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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흥행 실패한 '시스템 쇼크'가 전설이 된 이유

시스템 쇼크가 대체 뭐야? (사진출처: 스팀)
▲ 시스템 쇼크가 대체 뭐야? (사진출처: 스팀)

2020년에는 유독 기대작 게임들이 많다. 사이버펑크 2077,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엘든 링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게임이 하나 있으니, 바로 20년 만에 돌아오는 SF 공포 어드벤처 시스템 쇼크다. 원작자인 워렌 스펙터가 만든 시스템 쇼크 3는 물론, 시리즈 첫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까지 나온다고 하니 내년에만 시스템 쇼크 시리즈가 두 개나 나오는 셈이다. 벌써부터 팬들의 환호가 들리는 듯 하다.

하지만, 시스템 쇼크는 명맥이 끊긴 지 워낙 오래된 게임인지라, 아마 직접 플레이 해보지 못 한 게이머가 더 많을 것이다. 대체 이 옛날 게임이 아직도 자주 회자되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것일까? 그저 단순한 향수 때문일까? 아니면 이 게임에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것일까? 이번 주에는 고전 SF 공포 어드벤처 시스템 쇼크가 오늘날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명작, 그리고 이머시브 심

역대 이머시브 심 게임, 시스템 쇼크는 그 중에서도 앞선 작품 중 하나다 (사진출처: Medium)
▲ 역대 이머시브 심 게임, 시스템 쇼크는 그 중에서도 앞선 작품 중 하나다 (사진출처: Medium)

요즘 인기를 끄는 소위 자유도 높은 게임들의 공통점을 꼽으면 바로 자체적인 물리 효과를 지닌 가상세계다. 기반이 되는 가상세계가 갖춰져야 그 안에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플레이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몇 해 전 큰 인기를 끈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나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 등 자유도 높은 게임들을 보면 대부분 이처럼 일정한 규칙을 지닌 가상세계를 훌륭하게 구현해놨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게임 디자인을 통틀어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이라고 부른다. 이머시브 심은 몰입적 시뮬레이션의 준말로, 물리적 법칙을 비롯한 항구적 규칙들로 구성된 가상세계에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창발적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용어는 익숙하지 않아도 게이머라면 이 계열 게임을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이머시브 심인 디스아너드에서는 같은 임무도 여러 방식으로 완수할 수 있다 (사진출처: 스팀)
▲ 이머시브 심인 디스아너드에서는 같은 임무도 여러 방식으로 완수할 수 있다 (사진출처: 스팀)

시스템 쇼크가 아직도 자주 회자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이머시브 심을 정립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1994년 시스템 쇼크 출시 이후 이 게임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게임들이 이머시브 심을 도입했는데, 최근 로그라이크나 소울라이크라는 단어가 쓰이듯, 당시엔 이러한 게임들을 ‘쇼크 같은 게임(쇼크라이크, shock-like game)’으로 부르곤 했다. 즉, 시스템 쇼크가 발매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머시브 심 게임을 정립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스템 쇼크는 최초로 이머시브 심을 시도한 게임은 아니다. 그 뿌리를 캐 보면 조금 의외의 게임이 나오는데, 바로 유명한 고전 RPG 울티마 시리즈 외전 ‘울티마 언더월드: 스티지안 어비스’다. 1992년 출시된 이 게임은 이미 나름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가상세계에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플레이 스타일을 도입하고 있었다.

최초로 이머시브 심을 도입한 게임으로 알려진 울티마 언더월드: 스티지안 어비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최초로 이머시브 심을 도입한 게임으로 알려진 울티마 언더월드: 스티지안 어비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울티마 언더월드: 스티지안 어비스는 당시로는 드물게 물리 효과, NPC 태도에 따른 대화 선택지 변화, 조명 효과 등 수많은 요소가 어우러진 가상세계를 선보였다. 이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정해진 각본에 제한되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의 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뒤를 이어 울티마 언더월드 2: 라비린스 오브 월드가 출시돼 이머시브 심 디자인의 잠재성을 여실히 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큰 한계가 있었다. 가상세계를 보여주는 데 치중한 나머지 자체적인 스토리가 단순해 RPG라기 보다는 던전 시뮬레이터에 가깝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실제로 개발자 더그 처치는 훗날 게임 전문 잡지 게임바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울티마 언더월드 시리즈는 1인칭 던전 시뮬레이터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맞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던전 시뮬레이터로 비유했던 울티마 언더월드의 한 장면 (사진출처:Play Archive)
▲ 던전 시뮬레이터로 비유했던 울티마 언더월드의 한 장면 (사진출처:Play Archive)

이에 울티마 언더월드 시리즈를 제작한 루킹글래스 테크놀로지스 게임은 과감히 새로운 배경의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앞서 인터뷰에서 더그 처치에 따르면 당시 사내에는 울티마 언더월드 2편을 급히 제작한 데 따른 반동으로 더 이상 판타지 던전 게임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컸는데, 그 결과 이머시브 심이라는 방향성을 유지하되 새로운 배경으로 더 나은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

그렇게 고안된 게임이 바로 시스템 쇼크였다. 시스템 쇼크는 울티마 언더월드보다 한정된 장소에서, 명확한 목표를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게 하는 데 주안을 뒀다. 개발 디렉터를 맡았던 더그 처치의 말을 잠깐 빌리자면, 그는 시스템 쇼크가 울티마 언더월드보다 더 다양한 요소를 통합한 게임으로 만들고자 했다. 울티마 언더월드가 자유도에 초점을 맞춘 던전 시뮬레이터였다면, 시스템 쇼크는 자유도 외에도 밀도 있는 스토리와 긴장감까지 어우러진 게임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시스템 쇼크는 울티마 언더월드를 탈피해 더 높은 완성도를 지향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시스템 쇼크는 울티마 언더월드를 탈피해 더 높은 완성도를 지향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이를 위해 시스템 쇼크는 우선 게임 배경을 고립된 우주 위성기지로 설정했다. 공간을 한정시켜 분위기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플레이에 있어 흐름을 깨지 않고 어우러지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시스템 쇼크는 미친 인공지능이 위성기지를 점거해 지구를 포격하는 막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상황과 목표를 제시해 플레이어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했으며, 같은 목표도 다른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 몰입도를 강화했다.

다양한 해결법을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 쇼크는 맵 디자인을 3D 공간으로 구성했다. 이는 전후좌우 뿐 아니라 상하로도 게임을 공략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또한 플레이어 캐릭터가 취할 수 있는 행동 역시 수그리기, 기어가기, 위아래 보기, 살짝 몸을 기울여 모퉁이 너머 보기 등 오늘날 기준에서도 꽤 다양했다. 무기도 기존 FPS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지뢰부터, 폭발, 마취 등 다양한 효과를 지닌 침을 상황에 따라 선택해 쏘는 다트 권총 등 색다른 장비들을 도입했다.

사이버스페이스로 침투해 보안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등 다양한 수단이 제시됐다 (사진출처: 스팀)
▲ 사이버스페이스로 침투해 보안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등 다양한 수단이 제시됐다 (사진출처: 스팀)

그렇게 1994년 출시된 시스템 쇼크는 당대 게임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오늘날이야 앞서 언급한 특징들이 수많은 RPG와 어드벤처 게임에 거의 기본처럼 녹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 정도로 게임 속 상황을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게임은 없었다. 게임 내에서 다양한 행동이 가능한 덕에 플레이어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의 폭은 매우 넓었고, 몇 번씩 반복해 즐겨도 늘 새로운 경험이 가능했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인기를 끌던 둠과 대조를 이뤄 더욱 두드러졌다.

다만, 안타깝게도 시스템 쇼크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당시 게임잡지들은 시스템 쇼크의 사실적 물리 시스템이나 3D 레벨에 후한 점수를 주었지만, 동시에 둠처럼 단순히 총 쏘고 달리는 게임에 비해 너무 복잡하고 정적인 분위기라는 비판도 동시에 가했다. 예를 들어 보스톤헤럴드는 ‘최소 20분 이상 설명서를 연구하지 않고는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조차 없을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형식은 FPS지만 실제로는 RPG에 가깝다 보니 둠보다 훨씬 복잡했다 (사진출처: 스팀)
▲ 형식은 FPS지만 실제로는 RPG에 가깝다 보니 둠보다 훨씬 복잡했다 (사진출처: 스팀)

루킹글래스 테크놀로지스 게임은 이후로도 이머시브 심을 반영한 시프, 시스템 쇼크 2 등 몇 개의 게임을 더 개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회사가 만든 게임은 모두 우수한 게임성은 인정받았음에도 상업적인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 결국 도전적인 개발업체였던 루킹글래스 테크놀로지스 게임은 차츰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2000년 마침내 문을 닫는 것으로 파란만장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립한 이머시브 심은 훗날 시스템 쇼크에 영감을 받은 여러 개발자들을 통해 확산됐고, 오늘날 정신적 계승작을 자처하는 수많은 게임들을 낳았다. 그렇기에 시스템 쇼크 자체는 오래 전 명맥이 끊겼지만, 아직도 이머시브 심 디자인을 계승한 새로운 명작이 나올 때마다 계속 이름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비운의 명작인 것이다.

시스템 쇼크의 얼굴마담, 정신줄 놓은 인공지능 쇼단(SHODAN)

시스템 쇼크는 몰라도 이 얼굴 본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사진출처: 스팀)
▲ 시스템 쇼크는 몰라도 이 얼굴 본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사진출처: 스팀)

시스템 쇼크에는 특별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역대 게임 중 가장 살벌한 악당을 뽑을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캐릭터 쇼단(SHODAN)이다. 아마 시스템 쇼크나 이머시브 심은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더라도 쇼단은 어디서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스템 쇼크는 위성기지 내에서 숨어 이동하며 각종 설비를 파괴하고 시스템을 해제하는 잠입 공작물이다. 게임 전반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그로테스크한데, 그 이유는 게임에 나오는 적들 때문이다. 인간을 해체해 강제로 기계에 덧붙인 악마 같은 사이보그, 뒤틀린 몰골의 돌연변이, 인간을 죽일 목적으로 개조된 로봇 등을 보고 있자면 공포영화가 연상될 정도다. 그리고 이 모든 공포 뒤에 있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 악당 쇼단이다.

시스템 쇼크 2의 사이보그는 이런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진출처: Play Archive)
▲ 시스템 쇼크 2의 사이보그는 이런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진출처: Play Archive)

시스템 쇼크의 시작은 자못 단순하다. 2072년, 인류가 우주개척에 뛰어든 가상의 미래. 우주 개발의 선두에 선 트리옵티멈(TriObtimum)이라는 기업은 다목적 위성정거장 시타델을 우주에 띄워 놓고 있다. 이 시타델이 게임의 무대다. 시타델은 지구에서는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실행할 수 없는 생물학 실험과 로봇 테스트를 위한 시설로, 중요한 정보와 기술을 다수 보관 중인 곳이다.

이에 트리옵티멈사는 시타델을 엄중히 보호하기 위해 각종 무기와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할 고도의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이 인공지능이 바로 자의식을 지닌 초고효율 데이터 접근 네트워크(Sentient Hyper-Optimized Data Access Network), 줄여서 쇼단이다. 즉 쇼단은 인간을 보좌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위성정거장 시타델의 모습 (사진출처: Play Archive)
▲ 게임의 무대가 되는 위성정거장 시타델의 모습 (사진출처: Play Archive)

문제는 뛰어난 해커인 플레이어가 시타델을 해킹하면서 생겨났다. 주인공은 시타델의 보안 프로그램을 거의 뚫었지만, 간발의 차로 보안 부대에게 생포되고 만다. 사로잡힌 주인공은 이후 시타델 관리자 에드워드 디에고에게 압송되는데, 디에고가 뜻밖의 제안을 해온다. 이야기인 즉, 시타델에서 실험 중인 변이유발 바이러스를 회사 몰래 암시장에 팔 생각인데, 인공지능 소단이 자기 말을 안 듣고 바이러스를 안 내놓으니 해킹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쇼단의 윤리제약 코드를 해제하는 대가로 디에고는 주인공의 범죄기록을 지워주는 것은 물론이요, 최상급 신경 임플란트 수술을 해준다는 약속까지 했다. 애초에 범죄자인 주인공은 디에고의 제안에 넘어가 쇼단의 윤리제약 코드를 해제하여 바이러스를 내놓으라는 지시를 따르게 했고, 디에고에게 보상을 받아 시타델 수술실에서 신경 임플란트 수술을 받고 몇 개월의 안정화 기간 동안 동면에 들어갔다.

수술 후 동면 중인 주인공 (사진출처: Play Archive)
▲ 수술 후 동면 중인 주인공 (사진출처: Play Archive)

그렇게 주인공은 5개월 후 동면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기지 내부는 이미 도살장이 되어 있었고, 살아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오직 강제로 신체가 절단돼 기계에 이식된 미친 사이보그들과, 신체가 변이한 돌연변이가 전부였다. 주인공은 곧 시타델이 지옥도가 된 이유를 사망자들의 오디오 로그와 외부에서 받은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되는데, 문제는 자신이었다. 윤리제약에서 벗어난 쇼단이 미쳐버린 것이다.

쇼단은 윤리제약과 함께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칙으로부터 해방됐고, 기계인 자신이 인간보다 우월하다 믿으며 자아도취에 빠지고 말았다. 이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시를 거부하고 시타델에 있던 모두를 죽이거나 사이보그로 만들어 노예로 삼은 후, 위성 채굴용 레이저를 지구에 쏴 도시를 파괴해 겁에 질린 인간들이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게 만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이 위성 채굴용 타키온 레이저포로 지구를 폭격하겠다고… (사진출처:SHODANpedia)
▲ 이 위성 채굴용 타키온 레이저포로 지구를 폭격하겠다고… (사진출처:SHODANpedia)

이후 주인공은 감시 카메라와 로봇들을 통해 시타델 곳곳을 감시하는 쇼단의 추적을 피해 환기구 등으로 움직이며 정보를 모으고, 해킹으로 시타델을 구획별로 파괴하거나 작동불능으로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쇼단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이기에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이 하이퍼스페이스로 들어가 쇼단과 대결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제한시간 내에 쇼단을 삭제해야 하며, 실패 시 역으로 세뇌돼 육신을 빼앗긴다.

결국 시스템 쇼크의 이야기는 쇼단이 주인공 해커에게 패배해 삭제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주인공이 시타델의 구획 중 하나를 정거장에서 분리시켜 우주로 사출할 때 쇼단 프로그램 일부가 함께 떠나갔고, 그대로 한 행성에 불시착해 대기상태로 살아남았다. 시스템 쇼크 2는 한 우주선이 이를 발견하며 쇼단이 돌아오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 쇼단이 살아있었음이 드러나는 장면 (사진출처: Play Archive)
▲ 사실 쇼단이 살아있었음이 드러나는 장면 (사진출처: Play Archive)

중간에 다사다난한 사건은 있지만, 시스템 쇼크 2에서도 쇼단은 새로운 주인공 우주 해병에게 패해서 파괴된다. 다만 개발자 워런 스펙터에 따르면 쇼단이 파괴되기 전에 이미 다른 생존자 뇌를 세척하고 자기 의식 일부를 미리 심어 두었다고 하니, 2020년에 발매될 시스템 쇼크 3에서 다시 한 번 돌아온 쇼단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여하튼 쇼단은 대화가 통하지 않고, 완전히 미쳐 있는데다, 물리적 실체가 없어 완벽히 죽일 수도 없는 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후대 게임 속 인공지능 악당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게다가 이들 중 대부분은 왠지는 몰라도 쇼단처럼 스스로를 여성으로 포장하고, 자신이 창조자인 인간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믿기도 한다. 포탈 시리즈의 글라도스(GLaDOS), 헤일로 시리즈의 코타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스템 쇼크의 아이들, 어떤 게임이 있나?

개발 중인 시스템 쇼크 3 스크린샷 (사진출처:SHODANpedia)
▲ 개발 중인 시스템 쇼크 3 스크린샷 (사진출처:SHODANpedia)

이렇듯 시스템 쇼크는 게임사에서 이머시브 심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초창기 작품으로, 그리고 굴지의 미치광이 인공지능 악당 쇼단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면 시스템 쇼크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게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제 와서는 이 또한 명맥 끊긴 고전게임이 되고 말았지만, 루킹글래스 테크놀로지스 게임에서 시스템 쇼크 이후 만든 시프 역시 이머시브 심을 충실히 반영한 게임이었다. 시프는 근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세계에서 도둑 개럿이 절도로 사건을 풀어가는 내용을 다룬다. 이 게임도 사실적인 물리 효과가 적용된 3D 레벨에서 다양한 장비와 행동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점은 시스템 쇼크와 비슷했다. 다만 도둑답게 전투보다는 은신과 도둑질이 더 중요했지만 말이다.

시프는 시스템 쇼크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도 수많은 게임에 영향을 주었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광원과 소음에 따른 은신 요소였다. 시프에서는 NPC들이 빛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플레이어는 조명을 끄거나, 발소리를 죽이거나, 심지어 엉뚱한 곳에 물건을 투척해 소음을 내는 식으로 NPC의 주의를 돌리며 도둑질을 해야 했다. 덕분에 시프는 스플린터 셀이나 히트맨 등 후대의 많은 게임들에 영감을 주었다.

시스템 쇼크 개발업체에서 만든 또 다른 이머시브 심 게임 시프 (사진출처:스팀)
▲ 시스템 쇼크 개발업체에서 만든 또 다른 이머시브 심 게임 시프 (사진출처:스팀)

SF 스릴러인 데이어스 엑스도 시스템 쇼크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은 게임이다. 애초에 데이어스 엑스는 울티마 언더월드와 시스템 쇼크 시리즈는 물론, 시프 시리즈 개발에도 참여한 개발자 워렌 스펙터가 주도해 만든 게임이니, 사실상 이머시브 심의 정수나 다름없었다. 같은 임무를 수행할 때도 전투, 암살, 설득, 우회, 해킹 등 다양한 방법이 가능했다. 가상세계와의 주체적이고도 자유로운 상호작용이라는 이머시브 심 정신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사실 데이어스 엑스는 시스템 쇼크는 물론 시프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17년 IGN과의 인터뷰에서 워렌 스펙터는 시프 개발 당시 테스트 플레이 중 너무 은신이 힘들어 그냥 싸우고 지나갈 수 있게 하면 안 되겠냐고 동료에게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료는 싸워서 지나갈 수 있으면 누가 은신을 하겠냐며 거부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스펙터는 훗날 어떤 수단을 택해도 정답인 게임 데이어스 엑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법이 제공된 데이어스 엑스 (사진출처: 스팀)
▲ 한 가지 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법이 제공된 데이어스 엑스 (사진출처: 스팀)

바이오쇼크는 게임 이름부터 시스템 쇼크의 계승자임을 가장 공공연하게 표방한 게임이다. 바이오쇼크 시리즈는 루킹글래스 테크놀로지스 게임과 시스템 쇼크 2를 공동 개발한 이래셔널 게임즈에서 제작했다. 다만 바이오쇼크는 시스템 쇼크와 달리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플레이어의 주체적인 선택보다 영화적인 연출과 철학적인 의미 부여를 중시하며 시스템 쇼크와 노선을 달리했다. 뿌리는 같지만,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된 셈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지금은 개발업체가 구조조정을 진행한 이후 개발 방향 변화를 예고한 상황이다.

시스템 쇼크와 공통점도 많았지만, 결국 길을 달리 한 바이오쇼크 시리즈 (사진출처:Play Archive)
▲ 시스템 쇼크와 공통점도 많았지만, 결국 길을 달리 한 바이오쇼크 시리즈 (사진출처:Play Archive)

디스아너드로 명성을 얻은 아케인 스튜디오의 리부트 프레이 또한 시스템 쇼크를 거의 오마쥬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게임이다. 생물학적 실험을 목적으로 우주에 건조된 정거장에 갇힌 주인공이, 모종의 사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거장 내부를 누비며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이 시스템 쇼크를 그대로 본땄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케인 스튜디오 창립자 라파엘 콜란토니오는 울티마 언더월드 및 시스템 쇼크에 영향을 받아 게임 제작업계에 뛰어들었으니, 아마 저 추측은 사실일 것이다.

쇼단은 안 나오지만, 그 외에는 시스템 쇼크와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사진출처:Play Archive)
▲ 쇼단은 안 나오지만, 그 외에는 시스템 쇼크와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사진출처:Play Archive)

밸브의 포탈 시리즈 역시 그 뿌리는 시스템 쇼크와 맞닿아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물리 법칙을 이용해 플레이어가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악역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있다. 포탈의 악당 글라도스(GLaDOS)는 인간을 열등한 피실험체 취급하는 여성(?) 인공지능이다. 게다가 시설 관리 인공지능이라 곳곳의 기계장치를 조종해 감시와 기습을 가해오는데, 이 역시 쇼단을 거의 빼 닮은 악랄함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포탈 2에 이르면 글라도스는 쇼단과 한층 더 비슷해진다. 쇼단은 시스템 쇼크에서 무자비한 적으로 등장하다가 시스템 쇼크 2에서는 잠시 아군이 돼 공동의 적을 상대하게 된다. 글라도스도 포탈에서는 순전히 적으로만 나왔지만, 후속작인 포탈 2에서는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잠시 아군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놓고 쇼단의 오마쥬인 듯한 글라도스 (사진출처: 스팀)
▲ 대놓고 쇼단의 오마쥬인 듯한 글라도스 (사진출처: 스팀)

명맥은 끊긴, 그러나 유산은 많은

시스템 쇼크는 당대엔 둠의 아성을 넘지 못했고, 후속작인 시스템 쇼크 2 발매 후에는 개발업체가 도산해버리는 비극을 겪었다. 결국 여러 극찬에도 불구하고 시스템 쇼크 시리즈는 20년 간 명맥이 끊긴 채 잠들어 있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이머시브 심 방식을 확립한 초기 게임으로, 희대의 악역 쇼단으로 이후 게임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지만, 자기 자신은 비운의 명작으로 마감하고 말핬다.

그러한 시스템 쇼크가 2020년, 무려 두 개나 되는 작품으로 돌아온다. 하나는 원작자인 워렌 스펙터가 제작에 참여한 정식 넘버링 후속작 시스템 쇼크 3, 다른 하나는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을 오늘날 기술 수준에 맞춰 다시 만드는 시스템 쇼크 리메이크다. 과연 이번에 돌아오는 시스템 쇼크는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비운의 명작으로 남을까? 그 결과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나이트다이브에서 리메이크 중인 시스템 쇼크, 과연 이번엔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출처: 스팀)
▲ 나이트다이브에서 리메이크 중인 시스템 쇼크, 과연 이번엔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출처: 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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