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테마 > 기자수첩

[기자수첩] 모든 것을 갖춘 `테라`에게 없는 한가지

/ 2

"테스트를 시작한지 일주일째인데 도대체 이게임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테라` 8일차 테스트가 있었던 3월 5일. 어떤 유저가 공식홈페이지에 쓴 푸념 글이다. 본인은 이 글을 보는 순간 도끼에 머리를 논타겟팅으로 후려 맞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테스트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며 도대체 나오지 않았던 말을 그가 한 것이다.

2004년 블리자드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세상에 내놨을 때 그것은 스티븐잡스가 꺼낸 ‘아이폰’처럼 하나의 혁명이었다. ‘게임’이 문화 엔터테인먼트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주요한 시도였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팬들은 전세계 천만 유료가입자라는 수치로 보답했다. 불편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블리자드가 온당히 평가 받아야 할 요소는 창의력과 기술력의 진보가 아니다. 자체엔진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고 콘텐츠가 획기적인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들자면 이미 여러 게임에서 시도했던 콘텐츠를 수정하고 업그레이드해 워크래프트 세계관에 재배치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재배치가 역사를 다시 썼다. 스티븐잡스가 아이폰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놨을 때 기기의 스펙보다 ‘철학’을 먼저 강조 했듯 ‘월드오브워크래프트’도 블리자드가 내세운 철학의 산물이었다. 바로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면 내놓지 않겠다’라는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현존하는 국내 MMORPG의 8할은 와우베이스 기반의 콘텐츠를 좇아 개발되었다.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게임이 있다면 그것 또한 저 수치에 포함될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퀘스트를 통한 레벨업 기반의 성장베이스를 거부할 수 없었다. 전쟁이 핵심 콘텐츠이지만 ‘인스턴스 던전’은 들어가야 했다. 그것이 획기적이어서가 아니다.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유래 없는 대성공을 기록한 엔씨소프트 `아이온` 역시 퀘스트 성장 베이스에 `DAoC`의 프론티어 전장을 밴치마킹해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에 편승한 사례이며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자체 퀄리티가 모든 것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3차 CBT까지 치룬 `테라`는 어떨까.

약간 과도기적인 냄새가 나긴 한다. 큰 틀은 와우나 아이온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논타겟팅’ 액션을 선택하면서 한발 정도는 대세의 흐름에서 뺀 듯 보여진다.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 하에 투자자를 안정시키고 대중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MMORPG의 흐름을 차마 놓을 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테라의 안정적인 성공을 돕는 성공요소이지 불안요소는 아니다. 대중적인 요소는 어디까지나 상업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은 개발사가 취할 수 있는 방어적인 `플랜B`이면서 안정성을 담보로 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현재 `테라`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허들은 최적화나 타격감 등과 같은 시스템적인 부분이 아닌게임의 정체성이다. 요컨대 이데올로기가 없다. 6개 종족 8개 직업 기반으로 캐릭터를 고를 수 있으며 시작 시 비주얼 나레이션으로 캐릭터 육성에 대한 동기부여를 한 듯싶지만, 그것뿐이다. 개성 넘치는 종족을 만들었지만 종족별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으며 내가 왜 성장을 해야 하는지를 게임은 말해주지 못한다. 필드에 몬스터가 지천에 깔려 있지만 왜 그곳에 있는지,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스토리텔링 없이 사냥과 레벨업만 반복되는 구조인 까닭이다. 물론,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있긴 있다. 퀘스트 지문을 읽어보면 대충 이해관계가 얽혀있긴 하다. 하지만, 이 얼마나 수동적인 구조인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나 아이온은 게임의 적응레벨이라고 할 수 있는 약 30레벨까지 각 종족이나 진영간 이데올로기를 스토리, 퀘스트, 배경, 심지어 레벨업 동선에 이르기 까지 뿌리깊게 심어 놓았다. 때문에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명확하며 유저들은 자신의 종족에 대한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것이 인위적이고 강제적으로 조직된 환경일 망정 최소한 내가 왜 레벨업을 해야 하는지 내가 왜 이곳에 싸워야 하는지 말해준다. `테라`에 게임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 아니 그 정체성을 유저들에게 말해주지 못했다는 것은 용량 20기가 짜리 전투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놓았다는 말이다.

혹자는 ‘게임이 재미있으면 됐지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하찮게 생각하는 요소가 바로 레벨업의 명분이고 또한 자신의 종족에 몰입하고 이해할수 있는 이념이며 MMORPG의 핵심의 주제이다. 없다고 다음 업데이트에 추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 엔드콘텐츠에 이르기 까지 밑거름을 깔아 놨어야 하는 것이다.

`테라`가 3차 CBT에서 드러낸 문제점은 과연 6월 이내 OBT가 가능 한 것인가 의문이 들게 할 만큼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것이었다. 무리하게 콘텐츠 양을 늘리면서 생긴 버그들도 눈에 띄게 많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CBT이기 때문에 봐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문제가 있지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00억짜리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과도한 잣대를 들이댄 것도 사실이다. 아이온이 자체 퀄리티를 앞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듯 테라 역시 충분히 그만한 역량을 갖추고도 남을 작품이다. 다만, 단 1레벨이라도 내가 왜 레벨업을 해야 하는지 게임이 알려줬더라면 퀘스트 안에 꼼꼼하게 숨겨둔 게임의 정체성을 유저들에게 설명했더라면 OBT를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테라 . 01. 01
플랫폼
온라인, 비디오
장르
MMORPG
제작사
크래프톤
게임소개
논타겟팅 MMORPG '테라'는 '발키온' 연합과 '아르곤'과의 전쟁을 그린 게임이다. 언리얼 엔진 3를 기반으로 개발된 '테라'는 화려한 그래픽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휴먼과 케스타닉, 아만... 자세히
게임잡지
2003년 12월호
2003년 11월호
2003년 10월호
2003년 9월호
2003년 8월호
게임일정
202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