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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제처럼, ‘랜덤박스’ 게임 규제 불씨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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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박스’로 대표되는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서는 북미, 유럽 등 서양 정치권에서도 ‘랜덤박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는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규제하는 법안이 3종이나 발의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랜덤박스’ 규제법이 나왔다. 전세계적으로 경쟁력 높은 콘텐츠산업이라 불리던 게임은 순식간에 규제 도마 위에 올랐다. 즉, 랜덤박스가 게임 규제 여론을 일으킨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랜덤박스 논란, 서양까지 뻗어갔다

국내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0년대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008년에 ‘캡슐형 유료 아이템’, 즉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발표한 바 있다. 결과가 꽝이거나 판매가격보다 가치가 현저히 낮은 아이템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으며, 상설모니터링기구도 만든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나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이후 정부에서도 2011년부터 업계와 논의해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으나 이 역시 뚜렷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2012년부터 스마트폰 게임이 퍼지고, 모바일게임 대부분이 확률형 아이템을 수익모델로 가져가며 소비자 불만은 더 커지게 됐다. 이에 2015년부터 ‘확률형 아이템’를 규제법이 발의되기 시작했다. 20대 국회에도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핵심으로 한 법안 3종이 있다. 이 중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등장 확률이 10%보다 낮은 아이템이 포함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있는 게임은 청소년에게 제공하지 말라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 획득 확률이 10% 이하인 아이템이 포함된 확률형 아이템이 있는 게임은 청소년에게 제공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 (자료출처: 의안정보시스템)

이처럼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는 법안이 나오자 게임업계에서는 다시 자율규제 카드를 꺼냈다. 특히 2017년에는 기존보다 강화된 내용을 담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시작했으며 올해 초부터는 확률을 공개하지 않은 미준수 게임과 업체 리스트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일본에서는 2012년부터 확률 공개와 함께, 뽑기를 통해 특정 아이템을 모두 모으면 추가 보상을 제공하는 ‘콘뿌가챠’ 금지 등을 포함한 자율규제가 시작됐고, 2016년에는 중국 정부에서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를 의무화했다.


▲ 올해 2월에 발표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 리스트 (자료제공: 게임이용자보호센터)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여파는 서양에까지 뻗어 있다. 서양의 경우 주요 패키지 게임에 포함된 ‘랜덤박스’가 논란에 불을 지폈다. 가장 대표적인 게임은 2017년 11월에 출시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2’였다. 당시 ‘배틀프론트 2’에는 게임 자체를 돈을 주고 사는 ‘풀 프라이스 게임’임에도 캐릭터와 장비를 랜덤박스 형태로 추가 구매하는 수익모델이 도입되어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랜덤박스’ 논란이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벨기에 게임 위원회는 게임 속 랜덤박스를 도박으로 분류해야 할지에 대해 조사 중이며, 영국 도박 위원회는 ‘랜덤박스는 도박이 아니다’라며 랜덤박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프랑스 제롬 듀레인 국회의원은 프랑스 온라인게임 규제청에 ‘랜덤박스’ 규제를 촉구하는 서신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표적인 게임 강국으로 통하는 미국에서는 하와이에서 ‘랜덤박스’ 규제법이 나왔다. 미국 하와이주 크리스 리 의원은 동료 의원들과 함께 21세 미만 게이머에게 ‘랜덤박스’ 등 유사도박 메커니즘이 포함된 게임을 플레이하지 말도록 제안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하와이에서는 21세 미만 게이머에게 ‘랜덤박스’가 있는 게임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 크리스 리 의원은 '랜덤박스 규제법'에 게이머들이 동참해줄 것을 어필하기도 했다 (영상출처: 유튜브)

랜덤박스를 법으로 규제하면 어떤 위험이 따라오나?

이처럼 ‘랜덤박스’에 대한 불만은 규제로 이어지는 추세다. ‘랜덤박스’가 게임 규제를 촉발하는 불씨가 된 셈이다. 이를 자초한 곳 중 하나는 게임업계다. 얼마나 돈을 사용해야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을지 분명치 않고, 확률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많은 돈을 투자해도 그에 비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할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한 반감을 알고 있음에도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게임업계의 대처가 문제를 키웠다.

하지만 ‘랜덤박스’를 법으로 규제하면 더 큰 위험이 따라올 수 있다. 가장 큰 부분이 ‘랜덤박스’로 시작된 규제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예가 셧다운제다. 본래 셧다운제는 청소년 수면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셧다운제’에서 시작된 ‘게임 과몰입’이라는 이슈를 토대로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하루에 4시간까지 제한하는 ‘쿨링오프제’,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함께 중독유발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정부가 관리하는 ‘게임중독법’, 게임사 매출 중 최대 1%를 중독치유기금으로 징수하겠다는 ‘1% 징수법’이 발의된 바 있다.


▲ 2014년에 열린 '게임중독법' 공청회 현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특히 2014년에 헌법재판소는 ‘셧다운제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결하며 ‘청소년의 높은 이용률과 과몰입, 중독될 경우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 자발적 중단이 쉽지 않은 특성을 고려할 때 과도한 규제라 보기 어렵다”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셧다운제’에서 촉발된 게임 과몰입 및 중독 이슈가 이후 나타난 ‘쿨링오프제’, ‘게임중독법’, ‘1% 징수법’의 씨앗이 된 것이다.

이처럼 ‘랜덤박스’ 규제도 시작은 ‘랜덤박스’ 자체를 규제하는 것에서 출발하겠으나 이를 시작으로 어떠한 규제가 파생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WHO가 ‘게임 장애’를 공식 질병으로 등록하겠다고 밝힌 현재, ‘랜덤박스’와 ‘게임 장애’가 묶이면 게임산업에 큰 여파를 미치는 강력한 규제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랜덤박스’ 이슈는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소비자에게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어떠한 아이템을 얻을지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게임사의 의무다. 아울러 ‘랜덤박스’에만 치중하지 말고, 일정 수익을 보장하면서도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한 새로운 수익모델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하지만 ‘랜덤박스’를 법으로 규제하기 시작한다면, ‘랜덤박스’ 자체가 불씨가 되어 게임 전체에 대한 규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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