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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메카] 미소녀게임계 언더테일, 틀을 깨는 노블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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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디게임, ‘언더테일’을 기억하시나요? 토비 폭스라는 개발자가 만든 이 작품은 기존 게임에 등장하는 상투적인 설정을 비틀어 색다른 재미를 제공했다는 호평을 받았죠. 예를 들자면 ‘언더테일’에서는 몬스터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몬스터는 처치하고 경험치를 얻는 수단일 뿐인데 ‘언더테일’에서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는 거죠. 여기에 탄탄한 스토리 덕분에 두터운 팬층까지 생겼는데요, 더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직접 구매해서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던 '언더테일'

미소녀메카 도입에 굳이 ‘언더테일’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소개할 게임도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소녀게임은 캐릭터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르라 연출이나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조명되는 일이 드뭅니다. 수많은 개발자들이 도전했지만 결국 현실적인 이유로 틀 속에 갇힌 게임이 나오거나 고정관념은 깼지만 정작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임이 되어버리기도 하죠.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작품 ‘노블게임의 틀을 바꾸는 노블게임(이하 노블게임)’은 발상의 전환으로 탄생한 독특한 시스템에 이에 걸맞은 시나리오와 완성도까지 갖춘 게임입니다. 아쉽게도 흥행 성적은 크게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게임 자체는 꽤 수작이죠.


▲ '노블게임의 틀을 깨는 노블게임' 스크린샷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틀을 깨는 마이너 개발사, 자전거창업

‘노블게임’ 제작사는 자전거창업이라는 일본 회사입니다. 앞서 미소녀메카에서 소개된 회사들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인데요, 2000년에 설립되어 꾸준히 미소녀게임을 만들어왔습니다. 대표작으로는 ‘하늘의 부동산’, ‘로스트 컬러즈’, ‘그 멋진 을 다시 한 번(あの、素晴らしい  をもう一度)’ 등이 있습니다.


▲ '로스트 컬러즈' 메인 이미지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사실 대표작이라고는 하지만 생소한 타이틀이 많을 겁니다. 자전거창업은 일본 현지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거든요. 그도 그럴 게 출시된 타이틀 대부분이 연애 시뮬레이션보다는 퍼즐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콘셉도 독특하죠. ‘로스트 컬러즈’는 색깔이 없는 세계에서 색을 되찾는다는 설정이었고, ‘그 멋진을 다시 한 번’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여행하는 내용을 그립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게임 ‘노블게임’은 단연 자전거창업이 만든 게임 중에서도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죠. 이 게임의 세계는 무려 그래픽 해상도가 줄어드는 곳이거든요.

시나리오의 단순함, 독특한 시스템으로 상쇄하다

‘노블게임’은 퍼즐을 풀지 못하면 게임 해상도가 줄어듭니다. 네, 그렇습니다. 화면이 작아진다는 거죠. 여기에 본격적으로 게임에 시작하기 전에는 해상도가 320 X 240까지 줄어듭니다. 미소녀게임이라면 응당 유려하고 큰 CG가 중요하기 마련인데, 대체 무슨 의도로 해상도를 줄이는 걸까요? 그 이유는 ‘노블게임’이 게임 화면 크기와 화면 캡처를 이용해 퍼즐을 푸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 전체화면 그런거 없다, 작은 화면!

‘노블게임’ 세계의 왕은 이대로 계속 해상도가 줄어들면 세상이 멸망해 버릴 거라는 두려움에 고대 문헌의 예언에 따라 외부인을 불러들이니다. 플레이어는 ‘노블게임’ 속에서 왕에게 소환된 외부인이죠. 쉽게 말하면 '이계에서 온 용사'인 셈입니다. 작은 화면(…)에서 계속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세계를 관장하는 시스템 역할을 맡고 있는 캐릭터 ‘신시아’를 만나게 되고, 그 캐릭터가 발생시키는 자기장 때문에 버그가 생겨 해상도가 계속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화면 크기를 직접 조절해 오브젝트를 탐색하고, 중요한 단서는 캡처해서 기억해뒀다가 향후에 조사하는 방식으로 퍼즐을 풀어나가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해상도가 점점 줄어들어 멸망의 위기에 처한 게임 속 세상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죠.




▲ '노블게임' 플레이 중 실제로 사용되는 기법들

위의 이미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블게임’은 시스템 구성에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화면이 줄어든다'는 세계관과 설정이 게임 속 퍼즐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으며 핵심 요소로 활용되죠. 그러나 너무나 설정에 집중한 탓인지 시나리오는 자전거창업의 전작에 비해 굉장히 단순한 편입니다.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이름에서 역할이 드러나는 캐릭터

그리고 단순한 시나리오를 채워주는 것은 역시 캐릭터입니다. ‘노블게임’ 등장인물은 이름부터 대사까지 센스가 철철 넘치죠. 실제로 주인공 ‘오모비토 코우’는 본인을 부른 왕에게 외부에서 온 용자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는 무책임한 태도를 꼬집죠. 대부분 게임에서 ‘세계를 구해달라’는 명목으로 이계용사를 불러들이는 클리셰를 유머러스하게 비꼰 겁니다. 여기에 왕은 ‘차기작 개발 시 고려해보겠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내놓죠.

‘노블게임’의 진행 전반은 위와 같은 가벼운 대사가 주를 이룹니다. 여기에 캐릭터 이름은 일본어를 조금만 한다면 알아챌 수 있는 스포일러들로 가득한데요. 시나리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은 아니다 보니 앞으로 스토리가 예측되는 캐릭터 이름도 하나의 재미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죠.


▲ 오모비토 코우
노블게임의 주인공. 이름인 오모비토 코우는 
‘오모’, ’비토’, ’코우’로 나누어서 한자로 ‘주인공’(主人公)’이라는 의미다


▲ 쿠로 덴코

사극풍의 말투를 사용하며 수파기(손에 든 전화기)라 부르는 무기를 이용해 '수파기류'를 사용하는 무도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기분파 캐릭터


▲ 신시아
이 세계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 신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사가 세계를 창조하고 그 관리, 유지를 위해 만들어둔 기계
굉장히 긴 세월을 살아온 기계이기 때문에 농담을 잘 하지는 않지만, 의외로 잡담을 걸면 별 말 없이 잘 받아주는 편



▲ 라스 보스코

일본어로 최종보스라는 뜻을 가진 라스보스(ラスボス)에

흔히 여성의 이름 뒤에 붙이는 코(子)를 붙여서 만든 이름으로, 이 작품의 최종보스임을 대놓고 드러낸 캐릭터
굉장한 백치미를 자랑하는 주부지만 실제 성격은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 나츠세 토코미
왕궁도서관의 사서로, 밀림과도 같은 도서관을 관리하기 위해 탐사대 복장을 하고 있다
느긋하고 유연한 성격으로, 주인공이 해상도 축소의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 누리토카(돼지), 림탓카(머리 위의 달팽이)
실질적인 도서관의 관리자로, 누리토카는 점잖고 연륜, 경험이 출중한 아저씨의 성격을 가진 돼지
림탓카는 쉽게 흥분하는 성격에 말투도 거칠지만 능력은 출중한 달팽이다
대체로 머리를 쓰는 일에 약한 동료들이 많은 탓에 그나마 이 둘이 주인공의 의논상대가 되어 준다

‘비주얼노벨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인식에 대한 반론

‘노블게임’은 자전거창업의 철학을 보여주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비주얼노벨은 게임성이 없기 때문에 게임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게임이기 때문입니. 실제로 ‘노블게임’ 역시 기본 바탕은 시나리오 전개를 중심으로 한 비주얼노벨이지만 독특한 퍼즐 요소로 '특이한 미소녀게임'으로서 두각을 드러냈죠.

‘노블게임’ 제작진도 공식 홈페이지에 비주얼노벨에 대한 의견을 밝혔는데요, 정리하자면, 비주얼노벨은 ‘이야기를 읽는’ 게 주가 되는 콘텐츠지만, 게임으로서의 면모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소녀게임에서는 시나리오만큼 각 히로인들과의 상호작용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공략할 히로인을 선택하고, 선택지를 골라 호감도를 관리하고, 원하는 엔딩으로 이끌어가는 상호작용은 게임이 아닌 다른 문화 콘텐츠에서는 보여주기 힘든 부분이죠. ‘노블게임’ 역시 게임이라는 매체로 출시되지 않았다면 ‘해상도가 줄어드는 세계’ 같은 콘셉을 보여줄 수 없엇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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