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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PC파워진 2004년 5월, 불꽃 튀는 리빠 vs 와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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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게임메카에서 싱그러움을 담당하고 있는 허새롬 기자입니다. ‘아시나요’의 안방마님이었던 정지혜 기자님이 코너를 떠나 모바일 부서로 가고, 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네요. 후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부쩍 더워진 5월입니다. 온도와 습도가 모두 높으면 사람들의 불쾌지수도 높아져서, 외부인이 자신의 한계 영역을 침범하면 쉽게 공격적이 된다고들 하죠. 명색이 부들부들한 가정의 달이었는데 이제는 싸움나기 좋은 계절이 되어버렸네요.

9년 전에도 5월은 결투의 달(?)이었나 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좀 알콩달콩하고 상큼한 기사를 준비하려 했는데, 기자의 눈에 들어온 기사는 매우 전투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습니다. 바로 PC파워진 2004년 5월호에 실린 ‘리빠vs와빠’! 


▲ 보기만 해도 전투력이 상승하는 PC파워진 2004년 5월호

제목부터 서로의 영역을 굳건히 지키려는 전사들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나요? ‘리니지 2’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두고 최고의 게임을 가리려던 그 시절, 그 치열한 분위기 속으로 떠나보겠습니다.


▲ PC파워진을 펴자마자 보이는 전체지면 광고. 신경전의 기운이 여기까지 오는 듯 합니다

린저씨 vs. 와갤러의 출현

게임의 첫인상은 그래픽이 결정합니다. 지금까지도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스크린샷과 트레일러가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그래픽 구현 수준을 통해 게임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먼저 형성하곤 합니다. 

수준 높은 그래픽에 대한 갈망은 2004년에도 대단해서, ‘리니지 2’가 출시되었을 때 무엇보다 큰 조명을 받았던 건 반짝반짝한 그래픽이었습니다. 특히, 쿼터뷰 방식의 화면에 작은 아바타가 돌아다니던 ‘리니지’보다 눈에 띄게 좋아진 모습이라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거기다 8등신의 예쁜 캐릭터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


▲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었던 '리니지 2'의 엘프 여인네가 도입부에 뙇

그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학생 신분으로 피시방을 들락날락하던 저는, ‘리니지 2’ 엘프 등신대에 홀딱 반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었는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꽃 같은 엘프 아가씨의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종종 피시방 주인이랑 친해서 등신대를 받아왔다, 술 먹고 밖에 세워져 있던 걸 가져왔다(!) 등 재미있는 무용담도 넘쳐났습니다.


▲ '미숙아'에 '사생아' … 피도 눈물도 없는 현장입니다

반면 당시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 ‘와우’는 그래픽 부분에서는 그다지 큰 반향을 얻지 못했습니다. 기존의 한국 MMORPG처럼 예쁜 캐릭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색감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색상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좋게 말하자면 개성 넘치는, 까놓고 말하자면 미국 냄새가 강한 못생긴 그래픽이죠.


▲ 힐 받으시겠어요? (사진 출처: 구글)

그래서인지 ‘와우’ 유저들 사이에선 ‘등신대 대란’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드워프 여자 사제 캐릭터 이름을 ‘힐받으면 내남자’라고 짓는 등 못생긴 캐릭터가 개그 소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등신대가 없어질 일은 없어서 피시방 주인들은 좀 안심했겠네요.

당신은 어느쪽 팬이셨나요?

아이돌 마냥 팬을 거느리던 두 게임은 커뮤니티 규모 역시 대단했습니다. 게임메카에서도 보란듯이 커뮤니티 대결구도를 붙일 정도였으니,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가요계 오빠부대를 이분화시켰던 H.O.T와 젝스키스에 필적할 만했습니다. 팬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지만…


▲ '리빠'와 '와빠'의 기운은 기자들에게도 예외없이…

게임 자체의 영향력을 놓고 보자면 둘 다 아이돌 못지 않았습니다(물론 남자들에게만). ‘리니지 2’는 한국 최대의 개발사이자 MMORPG 명가인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의 차기작으로 내세운 작품이었습니다. ‘리니지’는 학계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다양한 사회현상을 일으켰으니, 정통 후속작인 ‘리니지 2’가 큰 관심을 받은 것도 알 만 합니다.


▲ 이 당시에도 '리니지 2'의 현금거래 시장에 대한 우려는 여전했습니다

블리자드의 영향력도 엄청났습니다. 나이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건강한 남성들을 지옥으로 이끌었고, 몇 시간씩 트리스트럼(‘디아블로’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마을)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기다리게 만들었죠. 1년 전 ‘디아블로 3’ 때문에 일어난 왕십리 사태를 기억하신다면…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두 게임 모두 게임 안에서 제공하는 커뮤니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외부 커뮤니티를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도는 오늘날 두 개발사의 자존심 대결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 이래저래 조작에 대한 말도 많았군요. 이것이 와갤러의 시초겠죠 허허

‘리니지 2’의 경우는 ‘혈맹 카페’가 있겠고, ‘와우’는 ‘와우 갤러리’를 들 수 있습니다. ‘게임 폐인’의 양지화라고나 할까요? 두 ‘빠돌이’ 모두 온라인에서 활동하다 보니, ‘린저씨(리니지 하는 아저씨)’와 ‘와갤러(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와우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유저)’라는 대명사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고요. 


▲ 커피와 '리빠' 라니… 잘 상상이 안갑니다

‘린저씨’와 ‘와갤러’는 서로 대치하는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일례로, ‘와갤러’들은 ‘린저씨’를 ‘한 가지 게임만 맹목적으로 좋아하고 도전의식 없는 나이든 게이머’라는 의미로 지칭했고, ‘린저씨’들은 ‘와갤러’들을 ‘블리자드 게임 외에는 다 트집잡아 까는 빠돌이’로 호명하곤 했습니다. 두 커뮤니티가 실제로 부딪힌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묘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견제했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도 변함이 없었네요.


▲ 이 두분은 표지에서까지 격돌하고 계시네요..

아름다웠던 시절, 지금도 재현할 수 있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큰 파급력을 가진 두 개발사가 국내에서 맞붙었다는 건 행복한 기억입니다. 당시 토종 MMORPG가 해외 게임에 맞설 정도로 강력한 개발력을 가지고 있었고, 블리자드의 수석 부사장인 폴 샘즈가 “’리니지 2’를 꺾어 보이겠다!”라고 직접 언급할 정도로 국내 온라인게임이 해외에도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단 것을 반영한 현상이니까요. 더불어 그 시절에는 게임의 국적(?)에 관계없이 유저들이 '리니지 2'와 '와우'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와 같은 열띤 토론도 이루어졌던 것이죠.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때 만큼 유저들이 열정을 불태우는 게임이 없습니다. 모바일게임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유저들이 빠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불꽃은 사그라들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엔씨소프트와 블리자드 모두 아직도 게임 개발에 매진하고 있고, 새로운 개발사도 꾸준히 생겨나는 중입니다. 새로운 방식의 게임에 도전하는 개발사에 유저들이 객관적인 평가로 힘을 실어 준다면, '리빠'와 '와빠'에 필적하는 팬을 양산하는 매력적인 MMORPG가 등장하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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