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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확률형 아이템 논란, 왜 산으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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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안’을 내놓은 후 게임업계와 유저 간 감정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만 있다. 발의안 검토는 고사하고 업계가 주장하는 자율 규제 안건도 요원하다. 오히려, 개발자와 게이머의 의견 충돌만 심해지는 형국이다. 분명 출발은 ‘과도한 사행성은 지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는데, 왜 이해관계자들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점점 대립각만 세우게 되는 걸까.

‘확률’의 태생적 문제

본래 확률은 게임의 재미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윷놀이나 포커처럼 랜덤성을 기반에 둔 놀이는 물론, 하물며 최신 게임을 할 때도 그렇다. 몇 시간씩 진행되는 레이드에서 유니크 아이템을 운 좋게 얻는 것이나, TCG 플레이 중 운 좋게 귀한 카드를 얻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랜덤성에 돈, 곧 현금 구매라는 개념이 접목되면 달라진다. 통상적으로 소비자들은 어떠한 상품을 구매했을 때, 자신이 지불한 금액에 합당한 가치를 얻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가치가 랜덤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업체들은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세트 아이템을 조각조각 나누어 랜덤상자에 넣거나, 확률적으로 등장하는 아이템을 모두 모아야만 교환이 가능한 상품을 게임 속에 삽입하는 등의 방식을 고안해냈다. 그 탓에, 과거보다 평균적으로 많은 아이템을 사야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


▲ '마비노기 영웅전' 확률형 아이템에 관련된 사건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 시점부터 게이머와 업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확률 조작으로 의심되는 사건들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당연하게도 게임사에 대한 유저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제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실제로 몇 퍼센트이든, 확률 조작이 사실이든 아니든 유저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이미 게임업체는 확률 조작으로 유저를 조롱한 주체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유저들은 확률형 아이템 정부 규제안에 힘을 싣는다.

정부 규제가 가지는 문제

그 소용돌이 속에서 게임사들은 난색을 표한다. 대부분 게임이 부분유료화로 서비스되는 지금, 확률형 아이템이 주요 매출원이기에 섣불리 손대기가 힘들다. 그리고, 확률형 아이템 규제안에 명시된 확률 고지의 범위가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발의된 법안은 해석에 따라 게임 내 모든 아이템에 대한 확률을 공개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안 범위가 모호하기에, 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예를 들어 실제 선수가 등장하는 축구 게임의 경우 몇만 명에 달하는 선수 카드의 획득 확률을 고지해야 하는데, 화면 안에 숫자를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또, 던전 클리어 보상의 확률을 다 알고 있다면 상자를 여는 두근거림도 덜 할 것이다.

게다가, 이번 발의안이 통과되면 게임산업에 관련한 규제안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발의되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매출징수법과 게임중독법으로 홍역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더욱더. 그 탓에 게임업계는 자율 규제를 원한다.

자율 규제가 가지는 문제

업계에서는 자율 규제를 대안으로 내놓지만, 자율 규제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이하 협회)가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회원사들은 교묘히 기준을 빠져나가고, 비회원사들은 이를 따를 의무가 없다. 오히려 자율 규제 선언 이후 확률형 아이템을 이용한 상술은 더욱 고도화되기만 했다.


▲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강신철 회장

협회가 구심력이 없다는 점도 한몫한다. 특히 정작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많은 모바일게임 업계에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국모바일게임협회와 협력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회가 자율 규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막상 자율 규제를 통해 업체들이 확률을 공개하거나 보상 하한선을 정한다고 해서, 유저들이 믿을 수 있을까? 이미 몇 차례 사건으로 신뢰를 잃은 마당에, 공개된 수치를 그대로 믿어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리를 해보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논의가 갈 길을 잃고 논란만 커지는 이유는 두 가지 대안 모두 한계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 규제와 자율 규제 중 일부 저항은 있겠지만 먼저 실행되는 쪽이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다. 도가 지나친 확률형 아이템에 규제가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 때문에 업계가 자율 규제를 원한다면 이제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빨리 해결책을 내놔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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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새롬 기자 기사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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