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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듀랑고'의 샌드박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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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샌드박스 MMORPG '야생의 땅: 듀랑고'가 온다 (사진출처: 넥슨)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 놀이터를 떠올려보자.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처럼 기구 타길 즐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모래 위에 주저앉아 두꺼비집을 만드는데 열중하는 친구도 있었다. 놀이기구가 설계에 맞춘 움직임으로 재미를 준다면 모래는 내 멋대로 쌓았다 부쉈다 하는 자유로움이 백미다.

오늘날 게임도 이와 같은 두 가지 방향성이 존재하다. 첫째는 최적화된 동선과 꽉 짜인 전개, 영화적인 연출로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 테마파크형 게임이며, 둘째는 다양하게 응용 가능한 소품만 깔아놓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놀이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샌드박스형 게임이다.

한 편의 잘 만든 블록버스터 감상, 테마파크형 게임

테마파크와 샌드박스가 명확한 장르 구분은 아니지만 자유도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견되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를 예로 들면, 주인공이 누구인지 무슨 사건에 휘말리고 어떤 결말로 치닫는지 유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모든 것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며 도중에 총만 직접 쏠 수 있을 뿐이다.

이동 구획은 꼭 필요한 정도로 제한되며 표적을 살려준다던가 같은 돌발 행동도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저 주어진 퀘스트를 수행하고 나면 멋들어진 컷신(Cut Scene)과 함께 알아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따라서 유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감정이입하기 보다는 한 편의 잘 만든 영화를 가까이서 감상하는 관객 입장에 서게 된다.


▲ 연출은 최상이지만 자유도가 거의 없는 '콜옵' 시리즈 (사진출처: 액티비전)

온라인게임 중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대표적인 테마파크형 게임으로 꼽힌다. 자신의 캐릭터를 직접 설정하고 어떤 일감을 받을지 선택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퀘스트 내용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다. 유저 스스로 놀이를 창출하고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롤러코스터 타듯 게임사가 제공하는 여러 콘텐츠를 순회하며 즐길 뿐이다.

그렇다고 자유도가 낮으니 재미없는 게임이란 것은 아니다. 테마파크형 게임이 자랑하는 깊은 서사와 연출은 반드시 통제된 환경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유저가 제멋대로 흐름을 이탈해버리면 의미가 없다. 또한 주인공에게 특정한 외모, 성격, 목소리를 부여해 ‘라라’나 ‘크레토스’ 같은 매력적이 캐릭터가 탄생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창발적 흙장난, 샌드박스형 게임

반면 샌드박스는 말 그대로 모래사장 같은 매력을 지녔다. 모래와 삽, 양동이는 주어지지만 이걸로 성을 쌓을지 땅굴을 팔지는 순전히 유저의 몫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균질한 콘텐츠를 보장하는 테마파크와 달리, 샌드박스는 끝내주게 재미있을 수도 있고 끔찍하게 지루하기도 하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즐거운 놀이를 창출하느냐의 차이다.

초창기 샌드박스형 게임은 대부분 시뮬레이션 장르였다. 나만의 도시를 건설하는 ‘심시티’나 민족 부흥의 사명을 띤 ‘시드마이어의 문명’이 바로 이런 류. 유저는 시스템이 지원하는 기본적인 규칙으로 자유롭게 전략을 짜고 향후 전개에 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럴싸한 시나리오는 없지만 여러 가능성이 맞물리며 날 것 그대로의 에피소드가 터진다.


▲ 세계적으로 흥행한 샌드박스형 게임 '마인크래프트' (사진출처: 마이크로소프트)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오픈월드 게임들도 기본적인 원리는 똑같다. 가령 ‘GTA’는 주민과 차량의 행동 양식을 정해놓고 유저가 일정 이상 범죄를 저지르면 경찰이 쫓아오는 등의 몇 가지 규칙을 더해 흥미로운 범죄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퀘스트를 해결할 때도 목표물을 도중에 가로채거나 의뢰인을 그냥 쏴버리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도가 극단적으로 발휘된 사례가 ‘개리 모드’와 ‘마인크래프트’다. 이들 게임은 정해진 목표나 결말이 없으며 이렇다 할 서사도 존재치 않는다. 대신 수많은 소품과 몇 가지 규칙을 가지고 유저들이 창발적으로 놀이에 참여한다. 연장을 휘둘러 건물을 지을지 옆 사람 뒤통수를 깨느냐에 따라 건설 시뮬레이션이 될 수도 있고 액션게임이 되기도 한다.

야생의 땅: 듀랑고, 국내에도 샌드박스 바람이 불까?

테마파크와 샌드박스는 일장일단이 뚜렷해 뭐가 더 좋다고 하긴 어렵다. 다만 국내의 경우 JRPG 영향으로 초기부터 테마파크형 게임이 크게 각광받은 반면 샌드박스라 할만한 작품은 거의 나오지 못했다. 온라인게임 위주로 시장이 재편된 이후에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유사한 테마파크 MMORPG가 주류였고 이러한 흐름이 모바일로 이어지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넥슨은 2012년 돌연 국내 최초의 본격 샌드박스 MMORPG ‘프로젝트 K’를 발표했다. 무한사냥과 파밍 일색인 MMORPG의 구태를 과감히 덜어내고 자유롭고 창발적인 플레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절차적 생성을 통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는 지형들, 그곳에서 사냥과 채집을 통해 소재를 얻고 온갖 방식으로 조합해 생존 물품을 만들어내는 게임이다.


▲ 자유롭고 창발적인 게임플레이를 지원하는 '듀랑고' (영상출처: 넥슨)

‘듀랑고’ 개발을 진두 지휘하는 이은석 디렉터는 MMORPG가 쇠퇴하는 원인을 유저에게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뿌리고 통제하는 하향식 구조에서 찾았다. 대신 잘 놀 수 있게 판만 깔아주고 유저들이 놀이를 창출했을 때 이를 적극 지원하는 상향식 구조가 필요하다고. 즉 기존 MMORPG가 지닌 한계를 샌드박스 구조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듀랑고’는 유저들을 중생대와 같은 태곳적 야생에 던져놓고 아무런 목표도 제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당장 하루의 생존을 위해 전전긍긍하겠지만 점차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 움막과 수로를 트는 건축가, 미지의 섬에 가장 먼저 딛는 탐험가 등이 나타날 것이다. 샌드박스에는 귀족 직업도 졸업 장비도 없다. 그저 내키는 데로 플레이해도 그것을 게임이 받아준다.

테마파크에 익숙한 이들에게 ‘야생의 땅: 듀랑고’는 분명 생경한 모습이다. 시스템이 임무를 부여하지도 않고 이래라 저래라 이끌어주는 경우도 드물다. 높은 자유도가 되려 초보를 헤매게 하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 과연 국내 유저들은 샌드박스 MMORPG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6년을 기다린 ‘야생의 땅: 듀랑고’는 오는 25일 정식 서비스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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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기사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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