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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언리얼'을 만든 게임엔진 최고 권위자, 팀 스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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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픽게임스의 창집자이자 ‘언리얼 엔진’ 을 만든 팀 스위니

‘바이오쇼크’, ‘데드 스페이스’, ‘매스 이펙트’, ‘메달 오브 아너’, ‘리니지 2’, ‘블레이드앤소울’, ‘테라’, ‘아바’, ‘스페셜포스 2’, ‘블레스’…

위에서 예로 든 게임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에픽게임스의 ‘언리얼 엔진’을 통해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언리얼 엔진’은 뛰어난 기술과 지속적인 업데이트, 높은 안정성과 발빠른 기술 지원,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 등으로 인해 전세계 유수의 대작 게임에 널리 쓰이고 있으며, PC를 넘어 콘솔, 모바일 등 게임업계 전 분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에픽게임스의 창립자이자 ‘언리얼’, ‘기어스 오브 워’등을 개발한 팀 스위니는 게임업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천재 프로그래머다. 그는 특히 ‘둠’과 ‘퀘이크’로 세상을 흔든 세기의 천재 존 카멕(바로가기)과 늘 라이벌 관계에 놓였는데, 이 둘은 활동 시기도 비슷했거니와 신기에 가까운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엔진 개발을 주도하며 FPS 뿐 아니라 3D 게임 업계에서 거장 반열에 올랐다는 점 등 비슷한 점이 많다.

비록 존 카멕이 FPS라는 장르를 확립하며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했지만, 이어지는 행보를 종합해 보면 팀 스위니 역시 존 카멕에 뒤지지 않는 업적을 자랑한다. 존 카멕이 엔진 개발에만 힘쓰는 사이, 팀 스위니는 게임 개발부터 엔진 사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그 결과 역시 꾸준했다. 무엇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엔진인 ‘언리얼 엔진’을 만들었다는 것만 해도 게임업계에 대한 그의 공헌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기계에 미쳐 있던 10살 천재 소년, 컴퓨터 게임을 만나다 

팀 스위니는 1970년,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매우 왕성했다. 어느 날 팀 스위니는 집 마당에 있던 잔디 깎는 기계의 내용물이 궁금해 이를 산산이 분해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5살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카트 엔진이나 TV, 라디오 등 주변의 모든 전자 기기를 분해하고 재조립했다. 이는 단순히 기계를 분해하는 데 쾌감을 느끼는 집착증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기기들의 구조를 파악해 성능을 더욱 좋게 만들고 싶어하는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다.

어린 날의 팀 스위니는 뼛속부터 기술자였고, 그에 걸맞는 천재성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그는 냉철하고 분석적인 시야를 가진 대신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또래 아이들과의 사교는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8~9살 경, 동네 또래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장난감 우주선을 만들며 놀곤 했다. 아이들의 서툰 손과 각종 잡동사니로 열심히 제작한 우주선이 완성되었을 때, 멋진 작품이 완성되었다며 기뻐하는 아이들 뒤에서 팀 스위니는 한 마디를 던졌다. “이런 건 우주선이 아니야. 전혀 멋지지 않잖아.”


▲ 기계에 미쳐 있었던 유년 시절의 팀 스위니 <출처: Kotaku> 

이런 독특한 성격 때문에, 어릴 적 그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주변 아이들은 그를 ‘헛똑똑이’ 같은 냉소적인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팀 스위니는 초등학교 통학로에서 우연히 아케이드 게임센터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 당시 세계를 뒤흔들었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비롯한 몇 개의 비디오게임을 처음으로 접했다. 일반적으로 비디오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모니터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에 매료되고, 깊이 빠져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팀 스위니는 달랐다. 그는 게임기 내부에서 펼쳐지는 메커니즘을 각각 따로 분석했다. 그 결과, 고도의 기술이 적용된 하이테크 기기임에도 내부 시스템은 꽤 단순하고, 자신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10살 소년의 생각치고는 꽤나 조숙한 사고방식일 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이 때부터 기계 대신 컴퓨터 게임에 열광하게 된다. 만약 그가 5년만 더 기계에 미쳐 있었더라면 현재의 에픽게임스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팀 스위니와 게임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게임 개발자로의 진로 결정과 에픽게임스 설립 

팀 스위니가 본격적으로 게임을 분석하고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게임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불과 1년 후인 11세 때였다. 그는 방학을 맞아 15살 위의 큰형이 캘리포니아에서 세운 벤처회사에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서 난생처음 IBM PC를 다룰 기회가 주어졌다. 컴퓨터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전까지 그는 한 번도 프로그래밍을 배운 적이 없었다. 단지 큰형이 베이직 프로그램을 이용해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살짝 본 것이 전부였다.


▲ 프로그래밍에 열중해 있는 10대 초반의 팀 스위니 <출처: Kotaku> 

컴퓨터를 켜고 버튼을 눌러 보면 이해하지 못할 컴퓨터 언어들이 나오는 상황. 그러나 그는 1주일간 무작정 각종 버튼을 눌러 가며 기본 프로그래밍 언어를 본능적으로 익혔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기초적인 점 움직이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이른다. 그는 훗날 IBM 컴퓨터와 함께 했던 1주일간을 매우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추억한다. 컴퓨터 안에는 입력한 대로 결과가 나오는 완벽하고 논리적인 세계가 존재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첫 가정용 콘솔인 ‘아타리 2600’을 통해 본격적인 게임 라이프를 즐기기 시작한다. 주 관심사는 어드벤처 게임이었는데,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게임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했다. 사실 팀 스위니에게 있어 많은 게임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집중한 나머지 내용물이 부실한 작품’ 이었다. 그는 몇 시간만 플레이해도 그 게임이 전달하고 싶은 바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RPG나 액션 게임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실제로 팀 스위니는 훗날 ‘둠’과 ‘포탈’이외에 엔딩을 본 게임이 거의 없음을 회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스위니는 게임이라는 것에 깊이 매료되었다. 게임 플레이보다도, 게임을 동작시키는 기술과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PC산업의 격동기에서, 10대 초반의 팀 스위니는 이미 개발자의 시선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게임을 좋아했지만, 플레이하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더 원했다. 그는 학창 시절 내내 오로지 홀로 프로그래밍에 몰두했고, 기초적인 게임에서부터 간단한 비행 액션까지 다양한 아마추어 작품을 만들며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팀 스위니는 메릴랜드 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관심사는 컴퓨터 게임이었다. 그는 당시 떠오르던 IBM PC 시장을 겨냥해 본격적인 게임 개발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게임이 바로 ‘ZZT(1991)’다. 팀 스위니의 데뷔작인 ‘ZZT’는 화면상의 얼굴을 텍스트로 움직여 돈을 모으는 단순한 게임으로, 플레이 자체는 단순했으나 플레이어가 직접 자신의 레벨을 만들 수 있는 에디터와 툴로 인해 나름 관심을 모았다. ‘ZZT’는 하루 평균 7~8장, 100달러가량의 수익을 냈다.




▲ 팀 스위니의 첫 번째 상용화 게임 ‘ZZT(위)’와 두 번째 게임 ‘질 오브 더 정글(아래)’

팀 스위니는 ‘ZZT’의 개발사 란에 ‘에픽(Epic)’ 이라는 이름을 적어 냈다. 일단 서류상으로는 회사였지만, 직원도 사무실도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와 같이 낮에는 학교를, 밤에는 자신의 집 지하실에 홀로 앉아 묵묵히 게임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에는 두 번째 작품인 횡스크롤 게임 ‘질 오브 더 정글’을 출시했다. ‘질 오브 더 정글’은 ‘ZZT’의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냈으며, 성공에 고무된 팀 스위니는 대학을 중퇴하고 본격적인 게임 개발자의 길로 뛰어들었다.

‘질 오브 더 정글’이후, 그는 집 지하실에서 나와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일단 회사명을 에픽에서 에픽 메가 게임스(Epic Mega Games)로 바꾸고, 자신을 도와줄 직원들을 모집했다. 당시 18세로 베이직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던 클리프 블레진스키와 디지털 익스트림이라는 회사를 가지고 있던 게임 디자인 전문가 제임스 슈말츠, 로드 퍼거슨 등은 이 때 합류한 멤버들이다.

이후 팀 스위니와 에픽 메가 게임스는 ‘재즈 잭 래빗’시리즈와 ‘에픽 핀볼’등의 게임을 제작하고 ‘티리안’등을 유통하며 게임 개발/유통사로서의 명성을 조금씩 쌓아나갔다. 다만, 이 때까지 에픽 메가 게임스는 제대로 된 회사의 모습은 갖추지 못했다. 사무실도 없이 동호회 등에서 서로 뜻이 맞은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형식이었던지라, 미국 전역에 흩어진 개발자들이 때로는 모여서, 평소에는 원거리에서 통신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게임을 개발하곤 했다.


▲ 에픽게임스의 주역으로 일컬어지는 팀 스위니와 클리프 블레진스키 


▲ 클리프 블레진스키의 에픽 데뷔작 ‘재즈 잭 래빗’ 
 
'언리얼’의 등장, 3D 엔진의 금자탑을 쌓다 

다양한 2D 액션 게임을 개발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던 에픽 메가 게임스. 그러나 1993년, 존 카멕과 존 로메로가 제작한 ‘둠’이 출시되면서 팀 스위니의 철학에도 변화가 생겼다. ‘둠’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문화 충격을 선사했고, 이에 고무된 수많은 개발자들이 너도나도 3D FPS의 개발을 선언했다. 팀 스위니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실제로 그는 ‘둠’을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했는데, 게임 플레이를 즐기지 않는 그로서는 실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둠’은 자극적이었고, 혁신적이었다.

1994년, 에픽 메가 게임스는 자사의 3D FPS인 ‘언리얼’의 개발을 발표한다. 사실 ‘언리얼’의 개발 초기에만 해도 이 게임에 큰 기대를 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제대로 된 3D 게임 개발 경험도 없는 회사였던데다, ‘둠’과 ‘퀘이크’, ‘듀크 뉴켐’등 다양한 인기작들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언리얼’에까지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팀 스위니의 게임에 대한 열정과 철학은 몇몇 투자자들을 매료시켰고, 상당수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팀 스위니는 에픽 메가 게임스의 직원들을 한데로 모아 본격적인 회사 경영을 시작한다. 10여 명의 초기 에픽게임스 직원들은 토론토 교외의 작은 대학촌 워털루(Waterloo)에 있던 제임스 슈왈츠의 사무실에 모여 ‘언리얼’, 그리고 이를 만들기 위한 게임엔진 ‘언리얼 엔진’의 개발에 착수했다.

‘언리얼’은 애초 1996년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3D 게임개발 경험 부족, 계속 변경되는 게임 콘셉 등으로 출시 일정이 차일피일 연기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연기 원인은 바로 ‘언리얼 엔진’이었다.


▲ 에픽게임스를 대표하는 게임엔진 ‘언리얼 엔진’ 

당시 존 카멕이 ‘소스 엔진’패키지 판매를 시작하며 미드웨어 시장을 열긴 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게임 엔진은 직접 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기였다. ‘언리얼’역시 개발에 앞서 게임 엔진을 먼저 제작했는데, 여기서 팀 스위니는 과거 ‘ZZT’때 유저들이 에디터와 개발 툴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이 경험을 살려 ‘언리얼 엔진’을 단순한 ‘언리얼’개발용이 아닌, 전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제품으로 제작하고 싶었다.

그 결과, FPS에 특화된 ‘소스 엔진’이나 ‘퀘이크 엔진’과는 달리, ‘언리얼 엔진’은 편의성과 범용성을 크게 강조했다. ‘언리얼 엔진’은 FPS 외의 다양한 장르에도 손쉬운 활용이 가능했으며, 통합 개발툴인 ‘UnrealEd’를 더해 효율성을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퀘이크 엔진의 8비트를 뛰어넘은 16비트 컬러를 구현했고, 텍스쳐 필터링 및 매핑, 배경 표현 등 성능상으로도 가장 뛰어났다.

무엇보다 ‘언리얼 엔진’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라면, 오늘날엔 일반화된 엔진 라이선스 사업의 틀을 세웠다는 점이다. 선두 주자였던 이드 소프트웨어의 경우 A/S나 편의 기능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언리얼 엔진’은 적극적인 사후지원과 ‘UnrealED’툴 등을 통해 개발자들의 편의를 위한 장치를 여럿 마련했다. 팀 스위니가 보인 이러한 행보는 현재 게임엔진 업계의 교과서가 되었다.

1996년 발표된 ‘언리얼 엔진’은 뛰어난 성능과 사후관리 등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비록 초기에는 어느 정도 사용하기 편한 엔진 정도로 평가되었으나, 엔진의 성능을 백분 활용한 FPS ‘언리얼’이 1998년 출시되면서 ‘언리얼 엔진’의 주가는 급상승했다.

‘언리얼’은 ‘하프 라이프’와 ‘퀘이크 2’등 쟁쟁한 3D FPS가 다수 출시되던 1998년의 격동기에서도 상당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 1997년, 3회차 E3에서 처음 공개된 ‘언리얼 엔진’과 이를 통해 제작된 ‘언리얼’의 모습은 막 3D의 개념을 잡아가던 게임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플레이어의 모습이 반사되는 반짝반짝한 유리 바닥, 32비트 광원 효과, 하나로 뭉뚱그려지지 않은 디테일 텍스쳐 등 그야말로 시대를 앞선 그래픽을 선보인 것이다.
 

▲ 시대를 앞서가난 그래픽으로 주목받은 ‘언리얼’ 

다만 초창기 ‘언리얼’의 경우 싱글플레이의 완성도가 비교적 낮고 멀티플레이의 콘텐츠도 부족했기에, 동시대 출시되었던 ‘둠’과 ‘퀘이크’, ‘하프라이프’, ‘쇼고’등 다양한 히트작을 제치고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래픽 하나만큼은 수많은 게임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였고, 이는 게이머 뿐 아니라 게임 개발자 사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이로 인해 ‘언리얼 엔진’은 퀘이크 엔진을 제치고 엔진 라이선스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에픽 메가 게임스는 ‘언리얼’을 통해 돈방석에 앉았고, 새로운 게임과 게임 엔진을 제작할 자금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언리얼 엔진’과 ‘언리얼’의 개발 과정에서 팀 스위니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존 카멕이 엔진 개발에만 죽으라 몰두하는 타입이라면, 팀 스위니는 거의 전 분야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치는 스타일이다. ‘언리얼’의 경우 렌더링 엔진에서 게임 내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거의 혼자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맡았고, 통합 개발툴인 ‘UnrealED’까지도 직접 개발했다.

‘언리얼’의 흥행 직후, 에픽 메가 게임스는 사명에서 ‘메가’를 뺀 에픽게임스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이후 에픽게임스는 외주 제작을 통해 출시된 확장팩을 거쳐 ‘언리얼’의 정통 후속작 격인 ‘언리얼 토너먼트’를 출시했다. ‘언리얼 토너먼트’는 ‘언리얼’에서 부족했던 게임플레이 요소를 대폭 보완한 작품으로, 처음부터 별개의 타이틀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는 ‘언리얼’의 최대 경쟁작이었던 ‘퀘이크’시리즈의 멀티플레이 모드 ‘데스매치’에 대항하기 위해 멀티플레이 콘텐츠를 집어넣은 보너스팩을 기획했는데, 이 볼륨이 예상했던 것보다 커지며 별개의 타이틀로 출시된 것이다.

멀티플레이 요소를 더욱 강화한 ‘언리얼 토너먼트’는 전작 이상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화려한 맵, 저중력에서의 모드, 목표 기반의 미션인 어썰트와 도미네이션 등의 신규 모드, 10종 이상의 다양한 무기 등이 호평을 받았다. 이후 ‘언리얼 토너먼트’는 두 개의 넘버링 후속작과 연도별 작품들을 출시했지만, 아직도 가장 처음 나온 ‘언리얼 토너먼트’를 최고 명작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언리얼 토너먼트’를 통해 에픽게임스는 같은 시기 출시된 경쟁작 ‘퀘이크 3 아레나’를 확실히 제쳤다. ‘언리얼 토너먼트’이후 에픽 메가 게임스는 존 카멕의 이드 소프트웨어와 함께 FPS 업계의 2대 산맥으로 떠올랐다. 팀 스위니와 존 카멕의 라이벌 구도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도 이맘때부터다.


▲ 에픽게임스의 전성기를 연 ‘언리얼 토너먼트’ 

‘언리얼 엔진’의 발전과 ‘기어스 오브 워’의 등장 

‘언리얼’시리즈의 성공으로 에픽게임스의 자금 사정은 꽤 나아졌다. 1년의 절반 이상이 영하로 떨어지곤 하는 워털루의 구석진 사무실을 벗어나, 따뜻한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스튜디오로 이전했다. 이 곳에서 에픽게임스는 ‘언리얼 엔진’의 개량 버전인 ‘언리얼 엔진 2’, 그리고 ‘언리얼’의 후속작인 ‘언리얼 워페어’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엔진 라이선스 사업과 하이엔드급 게임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현 에픽게임스의 체제를 정립한 것이다.

‘언리얼 워페어’는 ‘언리얼 엔진 2’의 성능을 증명하기 위해 기획된 게임으로, ‘언리얼 엔진’과 ‘언리얼’의 관계와도 비슷했다. 그러나 에픽게임스는 유명세에 비해 개발자의 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었고(곁가지 프로젝트는 계열사나 자회사를 통해 외주를 주는 방식), ‘언리얼 워페어’외에도 추진해야 할 프로젝트가 많았다. 참고로 팀 스위니의 인재 등용은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며, 지금도 에픽게임스에서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하는 데 면접과 평가 등에만 수 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예사다.

팀 스위니는 ‘언리얼 엔진 2’를 더욱 발전시켜야 할 임무를 떠안고 있었고, ‘언리얼 토너먼트’시리즈도 계속해서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도저히 ‘언리얼 워페어’에 전력을 쏟을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나 ‘언리얼 워페어’는 단순한 ‘언리얼’의 후속작이 아닌 기존 FPS와 다른 스타일을 지향한 게임으로, 방대한 스케일과 세계관을 지닌 AAA급 대작이었기에 개발이 더욱 쉽지 않았다. 결국 ‘언리얼 워페어’의 개발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언리얼 엔진 3’의 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될 때까지도 제대로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언리얼 엔진 2’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개발되던 게임이 ‘언리얼 엔진 3’등장 때까지 나오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 결국 팀 스위니는 ‘언리얼 워페어’의 개발 취소 결정을 내린다. 그렇게 ‘언리얼 워페어’는 빛을 보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묻히는 듯 했다.

‘언리얼 워페어’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2004년, ‘언리얼 엔진 3’가 공개될 무렵이었다. 당시 Xbox의 후속기기인 Xbox360을 개발 중이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콘솔 판매량 견인을 위해 에픽게임스로 하여금 ‘언리얼 엔진 3’를 이용한 독점작 제작을 의뢰했다. 여기서 팀 스위니와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얼마 전 포기했던 ‘언리얼 워페어’의 부활을 결정했다. ‘언리얼 워페어’의 기획 의도를 살리되, 이제 막 발표된 ‘언리얼 엔진 3’의 성능을 증명할 만한 고품질의 게임. 바로 TPS의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는 ‘기어스 오브 워’다.


▲ 에픽게임스의 새로운 대표작이 된 ‘기어스 오브 워’ 

‘기어스 오브 워’의 가장 큰 특징은 ‘언리얼’풍의 1인칭 시점을 벗어나, 캐릭터의 어깨 뒤에서 전장 전체를 바라보는 3인칭 시점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기어스 오브 워’의 전신이었던 ‘언리얼 워페어’는 ‘언리얼’의 후속작이었던 만큼 1인칭으로 제작되고 있었다. 따라서 시야에 방해되는 엄폐 요소 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GDC 2002’에서 공개된 ‘언리얼 엔진 3’에서의 테크 데모 영상을 본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너무나도 멋진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아깝다는 판단을 내렸다.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당시 PS2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이블) 4’를 비롯해 ‘킬 스위치’, ‘스플린터 셀’등의 3인칭 시스템에 주목했고, 결국 ‘기어스 오브 워’의 시점을 3인칭 숄더-뷰로 바꿨다.

결과적으로 이는 ‘기어스 오브 워’흥행의 키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이전까지도 3인칭 액션 게임은 많았으나, 1인칭 게임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기어스 오브 워’는 1인칭 시점 FPS 게임의 정교한 조준 시스템을 잘 살리면서, SF와 전기톱 등 하이엔드와 로우엔드급 병기가 혼재하고 있는 피 튀기는 전장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줬다. 여기에 FPS에서는 힘든 엄폐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탑재해, ‘기어스 오브 워’만의 독특한 게임 플레이를 구현했다.

그렇게 2006년 11월 출시된 ‘기어스 오브 워’는 올해의 게임 상을 싹쓸이했다. ‘기어스 오브 워’는 ‘헤일로’, ‘콜 오브 듀티’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3대 슈팅게임으로 자리매김했으며, Xbox360 판매의 일등 공신 역할을 함과 동시에 FPS에서 파생된 TPS(Third Person Shooter)라는 장르를 확립/대중화시켰다. 이와 함께 ‘언리얼 엔진 3’의 뛰어난 성능도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언리얼 엔진 3’는 향후 몇 년간 세계 게임시장을 휩쓸다시피 한다.

‘기어스 오브 워’의 발매 이후 에픽게임스는 ‘언리얼 토너먼트 3’를 끝으로 ‘언리얼’시대의 막을 내렸다. 이로써 ‘언리얼 엔진’시리즈의 위력을 증명할 임무는 ‘기어스 오브 워’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후 ‘기어스 오브 워’는 넘버링 타이틀 3편과 외전격 타이틀 ‘저지먼트’를 발매하며 총 2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에픽게임스를 대표하는 타이틀로 자리 잡았다.


▲ 숄더-뷰 시점으로 TPS의 전성기를 연 ‘기어스 오브 워’ 


▲ ‘언리얼’ 의 마지막을 장식한 ‘언리얼 토너먼트 3’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개발자 

‘기어스 오브 워’시리즈는 3편의 정규 타이틀과 1편의 외전으로 2013년 3부작에 걸친 프랜차이즈를 종결지었다. 이후 2014년, ‘기어스 오브 워’의 IP는 마이크로소프트로 넘어갔다. 에픽게임스가 ‘기어스 오브 워’프랜차이즈를 판매한 이유는 과거 ‘언리얼’에서 ‘기어스 오브 워’로 회사의 메인 타이틀을 전환할 때와 비슷하다.

에픽게임스와 팀 스위니는 시대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읽는다. 에픽게임스는 현재 ‘언리얼 엔진 4’를 필두로 차세대 게임 시대를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2010년 ‘인피니티 블레이드’시리즈를 통해 모바일게임 시장에도 진출했으며, ‘언리얼 엔진 4’를 사용한 첫 게임인 ‘포트나이트’도 공개했다. 또한 2013년에는 온라인과 모바일 등에서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텐센트에 40%가 넘는 지분을 매각하며 전략적 협동 관계를 구축했다. 이전까지 PC와 콘솔 분야에서 활약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그 분야를 온라인과 모바일, 각종 VR 기기 등으로 넓히려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PC와 콘솔 등을 주무대로 삼았던 ‘언리얼’과 ‘기어스 오브 워’의 역할은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언리얼 엔진 4’ 의 테크 데모 ‘인필트레이터’ 

현재 팀 스위니는 에픽게임스의 CEO이자 리드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약 중이다. 그는 ‘기어스 오브 워 2’부터 게임 제작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지만, ‘언리얼 엔진 4’의 개발을 현장에서 이끌며 증강현실, 클라우드 시스템, VR, GPS, 플랫폼 융합 등의 차세대 기술들을 접목시키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엔진 업계에서 거의 시도된 적 없는 월 19달러의 파격적인 라이선스 모델을 발표해 ‘언리얼 엔진 4’의 진입장벽을 낮췄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업무와 전세계 강연 등을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팀 스위니는 2013년, 게임업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기록한 개발자들만이 헌액되는 미국 과학예술아카데미(AIAS) 명예의 전당에 15번째로 올랐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개발자 팀 스위니. 그는 앞으로도 게임업계의 창조적 발전을 뒤에서 지탱할 것이다.


▲ 한국의 개발자들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팀 스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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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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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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