마는 매일 밤마다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교육의 일환이었기에,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는 잠도 잘 수 없었다. 이른바 창조력을 키우는 영재 교육이었던 셈이다. 장르도 다양했다. 호러, 액션, 서부극…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섭렵하며 코지마의 상상력은 점점 넓어졌고,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따라 영화광이 되었다.

영화의 세계로 그를 이끈 아버지는 코지마가 13살 때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코지마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이미 궤도에 올라 있었고, 학창 시절 내내 장래희망 란에 영화감독이라고 적어 낼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실제로 코지마는 중학생 때 수백 매의 시나리오를, 고등학생 때는 8mm 캠코더를 이용한 아마추어 영화를 직접 찍기까지 이른다. 그는 학창 시절, 학교 축제에서 상영할 단편 영화를 찍기 위해 친구들을 설득해 부모님을 속여 외딴 섬으로 4일간 촬영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비록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당초 계획했던 조난 영화 대신 급조된 좀비물을 찍긴 했지만 말이다. 이처럼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그러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 만들었던 영화는 그야말로 아마추어 작품일 뿐이었고,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살던 곳 주변에는 영화 제작을 전문으로 가르쳐주는 교육 기관이 없었다. 또한, 그가 원하는 영화는 거대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급 작품이었는데, 일본 영화계에서 신출내기가 이러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덩달아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도 코지마가 장래성이 불투명한 영화 제작자가 되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 많은 봉급을 받길 원했다. 결국 그는 평범한 대학의 경제학과에 진학한다.

그러던 코지마가 게임을 만나 첫눈에 반한 것은 운명일 지도 모른다. 그는 원하지 않는 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도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누구도 영화 제작을 응원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그는 군중 속의 공허를 느끼곤 했다. 그러던 와중, 그는 우연히 닌텐도에서 출시한 게임기 패미콤과 미야모토 시게루의 역작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85)’ 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때 게임을 처음 접해 본 코지마의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번뜩였다.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은, 현실 세계가 아닌 게임이라는 디지털 세상일 지도 모른다는 외침이 들려오는 듯 했다.


▲ 코지마를 게임업계로 이끈 닌텐도의 NES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  

게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감에 따라 코지마는 게임의 매력과 가능성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받는 영화와는 달리 게임은 콘텐츠와 플레이어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데다, 사람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때의 영향으로 ‘메탈기어 솔리드’ 등 그의 작품에는 유독 영화적 연출이 많다. 훗날 코지마의 연출적 감각은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으며, 다양한 영화업계 관계자들과 작품을 통해 서로 교감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한다. 실제로 헐리웃 영화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팬이 많으며, ‘올드보이’ 와 ‘친절한 금자씨’ , ‘설국열차’ 등을 제작한 박찬욱 감독과는 서로의 작품을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다만 코지마가 게임업계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1980년대 중반은 게임이 막 산업으로써 발돋움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자연히 게임 제작자의 사회적 지위도 낮았고, 많은 사람들은 게임 제작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따라서 코지마가 게임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주변 친구들이나 대학 교수들이 반대한 것은 그리 의아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변에서는 “재능도 많은 친구가 안타깝게도 게임 회사에 들어갔다” 라는 비웃음 섞인 소리까지 했다. 코지마가 선택한 길을 응원해준 것은 오직 그의 어머니 뿐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용기를 주었고, 이는 큰 힘이 되었다.

사실 코지마의 마음 한구석에도 일말의 걱정은 있었다. 게임 제작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그렇고,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마음이 이러한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그가 수많은 게임회사 중에서 유독 코나미를 선택한 이유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코나미는 당시 일본의 게임회사 중에서 유일한 상장사였기 때문에, 그나마 주변에서 나름 인정받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년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 개발자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1986년의 일이다.

코나미 입사와 ‘메탈 기어’ 의 탄생 

코나미 입사 후 코지마의 첫 업무는 국내에 ‘남극탐험’ 으로 잘 알려진 ‘남극 어드벤처’ 의 속편, ‘꿈의 대륙 어드벤처’ 프로젝트의 보조 프로듀서였다. ‘꿈의 대륙 어드벤처’ 는 전작에 비해 다양한 연출 효과와 아이디어가 들어갔으나, 코지마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이었다. 해당 프로젝트가 끝난 후, 그는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로스트 월드’ 라는 게임을 기획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게임은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6개월 만에 취소되어 빛을 보지 못했다.


▲ '남극탐험' 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남극 어드벤처’ 


▲ 코지마가 참여한 후속작 ‘꿈의 대륙 어드벤처’ 

코지마는 이내 다음 작품을 기획한다. 이듬해 출시된 그의 첫 오리지널 작품은 바로 ‘메탈 기어(MSX판)’ 로, 향후 25년이 넘게 이어진 시리즈의 시작점이다. ‘메탈 기어’ 는 스파이를 소재로 한 게임으로, 적을 만나면 들키지 않고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역발상을 추구했다. 게임이라면 무조건 적과 본격적으로 싸우는 것만 생각했던 업계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코지마 역시 처음부터 이러한 게임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코지마가 속해 있던 코나미의 MSX 개발팀에서는 기기의 성능 한계 때문에 고민 중이었다. 더욱 고품질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기기 성능이 뒤따라줘야 하는데, MSX 환경 상에서는 그것이 어려웠던 것. 결국 코지마에게 부여된 과제는 ‘멋진 비주얼의 캐릭터가 나오는 액션게임을 만들어라. 단 하드웨어 성능을 고려해 화면에 나올 수 있는 캐릭터는 3명 이하로 제한한다’ 라는 것이었다.

코지마는 난감한 주문을 받고 고심했다. 결국 그는 발상의 전환을 선택했다. 주인공이 적을 철저히 피해 다닌다는 설정을 통해, 화면에 적은 수의 캐릭터만 등장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부여한 것이다. 그는 처음엔 영화 ‘대탈출(The Great Escape)’ 에서 모티브를 얻어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간수를 피해 몰래 탈옥한다는 설정을 잡았지만, 주인공이 너무 도망만 다니면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수정했다. 주인공을 적지에 잠입한 특수요원으로 바꾸고, 은밀한 잠입과 암살을 통해 미션을 수행한다는 것. 그렇게 나토 군의 특수부대 소속 요원 솔리드 스네이크가 활약하는 잠입 액션 ‘메탈 기어’ 시리즈가 탄생했다.

그러나, ‘메탈 기어’ 는 그 참신함 때문에 출시되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일단 20대 중반에 막 접어든 코지마는 코나미에 근무하는 게임 개발자 중에서도 가장 어린 편에 속했다. 게다가 경력이라곤 ‘로스트 월드’  프로젝트의 취소로 인해 ‘꿈의 대륙 어드벤처’  보조 작업밖에 없었다. 때문에 코나미의 윗선에서는 그가 주장하는 참신한 시스템을 마치 초심자의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여겼다. 하지만 코지마는 심혈을 기울여 상급자와 팀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메탈 기어’ 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 영화 '대탈출(좌)' 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잠입 액션 '메탈 기어(우)'

그렇게 MGX2로 출시된 ‘메탈 기어’ 는 청소년 및 성인 남성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적의 본거지에 홀로 잠입해 임무를 수행한다는 하드코어한 콘셉, 전투를 가급적 피하면서 적에게 들키지 않고 전진하는 스파이 액션의 개념은 이전까지의 게임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의 영역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유행하던 SF와 근미래적인 세계관 속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과 같았다. 실제로 코지마는 자신이 단순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통해 ‘메탈 기어’ 는 게임 외적인 재미까지도 선사했다.
 
코지마의 첫 작품 ‘메탈 기어’ 

‘메탈 기어’ 는 일본 내 판매량에서 큰 흥행을 거두진 못했지만, 신선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도로 코나미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 당시 코나미는 게임사업에서 엄청난 흑자 행진을 계속하며 규모를 늘려 나가고 있었기에, 코지마의 시도를 높이 평가해 ‘메탈 기어’ 시리즈를 다각화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북미와 일부 유럽 지역에서 NES(패미컴)으로 발매된 ‘메탈 기어’ 였다. 패미컴 버전 ‘메탈 기어’ 는 코지마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작품인데다 잠입 액션이라는 틀만 이어받았을 뿐 MSX 오리지널 버전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패미컴 판 ‘메탈 기어’ 는 북미와 유럽에서 대히트를 기록하며, 후속편인 ‘스테이크의 복수(Snake’s Revenge)’ 까지 출시되기까지 이른다.

코지마는 자신이 제작하지 않은 패미컴판 ‘메탈 기어’ 에 대해 꽤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속으로는 묘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는 동료로부터 ‘패미컴 판도 좋지만, 이건 진정한 후속작 같지가 않다. 당신이 진정한 후속작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는 말을 들은 다음 날, 불과 하루 만에 ‘메탈 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이하 메탈 기어 2)’ 의 스토리를 집필하고 게임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단편으로 끝날 뻔한 ‘메탈 기어’ 는 패미컴판 ‘메탈 기어’ 와 ‘스네이크의 복수’ 를 기폭제로 거대한 대서사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전작에서는 반신반의했던 코나미도 이때부터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풍부한 개발비를 지급함은 물론, 코지마에게 다양한 영감을 부여하기 위해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 줬다. 예를 들면 코지마와 ‘메탈 기어’  개발팀은 회사의 지원을 받아 근무 시간에 서바이벌 장비를 갖추고, 근처 야산에 나가 군복을 입고 서바이벌 게임을 즐겼다. 그렇게 1990년 출시된 ‘메탈 기어 2’ 는 코지마의 연출력과 한창 물오른 게임 개발자로서의 기획력이 집결되어 흥행을 기록한다.


▲ 코지마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패미컴 판 ‘메탈 기어: 스네이크의 복수’  


▲ ‘메탈 기어’  의 진정한 후속작인 ‘메탈 기어 2’  

그러나 게임의 성공과는 별개로, 코지마에게는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그래밍 지식이 거의 없는 게임 디자이너로, 자신의 머릿속 상상력을 모니터 안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일일히 프로그래머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서 프로그래머의 개인적인 판단이 조금씩 섞이며 결과는 그가 원하는 것과 미묘하게 달라지곤 했다. 따라서 코지마는 프로그래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해 왔다. 이를 위해 코지마는 원하는 타이밍에 적절한 음악이 나오고, 대사가 진행되고, 화면 효과가 표시되게끔 오리지널 스크립트 엔진을 개발했다. 그렇게 출시된 타이틀이 ‘스내쳐(1988)’ 와 ‘폴리스너츠(1994)’ 였다.

‘스내쳐’ 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에서 모티브를 딴 어드벤처 게임으로, 인간들 사이에 숨어든 ‘스내쳐’ 라는 이름의 로봇을 없애는 근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폴리스너츠’ 는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 주연의 영화 ‘리쎌 웨폰’ 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스내쳐’ 와 일부 설정을 공유한다. 인류 최초로 스페이스 콜로니에 파견된 경찰을 주인공으로 화려한 애니메이션 연출이 돋보이는 게임이다.

위 두 작품은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특성 상 이미지와 동영상을 통한 영화적인 연출이 손쉬웠기 때문에, 액션에 초점을 맞춘 ‘메탈 기어’  시리즈보다 훨씬 섬세한 전개와 화면 구성, 스토리텔링이 가능했다. 코지마가 ‘스내쳐’ 와 ‘폴리스너츠’ 에서 선보인 다양한 영화적 연출력은 훗날 ‘메탈 기어 솔리드’  등에서 꽃을 피운다.

‘스내쳐’ 와 ‘메탈 기어 2’ , ‘폴리스너츠’ 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코지마는 시나리오와 연출 방면에서의 금자탑을 쌓으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윽고 90년대 말을 지나 2000년대로 들어서며 비디오게임 시장의 하드웨어적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됨에 따라,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영화 ‘블레이드 러너’  에서 모티브를 따 온 ‘스내쳐’ 


▲ 영화 ‘리쎌 웨폰’  에서 영감을 받은 ‘폴리스너츠’ 

액션 어드벤처로의 진화, ‘메탈 기어 솔리드’ 등장 

게임업계가 한창 2D에서 3D로의 변화에 한창이던 1995년. ‘폴리스너츠’ 의 개발을 끝마친 코지마는 어느새 코나미 입사 10년차 직원이자 중간 관리자가 되었다. 코나미 오사카 사무실의 개발 부장이 된 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영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이끌 권한을 갖게 되었으며, 하드웨어 기술 역시 3D 환경에서 영화와 같은 재미를 줄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현재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로 손꼽히는 신카와 요지 역시 당시 코지마에 의해 입사한 경우로, 신카와는 코지마가 꿈꾸는 영화적 세계를 표현해 줄 만큼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입에 문 담배와 머리띠로 대변되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매력적인 모습과 ‘메탈 기어’  세계의 디테일 등은 대부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신카와를 영입한 그는 자신이 꿈꾸던 ‘메탈 기어’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패미컴 제외) ‘메탈 기어 솔리드’ 의 개발에 착수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 는 코지마가 꿈꾸던 ‘영화와 같은 경험’을 실현에 옮긴 작품으로, 이것이 가능했던 데에는 1994년 출시되어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1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3D 게임을 만들려다 보니 많은 고충이 뒤따랐다. 그래픽 엔진부터 일일히 개발해야 했던 것은 둘째 치더라도, 당장에 폴리곤을 사용해 입체감을 구현하는 것에 대한 노하우도 없는 상태. 이를 위해 코지마는 레고 블록으로 스테이지를 만들고, 신카와는 차량과 캐릭터의 플라스틱 모형을 만들어가며 3D에 대한 감을 잡기 시작했다. 특히 플라스틱 모형 제조는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작업인지라 신카와는 팀원들과 떨어져 홀로 집에서 작업해야만 했다.


▲ ‘메탈 기어 솔리드’ 의 성공을 이끈 역군 신카와 요지(좌)와 코지마 히데오(우) 


▲ 신카와 요지의 손에서 매력적인 ‘메탈 기어’  의 세계가 재탄생되었다 

그렇게 출시된 ‘메탈 기어 솔리드(1998)’ 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메탈 기어’ 의 IP를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3D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이 솔리드 스네이크가 되어 적의 기지에 잠입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입체적인 인물 설정, 과감하고 세련된 시나리오 진행, 자연스러운 대사 및 액션 연출은 게임의 재미를 극대화 시켰다. 코지마는 ‘메탈 기어 솔리드’ 를 통해 ‘영화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게임만의 경험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몸소 입증했고, 전세계 게이머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메탈 기어 솔리드’ 의 성공으로 인해 코나미는 플레이스테이션 2로 개발된 후속작에 과감하고 아낌 없는 투자를 감행한다. 이에 코지마는 헐리우드로 가서 게임 음악을 작곡할 영화 음악가 해리 그렉슨 윌리엄스(에얼리언, 브로큰 하트, 호텔 파라다이스 OST 작업)를 섭외하고 무기 제작을 위해 실제 미국 경찰특공대(SWAT)를 찾아가 총기와 폭파 관련 교육을 받는 등 다방면으로 심혈을 기울였다.

하드웨어가 플레이스테이션 2로 넘어가면서 그는 게임의 대중화에도 초점을 맞췄다. 미려해진 그래픽은 플레이스테이션 2의 기기적 한계에 도전하는 듯 한 인상을 줬고, 여성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더 젊고 세련된 주인공 라이덴(그러나 팬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스네이크만 못 한)을 내세웠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메탈 기어 솔리드 2(2001)’ 이었다. 3년의 간격을 두고 연이어 발매된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잠입 액션 장르는 물론, 콘솔용 3D 액션 게임이 가야 할 길을 알려줬다는 평가를 들었다. ‘메탈 기어 솔리드’ 는 일본과 국내 뿐 아니라 유럽과 북미 등 전세계에서 흥행을 기록하며 600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대중들로 하여금 코지마에게 ‘감독’ 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도록 만들었다.


▲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메탈 기어 솔리드 1’  


▲ 플레이스테이션 2로 출시된 ‘메탈 기어 솔리드 2’  

이 때부터 수많은 언론매체와 게임 관계자, 그리고 헐리웃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코지마에 대한 극찬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뉴스위크지는 코지마를 ‘2003년, 지켜봐야 할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 10인’ 에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선정했으며, 포춘지는 ‘메탈 기어 솔리드’ 의 시나리오를 ‘20세기 최고의 시나리오 중 하나’ 로 평가했다. 미국 프로듀서 조합은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디지털 프로듀서-크리에이터 50인’ 에 코지마의 이름을 올렸다. ‘메탈 기어’ 시리즈의 팬으로 알려진 톰 크루즈도 “코지마 히데오가 영화를 만들면 꼭 출연하고 싶다” 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코지마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분을 이렇게 묘사했다.

“‘메탈 기어 솔리드’ 제작 시에는 게임을 만드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어떤 반응을 얻을지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잘 팔렸다는 이야길 들었을 땐 거짓말 같았죠. 게임의 성공을 처음 체감했을 때가 1999년 런던에 갔을 때인데, 게임 홍보 목적으로 한 판매점에 들어갔더니 가게 주인이 절 알아보더군요. 제 삶에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코지마는 ‘메탈 기어 솔리드’ 의 성공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계속해서 선보여 왔다. 그는 2005년, 코나미 내에 존재하던 자신의 사단을 ‘코지마 프로덕션’ 이라는 이름으로 집결시켜 ‘메탈 기어’  프랜차이즈를 총괄함과 동시에 폭스 엔진 등의 개발 업무를 총괄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코지마 프로덕션 LA 지사도 세워 개발력을 한층 높였다. 코지마 자신 역시 2009년 코나미 전무를 거쳐 2011년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게임 개발과 강연 등으로 매일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코지마 프로덕션을 통해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는 이후 넘버링 타이틀만 4편까지 출시되었으며, 다양한 ‘메탈 기어’ 의 외전 타이틀과 더불어 하나의 장대한 연대기를 구성했다. 코지마는 이 대부분의 게임에서 총감독을 맡았으며, 이와 함께 ‘우리들의 태양’ 시리즈, ‘존 오브 디 엔더스(Z.O.E)’ 시리즈도 감수했다. 2014년 현재는 상/하편으로 나뉘어진 오픈 월드 액션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 5(그라운드 제로+팬텀 페인)’ 와 더불어 새로운 ‘메탈 기어 온라인’  등을 제작 중이다.


▲ 코지마 프로덕션에서 제작 중인 오픈 월드 잠입액션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 5: 팬텀 페인’  

사실 ‘메탈 기어’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메탈 기어 솔리드 2’  이후부터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다. 영화적 연출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게임 내 컷씬을 과도하게 삽입해 게임의 본질적 재미가 떨어진다는 의견부터 스토리가 점차 꼬여간다는 비판 등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예를 들면 ‘메탈기어 솔리드 4’ 의 경우 엔딩 동영상만 한 시간을 넘어가며, 영상을 제외한 플레이시간은 10~15시간 정도로 상당히 짧다. 물론 절정에 다다른 연출력이나 영상미, PS3의 성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코지마가 긴 시간 동안 여전히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는, 계속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메탈 기어 솔리드’ 에 아저씨들만 나와서 하기 싫다는 여중생 게이머의 말을 듣고 ‘메탈 기어 솔리드 2’ 의 주인공을 스네이크에서 꽃미남 라이덴으로 바꾼 데 이어, ‘메탈 기어 솔리드 4’ 에서는 영상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을 수용해 차기작인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 의 영상을 대폭 줄이고 게임플레이에 집중했다. ‘메탈 기어’ 시리즈에서 액션의 비중이 줄어든다는 의견을 듣고 나서는 ‘메탈기어 라이징 리벤전스’ 에서 일도양단 식의 호쾌한 액션을 기획했다.
 



▲ 코지마는 스네이크(위)가 아저씨 같아 칙칙하다는 의견에
주인공을 꽃미남 라이덴(아래)으로 바꾸는 초강수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코지마는 과거의 영광만을 안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는 유저와 가장 활발히 소통하는 개발자 중 한 명인데, 지금 현재도 SNS 및 블로그, 심지어 웹 라디오 방송 등으로 게이머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새로운 게임 시스템을 고민하며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그의 개발 철학은 단순하다. 주변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가장 재미있을 게임으로 기억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만 지켜진다면 그는 오픈 월드 어드벤처, 일도양단 액션, 심지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까지 어느 장르건 가리지 않고 시도한다.

게임이라는 개척지에 메가폰을 들고 나타난 코지마 히데오 감독. 실제로 그는 모션 캡쳐 촬영장이나 음성 녹음 스튜디오 등에 밝은 얼굴로 등장해 배우들에게 대본을 전달하고 리허설을 지휘한다. 그의 ‘액션!’ 호령과 함께 ‘메탈 기어’ 시리즈의 리얼한 연기가 시작되고, 성우들의 음성이 감성을 담고 흘러나온다. 이러한 모습을 듣고 간혹 사람들은 ‘메탈 기어’ 를 영화1)로 제작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코지마는 이러한 물음에 항상 같은 답을 한다.

“게임을 제작하는 일이 더 즐겁다”


▲ 잠입 액션의 빅 보스, 코지마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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