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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스팀' 만든 디지털 게임유통의 대부, 게이브 뉴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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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생각하지 못 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최고의 결과를 도출한 인물. 사람들은 이러한 이들을 천재라 칭한다. 그러나 천재라 불리는 개발자들 중 많은 이들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만을 안은 채 살아가곤 한다. 그러한 점에서 밸브 코퍼레이션의 창립자 게이브 뉴웰(Gave Logan Newell)은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게이브 뉴웰은 ‘하프 라이프’와 ‘포탈’, ‘레프트 4 데드’등 다양한 FPS 게임을 탄생시킨 개발자로서의 모습, 그리고 ‘스팀’을 통해 전 세계 PC 패키지 디지털 유통 시장을 정복한 사업가. 끊임없이 게이머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진취적인 인물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한 판단력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감각으로 인해 게임업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도 불리고 있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 ‘하프 라이프’ 와 ‘포탈’, 그리고 ‘스팀’을 만든 게이브 뉴웰 

하버드 재학 중이던 컴퓨터 수재,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나다

게이브는 1962년, 유복한 미국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과 누나도 그랬듯, 게이브 역시 어릴 적부터 출중한 두뇌를 타고났다. 그는 어릴 적 의사가 되고 싶어 했으나, 중학 시절 접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매력에 빠져들어 진로를 변경했다. 결국 그는 1980년, 최고 명문대 중 하나로 꼽히는 하버드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해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컴퓨터 산업은 한창 떠오르는 직종이었고, 게이브 역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겠다는 꿈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하버드 생활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게이브는 향후 자신의 하버드 시절을 “MS에서의 3개월보다 배운 것이 적다. 하버드에서는 어떻게 눈 위에서 물구나무 서며 술을 먹는 지만 배웠다. 유용한 기술이긴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에 도움은 되지 않았다” 라고 평했는데, 특유의 과장이 섞인 말이지만 대학교 생활에 크게 정을 붙이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학교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게이브는 3학년 재학 중, 방학을 틈타 형이 근무하던 미 동부로 휴가를 갔다. 이 때 그는 당시 직원 규모 200여 명 수준의 중소기업이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처음 연을 맺게 된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3개월 가량 머무르며 다양한 일을 경험했는데, 이 때 스티브 발머(전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게이브를 눈여겨 봤다. 게이브의 재능을 파악한 스티브 발머는 곧바로 그를 스카우트했고, 게이브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게이브는 하버드를 중퇴한 뒤 마이크로소프트의 271번째 직원으로 입사한다.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와 폴 앨런, 스티브 발머를 필두로 MS-DOS를 개발하여 막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GUI 기반의 ‘윈도우 3.x’과 ‘윈도우 95’등을 연이어 출시하며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업체로 발돋움한다. 게이브는 윈도우 개발 부서에서 13년 동안 프로듀서로 근무했으며, 이 때의 경험은 훗날 ‘개발자들이 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는 사장’으로서의 게이브를 만드는 밑바탕이 된다.


▲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좌)와 게이브에게 입사를 권한 스티브 발머(우)

마이크로소프트에 재직하며 그는 엘리트 개발자로서의 탄탄대로를 걸었다. 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새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되어 있었으며, 전 세계 프로그래머들이 간절히 바라는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혔다. 같은 하버드 중퇴자로서 빌 게이츠와도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던 게이브는 윈도우 개발뿐 아니라 마케팅과 시장 조사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나갔다. 이대로라면 훗날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임원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렇게 게임과 관계가 먼 인생을 살던 게이브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993년, 존 카멕과 이드 소프트웨어가 출시한 FPS 게임 ‘둠(Doom)’을 만나고부터였다. 당시 ‘둠’은 FPS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며 전 세계 게이머들을 열광시켰는데, 당시 ‘윈도우 3.0’의 미국 내 보급율을 조사하던 게이브는 ‘둠’이 ‘윈도우’보다 훨씬 많은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전까지 게임에 대해 단순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정도로 생각해 왔던 게이브는 ‘둠’을 만난 이후로 게임이라는 엔터테인먼트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후 게이브는 ‘둠’을 윈도우로 포팅하는 과정에서 존 카멕을 만났고, 그의 자유로운 개발 정신에 깊이 빠져들었다. 결국 게이브는 마이크 해링턴을 비롯한 몇 명의 마이크로소프트 동료 직원들과 함께 퇴사 후, 1996년 밸브 코퍼레이션(Valve Corporation)를 공동 설립한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직장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둔다는 선택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게이브의 머릿속에는 이미 눈부신 게임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프 라이프’로 FPS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다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운 게이브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재직하며 모은 자산과 외부 투자를 합쳐 첫 번째 작품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밸브는 외부 투자로부터 독립해 자주성을 확보하는데, 이로 인해 게이브는 자신이 원하는 사업을 과감하고 소신 있게 진행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그는 ‘둠’과 ‘퀘이크’의 MOD를 만들던 개발자들을 끌어들이고, 존 카멕의 ‘퀘이크 2’엔진을 개량해 골드소스 엔진을 만들었다. 이 엔진으로 제작된 게임이 바로 밸브의 첫 게임인 ‘하프 라이프(1998)’다. 전혀 이름값 없는 신생 개발사의 첫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프 라이프’는 발매 전부터 수많은 화제를 모았다. 발매 후에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50여 개의 ‘올해의 게임 상(GOTY)’를 수상하는 등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는 ‘레인보우 식스’나 ‘언리얼’, ‘듀크 뉴켐’등 다양한 FPS게임이 출시되던 시기였지만, ‘하프 라이프’는 그 중에서도 정점을 찍었다.


▲ 밸브 코퍼레이션의 첫 작품 ‘하프 라이프’ 

‘하프 라이프’는 존 카멕이 ‘울펜슈타인 3D’와 ‘둠’, 그리고 ‘퀘이크’로 정립시킨 FPS의 틀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는데, 특히나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전의 FPS는 큰 스테이지로 시나리오를 나누고 스테이지 사이마다 컷씬이나 이미지를 삽입하는 형태의 구성을 채택했으나, 스테이지를 세분화 된 레벨로 구성하고 게임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캐릭터와 스토리를 표면으로 끌어냈다. 이는 어드벤처의 명가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와의 합작을 통해 구현된 것으로, FPS라는 장르를 단순히 1인칭에서 진행하는 액션 게임이 아니라 캐릭터가 겪는 이야기를 보다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는 장르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스템적으로도 많은 호평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업적을 꼽는다면 키보드 자판의 W,A,S,D키를 이용한 이동 체계의 확립과 인공지능(AI) 강화를 들 수 있다. ‘하프 라이프’는 키보드의 오른편에 위치한 화살표 키 대신 왼편의 W,A,S,D 키를 방향키로 사용해 FPS 조작 체계를 표준화시켰는데, 이는 향후 발매되는 대부분의 FPS 및 액션 게임에 채택되며 질서를 확립시켰다. 또한, AI를 대폭 강화해 기존까지 정해진 루트를 따라 움직이며 똑 같은 공격만 반복했던 적 캐릭터를, 숨어 있는 플레이어를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엄폐물을 이용할 줄 아는 똑똑한 적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더 이상 총만 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를 머릿속에 그리며 게임을 진행해야만 했다. 이는 ‘하프 라이프’의 메인 카피인 “Run, Think, Shoot, Live(달리고. 생각하고. 쏘고. 살아남아라)" 를 잘 반영한 결과다.

‘하프 라이프’는 이후 확장팩인 ‘어포징포스’와 ‘블루쉬프트’를 출시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비록 확장팩은 밸브 본사가 아닌 기어박스 소프트웨어(Gearbox Software)에서 외주 제작하긴 했지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기어박스는 ‘보더랜드’를 비롯한 각종 화제작을 연달아 출시한 유명 개발사가 되었다. 이후 2004년 발매된 ‘하프 라이프 2’는 같은 시기에 발매된 ‘둠 3’를 판매량과 평가 등에서 누르고 FPS 1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게이머들의 창조성을 적극 수용, 이것이 밸브 정신 

‘하프 라이프’의 업적은 게임의 재미뿐만이 아니었다. 존 카멕이 ‘둠’과 ‘퀘이크’의 게임 개발 소스를 공개했듯이, 게이브는 아예 ‘하프 라이프’의 게임 맵을 직접 디자인 할 수 있는 에디터 프로그램을 배포했다. 이는 많은 게이머들로 하여금 ‘하프 라이프’를 토대로 한 유저 제작 콘텐츠(MOD)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 준 것으로, 여기서 나온 게임이 바로 ‘카운터 스트라이크’다.


▲ ‘하프 라이프’ 에서 파생된 ‘카운터 스트라이크’ 


▲ 최근 넥슨을 통해 출시된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2’(아래)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위에서 설명했듯 ‘하프 라이프’의 인기 MOD로 시작되었으며, 밸브는 이 제작팀을 통째로 스카우트하여 상용 패키지화 시켰다. 이후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하프 라이프’를 뛰어넘을 정도의 인기를 얻으며 ‘컨디션 제로’, ‘글로벌 오펜시브’등의 확장팩이 출시되었고, 5대 5 매치와 서버 시스템 등을 확립해 ‘서든어택’이나 ‘스페셜포스’등 국내 온라인 FPS의 등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게이브는 아마추어 게이머들이 제작한 MOD나 소규모 개발사가 제작한 인디 게임의 흥행 가능성을 판단해 자신들의 산하로 편입시키는 정책을 펼친다. 이는 ‘하프 라이프’이후 밸브의 계속되는 히트작 러시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데, 대표작으로는 ‘팀 포트리스’와 ‘포탈’, ‘도타 2’등이 존재한다. 게이브의 게임을 보는 안목과 적극적인 아이디어 수용 자세가 이를 가능케 했다.

‘퀘이크’의 MOD로 시작된 ‘팀 포트리스’는 FPS에 처음으로 병과 시스템을 도입한 게임으로,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견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게이브는 이 MOD 역시 충분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제작자들을 밸브로 영입해 ‘팀 포트리스 클래식’을 제작해 배포한다. 이후 ‘팀 포트리스’시리즈는 아기자기한 그래픽의 ‘팀 포트리스 2’로 그 인기를 이어간다.




▲ 게이브에 의해 밸브에서 재탄생한 ‘팀 포트리스 클래식’ 과 ‘팀 포트리스 2’ 

공간을 오가는 독특한 설정으로 인기를 끈 ‘포탈’역시 아마추어 개발자들을 영입해 제작한 작품이다. 공간을 왜곡시켜 가며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의 퍼즐 FPS ‘포탈’은 게임개발 전문 공과대학 디지펜(DigiPen)의 학생들이 졸업작품으로 만든 게임 ‘나바큘라 드롭(Narbacular Drop)’에서 비롯되었다. 이 게임을 본 게이브는 대학을 막 졸업한 아마추어 개발자들을 모두 채용한 후, ‘하프 라이프’의 세계관과 밸브의 개발력을 더해 매력적인 시리즈로 재탄생시켰다.

2013년 발매된 ‘도타 2’는 ‘스타크래프트’에 존재하던 유즈맵 ‘Aeon of Strife’를 발전시켜 만든 ‘워크래프트’의 유즈맵 ‘도타(Dota)’를 기반으로 한다. 미국의 대학생 Eul이 만든 ‘도타’는 현 AOS의 기틀을 만든 작품으로 ‘카오스’등 다양한 MOD를 낳았으며, 이후 ‘리그 오브 레전드’등으로도 발전한다. AOS 장르가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게이브는 Eul과 ‘도타 올스타즈’를 제작한 Icefrog 등을 영입해 ‘도타 2’의 제작을 시작한다. 이후 밸브는 블리자드와의 상표권 싸움에서 승리해 ‘도타 2’의 상표권을 획득했으며, 2013년 정식 서비스에 들어가 ‘리그 오브 레전드’와 함께 북미 AOS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외에도 밸브는 ‘데이 오브 디피트’, ‘레프트 4 데드’등의 대작 게임들을 출시하며 성공 신화를 이어간다. 밸브는 급격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발매된 타이틀의 수가 꽤 적은 편인데,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 그래픽, 최적화 성능에 대한 엄격한 내부 기준이 존재해 개발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대신 밸브에서 출시하는 모든 게임은 기대 이상의 품질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밸브는 그 어떤 게임 개발사도 쉽게 얻지 못하는 게이머들의 신뢰를 손에 넣었다.




▲ 학생들의 졸업작품을 채용한 ‘포탈’ 과 AOS의 시조격 게임을 발전시킨 ‘도타 2’ 

재미있는 것은 밸브의 작품 대부분이 상업적 성공과 동시에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3편 이상의 후속작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하프 라이프’나 ‘팀 포트리스’등 오래된 IP는 물론이고, ‘레프트 4 데드’나 ‘포탈’과 같은 비교적 최신 IP의 경우에도 2편 이후의 작품이 출시되지 않아, 일각에서는 ‘게이브의 키보드는 숫자 3 키가 고장났다’같은 유머까지 나오고 있다.

스팀을 통해 PC게임 시장을 활성화하다

밸브는 게임 개발사이지만, 게이브는 자신의 활동 영역을 단순히 게임 개발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게임 엔진 및 영상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뛰어들었다. ‘하프 라이프’제작 시 ‘퀘이크 1’엔진을 개량해 골드 소스 엔진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하프 라이프 2’때는 아예 순수 자체 제작 엔진인 소스 엔진을 개발했다. 밸브의 소스 엔진은 물체의 재질 구현 면에서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으로, 국내에서도 넥슨의 액션RPG ‘마비노기 영웅전’이나 YNK코리아에서 서비스했던 FPS ‘스팅’등이 소스 엔진을 사용했다.

게이브는 영상 콘텐츠에도 다방면의 투자를 진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3D 영상 제작 툴 ‘소스 필름 메이커’인데, 이는 스팀을 통해 무료로 공개돼 다양한 UCC 제작에 큰 공로를 세웠다. 또한 밸브 내부에는 다큐멘터리 제작 팀이 존재하는데, ‘도타 2’프로게이머의 삶을 다룬 ‘Free to Play’등 다양한 게임 관련 영상을 촬영하며 게임이라는 문화의 기록에 한창이다.




▲ 밸브의 영상 제작 프로그램 ‘소스 필름 메이커’ 와 ‘도타 2’ 다큐멘터리 ‘Free to Play’ 

그러나 밸브의 무엇보다 큰 업적은 PC게임 온라인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을 출시한 것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게임 타이틀의 판매량 감소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게임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게임사는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해커들은 이러한 장치를 뚫고 게임을 무단 업로드하는 전쟁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 일부 유통사는 정품 유저를 걸러내기 위한 DRM을 무리하게 도입하다가 정품 유저들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게이브는 이러한 게임 시장의 문제점을 정공법으로 해결했다. 소매점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게임을 직접 다운로드 받는 편리성은 유지하되, 불법 다운로드가 아닌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는 디지털 패키지 구매 방식을 도입한 것. 이른바 PC게임 유통 & 관리 플랫폼 ‘스팀’프로젝트다.

‘스팀’은 ‘하프 라이프’출시 이후부터 바로 개발에 들어간 밸브의 초기 프로젝트로, 처음에는 ‘하프 라이프’나 ‘카운터 스트라이크’같은 자사의 게임을 인터넷을 통해 어디서든 즐길 수 있게 하는 부분적 스트리밍 시스템으로 DRM(불법 복제 방지장치)을 겸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게이브는 ‘스팀’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건전하고 편리한 PC게임 유통 플랫폼으로 만들고자 했고, 결국 영국 인디게임개발사 인트로버전의 RTS게임 ‘다위니아’의 유통을 시작으로 ‘스팀’은 본격 디지털 PC게임 유통 플랫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온라인 PC게임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스팀’ 

‘스팀’이 디지털 게임 유통 플랫폼으로서의 길을 발표했을 때, 업계에서는 이를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무료로 게임을 다운로드 받는 이들이 굳이 스팀을 통해 돈을 지불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어떤 게이머가 손에 들어오지 않는 디지털 패키지를 위해 지갑을 열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게이브는 이러한 지적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수천 종류의 게임을 지원하고, 시시때때로 할인 행사를 벌여 유저들의 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도전 과제와 세이브 파일 클라우드 서비스, 간편한 결제와 막강한 보안, 방대한 커뮤니티 시스템 등을 지원해 여러 가지 이점을 부여했다. 밸브의 이러한 노력은 조금씩 먹혀들어, ‘스팀’이용자는 나날이 늘어갔다.

‘스팀’은 서비스 10여 년 만에 디지털 유통 플랫폼 업계를 거의 독과점하다시피 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14년 기준, ‘스팀’은 전 세계 6,500만 명의 유저를 보유하고 있으며, PC로 출시되는 전 세계 대부분(75%가량)의 게임이 스팀에 등록되고 있다. ‘스팀’의 성공에 자극받은 EA의 ‘오리진’, 유비소프트의 ‘유플레이’, 마이크로소프트의 ‘GFWL(Games for Windows Live)’등 다양한 후발 주자가 나섰지만, 대부분이 자사 게임들의 한정적 판매에 그치고 있다. 전 세계 게임 개발사가 서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거대 플랫폼으로의 길을 걷는 것은 오로지 ‘스팀’뿐이다.

현재 게이브는 ‘스팀’을 단순한 디지털 패키지 유통 플랫폼에서 벗어나 홈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PC가 없이도 거실에서 TV에 직접 연결해 즐길 수 있는 전용 하드웨어 ‘스팀머신’을 개발 중이며, 이를 위한 운영체제 ‘스팀OS’, 전용 패드인 ‘스팀 컨트롤러’등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가상현실(VR)을 염두에 둔 ‘스팀VR’시스템까지 도입하며 영역을 확대하는 중이다.


▲ 밸브가 꿈꾸는 홈 엔터테인먼트 ‘스팀 OS’ 컨셉 아트 

‘스팀’은 단순한 디지털 유통 플랫폼을 넘어서, 게임 구매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게임을 다운로드 받는 데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개발자들도 이를 통해 더 좋은 게임을 만들 기반을 마련한다. 소규모 인디 게임 개발자들도 아이디어만 있다면 ‘스팀’을 통해 자신들의 작품을 부담 없이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 모두 ‘스팀’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일이다.

게이브는 그 누구보다 유저 친화적인 개발자다. 최근에는 SNS 등을 통해 개발자와의 의사소통이 비교적 쉬워졌지만, 게이브는 SNS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유저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자사 게임에 불만이 있는 유저들을 초청해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아마추어 개발자들을 만나 그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밸브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게이브와 유저 간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는 차마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게임을 단순한 개별 프로젝트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긴 흥행 코드를 읽어내는 데 능하다. 덕분에 밸브의 작품은 언제나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며, 게이머들이 진정 원하는 요소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이러한 과감하고 자유로운 사업 전개는 밸브 전체 지분의 절반 이상을 게이브가 소유하고 있어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보다 우선적인 것은 그의 선택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몰고 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밸브 직원들과 게이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항상 다음 행보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다.

게이브는 2013년, 게임업계에 혁신적인 성과를 이룬 개발자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미국 과학예술아카데미(AIAS)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제 그는 게임 개발을 넘어 게임이라는 문화 콘텐츠의 보급과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게이브의 차기 행보가 게임업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


▲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이자 디지털 PC게임 유통업계의 대부, 게이브 뉴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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