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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치] 마이너 게임기 열전: 시대를 앞서 간 Game.com



최초의 게임기라 불리는 오딧세이가 발매된 것이 벌써 40년 전이다. 그동안 수많은 회사에서 개발한 300여 종의 게임기가 등장하였으나, 현재는 소니, 닌텐도, MS의 3사에 의한 트로이카 체제가 구축돼 있고 앞으로도 그 아성은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여겨진다.

'1인치'의 첫 번째 주제로 현재의 콘솔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발매된 게임기 중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마이너 게임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이 실패한 이유와 그들의 도전과 시도가 현재의 콘솔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타이거 일렉트로닉스 - Game.com


▲ Game.com 게임기 모습 (사진 출처: 이베이)

마이너 게임하드 열전 제 1회에서 소개할 하드는 바로 Game.com이라는 휴대용 게임기이다. 

Game.com(게임닷컴이 아니라 게임컴이라고 읽는다)은 1997년 10월 타이거 일렉트로닉스(Tiger Electronics)라는 완구 업체에서 발매됐다.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는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업체로 퍼비(Furby)라는 말하는 인형과 LSI게임기가 주력상품이었다.

타이거 일렉트로닉스가 판매하던 LSI게임기는 기기 자체에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게임기다. 전자계산기나 전자시계와 같이 액정 화면에 캐릭터의 그림을 ON/OFF하는 방법을 통해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어 형태를 표시한다. 저렴한 가격과 건전지 한 개로 거의 3~4개월에 가까이 놀 수 있는 게임기이다. 닌텐도 역시 ‘게임앤워치’(Game&Watch)라는 이름의 LSI게임기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닌텐도는 이 ‘게임앤워치’의 히트로 현재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된다.


▲ 닌텐도 '게임앤워치'(좌)와 카시오에서 판매하던 손목시계(우)

당시에 카시오에서도 손목시계에 간단한 게임기능을 넣은 시계를 팔기도 했고, 부유한 집의 아이들이 이 시계를 자랑하는 경우도 많았다.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판매가 된 과거가 있어 현재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유저들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타이거 일렉트로닉스에서 발매한 LSI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에 발매됐던 인기 비디오게임을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받아 LSI 버전으로 이식했다는 것이다. 타이틀만 봐도 도대체 어떻게 LSI로 만들었을지 싶은 타이틀이 상당히 많았으나 비싼 게임기를 구매하지 못했던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나름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세가, 코나미, 캡콤, 타이토 등으로 이루어진 일본 게임의 LSI 버전은 타이거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으며, 일부는 북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이중 ‘스트리트파이터’나 ‘애프터버너’ 등의 게임이 국내에 수입되어 판매됐다.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는 수백 종에 달하는 라이선스 LCD게임기를 끊임없이 출시하여 게임보이와 게임기어가 서로 쉐어를 다투던 북미의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조용히 틈새시장을 구축해 나갔다.


▲ 최대 히트작이기도 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2'의 LSI 버전 
구수하게 생긴 캐릭터 그림이 눈에 띈다.
(사진 출처: 일렉트로닉 핸드헬드 게임 뮤지엄)


▲ 세가와 함께 '소닉과 나이츠' 등 인기게임을 LSI로 컨버전 했다
(사진 출처: 일렉트로닉 핸드헬드 게임 뮤지엄)

그러던 중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는 1997년 9월경에 본격적으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닌텐도에게 도전을 선포한다. 발표한 게임기의 스펙은 아래와 같다.




▲ 발표된 기기 상세 내용

우선 스펙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당시 발표된 Game.com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게임 라인업들이었다. 이들의 ‘이름값’만 보자면 닌텐도, 소니 부럽지 않을 만큼의 빵빵한 타이틀로 구성됐으며, 이로 인해 등장부터 북미에서 매우 큰 주목을 받았다.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는 LSI 게임 시장에서 구축한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초호화 라인업을 구축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타이틀은 바로 ‘레지던트 이블 2’와 ‘소닉 잼’, ‘파이터스 메가믹스’, ‘듀크 뉴켐 3D’(Duke Nukem 3D) 등 네 개의 타이틀이다. 이밖에도 ‘로스트월드: 쥬라기 공원’, ‘인디 500’, ‘모탈컴뱃 트릴로지’ 등의 인기 아케이드 타이틀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특히나 세가를 대표하는 게임인 ‘소닉’ 과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레지던트 이블2’(일본명 : 바이오하자드2)가 하나의 게임기로 동시에 발매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주목을 받았다.


▲ 소닉, 바이오하자드2, 듀크뉴켐, 모탈컴뱃… 타이틀의 이름들만 보자면 정말 초호화 라인업이었다 (사진 출처: 이베이)

하지만 문제는 스펙만 봐도 알 수 있듯이 Game.com은 게임보이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에불과했다. 특히 3.5인치의 흑백화면에서 ‘레지던트 이블 2’나 ‘파이터즈 메가믹스’같은 3D 게임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은 3D게임을 2D로 억지로 이식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게임화면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 세가 새턴으로 발매되었던 '파이터즈 메가믹스'의 이식버전 (사진 출처: 게임 데이터베이스)


▲ 충격과 공포의 '레지던트 이블 2' 이식버전 (사진 출처: 게임 데이터베이스)


▲ '소닉' 시리즈와 '소닉앤너클즈'를 한 팩에 몰아넣은 '소닉 잼' (사진 출처: 게임 데이터베이스)


▲ Game.com용 게임 중에서는 그나마 평판이 가장 좋았던 '듀크뉴켐 3D' (사진 출처: 게임 데이터베이스)

게다가 게임 개발도 세가나 캡콤의 협력을 받지 못한 탓에 타이거 일렉트로닉스 자사 개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과거 발매했던 LSI게임들의 수준과 비슷한 저품질의 게임들이 나왔다. 아래에 유튜브에 등록된 몇 개의 게임 영상을 소개한다.

▲ '레지던트 이블2' 플레이 영상 (출처: 9esferas)

▲ '파이터스 메가믹스' 영상 (출처: 9esferas)

▲ '소닉 잼'


▲ '모탈컴뱃 트릴로지' 영상 (출처: 9esferas)

결국 낮은 수준의 품질과 마케팅 부족이 더해져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이 후에Game.com에서 필요 없는 기능을 삭제하고 액정의 성능을 높인 후속기 ‘Game.com pocket pro’를 발매하지만 역시나 반격은 실패로 끝나고, 약 30여만개라는 초라한 판매성적으로 시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타이거 일렉트로닉스는 Game.com의 실패로 98년에 미국의 대형 완구 업체인 Hasbro의 일원이 됐으며, 하스브로의 일원이 된 이후에는 Game.com의 뒤처리를 하다가 결국엔 게임 사업에서 손을 떼고 퍼비를 비롯한 장난감 사업에만 주력하게 된다.


▲ 퍼비이다. 미국 드라마에 은근히 자주 출연하므로 익숙한 독자들도 있을 듯
(사진 출처:해즈브로 공식 홈페이지 )

물론, Game.com으로 발매된 게임의 품질이 매우 낮았다고는 하지만 게임기의 컨셉 자체는 앞서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차후에 발매된 닌텐도DS나 PSP에도 Game.com과 비슷한 기능이 추가된 것을 볼 수 있다.

 

▲ Game.com의 GUI 화면

 Game.com에는 GUI가 탑재된 독자 OS를 채용했고 터치펜으로 이를 조작하고, 게임카트리지를 집어넣지 않아도 기본메뉴가 나타난다. 이외에 주소록, 달력, 계산기 등 간단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솔리테어가 기본 게임으로 내장되어 있어서 카트리지가 없이도 즐길 수 있었다.


이는 Game.com 이전에 발매된 기존의 휴대용 게임기에는 전혀 없었던 기능들이었다. 이러한 기능들이 게임기에 본격적으로 탑재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부터다.

별도 판매되는 모뎀으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에는 휴대용 인터넷 단말기가 아닌 게임기에 거대한 모뎀을 직접 연결하고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을 즐길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접속해서 플레이어의 하이 스코어를 인터넷에 업로드하거나 숨겨진 아이템이나 숨겨진 캐릭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능이 존재했으니 휴대용 게임기로서는 최초로 인터넷 리더보드와 DLC의 개념을 도입한 게임기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멀티플레이도 시야에 넣고 있었으나 결국 게임기 자체의 실패로 인해 대응 소프트웨어는 발매되지 못했다.


▲ 배보다 배꼽이 더 큰 Game.com용 모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본 코너의 첫 번째로 Game.com을 선정한 이유도 ‘멀티미디어 기기’를 실현하고자 했던 자세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Game.com에 탑재되었던 생소했던 기능들이 지금은 대부분의 기기의 필수 기능이 됐으며, 일반 유저들도 게임기에 멀티미디어 기능이 탑재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당시에 이 게임기를 개발했던 개발진들은 지금의 게임기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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