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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게임광고] 사지마, 이건 함정이다! 아타리 재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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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아타리 재규어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4년 12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아타리 재규어 광고가 실린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4년 12월호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지금은 게임 콘솔이라 하면 소니, MS, 닌텐도 3자 구도가 확실해졌지만, 1990년대만 해도 많은 회사에서 경쟁하듯 콘솔 기기를 내놨습니다. 특히나 90년대 초중반은 비트 경쟁, 즉 연산능력을 토대로 한 경쟁 구도가 심화됐습니다. 패미컴이 8비트, 슈퍼패미컴이나 메가드라이브가 16비트, 새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1 등이 32비트 같은 식으로, 일반인들도 '비트'의 정확한 뜻은 몰라도 숫자가 높아질수록 최신형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죠.

그런 비트 경쟁이 한창이던 1993년, 아타리가 신형 콘솔을 내놨습니다. 그것도 무려 64비트를 외치면서 말이죠. 이름하야 '아타리 재규어'로 불리는 이 게임기는 당시 국내에도 정식 수입됐는데, 광고보다 훨씬 낮은 성능도 그렇고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게임기였습니다. 당시 실린 광고를 통해 아타리 재규어를 살펴보겠습니다.

X세대 게임기를 강조하며 국내 출시된 재규어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X세대 게임기를 강조하며 국내 출시된 재규어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제우미디어 게임챔프 1994년 12월호에 실린 재규어 광고입니다. 메인 멘트로 "구세대 게임기는 가라! X세대 게임기 재규어가 온다!" 라고 쓰여 있는데요, 다른 건 모르겠고 X세대라는 단어에 갑자기 가슴 한켠이 뭉클해져 오네요. 참고로 광고가 실린 당시는 재규어 북미 발매로부터 1년도 지난 시점으로, 국내 업체 불독소프트라는 곳에서 아타리와 정식 계약을 맺고 들여오기 시작하며 국내에도 광고가 실렸습니다.

재규어 게임기는 성능적으로 우월합니다'
▲ '재규어 게임기는 성능적으로 우월합니다'를 말하는 듯한 소개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자세한 게임기 소개는 뒷면에 있습니다. 64비트 기종임에도 타 32비트 기종보다 가격이 저렴하며, 소프트도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발매될 예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와 함께 재규어의 특징적인 컨트롤러가 왼쪽에 조그맣게 보이는데요, 십자키와 ABC, 스타트/셀렉트 버튼 아래에 뭔가 이상한 버튼들이 보이시나요? 무려 17버튼 패드입니다. 저 버튼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설정에 따라 다르지만 그다지 많이 쓰이는 일은 없었다고 하네요.

전반적으로 '64비트'라는 점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데요, 표는 조그마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메가드라이브나 슈퍼패미콤, 세가새턴 등과 스펙을 비교해 자사 제품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GPU, DSP, 오브젝트 프로세서, 블리터, 모토토라 68000 이라는 5개의 프로세서가 내장돼 있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체 저 프로세서들이 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성능 표를 조금 더 크게 실은 2월호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성능 표를 조금 더 크게 실은 1995년 2월호 광고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두 달 후, 게임챔프 1995년 2월호 잡지에 다시 재규어 광고가 실렸습니다. 역시 기기 성능 위주 광고인데요, 1억 6,800만 컬러, 초당 106.4Mb 데이터 패스, 초당 렌더링 8억 5,000만 픽셀 등의 스펙이 나열돼 있습니다. 앞서 광고에서 제대로 안 보였던 비교표도 상세히 나와 있는데, 영어로 돼 있는 터라 이해하긴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재규어 성능 보세요! 다른 게임기들보다 좋아요!'라는 내용입니다.

재미있는 건, 게임기가 처음 발매될 때는 일반 유저 눈높이에 맞춰 '이 게임기로 어떤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를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재규어는 줄곧 스펙 광고에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스펙 차이를 이해하는 마니아 수요를 잡음과 동시에 일반인에게 '고급 게임기'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함으로 보이는데, 결과만 봐서는 이런 마케팅은 실패했습니다.

게임 소개가 있긴 한데, 아는 게임이 없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게임 소개가 있긴 한데, 아는 게임이 없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다시 두 달 후, 1995년 4월호 광고에는 드디어 게임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이전 광고에도 게임 스크린샷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게임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었죠. 이번 스크린샷에서는 재규어로 나온 게임들이 보이는데, 사실 이것만 봐서는 딱히 플레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임이 없습니다. 리벨리온/폭스에서 만든 FPS '에일리언 vs 프레데터'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고, 나머지 게임들도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낯섭니다. 144개 게임사가 개발에 참여했다는 문구 치고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게임이 없는데, 실제 북미에서도 아타리 재규어 라인업은 처참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나온 게임이 100개도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가격인하 사유는 원화절상이지만, 사실은 제품 자체가 재고처리를 위해 정가를 낮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 가격인하 사유는 원화절상이지만, 사실은 제품 자체가 재고처리를 위해 정가를 낮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DB)

재규어는 1995년 5월, 국내에서 가격인하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가격으로 인하한 가격이 29만 8천원이었으니 당시 최신 게임기 가격 치고 나름 싼 가격이지만, 막상 재규어로 즐길 게임이 없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발사인 아타리가 여러 가지 사업적 이유로 게임 하드웨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이 게임기는 1996년 단종되며 처참하게 망했죠. 참고로 광고에서는 가격 인하에 '엔고 및 달러화 하락'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아타리가 재규어 공식 가격을 낮춘 것에 불과합니다.

여담이지만, 재규어가 주구장창 주장했던 64비트 고성능 역시 허상이었습니다. 훗날 지적된 사항을 요약하자면 정작 CPU와 GPU는 32비트였고, 이 둘이 함께 작동해 64비트 성능을 낸다는 기적의 수학법이었죠. 실제로도 세가 새턴보다 성능이 떨어졌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 광고에 낚여 재규어를 샀던 25년 전 소수의 국내 게이머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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