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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과 한파, 피곤 속에 발견한 '보석'... PAX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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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상징, PAX EAST 2015 미디어 패스

PAX EAST는 지금까지 갔던 게임쇼 중 가장 별천지 같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GDC 2015가 학구적이고,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PAX EAST는 놀거리가 넘쳐 난다. 부스에서 시연을 기다리며 게임을 하고, 차례가 오면 시연을 즐기고, 준비해온 옷을 입고 코스튬 플레이에 나선다. 이게 싫증이 나면 인디게임 부스로 넘어가 개발자들을 만나보거나, 상점에 가서 살만한 게 있나 둘러보면 된다. 다리가 아프면 바닥에 누울 수 있는 커다란 쿠션에 누워 3DS를 켜면 된다.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했기에 기사에 아직 담지도 못한 것이 가득하다. 그래서 PAX EAST 2015 탐방기를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볼까 한다.

한파에 폭설까지, 조짐이 좋지 않은데?

PAX EAST 2015가 다가올수록 기자를 불안하게 하는 뉴스가 있었다. 미국 동부에 불어 닥친 한파. PAX EAST가 열리는 보스턴은 위도로 치면 백두산 쯤에 있다. 즉, 미국 동부에서도 북쪽이다. 쉽게 말해 '얼어 죽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기자가 출발한 날은 3월 5일이었다. 수속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감안해 7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출발 시간 늦어진 거 알고 계시죠? 뉴욕 공항에 눈이 많이 와서 2시간 미뤄졌어요"
"예?"
"상황에 따라 더 늦어질 수도 있는데, 늦어지면 탑승구에서 안내가 나갈 거에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날 공항은 골프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본래 출발시각이었던 10시에 비행기가 떴다면 인파의 북새통에 '이러다 비행기 놓치는 것 아닌가'하며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며 2시간을 더 기다려 12시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 오랜 시간 제 자리에 서 있던 비행기

옆 자리에 승객이 아무도 없어 3명 자리를 혼자서 쓸 수 있게 된 점이 불안함에 떤 마음을 달래줬다.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1등석 같은 일반석에서 꿀을 빤 지 약 12시간. 뉴욕 공항에는 말 그대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손이 얼 것 같은 강추위는 덤이다. 눈이 번쩍 떠질 정도의 한파에 기자는 이번 출장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 한국 날씨는 이렇게 좋았는데...


▲ 뉴욕에는 폭설이...




▲ 야~ 눈이다

놀거리가 널렸네? 게이머는 행복하고 기자는 불행하다

PAX EAST 2015가 열리는 도중, 보스턴에는 다행히 눈은 안 왔지만 강추위는 이어졌다. 기온은 영하 11도. 바람이라도 불면 비명이 절로 나오는 추위였다. 

해외 게임쇼에 가면 기자의 일정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낮은 주로 취재타임이다. 간담회, 인터뷰, 시연회, 촬영 같은 취재 활동을 낮에 마친다. 그리고 낮에 취재한 것을 모아서 밤에 기사를 쓴다. 이번에 게임메카를 유심히 본 독자라면 낮 시간에 올라온 PAX EAST 기사를 봤을 텐데, 그거 여기서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써서 올린 거다. 거짓말 안하고 PAX EAST를 종일 취재한 이틀 동안 기자가 잔 시간은 3시간. 이틀에 3시간이다. 그것도 2일차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탐방기를 쓰는 지금도 못 자고 있다.


▲ 왜 난 못 자고 있는가


▲ 새벽까지 기사와 사투를 벌였다


▲ 밤샘에 커피는 필수

보스턴의 강추위는 잠을 못 자 멍한 기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어떤 의미에서 고마웠다. 그래도 좀 덜 추웠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무튼 이런 추위에도 게이머들은 즐거워 보였다. 즐거웠을 것이다. 일 안하고 놀면 되니까. 


▲ 물이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

PAX EAST는 하루 종일 놀아도 못해본 게 가득한 별천지와 같은 곳이었다. E3나 게임스컴처럼 업체 부스만 구경하고 돌아가는 사람은 초짜다. PAX EAST를 진국으로 즐기려면 부스 주위나 뒤쪽에 가야 된다. 숨겨진 재미는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PAX EAST 전시홀은 입구 쪽에 대형업체 부스가 몰려 있고 옆과 뒤에 인디게임과 상점, 보드게임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보드게임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평소에는 구하기 어려운 게임 상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인디게임 부스에 가면 시연은 물론 개발자와의 즉석 Q&A도 즐길 수 있다.








▲ 놀거리로 가득한 PAX EAST 2015 현장

완전 뒤쪽에는 PC와 탑테이블 게임 무료 플레이 존이 있다. 운영 방식은 자유롭다. 거기 있는 게임을 해도 되고, 현장에서 구매한 게임을 뜯어서 해도 되고, 심지어 집에서 가져온 것을 펼쳐놔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 기자는 현장에서 집에서 들고 온 게임기를 설치하고 있는 열혈 게이머를 볼 수 있었다. '그럴 거면 그냥 집에서 게임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집이 아니라 'PAX EAST'에서 게임을 한다는 자체가 큰 의미가 됐으리라... 

사람 많은 게 싫다면 2층에 올라가보자. 2층에는 콘솔 게임을 공짜로 즐기는 프리 플레이 존이 마련되어 있다. 패미컴과 같은 옛날 게임부터 PS4나 Xbox One 등 최신 콘솔까지 원하는 기기를 골라 하루 종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아, 물론 매너 있는 게이머가 되고 싶다면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하루 종일'은 아니고 적당히 한 뒤 돌려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 게임을 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가 맴돌았다

콘솔 프리 플레이 존에서 기자 마음에 쏙 들었던 곳은 휴대용 콘솔 라운지다. 그 안에 들어가면 방 가운데 거대한 쿠션이 쌓여 있다. 거기에 드러누워 PS비타나 3DS를 즐기며 쉬는 게 휴대용 콘솔 라운지의 꿀이다. 더불어 기자의 퉁퉁 부은 두 발을 쉴 수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아픈 허리와 다리를 쉬려고 자리를 잡고 누운 기자. 그런데 그 와중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다.

"I Think about trans....@#~%*@!~.......do you?"
"?"

열심히 뭔가를 말하지만 모르겠다. 한참 말을 하던 외국인, 아니 현지인은 답답했는지 앞에 있던 직원에게 가서 뭔가를 이야기한다. 질문을 받은 직원은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물론 영어로, 이건 알아들었다 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홍보용으로 붙여놓은 현수막을 보니 대충 짐작이 됐다. 당시 현수막에 있던 것은 '게임에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냐, 반대하냐. 의견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게임에 대한 짤막한 토론은 PAX EAST 현장 곳곳에서 이어진다. 시연을 기다리다가 앞에 있던 사람과, 보드게임을 즐기다가 만난 사람과, 코스튬 플레이를 촬영한 뒤 의상에 대해, 그들은 끊임 없이 이야기한다. 게임을 기다리며, 핸드폰이나 3DS로 게임을 하고, 앞사람과 게임에 대해 떠들고. 그들은 시연을 위한 대기시간도 '게임'처럼 즐기고 있었다.


▲ 대기자들로 붐볐던 MS와 오큘러스 VR 부스 사이

그럼 뭘 하나. 앞서 말했듯이 기자는 일을 하기 위해 PAX EAST에 방문했다. 게이머들에게는 즐거운 놀거리인지 몰라도, 마감을 앞둔 기자에게는 한 무더기의 일거리로 보일 뿐이다. 특히 현장에서 마감할 기사가 많았던 첫 날은 지옥이었다. 현장 와이파이가 안 돼 테더링을 시도해봤지만 인터넷은 되지 않는다. 아니 인터넷은 되도 절대 사진은 안 올라간다. 300KB 사진 한 장이 2초에 1KB씩 전송되어 1분 만에 올라가는 것을 경험해본 적 있나? 그런데 그마저도 안 되어 자꾸만 노트북을 붙잡고 빌게 된다. 누구한테? 

그런데 취재 일정이 없던 PAX EAST 마지막 날, 함께 출장 온 모 기자가...

"찾아보니까 기자실이 있더라구요. 작긴 한데 인터넷은 빠르던데요?"
"(긴 침묵) 그걸 이제 와서 이야기해봤자"
"저도 돌아다니다가 지금에야 봐서"

그렇다. 난 왜 자연스럽게 기자실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보통 게임 행사에서는 취재 활동을 돕기 위해 기자실이 마련된다. 그러나 기자는 '게이머 위주의 게임쇼 PAX EAST'라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 기자실이 따로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 정도로 PAX EAST는 게이머 친화적인 행사라는 인상이 강한 행사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기자가 아닌 게이머로 꼭 한 번 오고야 말리라.

개발자와의 즐거운 담화, 기자를 위한 미디어 파티


▲ 어서 오세요~

한국에서 열리는 미디어 간담회는 굉장히 업무적이다. 개발자들은 준비해온 내용을 발표하고, 기자들은 속보에 집중한다. 마감이 생명이라 밥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그리고 다음 일정을 위해 모두가 서둘러 자리를 뜬다. 이런 흐름에 익숙해진 기자에게 미국의 미디어 파티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개발자들이 술을 들고 다니며 기자들과 어울리며 가볍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기자가 PAX EAST 동안 방문한 미디어 파티는 블리자드가 연 '히어로즈 & 하스스톤 미디어 파티'였다. 분위기는 가벼웠다. 맥주나 보드카를 시켜 먹을 수 있는 바도 있었으며 호기롭게 보드카를 시켜봤으나 너무 독해 한 모금밖에 못 먹었다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한 켠에는 '하스스톤'과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즐길 수 있는 시연 공간도 마련됐다. 그야말로 클럽과 게임이 하나가 된 듯한 공간이었다. 덕분에 기자는 '하스스톤'의 신규 모험 모드 '검은바위 산'의 첫 번째 보스를 물리친 첫 한국인이 됐다.


▲ 파티장에 마련된 시연대

개발자와의 만남도 있었다. '하스스톤' 용 우 선임 프로듀서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알렌 다비리 테크니컬 디렉터와 잠깐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특히 용 우 프로듀서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임에도 최대한 한국어를 사용하며 통역을 통하지 않고 직접 기자들과 이야기하려는 열의를 보였다.




▲ '하스스톤' 용 우 선임 프로듀서(상)과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알렌 다비리 테크니컬 디렉터(하)

미디어 파티라는 자리가 생소해 '대화'보다는 '인터뷰'에 가까운 시간이 된 점은 아쉽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아 담소하듯이 가볍게 개발자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경험은 기자 입장에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취재하는 입장에서는 PAX EAST에 없었던 '하스스톤' 신규 콘텐츠를 해보는 것에 이어 개발자들과 비공식 인터뷰도 2개나 따냈다는 것이 이득으로 남았다. 현장에 참석한 모 관계자는 미디어 파티를 두고 이런 감상을 남겼다.

"저런 뒷이야기가 있어서 코X쿠나 게임X팟 같은 곳이 양질의 기사를 써내는 건가?"

PAX EAST에서 기자가 부러웠던 것 3가지

마지막으로 PAX EAST에서 기자가 부러웠던 3가지를 적어보겠다.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풍부한 보드게임 문화다. 현장에서 판매하는 상품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물품은 보드게임에 사용하는 주사위나 TCG용 카드, 가구 등이다. 보드게임 자체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상점도 많다. 




▲ 보드게임 관련 상품이 많았다

미국의 보드게임 문화는 한국과 달리 매우 대중적이다. 이해를 도울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앞서 말했듯이 기자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숙소에서 일을 했다. 너무 졸려 잠을 깨기 위해 1시간 단위로 밖에 나왔는데, 이 때 호텔 로비에 있는 테이블에서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는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을 처음 본 시점은 밤 12시인데, 새벽 4시에 내려갔을 때도 그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눈짐작으로 그들의 연령은 대략 40대,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주사위를 던지며 노는 모습은 매우 생경한 풍경이었다.

두 번째는 풍성한 서브컬처 문화다. PAX EAST의 명물 중 하나는 코스튬 플레이다. 물론 게임 캐릭터가 주를 이루지만 만화나 영화에서 나온 인물로 분한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일본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 신기했다. '젤다'나 '마리오'처럼 게임 캐릭터도 있었지만 '소드 아트 온라인'이나 '드래곤볼'과 같은 만화 캐릭터로 변신한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눈이 크고, 선이 가는 일본 만화풍 일러스트를 그려서 판매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마지막은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는 것이다. PAX EAST의 가족 방문객은 지스타와 성격이 다르다. 지스타에 오는 한국 부모는 '아이가 좋아하니까' 데려온 것이 대부분이라면 PAX EAST의 부모는 아이는 물론 본인도 놀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는 경향이 크다.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자녀와 세트로 캐릭터 의상을 맞춰 입고 게임을 즐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부모를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게임을 즐긴다, PAX EAST 2015에서 만난 '게임 매니아 가족'은 미국 안에서 '게임'이 얼마나 대중적인 문화로 인정받는가를 한눈에 보여줬다.


▲ 세트로 차려 입은 가족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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