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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발등 불 꺼지니 게임업계 자율규제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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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인증마크
(사진출처: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공식 홈페이지)


게임을 둘러싼 정국이 어지럽다. VR 게임 육성이나 고포류 게임 규제 완화 등 좋은 소식도 있지만 게임을 비롯한 인터넷 중독에 질병코드를 신설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가 이어지며 업계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진흥과 규제, 두 가지가 뒤엉켜 정신이 없는 와중 까맣게 잊혀진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게임업계가 들고 나온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자율규제는 ‘무주공산’이다. 그 누구도 책임지고 있지 않다. 자율규제 핵심은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문제는 공개 방식이 투명하지 않다. 매달 ‘선수 카드’ 획득 확률을 카드 별로 발표하는 ‘피파 온라인 3’처럼 잘 지키는 게임도 있지만 같은 회사에서 서비스하는 ‘마비노기’나 와이디온라인의 ‘미르의 전설 2’ 등 온라인게임 다수가 한 등급에 여러 아이템을 묶어서 확률을 공개하거나 수치를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이 경우 각 아이템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를 확인하기 어렵다.


▲ '피파 온라인 3' 선수 카드 획득 확률 중 일부 (사진출처: 게임 공식 홈페이지)


▲ '미르의 전설 2' 확률 공개 (사진출처: 게임 공식 홈페이지)

모바일게임도 마찬가지다. 자율규제 시행 전부터 자발적으로 확률 공개에 나선 넥스트플로어의 ‘드래곤플라이트’ 같은 모범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이 온라인게임과 마찬가지로 개별 아이템 확률을 정확하게 구분하기 힘들다. 1% 미만은 ‘매우 낮음’, 1% 이상에서 5% 미만은 ‘낮음’ 등으로 표기해 ‘이 아이템을 뽑을 확률은 얼마인가’를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여기에 지난 9월 첫 공개 후, 확률 정보가 갱신되지도 않았다.


▲ '뮤 오리진' 확률 공개 (사진출처: 게임 공식 카페)

이처럼 첫 공지 후 새로운 안내가 없기에 예전에 올라온 공지를 검색하지 않으면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공개된 확률도 두루뭉수리하며 그마저도 최신 정보가 아닌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게임업체의 ‘확률 공개’는 생색내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저들에게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없고, 자율규제를 하자고 하니 시늉만 내고 정보를 알고 싶다면 유저가 찾으라는 마인드다.

협회 역시 자율규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협회는 10월부터 자율규제를 지키는 게임 목록을 발표하는 ‘모니터링 결과’를 공개하고 있으나 이 보고서가 공개되는 곳은 협회 공식 홈페이지밖에 없다. 여기에 언론 보도용으로 보고서 내용을 배포하지도 않으며, 보고서가 나왔음을 외부에 알리는 채널도 전무하다. 다시 말해, 자율규제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 싶다면 홈페이지에 와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10월부터 2월까지 보고서 5개가 있는데 조회수가 모두 11회를 밑돈다. 즉, 보고서는 5개나 있으나 이를 확인한 사람은 35명 안팎이다. 다시 말해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 3월 3일, 자율규제 월간보고서 조회 현황
(사진출처: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공식 홈페이지)

보고서 내용 역시 부족하다.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협회 회원사가 서비스하는 게임 중 자율규제를 지키고 있는 게임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자율규제에 동참하지 않은 게임은 확인할 수가 없다. 당초 협회는 지키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명확하게 구분해 알리며 지키지 않는 업체는 여론의 압박을 받는 구도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정보는 동참하지 않는 게임을 걸려낼 수 없어 여론의 압박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정우택 의원의 발의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업체도, 협회도 모두 ‘자율규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부족한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다. 정우택 의원은 게임업계의 자율규제가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근거 중 하나는 게임업계의 자율규제는 성공한 역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자율규제가 무주공산으로 흘러갈 경우 정우택 의원이 말했던 ‘게임업계 자율규제는 성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되어버리고 만다. 

게임업계는 정 의원의 법안이 발의된 후 좀 더 내용을 보강한 자율규제를 들고 나왔으며 7월부터 이를 시행했으나 공개된 확률 정보를 믿을 수 없다거나, 눈치보기에 급급한 업체 등으로 시작부터 삐걱댔다. 그리고 정 의원의 법안이 19대 국회 임기 만료가 다가오며 사실상 폐기 수순에 접어들자 자율규제는 보고서만 남고, 성과는 실감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즉, 발등에 떨어진 불이 없어지자 자율규제도 지지부진해지는 모양새다.

현재, 게임업계는 ‘게임중독에 질병코드를 붙인다’는 보건복지부 발표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명확한 근거 없이 ‘게임중독’을 질병 취급하겠다는 것에 반박하는 것은 게임업계로서 당연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생각해볼 점은 ‘게임업체는 유저와 했던 약속을 얼마나 잘 지켰는가’다. 강제성이 없는 자율규제는 업체와 유저와의 ‘약속’과도 같았다. 명확하게 확률을 공개해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재 그 약속은 업체와 협회의 무관심 속에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스스로 했던 약속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도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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