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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스토리텔링’ 주체, 개발자와 게이머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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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버워치 팬 페스티벌’에 참석한 블리자드 제작진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 매체와 진행된 인터뷰 현장에서 벤 다이 프로젝트 디렉터는 “애니메이션 팀에는 200명이 있고, 한 작품에 60명에서 최대 100명이 투입된다. 기획부터 완성까지는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라고 말했다. 사실 ‘오버워치’는 애니메이션 없이도 문제없이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가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100명에 달하는 인원을 투자해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이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도 마찬가지다. 여럿이 모여 싸우기만 하는 게임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세력다툼이 있다. 2014년부터 스토리와 세계관 정립에 힘을 쓰고 있는 라이엇게임즈는 올해 7월 게임 속 모든 지역과 관련 정보를 담은 ‘인터랙티브 맵’을 열었다. 이를 통해 정복욕을 앞세운 ‘녹서스’의 국가관이나 여러 계층이 공존하는 ‘자운’의 시대상 등을 볼 수 있다. 이를 몰라도 플레이에는 전혀 지장 없지만 라이엇게임즈는 스토리텔링을 더 단단히 다지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인터랙티브 맵 소개 영상 (영상제공: 라이엇게임즈)

이들이 게임 외적인 요소까지 동원해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흥행과 롱런이다. 게임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뜨거운 ‘팬심’이 필요하다. 정교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앞세운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은 팬심을 끊임 없이 불태울 수 있는 질 좋은 연료가 될 수 있다.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이 부분에서 유명한 게임사가 닌텐도다. 닌텐도의 가장 큰 강점은 IP다. ‘슈퍼 마리오’, ‘젤다의 전설’, ‘포켓몬스터’까지 수십 년간 생명을 이어온 시리즈로 무장하고 있다. 장수 비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스토리가 응축된 캐릭터다. 중간에 제작진은 바뀌어도 캐릭터 고유 특성은 엄격하게 관리하는 전략을 통해 어린 시절에 ‘슈퍼 마리오’를 했던 게이머가 성인이 되어서도 ‘마리오’에 열광하게 만든 것이다.


▲ 닌텐도의 강점은 수십 년 간 이어진 인기 시리즈 다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닌텐도 공식 홈페이지)

그 파급효과는 게임 한 작품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직접적으로 보면 이후에 출시될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한다. 많은 제작사가 게임 곳곳에 소위 말하는 ‘떡밥’을 가득 심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잘 뽑은 캐릭터는 게임 밖에까지 파장을 일으킨다. 캐릭터를 모델로 삼은 게임 굿즈부터 시작해 소설, 영화, 만화와 같은 다른 영역으로의 진출, 더 나아가서는 코스프레나 팬아트와 같은 2차 창작물까지 나아간다.

개발자가 아니라 게이머가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이처럼 잘 만들어진 세계관과 스토리는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게임으로 끌어들이는 창구로 통한다. 하지만 모든 게임사에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블리자드처럼 애니메이션 팀에만 200명을 투입시킬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여기에 인력과 비용을 아무리 투자해도 유저들의 콘텐츠 소비 속도에 맞춰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개발해서 넣는 것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이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요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점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사가 아닌 게이머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놀이터를 예로 들면 제작진은 유저들이 가지고 놀 그네나 시소, 미끄럼틀 같은 것만 만들어주고, 이 기구를 사용해 뭘 하며 놀 것인지는 게이머가 정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전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게임이 ‘마인크래프트’다. 여러 블록을 조합해 원하는 건물이나 장비를 만들어가며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마인크래프트’의 가장 큰 특징이자 성공 요인이다.


▲ 유저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마인크래프트' (사진출처: 마인크래프트 공식 홈페이지)

또 다른 방법은 대전이다. 개발자가 미리 짜준 대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매번 다른 유저와 맞붙으며 색다른 플레이를 맛보는 것이다. 그 대표주자가 전세계에 ‘배틀로얄’ 돌풍을 일으킨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다. ‘배틀그라운드’는 대전 게임 중에도 100명 중 마지막에 살아남는 생존자 1명을 가린다는 색다른 규칙과 살아남기 위한 장비를 수급하는 파밍을 더해 플레이어가 나름의 ‘생존기’를 써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 대전 게임 중에도 '배틀그라운드'는 나만의 생존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사진제공: 카카오 ;배틀그라운드' 공식 페이지)

앞서 소개한 샌드박스와 대전 게임은 콘텐츠 수급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도 매번 색다른 플레이를 제공할 수 있는 방식이다. 경쟁이 심해지는 시장 상황에서 한정된 리소스로 많은 유저를 커버하기 위해 생각해낸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두 장르 모두 '보는 게임' 유행을 타고 스토리 폭이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유저 혼자 만들어갔다면 이제는 남이 만드는 이야기를 시청하며 즐기는 시대까지 온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는 어떤 건물을 만드는지 보는 것을 넘어 대본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스토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역할극을 방송으로 접할 수 있다. ‘배틀그라운드’ 역시 여러 스트리머가 스쿼드(4인 팀)을 짜고 여러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는 과정 자체를 방송으로 뽑아낸다. 특유의 입담에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곳곳에 넣어 다른 방송에서 본 적 없는 고유한 이야기를 완성해내는 것이다.

개발사 주도와 게이머 주도, 무엇이 더 나은가?

종합하면 현재 시장에는 게임 스토리텔링을 이끌어가는 두 축이 있다. 하나는 게임 제작사, 또 하나는 게이머다. 둘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개발사가 주도하는 방식은 게임 자체에 집중된 정교한 스토리를 구축해나갈 수 있으나 개발 부담이 상당하다. 반대로 게이머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콘텐츠 수급에 대한 부담을 덜면서도 게이머에게 매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나 정교함은 다소 부족하다.

이처럼 장점과 단점이 다르기에 개발자 주도와 게이머 주도 중 무엇이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게임 속에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을 다루는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기존에 게임 스토리텔링은 제작사가 게이머에게 일방적으로 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대 흐름에 따라 게임 시장 상황도 끊임 없이 변화하며 게임 스토리텔링 방식도 한 가지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게임사가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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